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유아영
1.
여자의 정체는 조민석의 애인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었기에 강철은 순간 뇌가 일시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강철의 뇌는 활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신 뭐야?”
강철은 여자의 어깨에 올린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아아아…….”
조민석의 애인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강철의 손을 톡톡 쳤다.
그러나 강철은 오히려 더 힘을 주며 다시 물었다.
“당신 뭐야?”
“아아…… 조, 좀 놓고 말해요!”
여자는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했다.
‘조민석이 보낸 프락치인가? 조민석이 날 마킹하려고?’
1차로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강철과 조민석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서로의 욕구에 기반한 거래 관계지 신뢰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조민석 측에서 자신을 마킹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는, 마킹을 한다 쳐도 왜 하필 자기 여자친구를 써서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니면…… 혹시 이 여자가 선병호의 프락치?’
2차로 떠오른 가능성은, 강철 자신이 생각해도 상당히 그럴듯했다.
선병호가 자신의 노트북에 그 정체를 추론할 단서나 흔적은 남겨두지 않았지만, 분명 프락치는 있었고 그 숫자는 강철의 판단으론 적어도 둘 이상이었다.
그리고 조민석의 애인은, 경찰 입장에선 매력적인 프락치 후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강대산의 프락치일 수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떠올린 가능성도, 나름 일리는 있었다.
‘어쨌건, 불순한 의도인 건 확실하다.’
강철은 여자의 목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 뭐야?”
자신의 목에 닿은, 서늘한 살기의 감촉에 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강철의 물음에 답했다.
“그, 그러니까…… 그, 그게……”
여자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말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여자의 고뇌는 강철에게 고스란히 읽혔다.
“악-!”
강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혀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자는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
“그, 그…… 조, 좋아서…… 켁-!”
여자의 입에서 나온 답변에 강철은 순간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뭐?’
강철은 손에서 살짝 힘을 풀었다.
“콜록-! 콜록-!”
여자는 강철의 얼굴에다가 기침을 토해냈다.
강철은 고개를 살짝 틀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침방울을 피한 후, 여전히 양손으로 그녀를 구속한 채 물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나?”
“벼, 변명이 아니라…… 이, 일단 이것 좀 놓고…….”
“며칠 전부터 느껴졌어. 내 뒤를 누가 미행하고 있다는 게. 그래서 잡았더니 조민석 상무의 애인이야. 근데 미행 이유가 고작 내가 좋아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오, 오빠한테 아, 안 들키려고 그런 거잖아요.”
“조민석 상무한테 안 들키려고? 그래서 날 미행했다? 그럼, 미행해서 뭘 얻으려고 했지?”
“그, 그게……”
여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저, 전화번호 좀…….”
결국, 강철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분명 뒤에 누가 있어.’
강철은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누가 봐도 급조한 변명이었다.
‘족치기보다는 역으로 미행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어.’
강철은 일단 여자를 구속하던 손에 힘을 빼고,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아야야…… 왜 그렇게 거칠어요?”
여자는 목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통증을 호소했다.
강철은 그걸 가볍게 무시하곤, 여자에게 물었다.
“이름.”
“유아영이요.”
“나이.”
“스물 둘.”
“내가 좋아서 꼬리를 밟으셨다?”
“아, 아니 꼭 말을 해도……”
강철의 표정이 다시 얼어붙으려 하자 여자, 유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당신 말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나?”
강철의 물음에 유아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좋아. 그쪽이 내가 믿을 만한 물증을 제시한다면, 믿어줄게.”
“무, 물증요?”
“나한테 뽀뽀해봐.”
“네?”
유아영은 당황했다.
“왜? 내가 좋아서 쫓아다닌 거라며? 그럼, 뽀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키스도 아니고?”
“그, 그건…….”
유아영은 눈알을 굴렸다.
‘어떻게 하지?’
그녀는 잠시 주위를 살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유아영은 한숨을 포옥 내쉬곤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입술을 내밀었다.
그걸 보고서, 강철은 피식 웃었다.
‘웃기는 여자야.’
강철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고,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가 모습을 감췄다.
유아영은 그것을 모른 채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지?’
30초가 지났을 무렵, 그때까지도 아무런 신체 접촉이 없자 유아영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어?”
그리곤 그제야 강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황당하단 표정을 짓더니 인상을 팍 찡그렸다.
“씨발…….”
잠시 주변을 살핀 유아영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뭐야? 안전할 거라며? 나 씨발 죽을 뻔했어. 그래. 그 미친 새끼가 나한테…… 아무튼 만나서 이야기해. 지금 어디 있어? 뭐? 아니 정말 이러기야? 너무한 거 아니야?”
그녀는 한동안 통화 상대와 설전을 벌였다.
전후 맥락 다 자르고, 그 내용만 듣자면, 연인에게 투정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알았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10분 동안 통화를 하고 나서야,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연신 입으로 쌍소리를 되새김질하듯 내뱉으며 골목을 벗어났다.
2.
6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45분.
강남구 청담동 카페 2층.
그곳 창가 자리에서 유아영은 모자와 마스크를 모두 벗은 채 벌써 커피를 3잔째 마시고 있었다.
“목표물은?”
그리고 그녀가 3번째 커피를 다 마셨을 무렵, 한 여자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놓친 거야?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캐주얼 정장 차림에 포니테일을 한, 약간 사나워 보이지만 묘하게 시크한 매력이 느껴지는 미모의 여인은 마치 추궁하듯 유아영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유아영은 가만히 그녀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냐는 말도 이젠 안 해?”
“뭐가?”
“나 그 미친놈한테 목이 졸렸어. 그 미친놈이 내 어깨를 찌그러뜨릴 기세로 눌렀다고. 근데, 언니는 괜찮냐고,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묻지도 않네?”
유아영의 말에 여자, 백유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유아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나 정말 2년 동안 언니를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어. 조민석 그 꼰대한테 온갖 아양 떨어가면서, 어? 사랑하지도 않는데 사랑한다고 하고, 꼴리지도 않는데 꼴리는 척하고 진짜 별짓을 다 했다고.”
“아영아.”
“내가 왜 조민석 같은 꼰대 위에 올라타는데? 내가 왜 그 미친 사이코 새끼 미행하다가 걸려가지고 죽을 뻔했는데?”
“아영아.”
“다 언니 때문이잖아. 내가…… 내가……”
유아영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백유진은 그런 유아영을 가만히 안고선 다독여주었다.
“미안해. 언니가 다 미안해.”
유아영은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백유진은 그런 유아영을 안쓰러워하는 듯한, 혹은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싫은 듯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언니가 미안해.”라는 말만 주문처럼 읊조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오열하던 유아영은 눈물을 멈췄다.
그리곤 백유진의 품에 안긴 채 말했다.
“그 새끼가 자길 왜 미행하냐 물었어.”
“그래서, 뭐라 답했어?”
“내가 그 새끼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안 믿는 눈치더라고. 그러면서 물증을 제시하라네?”
“물증?”
“뽀뽀를 해보라 하더라고. 자기를 진짜 좋아하는 거면, 못할 게 뭐 있냐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우리 아영이.”
“언니랑 뽀뽀한다 생각하고 눈 딱 감았는데, 미친 새끼가 그대로 도망갔더라. 어이가 없어서.”
“그냥 갔다고?”
“그래. 그 새끼…… 분명 게이 아니면 고자일 거야.”
유아영은 백유진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보고할 건 따로 없었다.
그게 전부였으니까.
다만, 그때 받은 이런저런 충격에 대한 해소가 지금 그녀에게 필요할 따름이었다.
백유진은 그것을 잘 알았기에, 아무 말 없이 유아영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할 뿐이었다.
“언니.”
“응?”
“나 계속 그 미친놈 미행해야 해?”
백유진은 즉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유아영도 백유진이 무어라 답할 것인지는 예상했기에, 힘없이 고개를 그녀의 가슴에 묻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살짝 고개를 들어 백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어쩌면…… 그 미친놈한테 대줘야 할 수도 있어.”
“……”
백유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아영은 말을 이었다.
“잘못하면 조민석이랑 그 미친놈 사이에 끼여서 찢어질 수도 있어.”
“……”
“그래도…… 해야겠지?”
백유진은 차마 더는 유아영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한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미안해.”
“괜찮아. 그렇다고 언니가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유아영은 백유진에게 말했다.
“언니. 오랜만에 우리…… 같이 누울까?”
“지금?”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나겠어?”
백유진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 아영이를 달래놓지 않으면…… 다 꼬여.’
결국, 백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아영은 환히 웃으며 백유진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 한 후 그녀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곤 그대로 그녀와 팔짱을 낀 채 카페를 나섰다.
카페를 나서서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근처에 자리한 모텔이었다.
‘허어.’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카페 바깥에서부터 지켜보던 강철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민석이…… 이 병신 새끼…….’
강철은 모습을 감추었을 뿐, 유아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유아영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적절한 은폐와 엄폐를 반복하며 강철은 그녀의 뒤를 밟았다.
그녀의 통화는 분명 그녀의 배후, 즉 자신을 미행토록 명령한 사람과 나눈 대화였기에, 강철로서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철은, 진실에 완전히 접근하진 못했지만, 조민석은 모르는 그 무언가는 확실히 알게 됐다.
‘뭐…… 21세기니까.’
강철에게 중요한 건, 유아영이 카페에서 백유진의 품에 안겨 있다가, 그녀와 함께 대낮부터 모텔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뒤를 밟도록 명령한 사람이 조민석이 아닌 제3자라는 것이었다.
‘경찰인가?’
조민석은 용의 선상에서 확실하게 배제됐다.
그렇다면 남는 건 경찰과 강대산 둘 뿐이었다.
그러나 백유진에게서 강철은 깡패라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아무래도…… 선병호의 집을 좀 더 뒤져봐야겠어.’
일단 강철은, 철수하기로 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