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이이제이 (2)
4.
“김형만이…… 이 개새끼가!”
6월 12일 토요일 밤 9시 30분.
결국, 강대산은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김형만에게 20통 넘게 전화를 걸고 30통 넘게 문자를 보냈음에도, 전화는 씹혔고 답장은 없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김형만은 분명 말했다.
조민석이 용산에 들렀다가 인천으로 가고 있다고.
그래서 강대산은 감시 인원 모두를 인천으로 보냈다.
그러나 인천에선 아무런 연락도 오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최창만에게 돈을 건네러 간 김형만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강대산은 인천으로 간 인원에게도 전화를 했고, 김형만에게도 연락을 넣어봤지만, 그 누구도 전화를 받거나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다 죽은 거야? 아니면…… 설마 다 날 배신한 거야?’
강대산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뭔가 일이 꼬이고 있어. 뭔가…… 뭔가…….’
그렇게 그가 당혹스러워할 때,
[♬♩♪♭♬♬♬~]
그의 폰이 울렸다.
강대산은 다급히 바닥에 굴러다니던 폰을 집어 들었다.
혹시나 김형만이나 인천으로 간 감시조에게서 온 연락인가 싶어 그는 얼른 발신자를 확인했다.
‘마 사장?’
그러나 발신자는, 다소 뜬금없는, 흑룡방 두목 마홍방이었다.
일단, 강대산은 전화를 받았다.
“마 사장, 어쩐 일이오?”
[야이 개새끼야!]
수화기 너머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마홍방의 쌍욕에 강대산은 당황했다.
“뭐, 뭐요?”
[이 개새끼야. 우리가 너하고 무슨 원수를 졌니? 이 사쓰개 얼류즈 새끼야. 새삣하믄 우리 아들 불러서 일 시켜놓고, 이따구로 우리 뒤통수를 치니? 오늘 밤 안으로 네 봉오기 잘라서 네 마누라 미꿍끼에다 박아 넣어 줄까? 어?!]
강대산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가 진짜…… 야이 짱개 새끼야! 갑자기 전화해서 욕 박으면 내가 뭐 씨발 사과할 줄 알았어?! 내가 씨발 콜센터 직원이야?!”
[이 개새끼야 석산이가 너네 비서 따라갔다가 지금 짭새한테 잡혀있다, 이 개새끼야. 얼류즈 새끼 돈으로 똥을 닦을 새끼가 대림동에까지 눈독을 들이니? 엉?]
강대산은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석산이한테 연락왔다. 지금 송파경찰서에 잡혀있다고. 변호사 불러 달라고. 이 싸비 새끼야.]
“자초지종을 좀 제대로 설명해봐, 이 짱개 새끼야! 씨발 말 좀 알아먹게! 그게 무슨 소리야!”
마홍방은 강대산에게, 김형만이 장석산을 보디가드랍시고 데려간 일부터, 장석산이 사람을 죽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현재 송파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라는 것까지, 엄청난 양의 욕설이 뒤섞인 문장을 구사해가며 설명해주었다.
[사람 죽일 거면 정식으로 우리한테 돈 주고 시키면 되지, 이따구로 누명을 씌워? 우리가 너네한테 알락방구 뀌니까 개 호구로 보이니? 엉?]
강대산은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는 더 이상 휴대폰을 귀에다 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이 개새끼야!]
마홍방의 말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강대산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형만이가…… 형만이가 최 검사를 죽였다고?’
마홍방의 말을 요약하면, 김형만이 최 검사를 죽이고, 그 누명을 장석산에게 뒤집어씌웠다는 것이다.
‘아, 아니…… 아니 왜?’
그렇게 강대산이 당황해하고 있는 사이, 마홍방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그의 폰이 울렸다.
강대산은 떨리는 손으로 가까스로 폰을 집어 들었다.
‘조민석?’
발신자는 조민석이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곤 전화를 받았다.
“…… 무슨 일이야?”
[회장님. 지금 당장 최소한으로만 짐을 챙기셔서 나오십시오.]
조민석은 굉장히 조급해하며 강대산에게 말했다.
[지금 위험한 상황입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위험하다니?”
[자세한 건 제가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강대산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새끼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김형만이 최창만을 죽였다.
그리고 그와는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다.
마홍방은 온갖 쌍욕을 하면서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다.
조민석은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지금 거기 계속 계시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조민석은 강대산을 재촉했다.
“어, 언제 올 건데?”
[지금 다 와 갑니다. 도곡동 자택 아니십니까?]
“마, 맞아.”
[단지 후문 쪽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나오십시오.]
“아, 알았어.”
강대산은 전화를 끊고,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잠든 동거녀가 깨지 않게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지갑과 귀금속 몇 개를 챙겼다.
‘모자, 모자를 써야…….’
모자까지 쓰고, 거기다 황사용 마스크까지 낀 다음에야 강대산은 집을 나섰다.
그는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고, 마침내 단지 후문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막 후문에 도착했을 때, 국산 SUV 한 대가 가볍게 경적을 울리며 전조등으로 그를 비췄다.
강대산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
“회장님!”
운전석에서 조민석이 고개를 내민 채 강대산을 불렀다.
강대산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피다가 SUV로 향했다.
“어서 타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강대산은, 그러나 SUV 측면에 서서 열린 차창 너머로 조민석을 바라보기만 할 뿐, 쉬이 차에 올라타거나 하지 않았다.
“회장님! 급합니다!”
조민석은 애타는 표정으로 강대산에게 차에 올라탈 것을 촉구했다.
‘어떻게 하지?’
강대산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이미 잃은 상황이었다.
뭐가 맞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를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회장님!”
조민석이 다시 한번 더 그를 불렀다.
결국, 강대산은 조민석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조민석은 그대로 차창을 닫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조 상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거야?”
강대산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민석에게 물었다.
“형만이가 배신했습니다.”
“뭐, 뭐?”
조민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형만이가 박경채랑 손을 잡고 회장님과 저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김태영이가 경찰 프락치였다고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그랬지.”
“박경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물증이 없어서 제가 그때 김태영까지만 손을 봤던 건데…… 젠장…… 박경채도 그때 봐버렸어야 하는 건데…….”
조민석의 말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박경채는 경찰 프락치였다.
대산에 잠입한 경찰이 죽어버리고, 또 다른 프락치인 김태영까지 죽은 상황에서, 그는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그러다 그는 한 가지 음모를 꾸몄다.
그것은 바로 최 검사를 죽이고, 그 죄를 강대산과 조민석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박경채는 곧 김형만과 손을 잡았고, 김형만을 통해 흑룡방 부두목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흑룡방 부두목을 기습해 기절시킨 후, 그가 기절한 사이 최창만 검사를 죽였다.
최창만을 죽인 후, 범행 도구를 흑룡방 부두목 장석산의 손에 올려놓아 그를 범인으로 몰았고, 현재 그는 유치장에 수감 중이다.
“혀, 형만이가…… 형만이가?”
강대산은 큰 충격을 받았다.
김형만은 그가 정말 믿고 있던 존재였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강대산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단 지금은 몸을 숨기시는 게 우선입니다. 곧 경찰과 검찰이 회장님과 저를 쫓을 겁니다. 젠장…… 박경채가 그런 식으로 일을 꾸밀 줄은…….”
조민석은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강대산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날 배신했다고? 박 전무하고 형만이가?’
믿을 수 없었지만, 정황상 그걸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내가…… 배신당했다고?’
그러는 사이, 차는 하남시 외곽으로 진입했다.
“대마 농장은 박경채는 모르는 곳입니다. 여기라면 며칠 정도 몸을 숨길 수 있을 겁니다. 그 사이에 제가 최대한 다른 도피처를 알아보겠습니다.”
차는 대마 농장으로 쓰이는 창고 앞에서 멈췄다.
조민석이 먼저 내려서 조수석 문을 열고 강대산을 에스코트해 주었다.
“회장님!”
강대산은 차에서 내리다 말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민석은 그를 부축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앉아 계십시오.”
조민석은 강대산을 팔레트 더미 위에 앉혔다.
그리곤 창고에 딸린 조그만 창고로 들어갔다.
‘내가…… 내가 배신당했다고?’
차가운 팔레트 위에 앉아 강대산은 멘탈이 무너진 상태로 바들바들 떨었다.
그 어디에도 대산그룹 회장이니 강동통합파 보스니 하는 위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부하에게 배신당한 연약한 노인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잠시만…… 근데 여기…….’
별안간 강대산은 자신이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잠시만…… 이거…… 내가 조민석이 아가리에 들어온 꼴이잖아?’
연속적인 충격 속에서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조민석의 아가리로 들어왔음을 직감한 강대산은 서둘러 팔레트에서 내려왔다.
그 순간,
“어이, 강대산이.”
시니컬한 목소리가 강대산의 귀를 때렸다.
강대산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너, 너……!”
대마 농장 입구에서부터, 밭두렁을 따라 두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앞장선 사람은, 강대산은 처음 보는 남자, 강철이었고 그 뒤에는 김형만이 따라오고 있었다.
“혀, 형만이 너 이 새끼…….”
김형만은 차마 강대산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겠어서 강철의 뒤에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그때, 내부 창고 문이 열리며, 작업복과 장화, 고무장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맨 조민석과 박용수 그리고 김명길이 나왔다.
특별히 조민석의 손에는 회칼이 들려 있었다.
“대산이 형!”
조민석은 강대산은 불렀다.
강대산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게 씨발 왜 나하고 구삼이 형을 배신하려 했어?”
조민석의 눈에는 명확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강대산을 죽이려는 결의였다.
“이, 이 새끼들이…… 이 새끼들이 전부 다……”
당황하는 강대산에게 강철은 말했다.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놀라고 계시나? 어차피 당신도 이렇게 하려던 거 아니었어? 조 상무한테?”
강대산은 강철을 바라봤다.
그는 강철의 정체를 추론할 수 있었다.
“너구나…… 조민석이하고 손을 잡았다는 외부 조력자가.”
강철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 순간, 강대산의 후미로 접근한 박용수가 그를 뒤에서 꽉 잡았다.
“이, 이거 놔! 이거 놔!”
강대산의 눈이 공포로 점멸돼 갔다.
“대산이 형.”
그런 강대산에게 조민석이 다가가 말했다.
“먼저 가서, 김태영이한테 안부 좀 전해 줘.”
[푹-!]
그리고 망설임 없이, 조민석은 강대산의 배에 칼을 꽂았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