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35화 (35/175)

035 강서구 백두산 (2)

3.

대한민국 건달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경찰이건 검찰이건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이건, 모두가 강대산을 꼽을 것이다.

자본금 30억에서 시작해 10년 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랬기에 강대산의 영향력은 엄청났고, 서울은 물론 부산, 심지어 일본과 중국에도 그 손이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대산보단 못하다고 해도, 강대산조차도 쉽게 건들지 못할 만큼의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강서구 백두산이었다.

“용택아.”

6월 15일 화요일 오후 1시.

강서구 화곡동에 자리한 한식당에서 백두산은 냉면을 먹으며 아랫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회장님.”

백두산의 부름을 받은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 고용택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너 아직도 아들 귀 뜯어먹은 고아놈 찾아다니냐?”

“네, 회장님.”

“그놈 죽은 거 아니냐? 네가 아직도 못 찾는 거 보면?”

“아닙니다, 회장님.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겁니다. 만약 죽었으면, 그 시체라도 찾아서 제가 직접 귀를 물어뜯을 겁니다.”

백두산은 그런 고용택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택아.”

“네, 회장님.”

“네가 왜 그 나이 먹고도 방화동을 못 벗어나는 줄 아냐?”

“네? 그…… 잘 모르겠습니다.”

“감정적이라서 그래, 감정적이라서. 응? 누굴 족치고 할 때는 말이야. 이 사람이 철저히 계산적으로 돼야 하거든? 근데 넌 그러질 못하고 있어.”

고용택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얌마, 밥상에 비듬 떨어져.”

백두산은 그런 고용택을 나무란 후 그와 함께 방에 앉아 있던 강서구 건달 조직 두목들에게 말했다.

“강대산이가 좆된 거, 다들 알고 있지?”

그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며 이구동성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 인간이 왜 좆된 줄 알아? 자기 근본을 잊었기 때문이야. 검사하고 어울리고, 재벌하고 어울리고, 기자들하고 어울리다 보니까 자기가 진짜 기업가인 줄 착각한 거지. 근데 근본이 깡패인 이상, 결국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친단 말이야.”

백두산은 냉면 국물을 한 모금 쭉 들이켰다.

“크으-! 그냥 어? 적당히 나처럼 말이야. 근본을 잊지 말고, 조용히 자기 나와바리나 지키면서 살았으면 큰 문제도 없었을 건데 말이야.”

강대산의 추락.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상황에서 건달 세계에서 그것은 아주 큰 이야깃거리였다.

어떤 건달은, 거드럭거리더니 잘 됐다며 고소해하기도 했고, 또 어떤 건달은, 아무리 날고 기어본들 건달은 건달이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소해하는 자건 자조하는 자건, 모두 공통적으로 강대산의 몰락으로 생길 힘의 공백에 관심을 뒀다.

그것은 특히 강대산의 영향권이라 할 수 있는 서울과 수도권에 똬리를 튼 건달일수록 심했다.

강서구 건달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백두산은 강서구 건달들을 모아서 앞으로의 일에 대한 지침을 하달하려고 지금 이렇게 운을 떼고 있다.

“대림동 짱개 놈들은 경찰이 작정하고 족치고 있어. 아마 완전히 뿌리가 뽑히겠지. 그리고 강북이랑 부천, 시흥, 성남 쪽 조직들은 분명하게 강대산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거란 말이야.”

백두산은 냉면 국물을 마저 쭉 들이켠 후 건달 두목들을 한 차례씩 훑어보면서 말했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겠지만,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한 번 크게 충돌이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다들 대비 잘해 놓으라고. 밑에 애들 단도리 잘 쳐 두고, 경찰 쪽에 이름 안 올라간 양아치들 소재 잘 파악해 두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들?”

백두산의 말에 건달 두목들은 이번에도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백두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점심 회동을 끝내고 백두산은 식당을 떠났다.

자신의 국산 대형 세단에 단체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건달 두목들을 뒤로하고, 백두산은 집으로 향했다.

“명수야.”

백두산의 부름에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인 김명수가 대답했다.

“네, 회장님.”

“저번에 그 여자애 있잖아. 나타샤였나?”

“아, 나탈리아 말씀이십니까?”

“어, 그래. 그 러시아애. 걔 낮에 시간 되는지 한 번 알아봐.”

“네, 회장님.”

곧 김명수는 가게에다 연락했고, 이내 결과물을 백두산에게 전달해 주었다.

“된다고 합니다. 지금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백두산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어깨에 힘 좀 주고 가오 좀 팍 잡았더니, 몸이 무겁네. 그 러시아애 손맛이 좋던데, 마사지 좀 받아야겠어.”

그런 백두산을 향해 김명수는 한 차례 웃어 보인 후, 점심 식사 시간에 들어온 보고 사항을 전달했다.

“아, 그리고 회장님. 대출 문의가 왔습니다.”

“대출?”

백두산은 웃음기가 살짝 사라진 얼굴로 김명수를 바라봤다.

“얼마나?”

“큰 걸로 10장이라고 합니다.”

“10장? 10억?”

“네, 회장님.”

“누가?”

“그…… 연락은 종로에서 이쪽 업에 종사하는 친구한테서 온 건데, 그 친구는 중개인이고 대출 희망자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 싶어 하질 않는다고 합니다.”

“뭐야?”

백두산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정치인이야?”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재벌집 도련님?”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뭐야? 누가 10억이나 필요하다는 건데?”

백두산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고, 언성이 높아지자 김명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알아보겠습니다.”

“똑바로 알아봐. 지금 경찰이랑 검찰 둘 다 야마가 확 돌아 있는 상황이라서, 잘못하다간 뒤지는 수가 있으니까.”

“네, 회장님.”

백두산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차 시트에 등을 바짝 눕힌 채 눈을 감았다.

‘10억이라…… 나한테 손을 벌릴 정도면 이쪽 세계를 좀 아는 사람이라는 건데…… 누굴까?’

혼란한 시국에 갑작스러운 10억 대출 요구였기에, 백두산은 호기심이 동하는 걸 막지 못했다.

‘어중간한 새끼면 10억이 대출금이 아니라 보험금으로 나가게 해 줘야지 원.’

그렇게 일단 백두산은 10억 대출 요청을 뇌 한구석에 몰아서 봉해두었다.

4.

6월 15일 화요일 저녁 8시.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를 하던 강철은, 김형만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잠시 운동을 멈춰야만 했다.

“무슨 일이야?”

[저기 그…… 백두산 회장 쪽에서 고문님의 신분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내 신분?”

[아무래도 요즘 시기가 좀 그래서 그런가 조심하는 모양새입니다.]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부터 사채업자가 그런 걸 따졌나? 무슨 내가 마약을 팔겠다는 것도 아니고.”

[검찰이고 경찰이고 죄다 이를 갈고 지금 범죄와의 전쟁이니 뭐니 하는 판국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명길 대표 신상 넘겨줘. 어차피 상해탄 천호본점이 돈을 빌리는 형식이어야 하니까, 그게 제일 적당할 거야.”

[저기…… 근데 백 회장이 대산 쪽에서 돈을 빌리려 한단 걸 알면 호락호락하게 대출을 해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뭐, 무리한 요구라도 한다는 건가?”

[제 생각에는……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철이 아무 생각 없이 백두산에게서 돈을 빌리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그 정도는 나도 생각해 뒀어. 그러니까, 일단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덤벨 프레스로 운동을 바꿔서 진행했다.

“스읍-! 후우-!”

운동을 하면서도, 강철은 일과 관련된 생각을 이어갔다.

‘백두산도 건달이라면, 대산그룹에 한 발 걸치고 싶어 하겠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보기에 더 가질 게 없어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아직도 덜 가졌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강철이 노리는 점도 바로 그것이었다.

‘백두산이가 적당하게 선을 넘어줘서 나한테 명분만 주면, 난 아주 깔끔하게 모든 걸 손에 얻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건달의 세계라지만, 아니 건달의 세계이기에 명분은 중요했다.

김태영이나 강대산이나, 사실에 기반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건 각자 죽이는 데 있어서 명분이 있었다.

김태영은 경찰 프락치라는 이유로, 강대산은 그룹을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각각 숙청했다.

물론, 강대산의 경우에는 숙청을 한 다음에 명분을 갖다 붙인 수준이긴 했지만, 어쨌건 폭력적으로 일 처리를 하더라도, 명분은 필요했다.

‘백두산이가 점잖게 돈만 빌려주면, 법정 이자까지만 해서 갚으면 그만이야.’

그럴 경우 백두산은 나머지 사채 이자를 내놓으라며 달려들겠지만, 역으로 강철이 그것 자체를 명분 삼아 백두산을 정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만약 한 다리 걸치려고 숟가락을 든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나한테 좋지.’

사실 강철 입장에서는, 10억 자체를 날먹 할 수 있는 후자가 더 끌리긴 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당신은 결국 나한테 명분을 주게 돼 있어.’

그렇게 강철은 한 세트를 끝내고 땀을 닦으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5.

6월 16일 수요일 새벽 1시.

“아우!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조민석은 만취한 상태로 박용수에 의해 거의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유아영은 박용수와 함께 조민석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방까지 안내했다.

“아우, 술냄새.”

유아영은 조민석을 침대에 눕힌 후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 오빠 지갑은? 어디 흘린 거야?”

그러다가 그녀는 조민석의 지갑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 그 차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박용수의 말에 유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박 실장님은 가서 쉬세요.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끝까지…….”

“내일도 오빠 수행해야 하잖아요. 쉬세요.”

“아……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유아영은 박용수를 보낸 후 조민석의 옷을 마저 벗겼다.

팬티 차림의 조민석을 내려다보며 유아영은 한 차례 한숨을 쉰 후 그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쳤다.

[찰싹-!]

찰진 소리를 뒤로하고, 유아영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오, 어디 떨어뜨린 거야?”

그녀는 조민석의 세단 뒷좌석을 휴대폰 플래시로 비춰가며 뒤지기 시작했다.

“아우, 정리 좀 하지…… 대산그룹 회장이면 뭐해? 차가 완전 쓰레기장인데.”

그녀는 시종일관 투덜거리면서 차 뒷좌석과 바닥을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조민석의 지갑을 찾았다.

“비싼 명품을 갖고 다니면 뭐해? 이렇게 흘리고 다니는데.”

그러다가 그녀는 각종 종이와 휴지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있는 차량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간단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응?”

정리하던 와중에, 그녀는 바닥에 구겨져 있는 서류 하나를 발견했다.

“생활기록부?”

그녀는 그 문서를 살폈다.

‘방화제일고등학교 3학년 11반 강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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