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윗선 (4)
6.
자신을 잡으려는 선병호와 현봉태의 음모를 역이용할 생각을 하고, 그 작전을 계획하면서, 유일하게 강철을 불안하게 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강동통합파의 규모나 능력에 대해 오길동이 과장했을 가능성이었다.
이미 오길동이 자신의 경력에 관해 허풍을 떤 전과가 있었던 만큼, 강철로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불안은, 1차로 고덕동 재건축 현장에 동원된 30명의, 거의 통일된 정장 차림의 건달들을 보면서 해결됐다.
그리고 박용수를 앞세워 조민석의 거처로 들어서면서, 2차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불안은 완전히 해소됐다.
“나도 죽일 생각인가?”
조민석은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는 강철을 향해 물었다.
“길동이나 병호처럼?”
그 물음에 강철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내가 당신을 죽이려 했으면 그냥 대낮에 찾아가서 죽였겠지. 이렇게 귀찮은 과정도 안 거치고 말이야.”
“그럼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말했잖아. 할 이야기가 있다고.”
“무슨 이야기?”
“사업 이야기.”
조민석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업? 그래, 사업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람이 길동이랑 병호를 죽이고 야밤에 남의 집에 쳐들어오나?”
“오길동이는 내가 사적인 원한이 좀 있어서 죽였고, 선병호는 선을 넘어서 죽였어. 그리고 당신 집에 쳐들어온 거 아니야. 엄연히 경비실에 확인까지 받고 온 거야.”
조민석은, 강철의 등장으로 잠시 잊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용수를…… 어떻게 했지?”
“용수? 아, 그 거물인 척하는 양반?”
강철은 거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운전수 양반.”
그러자 바깥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박용수가 빠르게 안방 거실로 달려왔다.
“거, 층간소음 일어날라. 조심조심, 사뿐사뿐 다니고. 여기 조 상무님한테 우리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좀 말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강철의 말에 박용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조민석과 강철 사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인 채 조민석에게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상무님!”
다소 불안해 보이고,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딱히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 박용수의 모습에 조민석은 한 차례 긴 호흡을 내뿜곤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무슨 사업 이야기를 하러 온 거요?”
강철은 발로 박용수의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그쪽은 나가 있어.”
박용수는 잠시 망설이며 조민석을 바라봤다.
조민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박용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인 채 안방 거실에서 나갔다.
강철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피아노를 발견했다.
“애인이 피아니스트인가? 아니면, 음대생? 얼굴을 보니 음대생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강철은 피아노 건반 덮개를 열어 건반을 몇 개 눌러보고는, 이내 덮개를 닫고 의자를 빼내 거기에 앉았다.
“내 취미요.”
조민석은 피아노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의외로 감성이 충만하시네.”
“지금은 감성이 아닌, 이성의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오?”
“그렇지. 사업은 철저히 이성의 영역이지.”
강철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자 조민석이 라이터를 던져 줬다.
구태여 화염술을 이용해 불을 붙일 필요는 없었기에, 강철은 라이터로 불을 붙이곤 그걸 피아노 건반 덮개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코와 입으로 두 차례 연기를 내뿜은 후 말했다.
“사업이라는 건 말이야. 결국에는 서로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거라고 난 생각해.”
강철의 사업 철학 이야기에 조민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그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며,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려 노력할 뿐이었다.
강철도 그걸 인지하곤 있었지만, 구태여 티 내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야. 큰, 요새 같은 집을 짓고 거기에 황금을 잔뜩 쌓아 둘 만큼 많은 돈을 버는 게 내 목표지.”
그러면서 강철은 담배로 조민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목표는, 조직에서 1인자가 되는 거고 말이야.”
그것은 조민석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민석에게 “너의 목표는 이거다.”라는 일종의 통보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민석은 차마 그렇다고 맞장구칠 수는 없었기에, 그저 가만히 강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그쪽을 조직의 1인자로 만들어 줄게. 대신 그쪽은 나한테 두둑한 자문료하고 배당금을 줘. 이게 내가 제안하는 우리 사업 내용이야.”
그 대목에서 조민석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동안 웃기만 했다.
그러다 이내 웃음을 멈추고, 살짝 황당하단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날 죽이려고 온 거라면 말이오. 그런 썰렁한 농담으로 웃겨 죽일 생각 말고, 그냥 빨리 죽이시오.”
그 말에 강철도 피식 웃었다.
“그쪽을 죽일 생각도 없고, 농담을 한 적도 없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진심이지.”
“날 우리 조직의 대표로 만들어준다고?”
“그래.”
“어떻게?”
“힘으로.”
결국, 조민석은 또 웃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철에게 말했다.
“힘으로?”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동이랑 병호를 담그고, 용수가 모은 애들을 다 정리하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쪽이 분명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해. 그런데 말이야.”
조민석은 살짝 냉소를 머금은 채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힘이 있고, 그 힘으로 내 경쟁자를 다 찍어 누를 거면, 그쪽이 직접 대표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강철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힘으로 조직을 박살 내는 건 쉬워도, 장악하는 건 어렵거든.”
조민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겨우 오길동이 밑에서 오피랑 단란주점이나 관리하던 현봉태도 내가 족보도 없는 놈이라며 인정을 하지 않았어. 오길동이네 그 조그만 식구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강동통합파 전체는 오죽할까?”
“그래서…… 날 바지로 내세우시겠다?”
“뭐 그렇게까지 자기 비하를 할 필요는 없고. 그냥 뭐, 그쪽은 대표가 되고 난 고문이 되는 거지.”
조민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복잡한 표정과 눈빛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일단 미끼만 던져놓고.’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답을 줄 필요는 없어. 당신도 손익 계산은 해 봐야 할 거니까.”
그리고 조민석에게 찢어진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나중에 마음을 굳히면 이쪽으로 연락해.”
거기엔 강철의 폰번호가 적혀 있었다.
강철은 조민석을 뒤로한 채 안방 거실에서 나갔다.
“어이, 불독 닮은 양반.”
강철의 부름에 부엌 의자에 앉아 있던 김명길이 벌떡 일어났다.
“가지.”
“네, 네.”
현관으로 나서면서, 강철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박용수의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어이, 거물인 척하는 양반.”
그 부름에 박용수는 고개를 들었다.
“조 상무한테 이야기해서, 대마 농장에 있는 애들한테 뒷정리 깔끔하게 하고 해산하라고 말 좀 전달해. 애들 기다리고 있겠다.”
“아, 알겠습니다.”
박용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 거실로 들어갔다.
강철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번엔 거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조민석의 애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아가씨.”
강철의 부름에 여자는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저기 박용수 씨 나오고 나면, 가서 조 상무 좀 진정시켜 줘.”
그리고 강철은 김명길과 함께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저기 행님.”
지하주차장에서 경차를 빼 길동으로 가는 도로에 들어섰을 때, 김명길은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강철에게 물었다.
“그…… 조 상무님은 뭐라고 캅니까?”
그 물음에 강철은 김명길을 슬쩍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무 대답도 안 했어.”
“네, 네?”
“오늘은 그냥 미끼만 던지는 날이야.”
“미, 미끼만 던진다고예?”
“그래.”
김명길은 더 말을 이어가질 않았다.
강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침묵을 택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숨길 수가 없었다.
“불안해?”
그 모습을 보고 강철은 물었다.
“아, 아입니다, 행님.”
“불안해할 거 없어. 조 상무는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니까.”
“마, 맞습니다, 행님.”
강철은 씩 웃으며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미끼를 던져놓고, 그다음에 떡밥 몇 개를 더 던지면, 결국 걸려들 수밖에 없지.’
현봉태에게 들은 조직 내부 사정.
실질적 서열 2위인 도구삼 전무가 폐암으로 쓰러지면서, 그 아래 상급 간부, 즉 이사회 멤버 사이에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현상.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려는 것이 강철의 구상이었다.
‘거기다가…….’
강철은 가만히 작업복 안쪽 주머니에 보관된 선병호의 리볼버 권총을 쓰다듬었다.
‘뜻하지 않게 짭새 언더커버도 발견했으니까,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겠어.’
강철은 김명길에게 말했다.
“이봐, 불독 닮은 양반.”
“네, 네, 행님.”
“혹시 선병호 집 어딘지 아나?”
“병호 행님 말입니까? 그 천호동 아파트에 사는 걸로 아는데…… 그 어디더라? 아, 맞다. 그 천호역 쪽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혼자 살고 있나?”
“네. 혼자 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병호가 주로 일하는 사무실은 어디지?”
“그것도 그 천호동에 있습니다. 그 상해탄이라고 짱개 맛있게 만드는 가게 있는데. 근데 그건 와 물어보십니까?”
“해뜨면 좀 찾아가보려고.”
“네, 네?”
“뭐 좀 가져올 게 있거든.”
김명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뭐, 행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김명길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눈앞에서,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30명의 건달을 혼자 무찌르는 강철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사실상 그에 대해 김명길은 신앙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됐다.
‘시라소니 행님이 아마 전성기 때 이라셨을기야.’
그렇게 두 사람을 실은 차는 잠실에서 길동으로, 텅 빈 도로를 타고 빠르게 넘어갔다.
한편, 잠실동 펜트하우스.
조민석은 용서를 구하는 박용수를 달래서 집으로 보내고 애인에게는 일단 들어가서 먼저 자고 있으라 한 후, 식탁에 홀로 앉아 깡으로 위스키를 들이부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배후에 누가 있다기에는 행동거지가 너무 예측 불가능해. 그렇다고 단독 행동이라기에는…… 아무런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잖아?’
처음 선병호로부터 강철에 관해 보고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조민석은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잡아다가 적당히 족치면, 배후를 불거나 아니면 자신이 유도하는 대로 배후를 불게 할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계획이 모두 으스러지고 자신의 라인에 선 하급 간부 둘을 잃은 이 상황에서, 조민석은 함부로 판단을 내리거나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올해부터 삼재라도 끼는 건가?’
그저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미신적인 생각이나 하며 위스키나 마시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