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이이제이 (3)
5.
대한민국 검사가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조선족 폭력조직 흑룡방의 부두목 장모 씨다.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 장모 씨는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법무부는 6월 13일 일요일 오전 9시, 장관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으며, 대통령은 격노하였다.
소속 검사의 피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동부지검장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했고, 검찰총장은 평검사 살해를 법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여 제2의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부 언론사의 취재에 따르면 죽은 동부지검 최모 검사의 차량 트렁크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현찰이 담긴 강장제 박스가 발견이 됐다고 한다.
동부지검 측에서는 증거보존을 이유로 강장제 박스를 수거해갔으며 그것과 관련된 언론사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폭력으로 법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시도는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동부지검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냐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개판이구만.”
6월 13일 일요일 오후 1시.
강철은 조민석의 집 안방 거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더니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쪽이 만든 개판 아니오?”
강철의 말에 소파에 앉아 대낮부터 와인을 마시던 조민석이 그렇게 대꾸했다.
강철은 아무 말 없이 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형만이가 그대의 뜻대로 계속해서 움직일 것 같소?”
조민석은 강철에게 중요한 걸 물었다.
강철은 가만히 시선을 폰에서 조민석에게로 옮겼다.
조민석이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어제 그쪽이 형만이한테 역할을 배정할 때, 형만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소.”
“당연히 안 좋았겠지. 어쨌건 자기가 3년간 모셨던 양반이 눈앞에서 비료가 됐으니까.”
“마냥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소.”
강철은 폰을 피아노 커버 위에 올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불을 붙인 후 연기를 코와 입으로 동시에 한 차례 내뿜은 뒤 조민석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그 양반이 날 적대하면, 달리 손잡을 상대나 있을까?”
그 말에 조민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 상무 당신은 이제 수습할 거나 신경 써.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배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알겠소.”
강철의 말대로였다.
이미 강대산은 죽었다.
그의 죽음이 공표될 일은 없겠지만, 그가 사적으로 부리던 조선족 폭력조직의 부두목이 검사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이상, 사회적으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강대산 밑에 붙어 있던 건달들, 그에게 충성하던 지방 조직들 그리고 그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던 지방 주주들은 현재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박경채 쪽에서 그들을 포섭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민석이 포섭할 수 있었을 것들마저도 박경채 쪽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
그러니, 지금 조민석이 신경 써야 할 일은 포스트 강대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수도권 쪽 조직은 내가 어떻게 일주일 안에 포섭할 수 있소. 용수도 그렇고 우리 쪽에 애들이 다 알음알음 알고 지내고 있으니 말이오. 뭐, 인천 쪽이야 형만이가 알아서 잘해뒀으니 문제없을 것이고. 문제는 지방 조직인데…….”
“전라도랑 경상도 쪽이라고 했었나?”
“그렇소. 정확히는 목포하고 여수 그리고 부산이오.”
“그쪽에 있는 양반들 지분이 얼마 정도라 했지?”
“목포랑 여수에 하나, 부산에 셋 해서 총 다섯 명인데 합치면 35% 정도는 되오.”
“35%라…… 그걸 손에 넣으면 꽤 큰 힘이 되겠어?”
“아무래도 안 그렇겠소? 당분간 강대산 회장의 지분이 묶여있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35%면 과반을 넘으니까.”
“그중 제일 협조할 가능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리해서 나한테 문자로 보내 줘.”
강철은 담배를 다 태운 후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움직일 생각이오?”
“오늘은 아니야. 하지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지. 말했잖아? 박경채가 당장 포섭하진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 일부가 포섭될 수 있다고.”
“알겠소.”
“일단 내일 이사회부터 잘 처리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이 판국에 딴마음 먹는 인간이 나오면 귀찮아지니까.”
“그리하겠소.”
배웅하려고 일어서려는 조민석에게 그럴 필요 없으니 앉아 있으라고 손짓한 후 강철은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거실을 지나 현관에 이르러 신발을 신고 있을 때, 그때까지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유아영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기…… 내일 시간 어때요?”
그녀의 물음에 강철은 신발을 신으며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저기 그…… 오빠가 내일부터는 다시 자유롭게 나가도 된다고 하던데…… 내일 시간 괜찮으면…… 커피라도 한잔…….”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유아영은 당황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그…… 지난번에 있었던 일…… 그, 그때 못 풀었던 오해도 좀 풀고…….”
“무슨 오해?”
“그, 그게…….”
강철은 신발을 다 신고서 현관문을 열며 유아영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조 상무한테나 충실해.”
백유진에 관한 신상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그녀의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구태여 유아영을 통해 무언가 할 필요는 없었다.
구태여 한다면, 유아영을 잡아다 고문해 어디까지 내통하고 있는지 정도를 파악하는 것 정도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철은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
그리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초능력자 중에 경상도랑 전라도 쪽에서 깡패 노릇 하던 인간이 있던가?’
조직 정비차 지방 주주를 정리하러 내려가는 김에, 이왕이면 미래에 초능력자가 될 사람도 찾아내고 싶은 게 강철의 심정이었다.
‘경상도 작두는 무당이고 전라도 도끼는 공무원이니까, 깡패들하고는 거리가 좀 있을 거긴 한데…… 또 외모가 다들 한 외모 하시는 분들이시니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지 싶은데 말이야.’
초능력자 중에선 서용태처럼 쓸모없는 능력을 지닌 자들도 있지만, 경상도 작두나 전라도 도끼처럼 굉장히 유용한 능력을 지닌 자들도 있었다.
‘대산그룹은 거목그룹하고 굉장히 가까운 사이야.’
단순하게 강대산 하나를 죽이는 게 끝이 아니었다.
조민석을 대산 회장으로 올리고, 자신은 고문으로서 막후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며 12년을 그냥 놀 생각도 아니었다.
강철은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목그룹…… 세상이 망하기 전까지도 재계 서열 20위 내에는 항상 들었지.’
글로벌하게 놀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관련된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놀기에는, 나름대로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멸망 이전 세계에 관해 주워들은 이야기가 제법 있었기에, 괜찮았다.
‘재벌만큼 한국에서 현금성 자산을 많이 가진 집단도 없지.’
그 현금 전체를 황금으로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중 일부만 황금으로 바꿔놓아도 멸망 이후 세계에서 강철은 능히 왕 같은 권세를 누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당장에 초능력을 좀 키워둘 필요가 있는데…… 하아…… 은신 능력 쓰던 놈…… 그 자식만 일단 먼저 잡아 놔도 하는 일이 참 형통할 텐데 말이야.’
그렇게 강철이 새롭고 유용한 힘의 습득과 기본적인 초능력 에너지의 향상에 관해 생각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상념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에도 계속됐다.
‘이름이라도 알아뒀으면 참 좋았을 건데…….’
문명의 시대에, 초능력 중 가장 쓸모있는 건 단연코 은신이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지금도 서울은 곳곳에 CCTV가 있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CCTV는 많아지겠지.’
CCTV를 피해 사각지대로만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것도 결국 한계에 이를 때가 올 터였다.
만약 그 전에 강철이 은신 능력을 손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 될 터였다.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여자라는 것과 포주라는 것뿐인데…….’
강철이 기억하는 은신 능력자 중 가장 뛰어났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무려 멸망한 세계에서도 이동식 집창촌을 운영하며 금과 보석을 모았던, 대단한 초능력자요 포주였던 그녀는, 작정하고 은신을 펼치면 바로 옆으로 다가와 몸에 칼을 쑤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 젊은 아저씨는, 이 누나가 상대해 줄까?』
아주 당연하게도, 오길동은 그녀의 조직에 관심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녀도, 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능률이 좋은 강철-오길동 콤비를 자주 찾았다.
『안타깝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재밌게 지냈을 수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그녀는 강철의 손에 죽었다.
그것은 어떤 의뢰가 있었다거나 이권 다툼에 연루됐다거나 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녀는 선을 넘었고, 그로 말미암아 강철로부터 사적인 원한을 샀다.
그래서 강철은 그녀를 죽였다.
『동정으로 죽을 생각인가 봐? 공짜로 해주겠다는데도 이렇게 날 대하는 걸 보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히 말했어. 세상이 망하기 전에도 이렇게 여자애들 가지고 장사했다고. 이건…… 나중에 조민석이가 대산을 완전히 먹으면 어떻게 찾아볼 수 있으려나?’
얼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이름도, 멸망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도 심지어 정확한 나이도 몰랐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한 특징이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겠어.’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덧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토바이에 올라타기 전, 김형만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그래, 동부지검하고는 이야기가 좀 됐고?”
[네. 그 박충백 수사관이라고 최 검사 밑에서 일하던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한테 이야기해뒀습니다.]
“그 양반은 믿을 만한가?”
[네. 믿을 만합니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 아무튼 어제 내가 알려준대로, 그렇게 진술해. 조 상무가 대산을 접수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해서 실형은 피할 수 있게 세팅할 거니까.”
[…… 네, 알겠습니다.]
어쩐지 못 미더워하는 김형만을 뒤로하고,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박충백 수사관이라…….’
강철은 피식 웃었다.
‘조민석이가 따로 빨대 꽂아뒀다는 양반인데…… 보니까 여기저기서 빨대를 많이 받아 놓으셨네.’
김형만은 말했다.
강대산이 따로 박충백에게 빨대를 꽂아 뒀다고.
그래서 박충백을 통해 최창만을 그간 뒤에서 감시했다고.
그리고 조민석도 말했다.
박충백 수사관에 빨대를 꽂아서, 최창만과 박경채 사이에 오간 대화를 얻어냈다고.
‘돈만 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는 스타일인가? 아주 클래식한 부패 관료란 말이야.’
강철은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지하주차장을 떠났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