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음모 (3)
5.
6월 8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오픈 준비로 한창 바쁜 상해탄 천호본점.
그곳 대표실에서 강철은 김명길이 준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제가 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와, 마 이 정치한다는 놈들 뻑하믄 찾아와가꼬 병호 행님 어데갔냐 묻는거 처리하는 게 힘들어 죽겠십니다.”
김명길은 강철에게 업무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니, 뭔 구의원이니 시의원이니 하는 놈들이 뭐한다꼬 짱개 사장 바뀐 거에 그래 관심이 많나 모르겠십니다. 장부 보니까 짜시리 뭐 받아간 것도 없드만.”
김명길의 불평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대표 노릇 힘들어서 못 하시겠다?”
그 말에 김명길은 화들짝 놀랐다.
“아, 아입니다, 그건 아입니다. 그냥…… 아니 그…… 이 깡패들은 마 어째 상대하기가 편한데 이 정치한다는 놈들은 상대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입니다.”
“아마 그동안 선병호가 지역 정치인들한테 인력을 제공했을 거야.”
“인력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돈이야 뭐 선병호 라인에서 넘기기에는 레벨이 딸리니까 어려웠을 거고, 사람 동원해달라고 하면 지역에 달건이들이랑 그 추종자들 모아서 보내줬겠지.”
그제야 김명길은 자신이 상대했던 정치인들의 말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아! 그래가 저보고 막 그 뭐 언제 간담회가 있니 뭐니 씨불거린 거네예.”
“이제 알겠나?”
“네, 행님 덕분에 이제는 좀 알겠십니다.”
“구의원이나 시의원들 자체가 크게 도움이 되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 사람들이 작정하고 사업 훼방 놓으려면 얼마든지 귀찮게 할 수는 있어. 거기다 어쨌건 그 정도 위치면 지역 유지라는 거니까. 인력 요청하면 가급적 다 들어줘.”
“네, 행님. 그라믄 보자…… 일단 길동 쪽 애들 당장에 모아가지고 이번 주 토요일에 한다는 그 간담회에 보내면……”
김명길이 인력 수급에 관한 생각에 빠지려 할 때, 강철은 그에게 말했다.
“이봐, 김 대표.”
“네, 행님.”
“조만간 당신한테 좀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네?”
김명길은 무슨 소리하냐는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당신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아무리 김명길이라도, 그게 대충 무슨 이야기인가는 알 수 있었다.
“혹시 그…… 고병우 금마가 뭐 할라 카는 깁니까?”
일단 강철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아…… 마 예상은 했는데……”
김명길은 지레짐작으로 강철이 고병우를 이야기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당분간 조심 좀 하고 다녀. 그리고 혹시라도 저번에 선병호가 그랬던 것처럼 납치라도 당하면, 몸 다치기 전에 그냥 나 부르고.”
강철은 딱히 그런 착각을 교정해줄 생각은 없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째 행님을 팔아 먹겠십니까?”
“그냥 팔아 먹어, 이 양반아. 죽기 싫으면.”
강철의 말에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내가 좀 더 쉽게 강대산이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으니깐 말이야.’
강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마저 쭉 들이켰다.
6.
화요일 밤 9시.
동대문구.
철거 예정인, 한때 퇴폐적인 조명으로 가득했던 집창촌 거리를 강철은 걷고 있었다.
인근의 유명 집창촌과 비교했을 때, 그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도 공간이 제법 됐기에, 강철은 마치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 도심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이, 해커 양반.”
가로등 불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집창촌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서용태는 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많으시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족히 10명은 돼 보이는, 통일되지 않은 복장에 통일되지 않은 연장을 챙겨 든 건장한 남성들과 함께, 6대의 오토바이가 양쪽 길에 주르륵 주차돼있는 공간에서, 서용태는 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씨빠라빠바. 내가 너처럼 싸가지 없는 새끼는 아니라서 말이야. 친구가 좀 많지.”
강철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서용태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서용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용감한 거야, 멍청한 거야? 아니면 씨빠라빠바, 가오가 대갈빡을 지배하고 있는 건가?”
어느새 10명의 사내들은 강철을 빙 둘러쌌다.
서용태는 사내들을 장벽 삼아 강철과 거리를 둔 채로 그에게 말했다.
“어이, 씨빠라빠빠, 개새끼야. 내가 명길이 때문에라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넌 너무 싸가지가 없어.”
그러면서 서용태는, 자신과 마주 보고 있는, 강철의 배후에 있는 덩치에게 턱짓했다.
[부웅-!]
덩치는 곧장 들고 있던 각목으로 강철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빠악-!]
그러나 각목이 강철의 뒤통수에 닿기도 전에, 강철의 오른쪽 팔뚝이 각목을 옆에서 쳐냈다.
각목은 곧장 두 동강이 나버렸다.
[뻑-!]
그대로 멈추지 않고, 강철은 왼손으로 자신에게 각목을 휘두른 덩치의 뺨을 때렸다.
오거닉 메탈을 둘렀기에, 덩치는 그대로 오른쪽 광대가 함몰됐고, 입에서 피와 부러진 치아 몇 개를 내뿜으며 허공에서 두어 바퀴 돈 후 바닥에 철푸덕-! 하고 쓰러졌다.
“이 새끼가!”
첫 번째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덩치들은 마구잡이로 강철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의 복장만큼이나, 공격도 통일성이 하나도 없어서 몇몇은 서로 뒤엉켜 제대로 팔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강철은 그런 덩치들을 오로지 뺨만 때려가며 하나씩 제압했다.
[빠악-!]
“커헉-!”
[뻑-!]
“크흑-!”
강철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 덩치들을 쓰러뜨려 갔다.
“씨, 씨발!”
덩치 여섯이 강철의 손에 쓰러졌을 무렵, 나머지 넷 중 둘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무기를 버리곤 냅다 도망가버렸다.
“씨, 씨발 오지마! 오지마 새끼야!”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아무렇게나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쨍그랑-!]
그러다가 그는 건물 유리창을 그만 쇠파이프로 두드렸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자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빠악-!]
그런 그의 왼쪽 뺨을 때린 후, 강철은 마지막 남은 놈을 바라봤다.
“아, 안 할래요.”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빠악-!]
강철은 오거닉 메탈을 푼 채, 그대로 그의 머리통을 잡고는 무릎으로 코를 찍어 올렸다.
“힉-!”
그리고 강철은 그때까지 멍하니 싸움을 지켜보던 서용태를 노려봤다.
“저, 저, 저, 저기 사, 사장님?”
[짝-!]
강철은 서용태에게 다가가 그대로 그의 뺨을 맨손으로 때렸다.
오거닉 메탈을 두르진 않았지만, 상당히 매운 손길이었다.
“크헉-!”
서용태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퍽-!]
그대로 강철은 서용태의 배를 발로 찼다.
서용태는 뒤로 나자빠졌다.
“사, 사장님! 사장……”
[퍽-! 퍽-! 퍽-!]
강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서용태의 머리와 옆구리, 허벅지를 발로 밟기만 했다.
서용태는 한 손으론 머리를, 한 손으론 사타구니를 가린 채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강철의 발은 집요하게 서용태의 몸을 노리며 내리 찍혔다.
“끄으윽…… 사, 살려주세요…….”
구타는 3분 넘게 이어졌고, 강철이 발길질을 멈췄을 때, 서용태는 이미 걸레짝이 된 채 밟힌 애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난 말이야. 사람을 죽일 때, 그냥 죽이지 않아.”
강철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불을 붙이곤, 코로 연기를 내뿜으며 서용태에게 말했다.
“나하고 사적인 원한이 있거나, 죽이는 게 살려두는 것보다 이득이거나, 선을 넘거나. 이 세 경우 중 둘 이상을 충족하면, 그때 죽여.”
서용태는 바들바들 떨었다.
조금 전, 구타를 당하면서 그는 진짜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발……”
“해커 양반. 그쪽은 지금 선을 넘었어. 난 당신한테 경찰청 정보국 인사기록부를 달라고 했지, 저런 양아치 새끼들을 달라고 하지 않았어.”
강철은 물었다.
“오늘 내가 받기로 돼 있던 물건은, 어디 있지?”
그 물음에, 서용태는 떨리는 손으로 빨간색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저, 저기…… 저기에…….”
강철은 오토바이로 가서, 안장을 열었다.
과연, 그곳에는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가 담겨 있었다.
강철은 곧장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살폈다.
‘허어.’
경찰청 인사기록부였다.
상단에는 수기로 <정보국>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마 서용태가 적은 것 같았다.
‘이 자식 봐라?’
강철의 마음에서 살의는 싹 사라졌다.
강철은 서류를 도로 봉투에 넣은 후, 그걸 옆구리에 낀 채 서용태에게 걸어갔다.
“어이, 해커 양반.”
강철의 목소리가 누그러진 것을 확인하고서, 서용태는 안도했다.
“사흘 정도 걸린다면서?”
“쿨럭-! 쿨럭-! 그, 그…… 때, 때마침 거래하던 중국애들이 경찰청 털고 있는 중이라…… 쉬, 쉽게 구했습니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이봐, 해커 양반.”
“네, 네, 네.”
“이 서류봉투 덕분에, 당신은 저승 문턱에서 유턴한 거야.”
강철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서용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네, 네? 아…… 네.”
서용태는 바닥을 손으로 짚고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은 당신이 먼저 넘었어. 원래라면 물건값을 치러야겠지만, 이번엔 당신 목숨으로 그걸 대신하려고 해.”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근데 당신 목숨값을 이거 하나로 퉁치기에는 수지가 안 맞는 것 같아.”
서용태는 바짝 긴장했다.
‘씨빠라빠바…… 뭐야? 죽이려고?’
서용태의 눈앞에, 순간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일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폰 위치 추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좀 깔아줬으면 좋겠어.”
그러나, 강철이 그의 폰, 옴니버스를 내밀자 서용태의 눈앞에 다가오던 어린 시절의 일들은 다시 멀어져갔다.
“위, 위치 추적이라면?”
“이 폰에서, 내가 원하는 번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뭐 그런 프로그램 말이야. 왜, 안 되나? 이건?”
“아, 아닙니다. 다, 당장 설치해드리겠습니다. 그, 근데…… 그러려면 사무실에를 좀……”
강철은 씩 웃었다.
‘역시, 이 인간은 두고두고 우려먹을 가치가 있어.’
강철은 서용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용태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손을 잡으려 했다.
강철은 손을 휘저어 서용태의 손을 뿌리치곤 말했다.
“오토바이 키 달라고. 당신이 운전할 거야?”
“네? 아…… 네.”
서용태는 오토바이 키를 건넸다.
강철은 서류를 도로 빨간 오토바이 안장 밑에다 넣어두고는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런 강철의 모습과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양아치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서용태는 조심스럽게 강철에게 질문했다.
“저, 저기…… 애, 애들은 다……”
서용태의 물음에 강철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 뒤졌어. 저것들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올라타.”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서용태는 비틀거리며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내 허리 잡으면 그대로 길바닥에 던질 거야.”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철은 서용태를 뒤에 태우고 용산전자상가로 오토바이를 몰고 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