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동업 (3)
6.
“월말 정례 보고서가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말에 중년 남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병호 경위와는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남성은 침묵했다.
“대산 측에서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를 교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은 침묵했다.
“교체된 대표는 길동이파 수괴 오길동의 부하인 김명길입니다.”
여자는 잠시 남성의 눈치를 살폈다.
남성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병호 경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으음…….”
그제야 남성에게서 처음으로 음성적 반응이 나왔다.
여자는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알렸다.
“아무래도 지난번 선 경위가 언급한, 오길동을 죽인 외부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5월 25일, 선병호로부터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대산그룹 조민석 상무 라인의 건달이자 길동에서 길동이파라는, 조그만 조직을 이끌며 돈세탁과 성매매 알선 등을 하던 오길동이 외부인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보고였다.
이에 윗선에서는 선병호에게 외부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별것 없는 인간이면 대산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게 5월 26일이었다.
그리고 선병호는 다음날인 5월 27일에 처리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그 후, 선병호와의 연락이 두절 됐다.
그가 개인적으로 쓰던 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고, 경찰과의 연락용으로 쓰던 폰은 며칠 동안 무의미한 신호음만 가더니 6월 1일부로 전원이 나갔는가 마찬가지로 꺼져버렸다.
“선병호 경위가…… 죽었다는 건가?”
남성의 물음에 여자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본 남성이나, 답하지 않은 여자나 모두 예상은 하고 있었다.
“병호가…… 죽었다?”
남성은 또 한동안 침묵했다.
그 침묵이 너무나 길었기에, 결국 여자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외부인은 길동이파가 성매매 알선용으로 사용 중인 오피스텔에 거주 중입니다. 한번 뒤를 밟아 볼까 하는데, 허락해주십시오.”
남성이 눈을 떴다.
“위험하지 않을까?”
“지난 2년간 공들인 탑이 모두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조금의 위험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남성은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그가 여자에게 전할 말은, 여자의 입에서 허가 요청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 너까지 잃으면 우리 작전 다 날아가는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7.
6월 3일 목요일.
자정을 넘기고 또 20분이 지난 시간.
“후우…….”
조민석은 침대에 대자로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열기가 담긴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의 위에 엎드려 누운 채 숨을 헐떡이던 그의 애인은 뜨거운 입김을 조민석의 가슴팍에 뿜어내고 있었다.
“오빠. 다시 돌아왔구나?”
애인은 기뻐하며 조민석의 얼굴에 입맞춤을 갈겼다.
조민석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애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 순간을 즐겼다.
애인의 말마따나, 아주 오랜만에 조민석은 시원하게 애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어제오늘, 이틀 사이에 완벽한 역전의 수를 둔 것에서 오는, 성취감과 안도감 덕분이었다.
‘강 회장은 주말이면 돌아오겠지만…….’
강대산의 갑작스러운 휴가.
그것은 대산그룹 최상부에 큰 파문을 몰고 왔다.
본래 예정됐던 임시 이사회에서 자신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예상했던 박경채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당혹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 김태영이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겠지. 알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을 테니까.’
구 도구삼 라인, 현 조민석 라인에 속하는, 옛 건달 출신 이사들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민석은 구태여 그들에게 김태영이 어떻게 됐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길 전달하진 않았다.
당분간은 입을 다물라는 강철의 조언 때문이었다.
『진짜 프락치가 분명히 이사회 안에 숨어 있어. 그러니까, 당분간은 강대산이에게 이야기해두는 선에서 함구하라고. 혹시 아나? 자기가 프락치인 걸 드러낼 바보가 나올지?』
조언이라곤 하지만, 그건 분명 명령이었다.
머릿속으로 강철의 말과 모습이 지나가자, 조민석은 갑자기 열기가 팍 식는 걸 느꼈다.
“오늘 한 번 더 할 수 있겠어?”
어느새 조민석의 몸 위에서 내려와 옆에 누운 애인이 그의 배꼽을 간질거리더니 점차 손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팍 식어버린 조민석의 감정은 더는 그런 재미를 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오빠?”
조민석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가운을 걸친 채 안방 거실로 나갔다.
“뭐야? 자기 혼자 즐기면 그만이야?”
애인은 못내 아쉬운 듯 조민석을 향해 혀를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안방 거실 소파에 앉은 조민석은 대마를 한 대 집어 피우기 시작했다.
‘강철…….’
6월 1일 새벽.
강철은 대마 농장에서 김태영의 시체를 갈아 농장에다가 뿌려버렸다.
박용수와 그가 데려온 부하 그리고 김명길 이렇게 3명이서 거름을 뿌리는 걸 보면서 조민석은 강철에게 물었었다.
『근데 김태영이를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고문하고 죽일 필요가 있었소? 그 인간 새가슴이라 조금만 겁줘도 알아서 술술 불었을 건데?』
그 질문에 강철은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했었다.
『선을 넘었잖아. 곱게 죽이기에는.』
그러면서 강철은, 마치 조민석에게 들으라는 듯 자신의 살인 철학을 읊어주었다.
『사적인 원한이 있는 놈, 죽이는 게 살리는 것보다 이익인 놈 그리고 선을 넘은 놈. 이 세 조건 중 둘 이상을 충족하면 난 죽여.』
거기다가 대고 차마 조민석은 물어볼 수 없었다.
‘난 아직 살려두는 게 이득이라 죽이지 않은 건가?’
그리고 만약 사적인 원한이 생긴다면?
아니면 기준이 뭔지 모를 ‘선’을 넘는 행동을 한다면?
그때는 나도 저렇게 죽나?
이 말을, 차마 조민석은 물어볼 수 없었다.
‘계약이라…….’
대마 농장에서 조민석은 강철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말이 계약서지 사실상 서약서였다.
강철은 최선을 다해 조민석이 대산그룹 회장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돕는다.
조민석은 대산그룹 회장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오르면 강철에게 대산그룹 고문 자리를 주고 매년 그룹 전체 매출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문료 및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양자는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돕는다.
이 간단한 내용의 계약서.
이것만이 유일하게 믿을만한 것이라고 강철은 이야기했다.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강철은 조민석에게 그렇게 지적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사람을 너무 안 믿어.’
조민석은 점차 몸이 나른해지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대마를 껐다.
8.
회귀 후, 강철은 거의 매일 아침 달리기를 했다.
비록 그가 오거닉 메탈의 초능력을 가진 채 회귀했다곤 하지만, 초능력 에너지 사이즈 자체가 작아진 것처럼 체력도 약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이 초능력 에너지의 성장에는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이전 생의 기억을 토대로, 그는 진짜 거의 매일 아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했다.
특히나 지난 6월 2일부터는 매일 아침 근 5km를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직접 처리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은 넘어갔지.’
조민석에게는 김태영의 자백과 목숨이라는 공을 줬다.
그는 그걸 꽤 잘 굴려서, 박경채 라인 이사 한 명을 동요케 했다.
『우리보고 맨날 깡패라더니, 정작 지기들끼리는 깡패식 의리도 하나 없더군.』
살짝 흥분해서 자신에게 전화상으로 그리 이야기하던 조민석을 떠올리며 강철은 피식 웃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그런 건지…… 깡패라기엔 말랑말랑하고 사업가라기엔 구리고…… 쯧.’
김명길은 의외로 업장 관리를 꽤 잘해나갔다.
『마 저는 대가리가 나빠가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이케는 못하겠고, 그래서 그냥 기존에 일 잘 하던 사람들한테 맡겨 뒀십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명길은 사람 관리를 제법 잘했다.
몰래 혼자 상해탄 천호본점에 갔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던 직원들의 모습에서 강철은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철은 현충일인 오늘까지, 근 4일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강대산이 내일 복귀한다지?’
물론 늘어져 있진 않았다.
매일 조민석과 김명길에게 일과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체크해둘 것은 체크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그는 바빠질 예정이었다.
‘어쩌면 6월 15일 전에 강대산이하고 결판을 내야 할 수도 있어. 근데 말이야…….’
이 중요한 순간에, 강철의 신경을 건드리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누구지?’
이틀 전인 6월 4일 아침 운동 때부터 강철은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다닌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초능력과 무관한, 핵전쟁 이후 세계에서 살아남으며 그의 영혼에 각인된 야생동물의 감각과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단 내버려 두었다.
어쨌건 회귀라는, 전대미문의 일을 경험한 상태였던 만큼, 자신의 감각에 오류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감각이 연이어서 그에게 경고를 보낸 이상, 강철은 더는 묵과할 수가 없었다.
‘여자 같은데…….’
강철은 신호등 앞에서 잠시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곤 물을 마시며 자신의 뒤쪽으로 약 6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봇대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모자에 마스크라…….’
미세먼지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여자는 검은 마스크로 하관을 가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철에게는 여자의 몸과 눈만이 보일 뿐이었다.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강철은 그녀를 유인하기로 했다.
‘진짜 내 뒤를 밟는 사람이면 안 따라오곤 못 배기겠지.’
강철이 향한 곳은 단란주점 콜걸로 가는 골목길이었다.
오길동 피셜 ‘역세권’, 강철의 판단에는 ‘변두리’인 이곳 골목은, 아침에도 어딘지 모르게 으슥했고, 실제로 CCTV를 비롯한 그 어떠한 보안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따라온다면…….’
강철은 그곳으로 최대한 속력을 내서 들어갔다.
그리곤 골목 어귀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강철의 뒤를 쫓던 여자는 당혹스러워하며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강철이 사라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경찰? 아니면 강대산?’
강철은 오른손을 오거닉 메탈로 물들였다.
여차하면 그 자리에서 저 여자의 목을 찢어야 할 수도 있었다.
강철은 정색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섣불리 나섰다가 혹시 모를 지원군이라도 합류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었기에, 그는 여자가 깊숙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악-!”
마침내, 여자가 자신의 앞을 지나칠 때, 그는 의류 수거함 뒤편에서 뛰쳐나와 여자를 벽으로 밀쳤다.
강철은 여자가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모자와 마스크를 벗겼다.
“응?”
그리고 강철은, 상당히 당황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