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떡밥 (4)
9.
6월 1일 새벽 2시.
“후우……”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조민석은 홀로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주도 없었고, 말동무도 없었으며, 접대부도 없었다.
고독이 안주였고, 슬픔이 말동무였으며, 회의감이 접대부였다.
“씨발거…….”
조민석은 허탈하게 웃으며 위스키 잔을 기울였다.
“이런 식으로…… 동생을 배신해?”
강대산 회장은 끝끝내 그와 만나주지 않았다.
회장 비서실로부터는 일체의 연락도 없었다.
조민석이 직접 회장실에 찾아갔을 때, 이미 강대산은 자리를 비운 뒤였다.
조민석은 강대산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무의미하게 울릴 뿐, 통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광진대산파와 강동삼거리파는 오래전부터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광진대산파 보스 강대산은 종종 강동삼거리파 보스 도구삼과 술을 마시기도 했고, 당구를 치기도 했으며, 노래방에서 누가 점수가 잘 나오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항상 조민석은 두 형님의 수발을 드는 역할을 했다.
『씨발거, 재벌도 뭐 좆도 없구만? 안 그렇냐?』
『그렇죠.』
『까짓거 우리도 다 손잡고 기업 하나 세우자. 씨발거 분식회계로 버티던 새끼들 보단 그래도 우리가 더 잘하지 않겠냐?』
『그게 쉬운 게 아닐 건데요, 강 형?』
『두 형님이 힘을 합치시면, 뭐 우리 자식이 재벌 2세가 못 될 건 또 뭐 있겠습니까?』
강동통합파 그리고 더 나아가 대산의 탄생은, 그렇게 단순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결정됐다.
복잡한 회계학적, 법적인 문제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우린 씨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 내 말 알아 듣겠냐?』
1999년 12월, 연말 술자리에서 광진대산파와 강동삼거리파 그리고 몇몇 군소 조직의 통합 및 기업화를 다짐하며 강대산이 강조한 것은 무슨 수익성이나 배당금 비율, 지분과 같은 게 아니었다.
의리.
그것이 강대산이 강조한 것이었다.
‘의리는 니미.’
조민석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칙-! 칙-!]
그러나, 가스가 다 된 건지, 라이터에선 불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조민석은 라이터를 내려놓고, 성냥을 가지러 안방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안방 거실에서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였을 때, 조민석은 우연히 피아노 의자를 보게 됐다.
『나중에 마음을 굳히면 이쪽으로 연락해.』
이번에는, 도저히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조민석은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우웅…… 뭐야? 안방에선 담배 피우지 말랬잖아.”
잠에서 깬 그의 애인이 침대에서 불평했지만, 조민석은 무시하고 지갑에서 찢어진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곤 그걸 핸드폰과 함께 들고서 다시 거실로 나갔다.
“후우-!”
소파에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고서, 조민석은 폰 슬라이드를 열어 메모지에 적힌 번호를 찍었다.
그러나, 번호를 모두 찍고도, 조민석은 통화 버튼을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이게 맞을까? 이 미친놈하고 손을 잡는 게?’
조민석은 망설이다가 슬라이드를 내렸다.
‘이 인간이…… 날 살려줄 동아줄이 될 수 있을까? 지푸라기보다 못한 존재가 아닐까?’
조민석은 분명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대주주 중 하나인 도구삼이 주주권을 행사 못 하는 상황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강대산의 의지를 힘으로 꺾을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강대산이 박경채와 손을 잡기로 마음을 굳힌 이상, 조민석은 박경채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힘이라…….’
강철은 분명하게 말했다.
힘으로 조민석을 대표 자리로 올려주겠다고.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긴 한데…….’
대산그룹이라는 중견기업 간판을 달곤 있다지만, 본질은 깡패 집단이었다.
박경채는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일이 조폭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갈취, 협박, 공갈, 폭력…….
‘가장 대산 다운 방법이기도 하지.’
그런 측면에서 강철은, 어쩌면 대산의 정체성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민석은 더 망설여졌다.
조직은 적어도 여러 의사결정권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지성이 이끌기에 어느 정도 선은 지키지만, 개인은 선이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이이잉-!]
그때, 그의 폰이 진동했다.
‘멀티미디어 메시지?’
사진이 첨부된 문자 메시지였다.
‘누구지? 어? 잠시만 이 번호……’
발신자는 등록된 번호가 아니었는데, 그 번호를 가만히 살펴보던 조민석은 화들짝 놀라며 찢어진 메모지에 적힌 번호와 발신자 번호를 대조해 보았다.
‘강철…….’
발신자가 강철임을 확인한 조민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열었다.
잠시 시간 차를 두고서, 메시지함이 열렸고, 첨부된 사진이 조민석의 시야를 강타했다.
‘이, 이게 뭐야?’
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 바닥에는 피로 흥건한 비닐봉지가 깔려 있었고, 그 비닐봉지 한가운데에는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한 남자가 묶여 있었는데, 이미지 화질이 나빴음에도 상태가 안 좋다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문제는 그 남자의 정체였다.
‘김태영?’
조민석은 이미지 하단에 달린 문장을 읽었다.
<길동 단란주점 콜걸로 지금 당장>
조민석은 고민했다.
‘이게 도대체 뭐지? 뭐 하는 거지?’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김태영이란 것이 확인된 이상, 그리고 그런 김태영의 사진을 보낸 게 강철이라는 게 확인된 이상, 조민석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자고 있어.”
조민석은 최대한 빨리 평상복을 입고서 아파트를 나가 택시를 잡고 길동으로 향했다.
심야 시간이었기에 택시는 한달음에 잠실역에서 길동 콜걸까지 달려갔다.
‘저 차…… 분명 김태영이 SUV인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조민석은 마당에 세워진 김태영의 파란색 국산 SUV를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조민석은 다급히 상가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콜걸 문은 닫혀 있었다.
[탕탕탕-!]
조민석은 문을 두드렸다.
혹시나 주변에 누가 있나 싶어, 그는 차마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탕탕탕-!]
두 번째로 문을 두드렸을 때,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더니 이내 문을 열어 주었다.
“오, 오셨습니까? 행님은 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김명길이었다.
김명길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조민석을 3번 방으로 안내했다.
조민석은 한동안 가만히 김명길을 바라보았다.
‘실내에서 우비에, 장화에, 장갑까지?’
그러다 그는 이내 3번 방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3번 방 앞에 도착한 조민석은 유리창 너머로 내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유리창도 비닐로 덮여 있었기에, 제대로 보이는 건 없었다.
[덜컥-!]
조민석이 망설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강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들어 와.”
조민석은 강철의 얼굴과 손에 묻은 붉은 피를 보고는, 방 안에서 풍겨오는 진한 피비린내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 조 상무……”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갔을 때, 아무런 기물도 없는 방 한가운데, 피로 물든 투명 비닐 중앙에 자리한 나무 의자에 묶인 채,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 처절하게 자신을 부르는 김태영을 보고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런 조민석을 향해 김태영은 힘없이 애원했다.
“날…… 날 이만 좀…… 죽여줘…….”
10.
강대산이 회삿돈을 빼돌리기 위해 필리핀에 설립된 유령회사에 투자했고, 이후 유령회사를 파산시켜 회계상 손실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필리핀 쪽 조직이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고, 그 비용을 치렀는데 그 가운데 일부가 김태영이 실소유주로 있는 비디오 제작사로 들어갔다.
그 비디오 제작사에서는 이후 필리핀에서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포르노를 찍어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했고, 그 수익금 대부분을 동남아 쪽에서 부동산으로 세탁해 두었다.
그리고 김태영 본인도 직접 7살 남자아이를 여장시켜 강간한 적이 있다.
이것이, 처음 강철에게 납치당했을 때, 김태영이 길동 단란주점 ‘콜걸’ 3번 방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물론, 그 말이 그냥 나오진 않았다.
불안한 눈초리로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호통치던 김태영의 왼발 발가락 3개 정도를 강철이 원예용 가위로 자르고 나서야, 김태영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러나 그것은 강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그쪽인 나쁜 사람인 건 알겠는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그러자 김태영은 한국에서도 가출 청소년 중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애를 유인해 여장시키곤 성매매를 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
그 말에 강철은 나머지 왼발 발가락을 모두 잘랐다.
“선병호라고 아나?”
강철은 선병호의 아파트에서 가져온 그의 증명사진을 보여주며 물었고, 김태영은 안다고 답했다.
“그럼 이 양반이 위장 잠입한 경찰이었던 것도 잘 알고 있었겠네?”
거기에 대해 김태영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했고, 이번엔 오른발 발가락 2개가 잘려나갔다.
“내가 생각했을 때, 선병호가 단독으로 정보를 수집했을 것 같진 않고, 분명 프락치를 심어둔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그게 당신인 것 같고.”
마찬가지로 김태영은 그 이야기를 부정했고, 결국 오른발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김태영은 모든 죄를 자백했다.
“선병호 경위가 바, 박경채 전무를 그룹 회장으로 올리고, 저, 저를 부회장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그 대가로 저, 저는 그, 그룹의 기밀을 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마치 대사를 외운 것처럼 그런 고백을 하는 김태영을 보며 조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경채도 프락치인가?”
강철의 물음에 김태영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답했다.
“저, 접촉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자, 자, 자세한 건……”
“오케이. 수고했어. 푹 쉬라고.”
강철은 김태영의 배후로 갔다.
[우드득-!]
그리곤 그대로 목을 꺾어 그를 죽였다.
“이게 다 뭐지?”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던 조민석이 떨리는 눈으로 강철을 보며 물었다.
“뭐긴 뭐야? 멍청한 당신들 대신해서 프락치 잡아 준 거지.”
“프락치라고? 김태영이? 아니…… 그보다도…… 병호가 경찰이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강철은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어이, 불독.”
그 부름에 김명길이 달려왔다.
“네, 행님.”
“좀 치워. 저거 잘 들고 갈 수 있게 꽁꽁 싸두고.”
“네, 그래 해 놓겠십니다.”
강철은 조민석을 보며 말했다.
“어이, 조 상무님. 옆방에서 좀 기다려줘. 가서 손 좀 씻고 올 테니까.”
그러나 조민석은 순순히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거냐니까!”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순간 김명길이 흠칫했다.
김명길은 불안한 눈초리로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문가에서 조민석을 바라보며, 치아를 드러낸 채로 씩 웃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