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이이제이 (4)
6.
6월 14일 월요일 오전 9시.
서대문구 경찰청 정보국장실.
백유진은 국장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국장은 책상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가만히 백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유진은 구태여 어쩐 일로 부르셨느냐 묻지 않았다.
국장도 구태여 왜 불렀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왜 거기 있었나?”
국장의 물음에 백유진은 일체의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제보를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제 정보원한테 받았습니다.”
“정보원이 누군데?”
“정보원의 정체는 밝히지 않는 게 우리의 룰로 알고 있습니다.”
국장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제보 내용이 뭐였는데?”
“마약 거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제보였습니다.”
“마약 거래? 그래, 그런 제보를 받아놓고서 혼자서 갔어? 송파서에 지원 요청도 없이?”
“정보원도 확실한 건 아니라고 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장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불가피한 선택 덕분에, 내 입장이 많이 난감해진 건 알고 있겠지?”
“그 부분에 관해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송구스럽다라…… 자네, 송구가 무슨 뜻인지 아나?”
“……”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거북하다는 뜻이야. 지금 자네, 두렵나? 두렵다면 뭐가 두렵나? 마음이 거북하나? 나보다 더 거북하나?”
국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청장님하고…… 오늘 오후에 BH에 들어가게 됐어. 이런 나보다도 더 두렵고, 더 마음이 거북하나?”
백유진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VIP께서 심기가 굉장히 불편하신 모양이야. 올해 G20 정상회담이다 뭐다 국격을 올릴 때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신경이 쓰이시겠지.”
경찰청장은 차기 국회의원 출마를 노리고 있다.
정보국장은 올해 서울청장으로 갔다가 나중에 청장으로 올라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지금 꼬일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
“후우……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너한테 그걸 물어본들 내 책임이 사라질까?”
국장은 백유진에게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지금 말 해봤자…….’
백유진은 국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국장실을 나갔다.
그리곤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최창만 차 트렁크에 있던 거…… 분명 대산에서 받은 돈이야. 그걸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는데…….’
그녀는 분명히 봤다.
최창만의 차 트렁크에서 나온, 강장제 선물 세트 2박스를.
그 안에 들어 있던, 5만 원권 현금을.
그러나 지금, 대산과 동부지검의 유착 관계를 증명할 유일한 물증은 이해당사자인 동부지검에 의해 어딘가로 옮겨진 뒤였다.
‘진짜 강대산이 한 짓일까?’
최창만 살해 용의자로 지목돼 오늘 새벽 구속된 장석산은 대림동에 똬리를 튼 조선족 폭력 조직 흑룡방의 부두목이다.
그에 관한 데이터는 정보국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했다.
그뿐 아니라, 흑룡방이 강대산 개인과 사적으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정보국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경찰 측에선 이번 사건의 배후에 강대산이 있다고 보고 현재 동부지검과 함께 협력하여 장석산을 취조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어제부터는 광수대까지 동원해 흑룡방 조직원 일제 검거에 나섰고, 월요일 오전 9시 현재 두목 마홍방을 제외한 주요 간부 및 하급 조직원 80%가량을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강대산이 이번 일의 배후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백유진은 거기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병호 선배 폰으로 온 문자…… 병호 선배가 아니라 병호 선배를 죽인 놈한테서 온 문자일 거야.’
선병호는 죽었다.
백유진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제 그녀에게 온 문자는, 선병호가 아닌 그를 죽이고 그의 폰을 수거해간 인간에게서 온 문자일 것이다.
그리고 백유진은, 선병호 살해 용의자로 조민석과 협력 중이라는, 그녀는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강철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영이가 그 인간 번호만 따내면…… 아영이가 그 인간을 유혹해서, 조민석이 그러는 것처럼 그 인간이 아영이를 완전히 신뢰하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백유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곤 곧장 유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아영이니?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유아영을 독려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백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7.
[회장 권한대행으로 선임이 됐소.]
“반대하는 사람은?”
[우리 쪽 애들이 이사회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소?]
“박경채 쪽에선 아무런 항의도 없던가?”
[그쪽도 지금 분위기가 심상찮은 걸 아는지 오늘은 조용했소.]
“그래도 감시는 철저하게 해.”
[걱정 마시오.]
“지방 주주들 리스트는?”
[오늘 안으로 보내드리겠소. 살짝 긴가민가한 사람이 하나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고 있소.]
“오케이, 알았어. 일단 조 상무…… 아니지 조 대행은 동부지검 좀 잘 다독여주고 마사지해주고 있어. 그사이에 내가 지방 쪽은 정리할 테니까.”
[알겠소.]
6월 14일 월요일 오후 1시 30분.
강철은 조민석과 연락을 끝내고, 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그리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후우-!”
예상한 대로, 이사회는 별다른 반대 없이 조민석을 회장 권한대행으로 올렸다.
잔뜩 화가 났지만, 자신들의 치부가 밝혀지기는 원치 않는 동부지검을 달래고 마사지하는 일은 이제부터는 조민석이 오롯이 해내야 할 영역이었다.
강철이 해야 할 일은 지방의 주주들을 찾아가 정리하는 것이었다.
조민석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강철은 단순히 지방 주주에게 협력을 얻어내려는 게 아니었다.
강철이 원하는 건, 지방 주주들이 가진 35% 상당의 지분을 모두 회수하는 것이었다.
‘조민석을 100% 믿을 수는 없어. 그 인간이 혹시라도 딴 맘을 품거나, 바보처럼 행동할 경우 내가 확실하게 제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있어야 해.’
지금이야 조민석이 자신에게 협조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후에 진짜 회장에 취임하면 사람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조민석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강대산에게 그러했듯, 조민석도 제거해버리고 다른 사람을 회장에 올릴 수도 있겠지만, 똑같은 작업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강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유아영…….’
유아영을 떠올리며 강철은 담배 필터를 앞니로 꽉 깨물었다.
‘선병호하고는 관계가 없고, 백유진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백유진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가 핵심이란 말이지.’
조민석이 회장이 된다면, 유아영의 가치는 올라갈 터였다.
그리고 그 올라간 가치를, 경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려고 할 터였다.
‘당장에는 처리할 필요는 없겠지. 선병호의 파일을 보면, 유아영에게서 얻은 걸로 보이는 정보는 하나도 없어 보이니까. 그리고 조민석도 유아영한테는 회사일을 그렇게 디테일하게 말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결국, 한 번은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믿었던 동생은 짭새에, 사랑하는 여자는 짭새 프락치라…… 참, 이런 걸 보고 제대로 호구 잡혔다고 해야 하려나?’
아직은 호구여도 괜찮다.
그러나 앞으로는 곤란하다.
‘호구로 살되, 나만의 호구로 살아야지. 엉뚱한 인간들 호구로 살면 곤란해.’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아영의 처분에 관한 생각을 두뇌의 일정 부분에 할당하여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8.
“조민석이가 다 해 먹게 생겼어요.”
[알고 있어.]
“그럼 뭘 좀 어떻게 해 보세요. 이대로 대산이 저 깡패 새끼한테 홀라당 넘어가는 걸 보고 싶어요?”
[지금 우리 쪽 분위기가 안 좋아.]
“지금 분위기 좋은 쪽이 어디 있어요? 다 안 좋지.”
[기다려.]
“혹시…… 우리 손절하려는 거요?”
[개소리 집어치우고, 일단 당분간 자리 지키는 거에나 신경 써. 그다음에 우리가 나서서 어떻게 처리해 줄 테니까.]
“후우…… 다 좋은데…… 신고하면 출동이나 제대로 해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뭐 동네 파출소야? 신고한다고 출동하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끊어. 도청당할 수도 있으니까.]
통화를 끝내고, 사내는 구시렁거렸다.
“도청은 니미. 당했으면 이미 다 당했지.”
사내는 폰을 집어넣었다.
“박 전무님.”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그의 비서가 들어왔다.
“동부지검 박충백 수사관이 오늘 저녁에 괜찮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서의 물음에 사내, 대산그룹 전무 박경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보는 눈이 많은 송파구는 피해서, 저기 청담이나 이쪽에 한우 잘하는 곳 찾아서 예약해 놔. 박 수사관 한우 좋아하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가 나가고, 박경채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최소한 강 회장은 이사회실에 깡패 새끼들을 불러들이진 않았어.’
박경채는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이사회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비어 있는 회장석, 도구삼 전무와 김태영 상무의 빈 자리 그리고 이사들이 앉은 테이블 주위를 빙 둘러서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사무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흉악한 인상의 사내들까지.
‘반대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이겠다, 뭐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겠지.’
박경채는 물론, 그의 라인에 선 이사들 모두가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그랬기에 강대산의 회장 직무를 일시 중지시키고, 조민석이 회장 대행직을 수행하기로 결정이 났을 때, 아무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지금 내 라인이랍시고 꺼드럭거리는 인간들 모두가 조민석한테 붙을 수도 있어.’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마저도 조민석 밑에 붙어서 다만 전무 자리라도 보전할 수 있길 바라는, 비참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박경채는 생각했다.
‘짭새 새끼들은 이제 못 믿겠어.’
선병호가 섭외한 프락치는 박경채였다.
비록 정보 보고는 선병호가 선별해서 상부에 올렸지만, 적어도 박경채가 프락치라는 사실 자체는 선병호의 윗선인 한동수 총경도 알고는 있었다.
‘이제 믿을 건 동부지검뿐이야.’
박경채는 더 이상 경찰에 기대를 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 박 수사관을 잘 구슬려서 다른 검사 라인하고 접촉을 해야 해. 그래도 박 수사관이 짬이 좀 되니까, 좋은 검사하고 연결을 시켜줄 수 있을 거야.’
박경채는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선 몸부림을 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검사…… 검사만 잘 잡으면…… 제대로 된 검사 한 명만 스폰할 수 있게 되면…… 역전의 체크메이트를 둘 수가 있어.’
그렇게 박경채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어, 경채야.’
그러나 주문으로도 떨리는 손과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