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음모 (2)
3.
6월 7일 월요일 오후 3시.
강남구 도곡동.
강대산의 아파트.
그곳 서재에서 강대산은 비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창만이 이 어린놈에 새끼가 말이야. 엉? 검사실에서 말이야, 이 따까리들 부려먹어가면서 어? 범죄자들 조인트까고 다닌다고 지가 왕인 줄 알지.”
강대산은 그렇게 말하며 동그란 지압기를 오른손으로 주물럭거렸다.
“그러니 상대하기가 더 쉽단 말이야. 하여간…… 씨발거, 우리 이사님들이나 지방에 주주님들도 씨바 검사들처럼 조또 단순 무식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에 비서는 살며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형만아.”
강대산의 부름에 비서, 김형만이 그를 바라보며 짧게 대답했다.
“네, 회장님.”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그래, 박 수사관한테 얼마나 챙겨줬어?”
“강장제 10병짜리 박스 하나 보내줬습니다.”
강대산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밑에 수사관들만 잘 챙겨놓으면 말이야. 동부지검은 사실상 우리 손바닥 안에 있는 거야. 하하.”
그러면서 강대산은 왼손으로 넥타이를 살짝 풀면서 구시렁거렸다.
“대학 나오고 사시 패스하면 뭐해? 평생 책만 봤으니 세상 물정을 뭐 지들이 알기나 하겠어?”
비서 김형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강대상이 적당히 구시렁거리다가 입을 닫으려 할 때쯤, 그에게 물었다.
“작업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흐음…… 일단 그 천호동에 누구랬지?”
“김명길입니다.”
“그래. 그 인간부터 잡아다가 족쳐 봐. 괜히 조민석이부터 족치다간 일이 다 틀어지는 수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민석이 몰래 김명길이란 놈 자리에 그 누구냐…… 아무튼 원래 있던 애들 복귀시켜 놓고.”
“네.”
“그리고…… 대림하고 춘천 쪽에 애들은 지금 바로 일 시킬 수 있나?”
강대산의 말에 김형만은 흠칫했다.
“벌써…… 말씀이십니까?”
“확실하게 해야지. 확실하게 대림이랑 춘천 애들로 조민석이를 사방에서 쪼아놓은 상태에서, 엉? 한방에 팍-! 쳐서 족쳐야 하는 거잖아.”
김형만은 입을 다물었다.
‘진심인가?’
하지만 그의 일은 회장이 의지를 갖고서 내린 명령이 현실에 실현되도록 실행하는 것이지, 그게 맞나 아닌가를 판단하는 게 아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부르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6월 15일에 임시 이사회 연다고 통보 때리고.”
“네.”
같은 시각.
광진구 동부지검.
최창만의 검사실.
“강대산이는 지금쯤 우리가 자기네들 손에 놀아난다고 믿고 있을 거야.”
최창만의 말에 수사관 박충백은 씩 웃었다.
“그게 깡패 새끼들 수준 아닙니까.”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박 수사관 당신이 열연한 덕분이야.”
“허허. 열연까지야 뭐…… 그냥 적당히 돈 욕심 있는 척, 돈에 미친 척해주니까 진짜 프락치인 줄 아는 그 새끼들이 멍청한 거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 말에 최창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번엔 얼마를 받았어?”
“강장제 10병짜리 박스 하나 받았습니다.”
“얼마짜리로?”
“세종대왕입니다.”
“짜다, 짜. 이왕이면 신사임당 넣어줄 것이지.”
“뭐, 재벌 흉내 낸다고 해 봤자 어쨌건 깡패 아닙니까?”
“그래. 그 돈으로 사무실 식구들하고 회식이나 하고, 남는 건 박 수사관 활동비로 써.”
“허허. 감사히 쓰겠습니다.”
최창만은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박충백에게 물었다.
“아 그리고, 조만간 박경채가 여기로 찾아올 거야. 그쪽하고 시간 조율 잘 해서, 공판하고 안 겹치게 해.”
“걱정 마십시오. 안 그래도 지금 거의 다 조율해 놨습니다.”
박충백의 말에 최창만은 활짝 웃었다.
“역시, 박 수사관밖엔 없어. 하하.”
4.
월요일 밤 9시.
잠실 주상복합 펜트하우스.
“오빠, 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조민석을 맞이하기 위해, 원피스 차림으로 현관으로 나간 유아영은 조민석과 함께 들어오는 강철을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맞다. 미리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여기는…… 저번에 봤지?”
사정을 모르는 조민석은 유아영에게 강철을 소개하려 했다.
“알아. 저번에 간단하게 인사했어.”
강철은 그런 조민석을 만류하며 유아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그런 강철의 모습에 유아영은 심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아래로 축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가지.”
“아, 먼저 기다리고 있으시오. 나는 잠시 옷 좀 갈아입어야 하니까.”
“오케이.”
강철과 조민석은 그런 유아영을 뒤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 좀 쳐 봐도 되나?”
안방 거실로 들어선 강철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덮개를 열며 그렇게 물었다.
“방음 하나는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그 말에 강철은 씩 웃으며 가볍게 건반을 몇 차례 두드렸다.
그 사이 조민석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밖으로 나왔다.
“여기 와인 하나랑 적당히 씹을 거 좀 갖다 줘.”
조민석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유아영에게 그렇게 부탁한 후, 안방 거실로 들어와 그곳 소파에 앉았다.
강철도 건반을 독수리 타법으로 건드는 걸 멈추곤, 덮개를 닫고는 몸을 조민석 쪽으로 틀었다.
“그래, 긴히 할 이야기라는 게 뭐야?”
강철의 물음에 조민석은 슬쩍 거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바라본 후 담배 한 대를 물어 불을 붙이곤 말했다.
“6월 15일에 임시 이사회를 열겠다고 통보가 왔소.”
“강대산이한테서?”
“그렇소.”
“6월 15일이라…….”
“그리고…… 최창만 검사가 조만간 박경채를 만난다고 하오.”
“최창만이?”
“그렇소.”
강철의 왼쪽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소스 출처는?”
“검사실에 따로 내가 약을 쳐둔 게 있소.”
“그 약빨, 제대로 먹히고 있는 건가?”
“그렇소.”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최창만이 그 양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됐네. 이렇게 스스로 링으로 올라와 주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소. 강 회장도 그리고 최 검사도 모두 뭔가를 꾸미는 모양이오. 우리도…….”
말을 하다말고, 조민석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강철은 물었다.
“긴장되나?”
조민석은 눈을 감은 채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강심장인 건 아니오.”
그때, 유아영이 와인과 과일 안주를 들고 안방 거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후 조민석과 강철의 눈치를 살피곤 호다닥 거실로 도망갔다.
강철은 와인 마개를 따고 자신과 조민석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적당한 긴장은 실수를 줄이지만 지나친 긴장은 일의 진행을 방해할 뿐이야. 너무 긴장하지 마.”
강철은 와인 향을 한 차례 맡고는, 잔을 피아노 덮개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래도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오.”
“그래야지. 강대산이는 분명 6월 15일 전에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할 거고, 최창만이는 그사이에 간을 보다가 박경채한테 도움을 주려고 하겠지. 검찰 입장에선 깡패인 강대산이나 당신보단 민간인 출신인 박경채가 더 좋을 테니까.”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시오?”
“뭔가 구상이 떠다니긴 해. 그걸 하나로 모으면, 6월 15일 전에 당신과 나의 앞길을 막는 것들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겠지.”
“가급적 빨리 떠올려 주시오. 시간이 많지 않소.”
그렇게 강철은 조민석과 일 이야기를 하며 1시간가량을 머물렀다.
조민석은 혼자 와인 한 병을 비우고 대마를 태우며 불안을 가라앉혔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조민석은 안방 거실 소파에 누워 잠들었고, 강철은 그런 조민석을 뒤로하고 거실로 나갔다.
“헙-!”
거실로 나가자, 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문자를 나누고 있던 유아영이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내려놓았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
“다, 다, 다, 다 끝났어요?”
“들어가서 조 상무 침대로 좀 옮겨. 그게 힘들면 이불이라도 덮어 주든가.”
“오, 오빠한테 무, 무슨 짓이라도 한 거예요?”
유아영의 물음에 강철은 코웃음을 치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아영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이, 스토커 아가씨.”
“스, 스토커라뇨! 그, 그게 무슨…….”
“내가 좋아서 미행한 거라며? 그럼 스토커 아닌가?”
“그, 그건…….”
당황하는 유아영을 보며 강철은 한 차례 콧방귀를 뀌었다.
“경고하는데, 앞으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 그렇게 흉악한 사람 아니야.”
“아, 아, 알겠어요.”
강철은 그대로 등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유아영은 그와 살짝 거리를 둔 채, 마치 감시하듯 따라갔다.
강철은 신발을 신고 나서 유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가 물증을 확인 못 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말에 유아영은 살짝 정색했다.
“그거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일 핑계로?”
강철은 피식 웃었다.
“당신 오빠하고 은밀하게 만날 곳이 나한테는 여기뿐이거든.”
“그래서…… 지금 확인하실 건가요?”
강철은 씩 웃었다.
“확인하겠다고 하면, 확인시켜 줄 건가?”
유아영은 한숨을 내쉬곤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어이, 스토커 아가씨. 조민석 상무나 가서 챙겨.”
강철은 유아영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난 립스틱 바른 입술은 안 좋아해.”
강철은 장난스럽게 씩 웃고는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하아…… 저 씨발새끼가 진짜…….”
유아영은 눈앞에서 완전히 강철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야 욕설을 내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한동안 벽에 기대서서는 회의감에 찌든 표정으로 멍하니 현관 조명만 바라보았다.
‘조민석이 나한테 의지하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이거 되게 피곤하구만.’
한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며 강철은 고민했다.
‘오길동이가 유다 같은 놈이긴 해도 작전 짜고 머리 쓰는 건 전담해서 참 편했는데.’
자신은 몸만 쓰면 됐던, 회귀 전 멸망 이후 세상에서의 삶을 회상하고, 몸과 머리를 모두 써야 하는 지금 상황에 아쉬움을 제법 강하게 느끼며 강철은 폰을 꺼냈다.
그리고 막, 전화를 걸려고 할 때, 타이밍 좋게 자신이 전화를 걸려던 대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지?’
강철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 해커 양반. 무슨 일이야?”
상대는 서용태였다.
[아, 네.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저녁에 주문하신 물건을 배달해드리려고 합니다.]
강철은 살짝 당황했다.
“내일? 벌써?”
[네. 생각보다 그 쉽게 물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강철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근데 그…… 아무래도 물건이 물건이다 보니 용산에서 전달드리긴 좀 그렇고…… 제가 아는 조용한 장소가 있는데 그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문자로 찍어 보내겠습니다.]
강철은 일단 동의했다.
“오케이. 그렇게 하라고.”
[네.]
전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왔다.
‘이 새끼가…… 선을 넘으려고 하네?’
문자에 찍힌 주소와 사진을 보는 강철의 표정은 차가웠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