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8화 (18/175)

018 동업 (2)

3.

“아마 당분간 강대산이가 그쪽 뒤를 캐고 다닐 거야.”

6월 1일 점심시간.

강철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조민석과 통화하고 있었다.

[뭐, 그 정도야 각오는 하고 있소.]

“용수라는 양반, 믿을 만한가?”

[지난 밤에 보지 않았소? 그 친구는 믿을 만하오.]

“내가 그쪽 집까지 운전하라니까, 넙죽 가던데?”

[……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까운 친구긴 하지만 적어도 배신할 친구는 아니오. 그날도 나한테 사과를 했고 말이오.]

“너무 사람 믿지 마. 믿을 건 그쪽이랑 나랑 작성한 계약서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강철은 책상 한편에 모셔져 있는 계약서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사람을 너무 불신하는 거 아니오?]

“당신은 깡패치곤 사람을 너무 믿어.”

[…… 일단 강 회장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중요한 건 최 검사요. 최 검사는 강 회장이랑은 달리 우리가 쉽게 어찌 해보거나 할 수가 없소.]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같이 생각을 좀 해 보자고. 나도 작전을 구상해볼 테니, 그쪽도 틈틈이 해 봐.”

[알겠소.]

통화를 끝내고 강철은 컵라면을 마저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사라…….’

대기업만 검사를 케어하는 게 아니다.

규모가 있는 중견 기업도 검사를 케어한다.

대산도 마찬가지다.

강대산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사업 계획 수립도, 자금조달도 아닌, 검사와의 커넥션 구축이었다.

덕분에 재벌급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대산은 동부지검과 꽤 괜찮은 연을 맺고 있었다.

‘박경채가 중앙지검 쪽에 지인이 있긴 하지만, 커넥션은 약해. 김태영은 아예 없었고.’

초창기에 강대산이 대산을 만들었을 때, 그나마 좀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 조민석이었기에, 그가 관공서 접대를 전담하게 됐다.

조민석은 그것만큼은 절대 내려놓지 않았고, 덕분에 검찰이라는 카드는 강철 쪽에 있게 됐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카드는 휘발성이 강한 종류이기에, 묵혀두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돈 주는 사람은 강대산이니까,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결국, 이제부터는 속도전으로 가야 한다고 강철은 생각했다.

‘조민석은 자기 밑에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

그러나 강철이 보기에 조민석의 아랫사람 중 믿을만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에 조민석이 신뢰하던 선병호부터가 경찰이지 않았던가?

박용수가 경찰과 커넥션이 없다는 보장도 없었고, 설령 경찰과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강대산 쪽에 회유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선병호 따까리들이 제일 지금 불만이 많을 거니까.’

강철은 가만히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담배가 절반쯤 탔을 때,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씩 웃으며 폰을 꺼내 다시 조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민석이요.]

“어, 오늘 내로 그 인사이동 좀 할 수 있나?”

[인사이동?]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 자리가 지금 공석이 됐잖아.”

그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조민석은 약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산그룹 고문으로 초빙되기 전에,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로 먼저 가고 싶으신 거요?]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말고.”

[그럼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요?]

강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4.

6월 2일 수요일 오전 9시.

대산그룹 임시 이사회가 취소됐다는 소식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라왔다.

그리고 같은 시간, 임시 이사회 취소 소식에 묻히긴 했지만,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 교체 소식도 인트라넷에 올라왔다.

“…… 지금 장난하는 거야?”

아직 영업을 개시하진 않았지만, 상해탄 천호본점에는 고병우를 비롯해 선병호를 따르던 조직원 10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과 김명길이 가게 입구를 등진 채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소식 못 들었나?”

강철은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채 고병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사에서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를 선병호 씨에서 여기 김명길 씨로 교체했잖아?”

“누구 마음대로!”

고병우는 눈을 부릅뜨며 강철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순간,

[뻑-!]

“크억-!”

강철은 그대로 고병우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고병우는 뒤로 한 바퀴 구르며 자빠졌다.

“이 개새끼가!”

그러자 건달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철에게 다가왔다.

“하, 하지 마!”

그러나 그들을, 고병우가 말리고 나섰다.

“가, 가만히 있어…….”

고병우도 분명히 들었다.

강철이 공사장에서 조민석 휘하 건달 30여 명을 홀로 쓸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그랬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자기 부하들을 말렸다.

“형님! 저 어린 새끼가 씨부리는 거 계속 들어야 합니까? 씨발 우리가 무슨 동네 양아치입니까?”

그러나 동생 중 하나는, 선병호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아니 아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있었기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며 강철에게 다가갔다.

“이 개새끼야. 너 도대체 뭐야? 씨빨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본사니 뭐니 지라……”

[빠악-!]

그 건달의 뺨을, 강철은 강하게 후려쳤다.

오거닉 메탈을 살짝 둘렀기에, 뺨을 때렸음에도 무슨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당연히 건달은 광대가 살짝 함몰된 채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아, 안 돼…….’

고병우는 욱씬거리는 복부를 부여잡고서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 조 상무님하고 손을 잡은 건가?”

그 물음에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병우를 보며 말했다.

“꺼져.”

고병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개새끼들…….’

그의 눈앞으로 지난 2년 동안 선병호와 함께 조민석을 위해 개같이 굴렀던 나날이 스쳐 지나갔다.

아파트 건설 수주를 위해 경쟁 업체 사장을 협박하기도 했고, 말 안 듣는 하청 사장을 납치 감금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병우의 친구와 동생 몇은 감옥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선병호의 허망한 죽음과 그런 선병호를 죽인 놈에게 가게를 통째로 넘겨주는 조민석의 결정이었다.

“…… 가자.”

“형님!”

“가자니까!”

고병우는 일단은 물러나기로 했다.

여기서 싸우면, 다 죽는다.

일단 물러나서, 기회를 잡아보자.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생의 부축을 받고서 상해탄 천호본점을 빠져나갔다.

“해, 행님. 쪼매 너무 하신 거 아입니까?”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김명길이 조심스럽게 강철에게 물었다.

그새 표정을 풀고 살짝 냉소를 머금고 있던 강철은 그런 김명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김 대표.”

대표라는 말에 김명길은 얼굴을 붉히며 씩 웃었다.

“에이…… 대표는 지가 무슨 대표입니꺼? 그냥 편하게 불독이라 불러 주이소.”

“아니지. 그래도 명색이 대표인데, 대표라고는 불러 줘야지.”

“헤헤.”

“오늘부터 좀 바쁘게 살아야 할 거야. 여기도 맡아야 하고, 길동에 주점도 맡아야 하니까. 아, 그 오피까지도.”

“마, 제가 딴건 모르겠는데 이 몸쓰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행님. 마 쎄리 오토바이라도 한 대 사가지고 돌아댕기면서 하겠십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러면서 강철은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가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의자 하나를 내리곤 거기에 앉았다.

“우리 일이 잘 풀리면, 강동구 정도는 김 대표 자네가 맡아.”

그 말에 김명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해, 행님…….”

“어차피 강동구 쪽 달건이들 전부 다 대산 따까리잖아? 따까리 관리하는 거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아, 아입니다, 행님. 진짜로 행님 실망 안 하게 조빠지게 하겠십니다.”

“진짜 빠지진 말고, 아무튼 열심히 해 봐.”

“네, 행님!”

김명길은 굳은 결의를 다졌다.

정말로, 거시기가 빠질 만큼 열심히 해 보겠다고.

그러나 강철의 생각은 약간 결이 달랐다.

‘당분간 당신이 고생을 좀 많이 할 거야.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겠지. 그런 고생을 할 예정인데, 살아남는다면 적어도 강동구 깡패 오야붕 자리 정도는 받아 가야지. 안 그래?’

이용하고 나서, 살아만 있다면 그만한 대가를 주겠다.

그게 강철의 기본적인 발상이었다.

‘자, 이제 벌집을 한 번 쑤셨으니까, 과연 어떻게 나오시려나? 아니, 얼마나 빨리 움직이시려나?’

조민석이란 물고기는 선병호라는 미끼와 김태영이라는 떡밥에 낚였다.

강대산은 과연 김태영이라는 미끼와 상해탄 천호본점이라는 떡밥에 얼마나 빨리 낚일까?

‘기다리면 걸려드는 법이지.’

5.

임시 이사회 취소 통보를 일방적으로 전 임직원에게 하달한 후, 강대산은 양평 별장으로 들어갔다.

업무용 휴대전화는 아예 꺼버렸고, 오로지 비서와 가족만이 연락 가능한 개인용 휴대전화만 켜둔 채 강대산은 가만히 쉬었다.

물론, 진짜로 쉬지는 않았다.

“인사이동?”

6월 2일 수요일 저녁 8시.

강대산은 별장 거실에 앉아 비서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네, 회장님. 조민석 상무가 직접 인사부에 주문해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조민석이가 직접? 그래, 누가 누구로 바뀐 건데?”

[그…… 선병호에서 김명길이란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선병호…… 선병호면…….”

조민석이 경찰로 지목한 사람이었다.

“김명길은 그럼 누구야?”

[그 오길동이라고 길동에서 생활하는 조 상무 부하의 부하입니다.]

“오길동? 그건 또 누구야?”

[대산건설 쪽에 대리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 생활한 지 꽤 된 친구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일단 넌 내일까지 여기로 오길동이랑 김명길이에 대한 자료 좀 들고 와.”

[네, 회장님. 그리고…… 사실 이것보다 좀 더 중요해 보이는 정보가 있어서 전화를 드린 겁니다.]

“중요한 정보?”

[그…… 원래 선병호 밑에서 상해탄 천호본점 관리하던 천호동 쪽 애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쪽에 좀 알아보니까,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게 뭔데?”

[그…… 아무래도 조민석 상무가 외부 조력자랑 같이 뭘 꾸미는 것 같습니다.]

“외부 조력자?”

순간 강대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외부 조력자라고?’

외부에서 누군가와 손을 잡고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건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란 이야기였다.

강대산의 불안감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쪽 애들이 자세한 걸 말하길 꺼려하길래, 그쪽 애들 대표자하고 내일 면담 약속을 잡았습니다. 고병우라고, 대산식품 대리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알아내. 사소하다 싶은 거라도 절대 누락하지 말고 나한테 알려.”

[네, 회장님.]

전화를 끊고 강대산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조민석이…… 이 배은망덕한 새끼가…… 감히 조직을 배신하려고 해?’

아직 그 어떠한 결론도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강대산의 마음속에서 조민석은 쿠데타 혹은 그것보다 더 큰 일을 벌이려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곱게 죽여주진 않으마.’

강대산은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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