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21화 (21/175)

021 백유진

1.

강철이 확보한 선병호의 물건은 2개였다.

하나는 그가 조민석을 비롯해 주로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하고 연락할 때 쓰던 애플망고사의 스마트폰 아담-1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찰로서 수집한 자료가 담긴 노트북이었다.

‘아담-1에는 보안이 걸려있지 않았어. 그 말은, 아담-1으로는 경찰 쪽하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실제, 강철은 선병호의 아담-1을 뒤져봤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직과 관련된 혹은 사업과 관련된 번호와 통화기록만 있을 뿐, 경찰과 관련된 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강철은, 선병호의 노트북을 뒤질 때부터 이미 경찰과 연락할 때 쓰는, 경찰용 휴대전화기의 존재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다.

다만, 당장 선병호의 노트북 자료를 열람해 조민석에게 던질 떡밥을 찾는 게 우선이었기에, 따로 휴대전화 수색을 하진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프락치로 의심되는 조민석의 애인 유아영과 그녀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제3의 여인-백유진을 확인한 이상, 경찰용 휴대전화를 찾는 일을 더는 미뤄둘 수는 없었다.

‘여기에 있을 것 같은데 분명히.’

6월 6일 일요일 오후 1시.

강철은 벌써 30분도 넘게 홀로 선병호의 아파트를 뒤지고 있었다.

노트북을 발견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던 서재를 비롯해 거실은 물론 화장실 변기까지 뒤져봤지만, 그러나 경찰용 휴대전화로 의심되는 폰은 나오지 않았다.

‘제3의 장소에 갖다 놓은 건가? 그러면 너무 불편할 건데, 연락을 취하기가?’

강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곤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선 불을 붙였다.

“후우……”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고선, 한동안 강철은 가만히 그렇게 앉아 있기만 했다.

‘노트북에 있던 자료가 이메일로 전송되거나 한 흔적은 없어. 그 이야기는 노트북 자료를 보통 인쇄를 해서 특정 경로를 통해 경찰 쪽에 전달했다는 건데…… 그럴 거면 어떻게든 연락을 했을 거 아니야?’

선병호의 집에는 집 전화가 따로 없었다.

아담-1로는 경찰과 연락을 한 흔적이 없었다.

그 말은, 무조건 경찰용 휴대전화가 존재한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이 집 그 어디에서도 강철은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선병호였다면…… 들키면 위험한 그 물건을…… 어디 숨겨뒀을까?’

노트북은 자물쇠가 걸린 자신의 방에 숨겨뒀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도 최대한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숨겨뒀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거기가 어딜까?

한동안 강철은 눈을 감은 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잠시만…….’

담배가 꽁초가 돼 갈 무렵, 강철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밟아서 불을 끈 뒤,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혹여나 누가 집안을 뒤지더라도, 안 뒤질 만한 곳.’

강철은 부엌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그러면서도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면 안 되는 곳.’

별안간 강철의 시선이, 부엌 창문 아래쪽, 가스 벨브 옆에 서 있는, 마늘장아찌가 든 커다란 병으로 향했다.

‘어쩌면?’

강철은 마늘장아찌 병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그대로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호라!’

강철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철은 병에서 손을 끄집어냈다.

그의 손에는 꽁꽁 묶인 검은 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강철은 곧장 싱크대에서 검은 봉지를 뜯었다.

‘여기 있었네.’

검은 봉지를 뜯자, 투명 봉지 속에 담긴, 아담한 크기의 슬라이드 폰이 나타났다.

강철은 조심스럽게 투명 봉지를 물에 씻고 물기를 털고는 그것을 뜯었다.

그리곤 벽에 걸린 집게로 최대한 모서리 부분만 집어서 폰을 끄집어내 행주 위에 고이 올려두었다.

‘꽤 노력은 하셨구만. 노트북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최소한 이건 노출시키고 싶지 않으셨다? 근데 왜 아담-1은 보안 장치를 하나도 안 해두셨을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의문을 뒤로하고, 강철은 손을 씻고 물기를 닦아낸 후 폰을 집어 들었다.

전원은 꺼져 있었다.

강철은 선병호의 방으로 들어가 충전기를 찾아 폰을 꽂았다.

그리곤 잠시 기다리며 담배를 태웠다.

‘5분 정도 충전하면 최소한 안에 내용은 확인할 수 있겠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연거푸 담배를 3개비 태운 강철은, 곧 폰 전원을 켰다.

이것도 아담-1과 마찬가지로 따로 보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폰 쪽으로 허술했구만.’

강철은 피식 웃으며 잠시 기다렸다가 연락처부터 메시지 그리고 통화 목록까지 다 살폈다.

‘메시지는 다 지워졌어. 이 부분에선 철저했네. 연락처에도 아무도 저장이 돼 있지 않고. 심지어 통화도 5월 29일 이전 건 지워져 있어.’

아쉽게도 강철이 건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5월 29일 이후로 이 번호에서만 부재중이 들어와 있긴 한데…….’

강철이 건진 건, 5월 29일, 즉 선병호가 죽은 뒤에 계속해서 그의 경찰용 폰으로 전화를 건 번호가 딱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다.

‘누굴까? 아까 그 여자인가?’

강철은 대번에 백유진을 떠올렸다.

‘그건…… 일단 시험해보면 알겠지.’

강철은 부재중이 들어와 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꽤 길었다.

‘끊을까?’

강철이 막 전화를 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무렵,

[딸깍-!]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언니…… 언니……]

그 너머에서는, 또 다른 여자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강철은 그게 누군지 깨닫곤 씩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강철이 전화를 끊자,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 그 번호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강철은 가볍게 전화를 끊고는 폰 전원을 껐다.

그리곤 아파트를 벗어났다.

2.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배!”

백유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자신에게 전화를 건 선병호의 번호로 전화를 넣었다.

신호음이 잠시 가다가, 강제로 끊어졌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그러나 전화는 다시 꺼진 뒤였다.

‘벼, 병호 선배…… 병호 선배야. 병호 선배가 분명해. 지, 지금 무슨, 무슨 일이…….’

그녀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언니…… 왜 그래?”

그녀가 침대가에 걸터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이던 유아영이 그녀를 뒤에서 안아오며 입김을 귓가에 뿜어댔다.

“아, 아영아. 나, 나 지금…… 지금…….”

백유진은 유아영을 살짝 밀치고는 도로 옷을 입었다.

“언니? 무슨 일이야?”

그런 백유진의 모습에 유아영은 흥분 상태에서 벗어났다.

순식간에 옷을 입은 백유진은 유아영을 한 차례 안아주고 그녀의 이마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모텔을 빠져나갔다.

“어, 언니…….”

유아영은 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백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병호 선배…… 병호 선배가 분명해……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백유진은 곧장 택시를 타고 선병호의 천호동 아파트로 향했다.

“아저씨, 좀 빨리 가 주세요.”

그녀는 다급했기에 택시 기사를 재촉했다.

곧 택시는 목적지에 도달했고, 그녀는 3만 원을 집어 던지곤 잔돈도 받지 않은 채 택시에서 내렸다.

‘선배…… 선배 살아 있지?’

백유진은 곧장 선병호가 사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비밀번호를 누르곤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섰다.

‘담배 냄새…… 그리고 이건…….’

선병호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백유진의 코를 찌른 냄새가 2개 있었다.

하나는, 분명 조금 전에 누가 피운 것으로 추정되는 담배 냄새였고, 다른 하나는 시큼한 마늘장아찌 냄새였다.

“선배?”

백유진은 선병호를 불러보았다.

“병호 선배?”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백유진은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뚜껑이 열린 채 싱크대 위에 놓여 있는 마늘장아찌 병을.

자신이 선병호에게 선물해준, 직접 담근 반찬거리를.

“선배…….”

백유진은 다리가 풀릴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천천히 마늘장아찌 병으로 향했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마늘장아찌를 살피더니, 이내 주위를 둘러보며 고함치기 시작했다.

“선배! 장난치지 말고, 나와 봐. 나 유진이야. 백유진.”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녀의 말에 대한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배…….”

결국, 그 자리에서 백유진은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선 한줄기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그녀의 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한편,

‘경찰 맞네.’

아파트 마당 정자에 앉아 백유진이 택시에서 내려서 선병호가 사는 단지로 들어가는 것을 본 강철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민석이 애인도 경찰 프락치였단 말이지?’

강철은 아파트를 벗어났다.

‘조민석…… 참 불쌍한 인간이야. 부하는 짭새에, 애인은 프락치에…… 쯧쯧.’

딱히 인간적인 의리나 정은 없었지만, 문득 강철은 조민석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

“미쳤어?! 그렇다고 선병호 아파트를 찾아가? 그러다 누가 널 보기라도 했으면 어쩔 건데? 네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단 말이야!”

백유진은 윗선에게 선병호의 집에 대한 지문 감식을 요청했다.

자신에게 선병호의, 경찰과 연락하는 용도로만 쓰는 폰으로 전화를 건 대상이 선병호일 거란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백유진은 이성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증거 수집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증거가 선병호의 집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윗선에서는 고민은커녕 되려 백유진을 나무랐다.

“이게 공개 작전이야? 비밀 작전이잖아. 나하고 너 그리고 병호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작전. 근데, 지문 감식을 요청해? 뭘로? 뭘 명분으로 영장을 딸 건데?”

윗선은 그녀의 경솔함을 질책했다.

“동부지검에다간 뭐라 할 건데? 너희들이랑 대산이랑 붙어먹은 거 조사하려고 언더커버 넣었는데, 걔가 불법적인 임무 수행 중 죽은 것 같으니 범인을 찾게 영장 좀 법원에 청구해 달라고 할 거야?”

윗선은 단호하게 백유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금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했다는 첩보가 야당 의원들한테 들어갔고, 며칠 뒤에 그쪽에서 그걸 터뜨릴 계획이야. 그럼 모든 사정기관을 탈탈 털겠지.”

윗선은 백유진에게 당분간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 대산 쪽은 일단 가만히 내버려 둬.”

백유진은 반발했다.

“선 경위는 그러면…… 이대로 개죽음당한 게 되는 겁니까?”

그 말에 그녀의 윗선은 냉정하게 답했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백유진의 이성도, 그런 경고를 분명히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전혀 그 말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일단 물러나 있어. 당분간 조용히 지켜만 봐. 함부로 움직이면, 네가 구축한 정보원까지 다 날아가는 수가 있어.”

윗선은 그녀에게 자중할 것을 지시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녀도 대답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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