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28화 (28/175)

028 역습 (3)

3.

6월 10일 목요일 자정.

“그래, 어떻게 됐어?”

도곡동 아파트에서, 강대산은 비서 김형만으로부터 전화상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었습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냥 오길동이 밑에서 생활하던 동네 달건이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래도 조 상무가 연막을 친 것 같습니다.]

“연막? 조민석이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현재로서는 결론이 그렇게 납니다, 회장님.]

“흐음…….”

강대산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김명길의 정체에 대해 미리 보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그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국엔…… 조민석이를 직접 조져야지 일이 해결된다는 거 아니야?”

[……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래, 아무튼, 그 김명길인가 하는 놈 잘 시마이하고, 복귀해.”

[네, 회장님.]

전화를 끊고서 강대산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 조민석이를 치기에는…… 리스크가 좀 큰데 말이야.’

최창만 검사로부터 숙청을 허락받았다곤 하지만, 조민석은 엄연히 대산그룹 상무, 강동통합파 서열 3위의 거물이었다.

김명길같이 길동이랑 천호동이나 관리하는 하류 건달을 잡아 족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조민석을 숙청하는 일이었다.

‘도구삼이가 누워버리면서 강동구 쪽 애들이 죄다 조민석이만 바라보고 있어. 그 선병호인지 지랄인지하는 놈 패거리 빼면, 사실상 강동구에서 생활하는 것들 전부가 조민석이 패거리야.’

대산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장주식회사의 형태를 갖추곤 있다지만, 여전히 강대산이 이끄는 조직은 범죄단체 시절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안 자요?”

“응? 어, 자야지. 왜 일어났어? 잠이 안 와?”

“아니 그냥…… 괜히 치킨이 땅겨서, 배달이라도 시키려고 그랬죠.”

“허허. 녀석이, 엄마 살찌우려고 작정을 했구나.”

강대산은 방에서 나온 동거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는 그녀의 배에 귀를 갖다 댔다.

“어이쿠, 치킨이 먹고 싶었어? 그래서 이렇게 심술이 난 거야?”

강대산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것은 대산그룹에서 강동통합파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낸 후, 완벽하게 합법적이고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탈피시킨 뒤, 60대에 이르러 생긴 자식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조민석은 사라져야 했다.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어.’

강대산은 직접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치킨을 시킨 후, 소파에 동거녀와 앉아 그녀를 자기 무릎에 눕히곤 가만히 그녀의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소 리스크는 안고 가더라도…… 도박을 해야 할 것 같아.’

같은 시간,

인천항 창고 앞.

“조심히 가십시오!”

강철에게 제압당한 인천 건달들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강철과 김명길이 탄, 김형만이 모는 세단을 향해 인사했다.

“쟤네들이 확실하게 입 다물게 할 자신 있나?”

인천 건달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떠나는 세단 뒷좌석에서 강철은 담배를 태우며 김형만에게 물었다.

“거, 걱정 마십시오. 쟤들 대가리가 제 사촌입니다.”

“하. 가족 단위로 건달이라…….”

“어, 엄밀히 말하면 저는 정통파는 아니고 그…… 대산그룹 공채 출신이긴 한데……”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김형만을 노려봤다.

백미러로 그걸 확인한 김형만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봐, 비서 양반.”

강철은 그런 김형만에게 물었다.

“TMI라고 아나?”

“T…… 뭐라고 하셨습니까?”

“TMI. 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이야.”

“아, 투 머치…… 아, 네.”

“딱 자네가 그거야. 앞으로 내가 TMI 하면 당신 부르는 건 줄 알아.”

“아, 네, 알겠습니다.”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밖을 바라봤다.

‘요직에 앉히면 안 될 인간이야.’

김형만은 강철에게 자신의 생존이 죽음보다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는 강철에게 충분하게 강대산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했고, 강대산에게는 강철에게 들은 시나리오대로 보고했으며, 강철에게 당한 인천 건달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았다.

‘대림동 조선족 조직하고 거래 관계라 했지?’

6월 9일 월요일, 인천항 창고에서 죽은 사람은 4명의 조선족 고문기술자 뿐이었다.

그들은 인천 건달들과는 달리, 김형만이 어떻게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종자들이 아니었다.

강철은 그들의 죽음이 생존보다 자신에게 더 이득이라는 점과 김명길을 죽인 후 그 장기를 팔아버리고 육체로는 인육을 만들려 했다는 점을 들어 그들을 모두 죽여서 드럼통에 넣고 공구리를 쳤다.

‘대림동 조선족은 살인 전문가에 사람을 잘게 썰어서 아예 존재 자체를 지우는 애들이고, 춘천 쪽 조직은 주로 사람 뒷조사와 납치 전문이라고 했지.’

김형만은 말했다.

강대산은 춘천 쪽 조직으로 조민석을 감시하다가 납치하여 대림동 조직에 넘길 것이다.

그리고 대림동 조직은 조민석을 고문해 강동 쪽 이사들과 건달들을 한꺼번에 숙청할 명분을 만들어낼 것이다.

‘결국, 내가 김태영이를 통해 한 짓이나, 강대산이가 조민석이를 가지고 하려는 짓이나 거기서 거기란 건데.’

문제는 최창만 검사였다.

‘강대산이는 최창만이를 자기가 이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문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단 건데.’

강대산은 자신이 최창만을 조종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김형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강철이 조민석을 통해 들은 정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창만이가 박경채 전무랑 만난다고 했지? 왜 만날까?’

검찰이라는 조직의 관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강대산이나 조민석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은 건달에 불과했다.

단지 사업가의 탈을 쓰고 있을 뿐, 그들은 결국 검찰 입장에선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범죄 집단 수괴인 것이다.

반면, 박경채는 다르다.

박경채는 출신부터가 민간인이고, 비교적 대산그룹 내에서 불법적인 일과는 동떨어진, 철저히 사업적이고 전문적인 일만 도맡아 하고 있다.

‘어쩌면 최창만이가 강대산에게 조민석의 숙청을 허락한 것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겠어.’

강철은 강대산과 최창만을 모두 제거해야만 조민석이 안정적으로 대산을 먹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검사를 조지는 일이라…….’

만약 강철이 2022년까지 도망자로 살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최창만을 찾아가 그를 죽이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초기화된 상태라곤 하지만, 강철에게 그 정도 힘은 있었다.

그러나 강철의 목표는 2022년까지 금을 최대한 쌓아두는 것이지,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숨어지내는 것이 아니었다.

‘검사를 죽인다라…… 검사가 죽으면 검찰 전체가 그 살인자를 잡아 죽이려 들겠지. 자기들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회귀 전, 오길동과 함께 떠돌이 해결사 용병으로 살 때, 오길동은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아는 한, 역사상 검사가 달건이 손에 죽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 씨벌, 영화에서나 달건이가 검사 작업하고 하지, 실제로 그랬다간 아마 그 달건이는 물론이고 그 새끼랑 같이 술이라도 마신 놈들은 죄다 잡아들여서 족쳤을 거다, 검사 새끼들. 그 새끼들은 그런 놈들이었어.』

강철은 잠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굴렸다.

몇 가지 엉성한 구멍이 존재하긴 했지만, 서서히 작전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희미하게만 보이던 것이 어느덧 또렷해지고, 구멍들의 크기가 점차 작아지기 시작할 무렵, 강철은 눈을 뜨고 김형만에게 물었다.

“어이, TMI.”

“네?”

“최창만이한테 매년 6월이랑 12월에 돈 배달한다고 그랬지?”

“네, 그렇습니다.”

“이번 달엔 배달했나?”

“아니, 아직 안 했습니다.”

“언제 하는데?”

“12일입니다.”

“12일이라…… 이틀 남았네?”

“보통 한 번에 강장제 박스 2개를 보냅니다. 왜 그 있잖습니까? 선물용 세트 상자에 2개 담기는 형태로 2개 말입니다. 예전에는 1만 원짜리가 최고가라 이게 액수가 좀 견딜 만했는데 이젠 1만 원짜리는 밑에 사람들한테 약칠 때……”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김형만에게 닥치라고 손짓한 후 강철은 물었다.

“몇 시에 어디서 배달하지? 배달 장소에는 최창만이가 직접 나오나?”

“네. 이게…… 최창만 검사가 다른 건 몰라도 자기한테 배달되는 돈은 직접 챙겨갑니다. 밑에 사람을 못 믿는 건지 원…….”

“흐음…… 직접 수령하신다?”

강철은 씩 웃었다.

계획의 구멍이 더 작아졌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김형만의 물음에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당분간 여기 김 대표나 잘 숨겨둬. 혹여나 김 대표 몸에 기스라도 나면, 그날로 당신 산채로 드럼통에 담가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네, 네…… 여, 염려 마십시오. 기, 김명길 대표는 제가 최선을 다해 숨겨놓겠습니다.”

김명길의 안전만 신신당부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계획의 스케치를 마무리할 뿐이었다.

4.

6월 10일 오전 9시.

경찰청 정보국 회의실.

“6월 21일쯤에 야당 의원들이 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할 겁니다. 지금 방송국에서도 그거랑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송출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경위 이상 총경 이하 정보국 경찰을 모아 두고서, 국장은 청장으로부터 내려온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한동안 사찰 건으로 정국이 어수선할 겁니다. 야당 쪽에 우리랑 친한 의원들도 있고, 또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쪽하고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똥이 튀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정치라는 게 또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요는 당분간 정보국 단위에서 실시하는 모든 종류의 사찰 행위를 일시중단하고, 주요 범죄 용의자에 대한 사찰도 현장에 넘겨버린다는 것이었다.

“누가 걸린 겁니까? 국정원입니까? 아니면 기무사?”

“일단 지금 야당 의원들한테는 총리실에서 했다는 정보가 넘어갔는데, 아무래도 BH 아니겠습니까?”

“젠장…… 하여간 어공 새끼들, 일처리하는 꼬라지 하고는…….”

주로 총경급과 그 아래 경정급 경찰들이 대화하는 가운데, 가장 말석에 앉아 있는, 유일한 여성이자 경위인 백유진은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책상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산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어.’

지난밤, 문자로 유아영은 백유진에게 강릉 여행의 취소와 당분간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알렸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회사일 때문에 조민석이 극도로 예민해졌다는 정보도 보내주었다.

백유진은 최대한 아쉬운 척, 유아영을 어르고 달래며 조민석에게 정보를 캐내게끔 시켰다.

‘안 돼. 멈추면 안 돼. 이대로 멈추면…… 이대로 멈추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선병호의 모습이 순간 눈앞에 떠올랐다.

“백유진 경위?”

그 순간, 백유진의 귀로 정보국장의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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