소설리스트

강철 회귀-38화 (38/175)

038 사소한 악연 (2)

3.

유아영은 백유진을 재우지 않았다.

백유진은 밤새도록 유아영을 달래고 만족시켜야 했다.

덕분에 그녀는 눈 밑이 퀭해진 채로 정오가 돼서야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한숨도 자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에스프레소 4샷을 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억지로 잠을 몰아냈다.

그리곤 자기 자리에서, 유아영에게 아침에 건네받은 서류봉투를 열어 문건을 확인했다.

‘방화제일고등학교 3학년 11반 강철…… 응? 잠시만…… 92년생?’

그리고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수차례 강철의 학생생활기록부를 확인했다.

‘뭐야…… 고등학생이라고? 진짜?’

그녀의 얼굴 가득 불신이 피어올랐다.

‘말도 안 돼……. 고등학생이 그럼 지금 조민석하고 손을 잡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거야? 아니, 조민석이 말을 놓지 않는다면서? 그럼 조민석은 이걸 알고도 그러는 거야? 왜?’

백유진은 일단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고는 자기 자리 서랍장에 보관했다.

그리곤 곧장 인트라넷에 접속해 강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시작했다.

‘운전면허증은 따로 없고…… 전과 기록에도 조회가 안 되고…… 뭐야…… 그럼 진짜 고등학생이란 말이야?’

그녀는 손을 모아 입을 가린 채 한동안 가만히 모니터만 바라봤다.

‘혹시 조민석이 아니면 이 인간이 일부러 흘린 건가? 교란하려고?’

그런 가능성도 생각해 봤다.

‘아니야.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아니, 무엇보다도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영이의 정체가 발각이 됐다는 건데…….’

백유진은 다시 문건을 꺼냈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던 그녀는, 강철의 거주지 주소를 검색해 보았다.

‘사랑의 집…… 고아원?’

그녀는 메모지에다가 따로 주소를 적었다.

그리곤 문건을 다시 서랍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인해 봐야겠어.’

그녀는 직접 사랑의 집에 가볼 작정이었다.

‘만약 진짜 92년생이면…….’

10대 범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정보국에 발령받기 전,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종종 10대 강력범죄자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철은 경우가 달랐다.

‘이 사람…… 만약 이름이 강철이 맞다면…… 강철은 대산그룹 쿠데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이건…….’

그녀는 곧장 강서구 방화동 사랑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

잠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확인해야 해. 반드시.’

그렇게 그녀는, 다소간의 정체 끝에 40분을 도로 위에서 소요하고서 마침내 강서구 방화동 사랑의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고아원 마당에 차를 대놓고 내린 그녀는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녀의 부름에 곧바로 응답이 왔다.

“누구세요?”

등 뒤에서 들린 대답에 그녀는 몸을 뒤로 돌렸다.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의, 살집이 꽤 있는 중년 여자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유진은 신분증을 보여줬다.

“경찰입니다.”

그러자 중년 여인은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철이 때문에 왔어요?”

백유진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또?’

그녀는 신분증을 넣고 중년 여인에게 물었다.

“네. 강철 군 때문에 왔는데.”

“저번에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없다고. 걔 나갔다고. 사고 친 날 나갔다고.”

백유진은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자료네.’

그리고 의문을 품었다.

‘사고라고?’

백유진은 중년 여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나 중년 여인은, 이미 강서경찰서 형사들에게 다 대답했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결국, 백유진은 강서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강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일단 피해자랑 보호자 측에서 고소 의향이 없다고 해서 정식으로 수사가 개시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피해자 부친이 방화동 범단 수괴라서…….”

강철이 고현수의 귀를 물어뜯었다.

정식으로 고발이나 고소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니던 강서경찰서 형사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방화동 소재 범단 용택이파의 두목 고용택의 아들과 관련된 일이라 강서경찰서에서 몇 차례 조사는 했지만,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하진 않았고 지금은 일단 묻어둔 상태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백유진은, 그렇게 터덜터덜 강서경찰서를 떠나 경찰청으로 돌아왔다.

‘강서구에서 조폭 아들의 귀를 물어뜯고 강동구로 넘어가 조폭을 돕고 있다고?’

그녀의 모니터에는 고용택과 그의 조직에 관한 정보국 자료가 떠 있었고, 책상에는 강철의 학생생활기록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뒤쫓고 있는 거지?’

그 둘을 번갈아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4.

6월 18일 금요일 저녁 8시.

강철은 김명길과 함께 강서구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김없이, 운전대는 서용태가 잡고 있었다.

“돈을 빌려줄라는 거 아이겠십니까?”

뒷좌석에서 김명길은 그렇게 강철에게 말했다.

“흐음…….”

강철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뭐가 말입니까?”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담보 이야기는 여전히 없고, 이 시간에, 심지어 저녁 식사를 같이할 타이밍도 아닌데 강서구로 넘어오라고?”

“뭐……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거래 할라는 거 아이겠십니까?”

“흐음…….”

백두산의 비서 김명수는 김명길에게 방화동 한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그랬기에 김명길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강철은 달랐다.

‘식당을 약속 장소로 잡아서 상대방의 긴장을 풀고, 그 상태에서 뭔가 장난질을 한다면?’

강서구는 백두산의 앞마당이다.

강대산조차도 영향력을 전혀 끼치지 못했던, 독립적인 공간이다.

그런 곳에선, 설령 식당이라 하더라도,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순 없다.

강철은 가만히 식당의 구조를 떠올려 보았다.

주차장은 입구를 제외하곤 모든 방위에 담벼락이 둘려져 있었다.

입구에는 영업이 끝나면 닫는 걸로 보이는 두터운 철문이 있었다.

‘뭐…… 만약에 선을 넘어 주신다면 나야 고맙지.’

강철은 씩 웃었다.

만약 백두산이 그가 의심하는대로 뭔가 수작질을 부리는 것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명분을 얻는 것이니까.

만약 그게 아니라 김명길과 진짜로 대출 약정서 같은 걸 작성하려는 거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았다.

본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니까.

‘잠시만…… 그러고 보니 고현수 애비가 강서구에서 생활하는 조폭이라지 않았나?’

문득 잊고 지냈던, 회귀 후 처음으로 피를 보게 했던 상대방과의 사소한 악연을 떠올리곤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사이 차는 어느덧 방화동 한식당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늦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식당 입구에 서 있던 김명수가 다가와 김명길을 환대했다.

김명길은 그대로 김명수를 따라 백두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흐음.’

딱히, 의심했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자, 강철은 살짝 김빠졌다는 기분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문 앞에 섰다.

“회장님께서 방문 앞에 아무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좀 보기 안 좋았다고.”

그러나, 이번엔 특이하게도 김명수가 강철을 방문 앞에서 퇴거시키려 했다.

“여기 경호는 확실합니다. 회장님도 계시기 때문에, 아주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별채로 가서 야식이라도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철은 가만히 김명수를 바라봤다.

김명수의 표정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러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은 채 강철을 안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강철은 볼 수 있었다.

그 눈빛.

숨길 수 없는, 음모를 꾸미는 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눈빛의 흔들림을, 강철은 확인할 수 있었다.

“좋지요.”

강철은 김명수를 따라갔다.

“기사님은 차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요.”

강철은 서용태를 차로 보냈다.

김명수는 그걸 딱히 터치하진 않았다.

‘나한테 이렇게 명분을 주시다니…… 아주 고마워 죽겠어, 백두산 회장.’

한식당은 전체적으로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 양식을 띄고 있었다.

그것은 별채도 마찬가지였다.

별채로 향하는 대문을 지나자 건물이 담벼락 역할을 하는, 제법 큰, 테니스 코트가 2개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넓이를 자랑하는 마당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마당에는 10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장정들이 각자 손에 연장을 챙겨 든 채 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인간은…… 선병호 밑에 있던 놈인데…….’

10명의 장정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또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고용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선병호의 부하였던 고병우였다.

“이 개새끼야! 내 아들 귀 물어뜯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고용택의 말에 강철은 그의 정체를 간파하곤 피식 웃었다.

“어쩐지 나만 여기로 유인한다 했더니, 고현수 애비셨구만?”

“그래, 씨발 내가 현수 애비다. 이 개 같은 고아 새끼야.”

그 말에 순간 강철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강철은 고용택과 고병우 그리고 퇴로를 막은 김명수를 한 차례씩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봤다.

“시간 끌지 말자고.”

그리고, 그대로 10명의 장정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끼가!”

장정들은 강철의 대담한 선제공격에 황당해했다.

[빠악-!]

그러나 그 감정은 이내 당혹감으로 변했다.

강철은 선제적으로 정면에 있던 건달의 안면에 주먹을 날려 그를 일격에 제압했다.

그리곤 곧장 그 좌우에 있던 두 건달의 턱을 주먹으로 쳐서 마찬가지로 제압했다.

순식간에 3명이 제압당하자 남은 7명이 서로 거리를 둔 채 강철을 에워쌌다.

양손 가득 둘렀던 오거닉 메탈을 해제하고서 강철은 이번엔 양쪽 다리에 오거닉 메탈을 둘렀다.

그리곤 그대로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허공에서 두 건달의 뒤통수를 발뒤꿈치로 쳤다.

[빠박-!]

땅에 착지하자마자 강철의 등으로 연장이 날아들었다.

강철은 땅에 발을 디딘 지 0.5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다.

그리곤 허공에서 뒷차기로 자신에게 연장을 휘두른 두 건달을 제압했다.

“씨, 씨발…….”

남은 두 건달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은 연장을 손에서 놓은 채 도망갔다.

강철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고용택과 고병우에게 달려들었다.

[꽈악-!]

강철은 오거닉 메탈을 양손으로 옮긴 후, 고용택과 고병우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목을 잡았다.

“어이, 현수 애비. 당신은 사소한 악연에 불과한 거로 선을 넘는 짓을 했어.”

먼저 강철은 고용택에게 말했다.

“어이, 곰 같은 양반. 언제부터 대산 조직원이 강서구 쪽 달건이하고 손잡고 내부 총질을 했나? 당신도 선을 넘었어.”

고병우에게도 그렇게 말하고서 강철은, 무어라 해명을 듣지도 않고서, 그대로 두 사람의 목살을 손으로 찢었다.

[우드득-!]

그리곤 그대로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의 목뼈와 성대 근육을 잡아서 뜯어내 버렸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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