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사소한 악연 (1)
1.
6월 17일 목요일 오전 11시 45분.
강서구 방화동 한식당으로 김명길과 강철 그리고 서용태가 탄 차량이 들어섰다.
“회사 자금이 추적당할 수도 있어서 지금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
뒷좌석에선 김명길이 강철이 준 대본을 숙지하며, 곧 있을 백두산과의 만남을 대비하고 있었다.
“어이, 해커 양반. 해킹으로 교통 카메라에 단속된 것도 지울 수 있나?”
조수석에선 강철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서용태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 그건 좀…… 어렵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서용태는 살짝 움츠러든 채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럼 왜 속도위반을 한 건데? 카메라가 뻔히 찍히는 구간에서?”
“죄, 죄송합니다.”
“범칙금 청구서 날아오면 갖다줄 테니까, 당신이 내.”
그러는 사이 서용태는 무사히 주차장에 차를 댔다.
“자, 김 대표. 연극을 시작해 보자고.”
강철은 그대로 조수석에서 내려 친히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김명길은 넥타이를 고쳐 매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김명길 대표십니까?”
김명길이 차에서 내리자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백두산의 비서 김명수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김명길은 그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네, 제가 김명길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백두산 회장님 비서 김명수입니다.”
“아, 저하고 이름이 비슷하네예? 혹시 어데 김 씨입니까?”
“김해 김씨입니다.”
“아…… 내는 그 경주 김씨인데. 아쉽네.”
그렇게 의미 없는 인사를 나누고, 김명길은 김명수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강철은 보디가드인 척, 김명길의 뒤에 바짝 붙어서 그들을 따라갔고, 서용태가 제일 꽁무니에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수행원분들은 옆방에서 식사하고 계시면 됩니다.”
김명길을 방으로 들여보내고서, 김명수는 강철과 서용태에게 그렇게 말했다.
“보디가드가 자리를 비우면 되겠습니까? 방문 앞에 있겠습니다.”
강철은 정중하게 그 제안을 사양했다.
김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강철은 서용태와 함께 방문 앞에 서서 가만히 내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검찰…… 내부 자금…… 오해를 살 수도…… 조심해야……”
“겨우 10억…… 사채가 더 의혹을…… 자금 사용처는…… 아무리 사채라도 최소한의……”
방음이 꽤 잘 돼 있었기에, 양자 간의 대화는 굉장히 간헐적으로만 들려왔다.
‘분위기는 나빠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자세한 내용을 바로바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분위기 자체가 좋은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강철은 만족했다.
‘자세한 건 어차피 나중에 들으면 되니까.’
그렇게 1시간이 지났고, 마침내 백두산과 김명길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응? 수행원인가?”
백두산은 방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강철을 슬쩍 쳐다보고는 김명길에게 물었다.
“아, 네. 그 보디가드입니다.”
“아, 보디가드.”
백두산은 그 이상 강철에게 신경 쓰진 않았다.
“아무튼 10억이 뭐 적은 돈도 아니고,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니까, 며칠만 기다려 주게.”
“아, 네. 기다리고 있겠십니다.”
“오늘 만남 즐거웠어. 허허. 이거 강동의 주인이 바뀌니까, 새 바람이 또 부는 것 같아. 허허허.”
그렇게 백두산은 김명길을 식당 바깥까지 안내했다.
“또 연락 하시게.”
“네, 회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김명길을 배웅하고, 그를 태운 차가 식당을 떠나는 것을 확인한 백두산은 자신의 뒤에서 대기 중이던 김명수를 손짓으로 불렀다.
“네, 회장님.”
“조민석이하고 날 좀 잡아 봐라.”
“네?”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야. 아무래도 수상해. 뭔가 수상해.”
“아, 네, 알겠습니다.”
백두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조민석하고 연락을 하려면…….’
김명수는 식당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조민석과 다리를 이어줄 사람을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봐, 김 비서.”
“아오, 깜짝이야.”
그때, 갑자기 고용택이 김명수에게 다가오며 그를 불렀다.
김명수는 화들짝 놀라며 담배를 떨어뜨렸다가, 상대가 고용택인 걸 확인하고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 고용택은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일 틈도 주지 않았다.
“바, 방금…… 방금 회장님이 배웅한 인간들, 어디서 온 놈들이야?”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
“어디서 온 놈들이냐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물어보시냐고.”
“씨발 내 아들 귀 물어뜯은 새끼가 거기 있었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네?”
김명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고용택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 귀 물어뜯은 놈이 그 새끼들 중에 있었다고!”
그런 김명수를 향해 고용택은 절규하듯 외쳤다.
2.
“안 빌려주겠네.”
“네? 아니, 와 그래 생각하십니까?”
강서구로 돌아가는 길에서 김명길의 보고를 들은 강철은 부정적 전망을 내렸고, 김명길은 그런 강철에게 사유를 물었다.
“돈 빌리러 왔다는데 차용증 쓰자는 말도 없고, 담보 이야기도 없고, 왜 빌리려는지만 물어보고서 보내는 게, 돈 빌려줄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하나?”
“아…… 그거는…… 그 백 회장이 쪼매 신중해서……”
“아니, 신중한 게 아니야. 그냥 당신을 떠보고, 대충 자기 나름대로 뭔가 각을 보고서 발을 빼려는 거지.”
“네? 무슨 각을 봤다는…….”
강철은 손을 휘휘 저으며,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표시를 냈다.
김명길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조민석한테는 되도록 손 벌리기 싫은데…….’
강철이 대산 본사에서 돈을 받지 않고 이렇게 외부에서 자금을 충당하려는 건, 표면적으로는 어수선한 시국에 괜히 조민석이 꼬투리 잡히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리 있는 이유였다.
비록 조민석의 회장 대행 등극이 만장일치로 이사회에서 통과됐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굉장히 신속하게, 박경채 라인 이사들이 미처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박경채는 대산그룹 내에서 조민석의 가장 강력한 대안이었고, 경쟁자였으며, 만만찮은 인맥과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산그룹 정관에 따라, ㈜대산이 직접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계열사, 즉 손자회사에 출자하기 위해선 이사회 과반수의 찬성을 받아야만 했다.
그때, 출자 사유를 알려야 하는데, 거기서 분명 문제가 발생할 터였다.
‘지방 주주들 지분 취득하기 위함이라고 하면, 무조건 반대할 거고, 다른 소리를 했다가는 사기를 친 게 되고.’
그래서 대산으로부터 받지 않고, 따로 구한다는 것이, 표면상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논리인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민석이가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품어서 미리 지방 주주들한테 언질이라도 하면 귀찮아지거든. 막 잠수타고 그러면 말이지.’
강철은 조민석을 신뢰하지 않았다.
인간을 신뢰했다가 그 믿었던 인간의 손에 토막 살해당했던 지난 삶의 영향도 있었지만, 조민석의 측근 상태가 불신의 주원인이었다.
‘신뢰하는 따까리부터 한 이불 덮고 자는 애인까지 다 경찰 쪽 프락치인 인간이야. 설령 조민석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다른 인간이 그 이야기를 지방 주주한테 흘릴 수도 있어.’
특별히 강철이 의심하는 건 박용수였다.
‘자기 보신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 인간이야. 그런 인간이 과연 조민석에게 100% 충성을 다하고 있을까?’
당장 고덕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자신에게 대항 한 번 하지 않고 굴복한 게 박용수였다.
비록 아직까지는 크게 의심스러운 정황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강철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조민석이…… 다른 의미로 대단한 양반이야. 측근들이 죄다 그 모양인데도 버텼던 걸 보면.’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슬쩍 운전대를 잡은 서용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 해커 양반.”
“네?”
“혹시 10억 있나?”
“네? 10억이 어디있겠습니까, 제가?”
“그러면, 혹시 해킹으로 어디서 10억 정도 마련할 수 있나?”
“에이…… 제가 무슨 뭐 북한 사이버 전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합니까?”
별 기대는 안 했기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 네오코인은 한 10만 개 정도 빼돌릴 수 있긴 한데…….”
서용태의 혼잣말에 강철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해둬서 잘 꼬불쳐 둬라. 2020년까지.”
그렇게 강철의 고민을 싣고 차는 강서구로 달리고 또 달렸다.
같은 시각,
“흐음…….”
후식으로 나오는 꿀차를 마시려고 도로 한식당 룸으로 들어갔던 백두산.
그는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채 간절하게 호소하는 고용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 제 아들, 하나뿐인 아들 귀를 뜯은 놈입니다. 평생 귀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표도 아니고 그냥 보디가드라면, 어떻게 잘 그쪽 대표하고 말해서……”
고용택은 김명길의 보디가드인 강철에게 복수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백두산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백두산은 쉽게 무어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이봐, 용택이.”
“네, 회장님.”
“아들이 몇 살이라고?”
“열아홉입니다. 아직 제대로 꽃도 피워보기 전에……”
백두산은 쓸데없는 사족을 단숨에 잘라내고는 꿀차를 마시며 고민했다.
‘방화동에 살던 고아가 지난달 말에 용택이 아들 귀를 물어뜯고 강동구로 넘어가서 깡패 노릇을 하고 있다?’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백두산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명수야.”
그의 부름에 문가에 서서 대기 중이던 김명수가 반응했다.
“네, 회장님.”
“아직 조민석이하고 연결은 안 됐지?”
“네, 아직입니다.”
“일단 하지 말고 있어 봐.”
“네, 회장님.”
“그리고…….”
백두산은 찻잔을 오른손으로 쥔 채 왼손으로 식탁을 살살 두드리며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김명수를 바라보며 그에게 지시했다.
“김명길이란 놈이 상해탄 대표가 된 과정에 대해서 말이야. 조금 더 디테일하게 한 번 확인해 봐. 선병호라는 놈이랑 김명길이를 원래 밑에 뒀다던 오길동이란 놈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보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백두산은 고용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용택이 너는 기다리고 있어.”
“회장님!”
“일단 사이즈를 재보고 잡아다가 족치건 조민석이한테 말해서 받아내건 아니면 납치를 하건, 어떻게 할 거 아니야! 대산하고 전면전 할 거야? 너 혼자 피 다 흘릴 자신 있어!”
백두산의 말에 고용택은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
“왜 대답이 없어!”
“…… 알겠습니다, 회장님.”
백두산은 그대로 꿀차를 쭉 들이켰다.
‘잘만 되면 조민석이 흔들어서 뭐 좀 얻어 낼 수 있을 거고, 잘 안 되면 뭐…… 용택이가 우발적으로,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고 하고 칼춤 추게 해야지 뭐.’
그렇게 후식을 다 먹은 백두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식당을 떠났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