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떡밥 (1)
1.
5월 30일.
일요일 정오, 점심을 즐기기 위해 많은 손님이 가족 혹은 친구 단위로 상해탄 천호본점 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테이블에선 각양각색의 중화요리가 맛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곳으로, 강철과 김명길은 들어섰다.
강철은 여유롭게 실내를 둘러보다가 창가 쪽 빈 자리를 보곤 그쪽으로 가 앉았다.
“와서 앉아.”
들어올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명길도 강철의 말에 그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의 물음에 강철은 김명길을 바라봤다.
“지, 지는 그…… 짬뽕 꼽빼기로 하겠습니다.”
김명길의 대답에 강철은 종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짜장면 보통 하나랑 짬뽕 곱빼기 하나 그리고 군만두 추가해서 주시죠.”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종업원이 가고 나서, 강철은 잔을 꺼내 물을 담았다.
그리고 그 물을 자신과 김명길 앞에 놔뒀을 때,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고병우였다.
강철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서, 고병우를 올려다보았다.
“제정신이 아니시구만?”
고병우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강철은 씩 웃으며 고병우에게 말했다.
“어이, 곰탱이 같은 양반.”
“뭐?”
“가게랑 통째로 불타고 싶나?”
강철의 말에 고병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아니면,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고병우는 강철을 바라보다가 결국엔 그의 눈빛과 기세에 굴복했다.
“그래. 일단…… 식사 맛있게 하라고.”
고병우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그가 물러가자 김명길이 불안한 눈초리로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괘, 괘얀켔십니까?”
“뭐가?”
“여, 여가 그 병호 행님 안방 같은 곳인데…… 병호 행님 밑에 동생들 숫자가 제가 알기론 한 40명쯤 될긴데…….”
“이야. 선병호, 아주 대단했구만? 짭새 주제에 밑에 추종 세력이 그렇게나 많았나?”
“네, 네? 짜, 짭새라니 그, 그게 무슨?”
김명길은 당황했다.
“내가 말 안 해줬었나?”
강철의 물음에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병호 짭새였어.”
“차, 참말입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나?”
“아, 아입니다. 그, 근데…… 그걸 우예 아셨습니까?”
“총이 있더라고. 경찰들이 쓰는 모델 권총이. 거기다 실탄 장전도 딱 경찰 교범대로 했고.”
김명길은 혼란스러웠다.
현봉태가 오길동 몰래 선병호와 작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보다 더한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덮쳤다.
“주문하신 짬뽕 곱빼기랑 짜장 보통 하나 그리고 군만두 나왔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먹지.”
“네, 네. 자, 잘 먹겠십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음식을 씹어 넘기기만 했다.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던 만큼, 식사는 빨리 끝났다.
하지만 강철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추가로 군만두 한 접시를 더 주문해서 하나를 깨작깨작 먹으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는 사이 가게 손님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마침내 가게에는 강철과 김명길만이 손님으로 남게 됐다.
“점심시간 지나니까 바로 브레이크 타임이구만.”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반쯤 남긴 군만두 한 조각을 접시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군만두 10조각 중 9조각을 먹고 입맛을 다시고 있던 김명길은 잠시 눈치를 보다 남은 반 조각을 집어 먹은 후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강철은 천천히 가게 중앙으로 향했다.
“또 4명이서 어떻게 해 보려는 건가?”
가게 중앙의 원탁에는 고병우와 어제 강철에게 대마 농장 밭두렁에서 구타당했던 건달 셋이 앉아 있었다.
“아니면, 그냥 당신들이 상주 인원인 건가?”
강철의 물음에 네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철은 코웃음을 치고는 고병우를 향해 물었다.
“당신 사장 사무실이 어디야?”
고병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왜 묻는 거지?”
“어디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 저쪽 룸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문, 거기가 병호 형님 사무실이다.”
강철은 그대로 고병우의 말대로 룸에서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 그곳에 자리한 빨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과연, 고병우의 말대로, 그곳은 선병호의 사무실이었다.
“상해탄 천호본점 대표 선병호. 하!”
선병호의 명패를 읽고서 헛웃음을 터뜨린 강철은 이내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고병우가 성질을 내며 고함을 질렀다.
김명길은 그의 앞을 가로막았고, 강철은 고병우의 고함 따위 무시한 채 장부와 서류를 꺼내 선병호의 책상에 펼쳐 놓았다.
그리곤 그것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가게 장부네. 이건 돈세탁 장부 같고.’
사무실 내부에 컴퓨터는 없었기에, 강철은 장부를 덮어둔 후 고병우를 바라봤다.
“어이, 곰탱이 같은 양반. 선병호 집 현관문 비밀번호 혹시 아나?”
“몰라.”
“진짜?”
“모른다고.”
“아는 것 같은데?”
“모른다니까!”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고병우에게 다가갔다.
분명, 고병우가 덩치나 키에서 강철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병우는 강철이 다가오자 자신이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알아, 몰라?”
고병우는 고민했다.
그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갔다.
강철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병우의 눈을 응시했다.
결국, 고병우는 백기를 들었다.
“아, 알아.”
2.
“이야, 조 상무님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으셨나 봐요?”
“하하하, 아닙니다. 우리 최 검사님이 실력이 좋으신 겁니다.”
“에이, 겨우 3언더 치는 사람한테…… 하하하.”
“하하하.”
사전에 약속이 잡혀 있던, 동부지검 최 검사 골프 접대를 성공리에 끝마치고 한우 육회를 곁들인 식사까지 대접한 후, 조민석은 최 검사와 간단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요즘 뭐 어려운 거 없어요?”
최 검사의 물음에 조민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뭐, 사업을 하다 보면 항상 어려움이 함께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도 전무가 그렇게 쓰러지고 나서, 대산 내부가 좀 흔들린다는 말이 있어요?”
조민석은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젠장…….’
그러나 속은 그렇지 못했다.
“뭐, 도 전무님의 빈자리가 크긴 하지만…… 크게 흔들리고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최 검사님.”
“나도 그러길 원해요. 어쨌건, 대산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덕분에 내 관할 구역이 조용하니까 말이에요.”
“하하, 저희야 뭐 최 검사님의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며칠 뒤에 선거가 있어요.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한동안 선거사범 수사한다고 정신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대산하고 관련된 일이 내 테이블까지 안 왔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경고였다.
조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검사 접대를 끝내고서, 조민석은 직접 최 검사를 배웅까지 해준 후 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저기…… 상무님.”
“왜?”
그러나 차에 올라타고서도 그는 쉴 수 없었다.
“그…… 박 실장한테 연락이 왔는데 말입니다.”
“용수한테?”
“네. 그 병호네 가게에 그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놈?”
조민석은 이내 ‘그놈’이 누구인가를 깨닫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놈이 왜?”
“그게…… 와서 밥 먹고 사무실에서 장부 좀 들춰보다가 그 고병우라고 병호 수발들던 애하고 같이 병호 아파트까지 가서 노트북을 챙겨서 나갔다고 합니다.”
“병호 노트북을?”
“네.”
“아니…… 왜…….”
조민석은 당황했다.
‘나보고 빨리 결정을 하라는 압박인가?’
불쾌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이 자식이 이렇게 나대다가 대형사고 한 번 더 치면…… 최 검사 귀에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갈 텐데…….’
조민석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곤 지갑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메모지를 꺼내 펼쳤다.
‘전화를 해 봐?’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런 식으로 이 미친놈한테 끌려다닐 이유가 없어.’
조민석에게 있어서, 지난밤에 일어난 일은,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홀로 위스키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을 때는 강철의 제안, 즉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주는 대가로 두둑한 자문료와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고문 자리를 달라는 것에 혹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 현실로 돌아와 검사를 접대하고 그에게 경고를 들은 뒤로는, 더는 그것에 혹하지 않았다.
‘용수 말대로면 혼자서 30명을 씹어 먹는 괴물이야.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못해도 50명…… 아니 압도적으로 제압하려면 100명은 필요해. 하지만…….’
최 검사라는 변수에 자신을 주시하는 조직 내 경쟁자들의 시선까지.
100명의 병력을 동원하기에는 여러모로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놈이 따로 뭐라 말한 건 없다하고?”
“네. 딱히 없다고 합니다.”
“그래. 일단 용수한테 병호네 조직 단도리나 잘 치고 있으라 해. 어제 있었던 일은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네, 알겠습니다.”
3.
일요일 오후 3시 35분.
용산전자상가.
“믿을만한 친구 맞지?”
좁은 상가 내부를 거닐며 강철은 김명길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멘 채 앞장서서 걸어가던 김명길이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마, 애새끼가 좀 싸가지가 없는 거 빼면 실력 하나는 진또배기입니다. 괜히 별명이 용팔이가 아입니다, 행님.”
“용팔이가 좋은 별명은 아닌 것 같은데?”
“에이, 그래도 얼마나 대단하면 용팔이 대빵 소리까지 듣겠습니까?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강철은 피식 웃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외진 곳에 자리한 컴퓨터 수리점에 도착했다.
“어이! 용팔이! 어데있노?”
김명길의 부름에 수리점 내부 창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남자가 나왔다.
“이 병신아. 용팔이 소굴 와서 용팔이 부르면 씨벌 조또 특정이 되겠다, 이 새끼야.”
안경을 낀, 다소 까칠하게 생긴 남자가 나왔다.
“조또 아닌 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봐바라. 내가 말한기다.”
김명길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지저분한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어댑터를 연결한 뒤 전원을 켰다.
“비밀번호를 풀어달라 이거지?”
“그래. 마, 니는 비번만 풀면 된다.”
남자는 몇 가지 명령어를 입력하며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얼마 만에 끝날 것 같노?”
김명길은 남자가 하는 걸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설레발 안 치고 조용히 아가리 닥치고 있으면 한 10분이면 되겠네.”
“아, 맞나?”
김명길은 씩 웃으며 강철을 바라봤다.
“행님. 10분이면 된다 캅…… 니다?”
강철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행님?”
김명길의 부름에 강철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노트북 타자를 정신없이 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