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역습 (4)
“네?”
백유진은 화들짝 놀라며 국장을 바라봤다.
국장보다도, 그녀를 노려보는 총경과 경정, 경감들의 도끼눈이 그녀를 더 옥죄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야?”
정보국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게 결코 호의가 아니란 것을 백유진은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백유진은 고개를 바짝 숙였다.
정보국장은 미소를 짓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한 과장 말로는 백 경위가 지금 강동구 깡패들 조사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디까지 진행됐지?”
“그게…….”
백유진은 잠시 한동수 총경을 바라봤다.
한동수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다행이네. 진척이 상당한 상황이었다면, 조사한 걸 강동서에 전달하기가 참 속이 쓰렸을 텐데 말이야.”
백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보국장도 그냥 백유진이 혼자 멍 때리고 있는 게 보기가 좋지 않아 공연히 말을 걸었던 것이었기에, 이내 관심을 끊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오전 회의는 끝났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딱 두 사람, 한동수와 백유진만 제외하고.
“잘했어.”
한동수는 백유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백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나는 병호 기록을 지우는 중이야.”
그 말에 백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동수를 바라봤다.
한동수는 그녀의 시선을 살짝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국장님 허락도 없이 언더커버를 심었다는 게 밝혀지면, 너나 나나 꼴이 참 우습게 될 거야. 아니, 우습게만 되면 다행이겠지.”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병호 선배를 지울 생각을 하십니까?”
“나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야. 하지만…… 병호의 기록을 지우지 않으면 우리 기록이 지워져.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서, 설마…… 대산 수사…… 포기하시려는 겁니까?”
한동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란 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너도 그간 수고가 많았으니까…… 올해 인사이동 때 널 수원 쪽에 계장급으로 올릴 생각이야. 여기 일은 잊고 거기서 새 출발 해.”
한동수는 그렇게 말하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병호 선배를…… 지운다고? 대산도 포기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백유진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그녀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납득이 가질 않는 현 상황에 피폭되고 있을 뿐이었다.
5.
조민석은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박용수를 시켰다.
유아영이 6월 10일 저녁쯤에 갑갑함을 토로했지만, 조민석은 단호하게 참으라 말하며 그녀를 제압했다.
“당분간 애들도 우리 집 주위 지키는 애들 빼면, 다 잠수 타라 해.”
강철은 김형만에게 들은 정보 중, 자신에게만 필요한 것을 빼고는 모두 조민석에게 전달해주었다.
덕분에 강대산이 강동구에 있는, 자신을 따르는 건달들까지 한꺼번에 숙청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조민석은, 박용수를 통해 원격으로 건달들을 통제했다.
그러나, 조민석은 여전히 불안했다.
강대산이 단순히 박경채 라인에 힘을 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을 포함한 건달 출신 임직원 전체를 숙청하려 한다는 사실이 그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랬기에 6월 12일 토요일 정오에 강철이 차를 빌리려 집에 찾아왔을 때, 조민석은 강철의 나이라든가 강서구 건달과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에 관해 물었다.
“어떻게 하긴, 역습을 가해야지.”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상당히 초췌해진 안색으로 연신 담배만 피워대는 조민석에게 강철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역습을 가하겠다는 거요? 생각해둔 바가 있다면, 공유를 했으면 좋겠는데.”
애써 침착한 척하지만, 상당히 불안해하는 조민석의 모습을 보며, 강철은 그의 심리를 좀 안정시켜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오늘, 강대산이랑 최창만이 한꺼번에 날릴 거야. 그래서 당신 차가 필요한 거고.”
“최, 최 검사까지 말이오?”
“그래. 그 둘을 모두 날려야만, 당신이 회장이 되고 내가 고문이 된다는 우리 계약이 현실로 이뤄지거든.”
“가, 강 회장 하나를 처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최 검사까지 처리하겠다는 거요?”
조민석의 말에 강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작전은 현장직인 나만 알면 되는 거고, 당신은 사무직답게 그냥 편안하게 데스크에 앉아서 결과물만 보면 돼.”
그러면서 강철은 대마를 집어 들어 조민석에게 건넸다.
조민석은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이 피워서…… 이젠 약빨도 떨어진 느낌이오.”
그러면서도 그는 대마를 받아 입에 물었다.
강철은 손가락에서 불꽃을 일으켜 손수 불을 붙여 주었다.
조민석은 가만히 대마를 몇 차례 빨더니, 이내 표정이 풀렸다.
“내가 항상 궁금했던 건데…… 그 손가락 라이터 마술…… 비법이 뭐요?”
그 물음에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씩 웃었다.
“마술사가 자기 비법 가르쳐주는 거 봤나? 편히 쉬어.”
조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누웠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강철은 안방 거실에서 나왔다.
“차 키, 어디 있지?”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유아영에게 강철은 물었다.
유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TV 앞에 놓인 차 키를 들어 강철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그녀는 물었다.
“오빠랑 무슨 일 꾸미고 있죠?”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서 현관으로 나갔다.
유아영은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우리…… 괜찮겠죠? 무슨 일 안 생기겠죠?”
강철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어 현관과 복도 사이에 몸을 걸친 상태에서 유아영에게 말했다.
“그렇게 되게 하려고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겠어?”
그 말을 남기고 강철은 조민석의 집을 나섰다.
유아영은 한숨을 내쉬곤 한동안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기만 했다.
강철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조민석의 세단 운전석에 올라탄 후, 시동을 걸고서 지하주차장을 나가며 서용태에게 전화했다.
[네, 네. 말씀하십시오.]
“어, 나야. 준비는?”
[네, 네. 다 됐습니다.]
“오케이, 곧 그리로 갈 테니까, 거기 지하주차장 쪽에 내려와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철은 잠실 주상복합 아파트를 떠났다.
그리고 강철이 조민석의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마자, 그의 뒤를 국산 세단 2대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6.
조민석의 차가 아파트에서 나와 용산전자상가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가, 30분 정도 지났을 때 나와서 인천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 보고는, 조민석을 미행하던 춘천 쪽 조직원에 의해 김형만에게 전달됐고, 김형만은 그것을 그대로 강대산에게 전달했다.
강대산은 조민석을 뒤쫓는데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그랬기에 최창만 검사에게 정기적으로 선물을 건네는 일에 관해선 김형만에게 일임했다.
“아즈바이, 근데 겨우 돈 배달하는 데 와 내가 필요하오?”
6월 12일 토요일 밤 8시 30분.
송파구 거여동에 자리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산그룹 소유 시멘트 공장.
총 2개 동으로 나뉜 곳 중 A동이라 명명된 곳에서 대림동 조선족 조직 흑룡방의 부두목 장석산은 도낏자루 끄트머리로 머리를 긁적이며 김형만에게 물었다.
“지금 그 회사가 바빠서 사람을 빼 올 수가 없습니다. 돈 배달이야 제가 직접 하겠지만,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종에 보디가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래서 장 사장님을 부른 겁니다.”
그 말에 장석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김형만에게 질문할 거리가 많았다.
“그래, 그거이는 뭐 그렇다 치고. 며칠 전에 그쪽에서 불러간 우리 아들 너이가 아직도 연락이 없는데, 이건 어이 된 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분명히 그때 애 하나 담그고 뒷정리를 자기들이 한다길래 그러려니 하고 철수했었는데…….”
“그 이야기는 며칠 전에도 들었소.”
“일단 장 사장님 밑에 직원들 일이니까, 우리도 최선을 다하곤 있습니다만……”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별안간 A동으로 국산 준대형 세단 한 대가 들어왔다.
세단은 김형만과 장석산이 있는 곳 앞에서 멈춰섰다.
장석산은 전조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도끼로 눈앞을 가렸다.
곧 전조등이 시동과 함께 꺼졌고, 운전석 문이 열리며 최창만 검사가 내렸다.
“이건 또 뭐야?”
최창만은 도끼를 든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장석산을 보며 물었다.
“아, 네. 그 우리 일 도와주는 장 사장이란 사람입니다.”
“장 사장?”
최창만은 콧방귀를 뀌며 장석산을 바라봤다.
장석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최창만에게 말했다.
“아즈바이가 검사 나으리요?”
장석산의 말투에 최창만은 상대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한 차례 냉소를 짓더니 김형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김 비서가 직접 나온 건가?”
“아, 네.”
“무슨 일로?”
“그…… 저번에 검사님하고 회장님 사이에 이야기하신 거 있잖습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회사에 일손이 모자랍니다.”
“아…… 조민석이 숙청. 근데, 일손이 부족하다면서 정작 제일 중요한 일꾼인 자네가 여기에 나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제가 뭐 어디 계획 세우고 사람 부리는 일이나 할 줄 알지 직접 사람한테 손대고 하는 건 또 못하잖습니까. 그리고 어쨌건 최 검사님과 관련된 일인데 제가 직접 하는 게 맞고 말입니다.”
그 말에 최창만은 피식 웃었다.
김형만은 함께 마주 보고 웃다가 이내 차 트렁크로 향했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서 거기서 강장제 선물용 세트 박스 2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곤 그걸 최창만에게 전달했다.
최창만은 자신의 차 후드에 하나를 올려두고서, 내용물을 살폈다.
강장제 10병짜리 박스 안에는, 5만 원 권이 꽉 차 있었다.
최창만은 씩 웃으며 물건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는 그대로 선물용 세트 박스를 들고서 자기 트렁크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그걸 넣고 트렁크를 닫았을 때,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리에 서서 도끼날을 손가락으로 만지고 있던 장석산이 앞으로 쓰러졌다.
“뭐야? 저 조선족 새끼 왜 저래?”
최창만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쓰러진 장석산을 살폈다.
그러나 김형만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철컥-!]
대신, 듣기에도 섬찟한 쇳소리가 A동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 남자가 최창만에게 다가왔다.
“너 뭐야?”
그는 강철이었다.
그리고 강철의 오른손, 검은 가죽 장갑을 낀 그 손에는, S&W M60 리볼버가 들려 있었다.
“어이, 검사 양반.”
강철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최창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아마 최초로 깡패 손에 죽은 검사일 거야. 어쩌면 최후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강철은 방아쇠를 당겼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