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34화 (34/175)

034 강서구 백두산 (1)

1.

6월 15일 화요일 오전 9시.

송파구 대산그룹 본사로 조민석은 출근했다.

“대산그룹과 동부지검 간의 유착 관계 의혹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강대산 회장의 직무 정지 결정이 동부지검 검사 사망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까?”

“사망한 검사에게 전달됐다는 자금은 강대산 회장 개인 자산입니까, 아니면 대산그룹 법인 자산입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평소와 다른 점은, 대산그룹 본사 정문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는 점이었다.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가겠습니다!”

미리 회장 비서실에서 대기시켜둔 경호원들이 기자들과 조민석 사이에 인의 장벽을 만들어 길을 터 주었다.

그 길로 담담하게 걸어간 조민석은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회사로 들어갔다.

그대로 조민석이 향한 곳은 17층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이 아닌, 19층에 자리한 회장실이었다.

회장실로 들어선 조민석은, 새로 제작돼 배치된 명패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株式會社 大山 會長 權限代行 趙珉石>

조민석은 잠시 명패를 손으로 쓱 쓰다듬은 후 집무실 책상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앉을 때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주는 그 느낌은, 17층 사무실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의자에 앉는 순간 엉치뼈를 타고 척추를 따라 올라와 뇌를 뒤흔드는 그 짜릿함은, 이전에 그가 겪어보지 못했던 그런 느낌이었다.

유아영과의 성관계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대마초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쾌감에 한 차례 전율한 조민석은 그대로 심호흡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어디까지나 그의 직함은 회장 권한대행이지, 회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상 직전에서 정상의 공기를 맛보는 그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후우…… 후후…….”

그렇게 그가 웃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부지검 박충백 수사관이었다.

조민석은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조민석입니다.”

[아이고, 조 회장님. 축하합니다.]

박충백의 말에 조민석의 입꼬리와 광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승천했다.

“하하하. 회장은 무슨…… 권한대행입니다, 수사관님.”

[에이, 그 정도면 이미 회장 되신 거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거, 시국이 시국인 만큼, 상당히 부담이 가는 자리입니다.”

[뭐…… 안타까운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대산하고 쌓아온 지난날의 우정이 여기서 깨질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전화를 드린 겁니다.]

그러면서 박충백은 조민석에게 오늘 저녁 시간을 비워달라 요청했다.

[이번 사건 때문에 지금 청와대에서도 난리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쪽에서 어떻게든 윗선을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 부장님이 조 회장님하고 한 번 면담을 하고 싶다 하십니다.]

부장검사급과의 면담.

평검사인 최창만만을 상대하던 조민석 입장에선,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올라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만남이었다.

“아이고, 부장님이면 당연히 제가 시간을 비워드려야죠. 허허허.”

[아마 오후에 부장님 쪽 수사관이 연락을 드릴 겁니다. 그 친구가 저하고 동향인 데다가 고등학교 동창이라서 저랑 아주 친합니다. 잘 해줄 겁니다.]

그러면서 박충백은 한 가지 정보를 그에게 흘렸다.

[아, 그리고 어제 박경채 전무하고 만났습니다.]

“박 전무 말입니까?”

[네. 계속 소고기 사준다고 좀 보자길래 한 번 봤는데, 이 양반이 딴 맘을 품고 있는 모양입디다. 저한테 부장검사급 검사랑 연결시켜달라고 청탁을 하더라니까요.]

그 말에 조민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은 다시 풀렸다.

“허허허. 우리 박 전무도 동부지검하고의 우정이 깨지는 걸 원치 않는 모양입니다. 허허허.”

[뭐, 일단 그래서 대충 알겠다고만 해뒀습니다. 일단 조 회장님이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통화를 끝내고 조민석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리곤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가만히 라이터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박경채. 그렇게 대학 나오고 했다고 거드럭거리더니 결국 한다는 게 스폰할 검사 찾는 거였나?’

박충백과의 통화에서, 동부지검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질 결정했는가는 이미 다 드러났다.

그렇다면 남는 건, 동부지검을 적당히 마사지해준 다음 박경채 라인을 이사회에서 축출하는 것이었다.

‘마사지라…….’

어떤 식으로 마사지할지에 대해서, 강철은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마사지만 해서 달래라는 정도의, 추상적인 지침만을 내렸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가 회장이 되면 어지간한 일은 그런 식으로 맡기겠다는 건가?’

조민석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회장이 되고 나서도…… 그 인간하고 계속 협력할 필요가 있을까?’

조민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일단 지금은 동부지검이나 신경 쓰자. 그게 최우선이야.’

그러나, 한 번 피어난 배반의 싹은 쉬이 시들지 않는 법이었다.

2.

화요일 오전 11시.

강철은 김형만, 김명길과 함께 송파구에 자리한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이분이 최병천 변호사입니다.”

김형만의 소개에 강철은 가볍게 최 변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철이요.”

“최병천입니다. 자, 앉으시죠.”

최 변호사는 강철의 겉모습을 보고서 우습게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정중하게 강철을 소파로 안내했다.

강철의 좌측에는 김형만이 앉았고, 김명길은 의자를 따로 빼 와서 앉았다.

그리고 최 변호사는 사무실 직원에게 차를 가져오라 손짓한 후 강철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형만 실장님께 미리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산그룹 주주들에게서 주식을 매입하고 싶으시다고요?”

최 변호사의 말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는 지방 주주들의 지분을 상해탄 천호본점이 매입하게 하고 싶은 거요.”

“음. 일단 대산그룹 지분은 법적으로 주식회사 대산이라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의미합니다. 상해탄 천호본점이 제가 알기로는 대산의 계열사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김형만을 바라봤다.

“상해탄 모기업은 대산식품입니다. 대산식품이 상해탄 지분 100%를 들고 있고, 대산식품 지분을 대산이랑 몇몇 계열사들이 나눠서 먹고 있는 구조입니다.”

최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단 법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한국이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지,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하고 있진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굉장히 차분한 어조로 강철에게 대산그룹 지배구조 및 지분의 액면가 그리고 비상장주식 매매 방법 등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강철은 차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최 변호사의 강의를 다 들었다.

“그렇기에 현재 매입하시길 원하시는 대산그룹 주식 34만 9,827주는 액면가인 주당 3,000원에 매입하시지 않는 이상 가치 평가 방식에 따라 매입에 드는 자본금이 달라질 겁니다.”

설명을 모두 들은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주식 매입에 필요한 서류가 뭐요?”

“주식 매도인의 인감도장과 인 감증명서 그리고 만약에 매도자 본인이 아닌 대리인이 양수도계약서에 사인할 경우엔 위임장 이 정도가 필요합니다. 아, 양수도계약서도 필요하긴 한데 그건 저희 쪽에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강철은 만족스럽게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김 대표.”

강철의 부름에 김명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해…… 아니, 그 고문님.”

“변호사 양반한테 양수도계약서랑 그 외 기타 구비서류 5명분 받아서 나와. 난 밖에 나가서 숨 좀 쉬고 있을 테니까.”

“네, 알겠십니다.”

강철은 최 변호사와 악수한 후 밖으로 나갔다.

“당신도 거들어.”

따라 나가려는 김형만을 사무실에 남겨둔 채로 그렇게 강철은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빌딩 1층으로 내려와 담배를 태웠다.

‘법적인 문제는 일단 해결한 상태고. 문제는 결국 자금인데.’

대산의 주식은 액면가가 주당 3,000원이다.

그리고 강철은 액면가를 넘는 돈을 주고서 지방 주주들에게서 지분을 매입할 생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액면가 아래로 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자칫 세무 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최 변호사의 경고가 있었기에, 그나마 많이 봐주는 것이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10억 5천만 원이라…….’

문제는 결국 매입 자금이었다.

강철은 직접 대산그룹 지분 34만 9,827주를 매입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강철은 김명길이 대표로 있는 상해탄 천호본점이 그 지분을 매입하는 형태로 해서, 조민석과 대산그룹을 통제할 생각이었다.

‘순환출자야 재벌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니까. 거기다 상해탄 천호본점이 주식회사 형태로 돼 있으니 딱 그림도 좋잖아.’

문제는 상해탄 천호본점의 자기자본이 10억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1금융권이나 2금융권은 힘들 거고…….’

결국, 사채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강철이 내린 결론이었다.

‘사채라…….’

그렇게 강철이 고민하고 있을 때, 김명길과 김형만이 내려왔다.

“다 받아 왔나?”

강철의 물음에 김명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강철에게 두툼한 서류봉투를 보여주었다.

강철은 씩 웃으며 담배를 버린 후 두 사람과 함께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는 김형만에게 강철은 뒷좌석에서 물었다.

“이봐, TMI.”

“네? 아, 네.”

“인천 쪽 조직 말이야.”

“네.”

“거기 애들이 한 10억 정도 땅겨줄 수 있나?”

“1, 10억 말입니까?”

김형만은 난색을 표했다.

“한 3억이면 모를까…… 10억은 좀…….”

“그러면, 10억 정도 땅길 만한 곳이 있을까?”

“10억…… 10억이라…….”

잠시 고민하던 김형만은, 신호가 바뀔 때쯤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철에게 말했다.

“그 강서구에 백두산 회장이면 10억 정도 땅길 수 있을 거긴 한데…….”

“백두산? 이름이야, 별명이야?”

“이름입니다.”

“그럼 그 사람한테 알아봐.”

“저기 그…… 문제가 좀 있는데…….”

“문제?”

김형만은 강철에게 백두산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듣는 내도록 강철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김형만을 바라보았다.

“…… 그래서 백두산 회장한테 덜컥 손을 벌리기에는 좀…… 부담이 있다는 겁니다, 고문님.”

설명이 끝나고, 김형만은 백미러로 강철의 눈치를 살폈다.

강철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서구의 지역 맹주라…….’

한동안 말없이 고민하던 강철은, 이내 담배를 꺼내 물고서 불을 붙인 후, 창문을 열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곤 김형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 회장한테서 한번 땅겨 봐.”

강철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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