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떡밥 (3)
6.
5월 31일 월요일 오전 9시 55분.
송파구 대산그룹 본사.
그곳 17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민석은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에윽-! 이거 믹스 커피지?”
조민석과는 동갑내기이자 같은 상무인 김태영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입에서 뗐다.
조민석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내가 저번에 사다 준 베트남 커피는 어디다 팔아먹고, 이 맛대가리 없는 걸 마시는 거야? 엉? 이래서, 엉? 어디 손님이라도 외부에서 오면 제대로 대접이나 하겠어?”
5월 마지막 날 아침부터 찾아와 커피 타령하는 김태영에게 조민석은 짧게 말했다.
“용건.”
그 반응에 김태영은 정떨어진단 표정을 지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자네는 떡칠 때도 이러지? 엉? 전희도 없이, 그냥 무식하게 냅다 삽입부터 하고 말이야. 엉?”
“용건.”
“그래도 1대1로 만나는 자리에선 엉? 이렇게 좀 소소한 이야기도 좀 하고 해야지, 엉?”
“용건!”
조민석의 언성이 살짝 높아지자 김태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리를 꼬곤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 임시 이사회 있는 거 알지?”
조민석은 긍정의 의미로 가만히 김태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날, 도 전무를 부회장으로 올리고 자네를 전무로 올릴 거야.”
그것도 딱히 놀랍거나 새로운 소식은 아니었기에 조민석의 표정이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 이사가 상무로 올라가고, 장기태 부장이 신임 영업이사로 올라올 거야.”
그러나 그 대목에서, 조민석의 표정은 변했다.
“뭐?”
조민석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김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임 상무와 이사 임명에 관해서는 아직 논의 단계 아니었나?”
김태영의 좌측 입꼬리와 광대가 씰룩이기 시작했다.
조민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박경채 전무가 그렇게 구상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어. 근데, 그게 될 것 같아?”
대산그룹 이사회의 총원은 11명이었다.
그중 다섯은 조민석이 속한 도구삼 전무 라인이었고, 나머지 다섯은 김태영이 속한 박경채 전무 라인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위에 있는 회장 강대산은 두 파벌 사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회사와 조직을 진두지휘했다.
도구삼 전무가 폐암으로 사실상 은퇴한 상황에서, 강대산이 세력 균형이 무너질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란 게 조민석의 믿음이었다.
“이 사람아. 될 것 같다 정도였으면 내가 자네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아? 엉?”
김태영의 왼쪽 입꼬리와 광대가 승천했다.
“이미 회장님께서 승낙하셨어. 그러니까, 6월 2일 수요일 이사회에서는, 내가 말한 안건이 그대로 통과가 될 거야.”
[쾅-!]
조민석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개소리하지 마!”
그건, 조민석의 상식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휴, 무서워라. 이거, 맛대가리 없는 커피 한 모금 먹고 맞아 죽겠네.”
김태영은 그런 조민석을 실실 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회장님한테 여쭤보든가.”
그리곤 조민석에게 비웃음 한 보따리를 날리고는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회장님이? 저 새끼들한테 힘을 실어주시기로 했다고?’
조민석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장 회장 비서에게 연락했다.
“어, 나다. 지금 회장님 좀 뵙고 싶은데.”
평소에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정말 중요한 손님이 와 있지 않은 이상, 대개 10분 내로 회장과의 대면이 가능했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회장님이 중요한 미팅이 있으셔서, 당장에는 어렵겠습니다.]
“미팅? 누구랑?”
[장기태 부장입니다. 미팅이 끝나기 전까진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고 회장님이 말씀해두셨습니다.]
장기태.
김태영이 말한, 이번 주 수요일에 신임 영업이사가 될 사람이자, 김태영을 따르는, 박경채 라인의 직원이었다.
‘씨발…….’
조민석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면서도, 일단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일단 차분해져야 할 때였다.
“그래? 좋아. 그러면…… 미팅 끝나는 대로 내가 좀 만나 뵙고 싶다고 말씀해놔. 그리고 미팅 끝나는 대로 나한테 연락 주고.”
[네, 알겠습니다, 조 상무님.]
전화를 끊고 조민석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씨발…….’
도구삼 전무가 쓰러지기 전부터 강대산 회장이 박경채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이야기로나 있을 뿐이었다.
도구삼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회장이라 하더라도 강대산이 일방적으로 한쪽 라인에 힘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구삼이 없는 상황이다.
도구삼 라인의 이사들은 모두 조민석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조민석에게는 도구삼 만큼의 힘이나 영향력은 없다.
『나중에 마음을 굳히면 이쪽으로 연락해.』
순간, 강철이 조민석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조민석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아니야. 그래도 그 미친놈하고 손잡는 건 아니야…… 적어도 아직까지는…….’
7.
선병호의 파일에는 대산그룹 회장 강대산부터 그 휘하 이사들 그리고 주요 부장급 인사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단순한 신상명세부터 내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그야말로 대산그룹 구성원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조민석의 경우, 잠실역세권 주상복합 펜트하우스에서 89년생 애인과 동거 중이며 그녀가 조카의 친구라는, 그 정도 수준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강철이 주목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밤새도록, 그리고 3시간 정도 자고 나서 강철은 이사들, 특히 조민석의 반대파에 속한 이사들에 관한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행님, 저기 김태영 상무 차 나왔십니다.”
그리고 지금, 5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 오후 5시 50분에, 강철은 대산그룹 본사 건물 맞은편에 차를 대놓은 채로, 자신이 타겟으로 정한 인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의심받지 않게, 적당히 거리 두고 쫓아 가.”
“네, 행님.”
강철이 목표물로 잡은 대상은, 김태영 상무였다.
그가 조민석의 반대파이자, 조민석과는 사적으로도 사이가 나쁘며, 공공연하게 조민석을 ‘무식한 뽕쟁이’라고 비방한다는 사실도 타겟 선정에 중요한 요소이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철이 김태영을 조민석에게 던질 떡밥으로 선정한 데에는, 그의 사생활이 큰 작용을 했다.
“근데, 행님. 김태영 상무는 뭐한다꼬 뒤쫓는 깁니까?”
김명길의 물음에 강철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말 안 했나? 오늘 저 인간 납치한다고?”
“아니 그기야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 왜 하필이면 김태영 상무를 납치한다 카시는 깁니까? 다른 사람도 많을 긴데?”
김명길답지 않은 물음에 강철은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봤다.
“최대한 조용히 할 생각이거든.”
“조용히 하신다 카시면…… 점마들 다 그 자리에서 직이삐고 납치한다는 깁니까?”
김명길이 말한 ‘점마들’은 김태영의 운전기사와 수행비서를 뜻했다.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 말에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질문하길 멈췄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침묵한 채, 가만히 김태영의 독일제 세단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그러다 침묵이 한 10분 정도 이어졌을 무렵, 강철이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당신, 이제 안 떨리나?”
“네?”
“명색이 대산그룹 상무, 그쪽 윗선을 납치한다고 하는데도 전혀 떠는 것 같이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야.”
그 물음에 김명길은 씩 웃으며 답했다.
“달건이 서른 명하고 혼자서 맞다이 까가지고 이기시는 행님이 있는데, 제가 만다고 떨겠십니까?”
그 말에 담긴,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의존에 강철은 입을 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김태영이 사는 용산구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김태영의 세단이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근처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이 번호판 달고 있는 파란색 국산 SUV 나오면 무조건 쫓아가.”
김명길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은 후 강철은 가만히 시트를 뒤로 눕혀서 편안하게 누웠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어느덧 밤 11시 10분이 됐을 때,
“행님, 나왔습니다.”
마침내 강철이 기다리던 파란색 국산 SUV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쫓아 가.”
김명길은 다시 차를 몰고 SUV를 쫓기 시작했다.
강철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어 불을 붙이곤 가만히 연기를 코로 내뿜으며 생각했다.
‘마음껏 즐겨 두시라고. 오늘이 마지막일 거니까.’
8.
“우우…… 후우…… 후우……”
6월 1일 자정을 넘기고 5분이 지난 시간.
남산 소월길 인근, 조명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인적도 드문, 으슥한 도로 갓길.
그곳에 정차된 파란색 국산 SUV 뒷좌석에서, 김태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차례 심호흡하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무릎에 올라타서, 조금 전까지 신나게 엉덩이로 방아를 찧던, 자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무릎에서 내려오며 팬티를 올리고 치마를 정리했다.
“오빠~ 기분 좋았어?”
중성적인 목소리의 여자는 그렇게 물으며 김태영의 팬티와 바지를 올려주었다.
“나가 봐.”
김태영은 여자에게 2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여자는 봉투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씩 웃으며 김태영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차에서 내려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달도 운수가 좋겠구만.’
김태영에게는 미신적인 믿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월말 밤에 성행위를 시작했을 때, 자정이 넘어 월초가 될 때까지 사정하지 않으면 그달 운이 좋고, 자정 전에 사정하면 그달 운이 나쁘다는, 그런 믿음이었다.
거기에 남자에서 여자가 되고자 하는, 그 과정에 있는 이들에 대한 그의 성적인 집착이 더해지면서, 그는 이사회에 들어간 뒤로 매달 마지막 날이면 빠지지 않고 이 짓을 이곳 남산 소월길에서 해왔다.
‘무식한 뽕쟁이 새끼는 이제 은퇴나 해야지. 대산이 아직도 뭐 옛날 강동통합파냐? 엉?’
도구삼이 쓰러지기 전부터, 조민석을 밀어내기 위해 김태영은 전략을 세워왔다.
그리고 그 전략이, 도구삼의 와병으로 인한 사실상의 은퇴라는 상황과 겹치면서,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이제 시작이야. 강대산 회장이 우리 박 전무를 그렇게 예뻐라 하는데, 어디 뭐 조민석이 자기가 어쩔 거야? 그 깡패 새끼들이라도 몰고 와서 뭐 우리 다 죽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차창을 열어 다 태운 담배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막 그가 차창을 닫았을 때, 뒷좌석 반대쪽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뭐, 뭐야?!”
김태영은 화들짝 놀라며 차에서 내리려 했다.
[퍽-!]
그러나 그 전에 주먹이 먼저 그의 턱에 날아와 꽂혔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