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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회귀-14화 (14/175)

014 떡밥 (2)

‘저 인간…… 낯이 익은데…….’

처음 수리점에서 남자를 봤을 때부터, 강철은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정확하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분명 자신의 생에서 본 사람이었다.

‘전쟁 전에 본 사람인가? 아니면 전쟁 후에?’

이전 생에서 강철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일용직과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전국을 떠돌며 일했다.

거제도의 조선소에 가기도 했고, 평택의 삼우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 가기도 했으며, 대구의 아파트 경비로 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어쩌면 저 남자도 그중 하나에 속할지도 몰랐다.

‘근데 그중에서는 딱히 이렇게 기억에 남고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문제는 전쟁 전 전국을 떠돌며 만난 사람 중에서, 딱히 강철의 기억에 흐릿하게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 비슷한 처지의, 역마살 낀 인생들이었던 만큼, 흘러가는 인연 정도로만 서로를 대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전쟁 후, 즉 초능력자가 된 후에 멸망한 한반도 남부를 떠돌다 만난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때 만난 인간 중, 김천식 사범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강철과 좋은 관계로 엮인 인간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야. 이거 좀 힘들겠는데?”

강철이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그런 강철을 김명길이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볼 때, 남자는 여전히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김명길에게 말했다.

“보안이 이중삼중으로 돼 있어서, 10분 만에 뚫기는 어렵겠다. 씨빠라빠바. 넌 뭐 이딴 걸 어디서 들고 온 거냐?”

그 순간, 강철의 뇌리로, 한 사람이, 그 사람과 연관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씨빠라빠바?’

강철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서용태?’

4.

핵전쟁 이후, 멸망한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타났다가 크게 두 종류로 수렴이 됐다.

하나는 초능력을 얻어 귀족 지배 계층이 된 영주였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얻지 못해 영주의 밑에서 노동력을 수탈당하는 농노였다.

큰 틀에선 그렇게 두 종류의 인간 군상이 나타났지만, 그러나 또 그 내부에는 여전히 다양한 것들이 각자의 개성을 보이며 살아갔다.

서용태도 그중 하나였다.

『이 개새끼들아! 씨빠라빠바, 여자 좀 따먹고 다닐 수도 있잖아!』

서용태는 초능력자였으나, 영주도 그렇다고 용병이나 해결사도 되지 못한, 하위 능력자였다.

그의 초능력은 ‘최면’이었는데, 그는 그걸로 싸움을 회피하기나 할 뿐, 세력을 넓히거나 힘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해 대낮에 농노의 거처에 숨어들어 여인에게 최면을 걸어 강간하고 도망가는 짓만 자행했다.

단순히 농노에게만 그랬더라면 괜찮았겠지만, 문제는 점차 그의 수법이 대담해져 마침내 영주의 하렘에까지 침입해 첩들을 대상으로 최면 강간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해당 영주는 분노했고,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

최면 말고는 별다른 능력도 없는, 약하디약한 초능력자 하나에 금 1kg이라는 현상금이 걸렸고, 많은 용병과 해결사가 서용태를 잡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철과 오길동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서용태는, 강원도 원주 인근 야산에 숨어 있다가, 그만 강철과 오길동에게 발각이 됐다.

『씨빠라빠바. 이 개새끼들아! 고작 여자 좀 따먹었다고 이렇게까지 하냐, 이 새끼들아! 하렘 차려놓고 여자를 노리개로 만드는 영주들한테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숲에 숨어 있던 놈을, 오길동이 숲 전체를 불태우면서 튀어나오게 하자, 서용태는 화상을 입은 채 절규했다.

『씨벌 새끼가 혁명가인 척하기는.』

그런 서용태를 오길동은 비웃으며 제압했고, 의뢰를 맡긴 영주에게 산 채로 갖다 주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가에 대해선, 강철은 아는 바가 없었다.

『철아. 근데 저 능력 존나 부럽지 않냐? 씨벌, 나도 저런 능력 하나 있었으면 영주들 하렘에 들어가서 응?』

오길동은 서용태의 최면 능력을 상당히 부러워했다.

하지만 강철은 딱히 부러워하지 않았다.

『최면을 걸지 않으면 여자의 몸과 마음을 얻지도 못하는 놈 아니야? 어리석고 불쌍한 인간이지.』

그런 인연이 있던 남자, 서용태가 지금 강철의 눈앞에 있었다.

“어이, 수리기사 양반.”

강철은 서용태를 불렀다.

김명길은 침을 꿀꺽 삼키며 강철을 바라봤다.

서용태도 힐끔 강철을 바라봤다.

“거 이름이 어떻게 되나?”

그 물음에 서용태는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내렸다.

“요, 용태입니다, 행님. 서용태.”

대답은 김명길에게서 나왔다.

강철은 씩 웃었다.

강철은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불을 붙였다.

‘참 묘한 인연이네.’

오길동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잡은, 그 능력을 부러워했던 인간이 자기 부하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묘한 인연이야.’

서용태의 초능력, 최면에는 명백한 약점이 있었다.

일반인이건 초능력자건 가리지 않고 최면을 걸 수는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최장 30분, 초능력자에게는 최장 10분이 한계였다.

그리고 한번 최면을 걸었던 사람에게는, 그게 일반인이건 초능력자건, 두 번 다시는 걸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서용태는 초능력자 사회에서 도태됐고, 그 능력을 이용해 삿된 욕망만 채우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빼앗을 필요는 없겠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능력.’

강철은, 당장에 서용태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이고 나면 에너지 사이즈가 커지긴 하지만, 일단 당장에 쓸모가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열심히 노트북 보안을 뚫고 있는, 용산 전자 상가에 숨어 있는 해커 겸 장물아비.

미래에 초능력자로 각성해도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인물을, 당장 전쟁 이전에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었다.

‘확실히 조직을 장악하고, 사람을 찾아내 봐야겠어. 의외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내가 만났던 초능력자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강철은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담배만 연거푸 태워댔다.

그리고 20분이 지났을 때,

“씨빠라빠바, 됐다!”

서용태는 노트북 보안을 뚫었다.

5.

선병호.

1976년 1월 3일생.

대한민국 경찰.

경찰청 정보국 경위.

대산그룹 계열사 대산식품 자회사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

강동통합파 서열 21위.

그것이 선병호의 노트북에서 발견한 자료를 통해 강철이 알아낸, 기본적인 그에 관한 정보였다.

선병호는 훌륭한 경찰이었다.

너무 훌륭해서, 강동통합파 내부에 아예 자기 라인의 프락치까지 심어뒀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프락치를 통해 얻은 정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교차검증해서 검증된 것들만 정보국 윗선에게 전송했다.

덕분에 강철은, 매우 신뢰할만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사람이 스마트폰에는 보안도 안 걸어뒀다?’

그 부분이 우습긴 했지만.

‘대산그룹이라.’

2000년대 초, 강대산의 광진대산파를 중심으로 서울 강동권의 조직들이 연합해 강동통합파라는 이름의 통일된 조직으로 거듭났다.

이후 강대산은 조직의 자금으로 대산이란 이름의 법인 기업체를 설립했고, 당시 경제 위기로 자금 경색을 겪고 있던 중소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했다.

그리고 폭력과 갈취, 협박 등 고전적인 조폭의 수법과 경매에서의 사전 매수 작업 및 회유 그리고 관료에 대한 로비 등 고전적인 사업가의 수법을 병행하며 성장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 대산은 마침내 대산그룹이란 이름의 중견기업이 됐고 경찰에서 함부로 건들기 어려울 만큼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업으로 포장했다고 해서 속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대산그룹은 강동통합파 시절처럼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영위했고, 마약을 유통했으며, 매춘을 비롯한 다양한 범죄 사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범죄 수익은 모두 대산그룹 자회사에 의해 세탁돼 합법적인 사업 수익으로 국세청에 보고됐다.

‘하! 여기도 대산 소유였나? 이거, 참.’

선병호의 노트북에는 대산그룹의 공식적인 조직도, 즉 지주사와 계열사, 계열사와 각 계열사별 자회사 및 손자회사에 관한 자료가 도식화돼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강철은 대산그룹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37개의 회사 중 몇몇 곳이 과거, 전쟁 전 자신이 단기계약직으로 일했던 회사였다는 것을 알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인연이 깊네, 아주 깊어.”

강철은 공식 조직도가 아닌, 비공식 조직도 즉 기업 대산으로서의 조직도가 아닌 폭력조직 강동통합파로서의 조직도를 체크했다.

정점에 위치한, 대산 회장 강대산을 대표로 해서 아래로 크게 2개의 파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는 강동삼거리파 보스 출신인 도구삼 전무의 라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산그룹이 인수한 중소 건설사의 임원 출신인 박경채 전무의 라인이었다.

‘조폭 출신과 기업가 출신으로 나뉘었다?’

도구삼은 강동통합파, 즉 조폭 쪽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박경채는 대산그룹, 즉 기업 쪽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강대산은 회장으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일부러 두 파벌을 싸우게 했고, 특정 파벌의 힘이 비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술책을 부렸다.

‘하지만 최근 도구삼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강철은 씩 웃었다.

‘내가 사람을 잘 골랐네.’

선병호의 보고서에서 조민석의 상황은 매우 처참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불법적인 수입이 합법적인 수입의 20%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깡패보다 일반 직원이 더 많아졌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네.’

전망 또한 좋지 않게 묘사되고 있었다.

‘사업 수익적인 측면에서, 박경채 쪽이 더 좋아 강대산의 마음이 그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도구삼이 쓰러지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

강철은 보고서를 다 읽고서, 가만히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창가로 향했다.

어느덧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월요일의 분주함이 도로를 점차 채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보고서를 읽은 것이었지만, 강철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뇌는 활발하게 돌아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선병호는 꾸준히 박경채 쪽을 더 좋게 묘사하고 있어. 뭐, 당연하겠지. 경찰 입장에서는 조폭보다야 좀 부패한 기업가가 나을 거니까.’

문제는, 너무 좋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시하진 않았지만, 선병호가 쓴 글의 행간을 보면, 박경채가 도구삼을 누르고 더 나아가 강대산까지 눌러버린 다음 대산을 장악할 수 있도록 경찰에서 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프락치를 명시하진 않았어.’

선병호는 자신이 섭외한 프락치가 누구인가를 명시하지도, 아니 심지어 경찰 측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저 프락치에게 받은 자료를 따로 모아둠으로써 프락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릴 뿐이었다.

‘그 말은…… 얼마든지 프락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지.’

강철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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