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회장과 검사 (1)
1.
6월 7일 월요일.
강대산은 서울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 나가진 않았다.
그저 비서를 통해 이사들에게 당분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통보만 했을 뿐이었다.
물론, 말만 그랬을 뿐, 실제로 집에 있지는 않았다.
“하하하. 이,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최 검사님도 못 찾아뵙고…… 번번이 감사한 일만 있는데 늘 이 밑에 애를 시켜서 접대하는 바람에 항상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월요일 점심.
청담동에 자리한 고급 일식집 VIP룸에서 강대산은 동부지검 최창만 검사를 접대하고 있었다.
“뭐, 조 상무도 사람이 좋으니까요. 괜찮았어요.”
최 검사는 살짝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강대산이 사케를 자신의 잔에 따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강대산이 잔을 채우자, 최 검사는 그걸 달라 손짓했다.
강대산은 공손하게 양손으로 술병을 최 검사에게 전달한 후, 또 양손으로 술잔을 들어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최 검사는 한 손으로 강대산의 잔을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근데요. 내가 저번에 조 상무한테 분명히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지요.”
“네?”
최 검사는 강대산의 잔을 반만 채워주었다.
“얼마 전에 선거가 있었잖아요. 아시죠? 투표는 하셨나?”
“아, 네. 그 했습니다.”
“그래요. 투표는 꼬박꼬박해야지. 아무튼, 선거 이틀 전인가? 내가 조 상무한테 분명히 말했어요. 당분간 선거사범 수사하느라 바쁠 거니까, 최대한 소란 일으키지 말라고.”
“아…… 네.”
최 검사는 술잔을 들었다.
강대산도 공손히 양손으로 잔을 들었다.
최 검사가 술을 넘기자, 강대산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잔을 비웠다.
최 검사는 잔을 내려놓았고, 강대산은 그 잔을 채워주었다.
최 검사는 젓가락으로 스시 한 점을 집어 간장에 찍으면서 말했다.
“근데 요즘…… 대산 쪽에서 이런저런 안 좋은 이야기가 막 나오고 있단 말이죠? 내 귀에 들어올 만한 내용들로?”
최 검사는 스시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밑에 애들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까지는, 그래요, 그냥 넘어간다 이거에요. 그 정도도 못 참을 만큼 우리가 속이 좁은 건 아니니까요.”
입에서 음식물 잔해가 튀어나왔지만, 강대산은 내색하지 않았다.
“근데 말이에요. 이사급에서 변고가 생기면, 이 우리도 마냥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이거에요.”
강대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회장으로서, 밑에 관리를 철저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그는 속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실은 그것 때문에 오늘 이렇게 최 검사님을 뵙자고 청한 겁니다.”
강대산의 말에 최 검사의 얼굴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공부만 한 새끼가 어디…….’
강대산은 속으로 그런 최 검사를 비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시곤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은…… 민석이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 검사의 표정이 굳었다.
“조 상무가요?”
“네.”
그러면서 강대산은 최 검사에게, 김태영의 숙청과 외부조력자와의 협력 등, 자신이 비서를 통해 보고받은 조민석의 최근 행보에 관한 일을 담담하게 전달했다.
물론, 엄청난 편집이 가해졌고 모든 것이 가정법이었기에, 실질적으로 최 검사가 얻어가는 제대로 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이 새끼가…….”
그러나, 조민석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다.’라는 정보만으로도, 최 검사의 자존심에 충분한 상처를 낼 수가 있었다.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하고, 우리 검사님들과 항상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건, 저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양지에서 떳떳하게 살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송구스럽게도 이 조민석이는 아직 음지 때의 습성을 못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강대산은 최 검사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게 다 제 불찰입니다.”
최 검사는 팔짱을 낀 채 강대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강 회장이 이야기한 건 말이에요. 전부 가정법이에요. 알고 계시죠?”
“네. 저도 정황만 확인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물증까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도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예상한 바였다.
그리고 강대산이 최 검사에게 바라는 건 애초에 검찰의 개입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물증을 제가 직접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를, 최 검사는 익히 알고 있었다.
“…… 조용히 할 수 있겠죠?”
강대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영감님, 고검장으로 올라가시려고 애쓰시고 있어요. 그간 대산에서 우리 관할 쪽 치안 유지에 조력한 덕에 그 가능성도 높고요.”
사실상 승낙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강대산의 말에 최 검사가 보탰다.
“확실하게.”
“네.”
2.
월요일 오후 2시.
강철은 홀로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어이, 서용태 씨.”
서용태의 가게는, 지난번 선병호의 노트북 보안 해제를 위해 김명길과 왔을 때랑 마찬가지로, 문은 열려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이, 용팔이.”
강철이 두 차례 부르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용태가 조그만 사무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서용태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뭐긴 뭐야? 손님이지.”
“…… 아…… 그 싸가지 없는 새끼네? 명길이가 형님 형님하고 부르던?”
강철은 피식 웃으며 서용태에게 다가갔다.
“저번엔 명길이가 있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적당히 해라. 그러다가 형아한테 맞아 뒤지는……”
[꽉-!]
그리곤 그의 목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컥-!”
서용태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강철은 오른손에 오거닉 메탈을 둘러 근력을 향상시킨 후 그대로 서용태를 들어 올렸다.
“크허억-!”
서용태는 강철의 손을 잡은 채 발버둥 쳤다.
강철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은 채로 그런 서용태를 바라봤다.
“끄으윽……”
그리고 서용태의 숨이 넘어가려 하기 직전에, 그를 바닥에다가 집어 던졌다.
“쿨럭-! 쿨럭-!”
서용태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바닥에 누운 채 기침을 토해냈다.
그런 그를 향해 강철은 말했다.
“어이, 해커 양반. 내가 당신을 살려두는 이유는, 당신이 유용해서야. 당신을 죽이는 것보단, 살려두는 게 더 쓸모가 있다고 판단했거든.”
서용태는 두려운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기침을 했다.
“그러니까, 손님한테 예의를 좀 갖추라고.”
서용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의자 하나를 빼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곤 담배를 한 대 물고 불을 붙인 후 서용태를 보며 물었다.
“명길이한테 들으니까, 해킹을 아주 잘 하신다고?”
서용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대답 안 하시나?”
강철의 이어진 물음에 서용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조, 조금 합니다.”
“혹시 정부기관도 해킹 가능한가?”
“저, 정부기관이라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지……”
“경찰.”
“겨, 경찰 말입니까?”
“돼, 안 돼?”
“그, 그게…… 뭐, 뭘 터실 건지에 따라 이게 난이도가 달라지는 거라서…….”
“인사기록부.”
“인사기록부면…… 이게 그…… 부서를 특정해주시면 단가도 좀 싸고 시간도 단축이 되는데 그게 아니면……”
“본청 정보국.”
“저, 정보국 말입니까? 그, 그건…….”
서용태의 망설이는 모습에 강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되는지 안 되는지만 이야기해. 안 된다고 죽이거나 하진 않으니까.”
“되, 되긴 됩니다. 다, 다만…… 이게 그…… 아무래도 대상이 대상이다 보니까……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중국 쪽 애들하고도 같이 해야 하고 해서…… 아무래도 단가랑 기한이…….”
결국, 돈만 주면 해준다는 말이었다.
“돈만 주면 해주겠다는 말을 왜 그렇게 빙빙 돌려!”
강철은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죄, 죄송합니다.”
“어이, 해커 양반. 다른 손님들한테는 모르겠는데, 앞으로 나한테는 그렇게 하지 마. 그냥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돈은 얼마나 필요하고 시간은 얼마나 필요하다. 그것만 딱딱 말하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견적 짜 봐.”
“네, 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대로 서용태는 사무실로 들어가 견적을 짜기 시작했다.
강철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줄담배를 태우며 생각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진 기대 안 했는데.’
선병호의 자료는, 어디까지나 선병호가 작성한 자료였다.
그랬기에 백유진의 인사기록부나, 그 신원을 증명할 만한 자료는 당연히 노트북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강철은 백유진의 얼굴과 그녀가 경찰 관계자-그중에서도 정보국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뿐, 그녀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경찰 정보국까지 해킹 가능한 해커라…… 이건 무조건 살려둬야지. 2022년까지는.’
서용태의 초능력-최면은 열등하다.
최면에 걸리는 시간도 짧고, 한 번 최면에 걸린 인간에겐 두 번 다시 쓸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최면을 걸면, 그 인간은 그저 제한 시간 동안 뽕 맞은 사람처럼 멍해지기만 할 뿐, 어떻게 조종하거나 할 수가 없다.
그랬기에 강철은 서용태를 죽이지 않았다.
서용태를 죽여서 능력을 빼앗느니, 차라리 종종 컴퓨터 보안 관련된 일이나 맡기는 게 더 이득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죽였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거였겠지.’
그렇게 강철이 두 번째 담배를 다 태우고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서용태가 사무실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저기…… 일단 단가는 이 정도고 기한은 이 정도입니다.”
강철은 서용태로부터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가만히 거기에 적힌 숫자를 바라보다가, 서용태에게 물었다.
“혹시 단가를 높이면 기한을 줄일 수도 있나?”
“네? 아…… 네. 가능합니다.”
“기한을 한 3일 정도로 줄이고 싶은데 말이야.”
“네, 네? 3, 3일 말입니까?”
“왜, 그건 안 되나?”
“되, 되긴 하는데…… 다, 단가가 좀 많이 오를 겁니다.”
“괜찮으니까, 그걸로 다시 견적 짜 봐.”
서용태는 다시 견적을 짜러 들어갔고, 강철이 세 번째 담배를 다 태울 때쯤 새로운 견적서를 완성해 가지고 나왔다.
“오케이. 좋아. 이렇게 해 보자고.”
강철은 만족하며 견적서를 도로 서용태에게 건넸다.
“저기…… 그…… 이쪽 업계는…… 선불이 원칙인데 말입니다.”
서용태는 그런 강철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이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이, 해커 양반. 일단 시작부터 해. 돈은 며칠 내로 가져다줄 테니까.”
“아, 아니…… 그…… 아…… 네.”
서용태는 항변하려 했지만, 강철의 눈빛이 심상찮게 바뀌자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너무 걱정하진 마.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돈 계산은 철저하니까.”
강철은 그렇게 말하곤 가게를 떠났다.
서용태는 한동안 바짝 긴장한 채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가게 입구로 나가 강철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씩씩거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다.
“어, 나다. 씨발. 너 애들 좀 모아 봐라. 개새끼 하나 족쳐야겠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