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8화 (8/175)

008 조직 (3)

5.

“뭐 이렇게 늦게 와? 바로 앞에 갔다 오면서.”

김명길이 단란주점 <콜걸>로 돌아오자, 사무실에 앉아 장부를 뒤적이던 현봉태가 그렇게 물었다.

“아는 가시나 만나가지고 이야기 좀 하다 왔다. 와? 꼽나?”

“새끼,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 그냥 늦어서 물어봤다, 이 돌대가리 새끼야.”

“내도 그냥 니가 그래 시비걸어서 이래 말했다, 와?”

“시비는 무슨…… 됐다. 말을 말자.”

김명길은 식은땀을 흘리며 냉장고로 가서 음료수를 꺼냈다.

1.5리터 패트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를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켠 후 김명길은 그걸 도로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현봉태에게 물었다.

“경리 가시나는 어데가고 니가 그라고 있노?”

그 물음에 현봉태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김명길을 바라보았다.

“야이 돌대가리 새끼야. 너는 씨발 조직 돈 세탁기 돌린 거 적는 장부를 경리한테 맡기냐? 어?”

“아, 맞네.”

“이 새끼가 길동이 형님 죽어서 충격받았냐? 왜 더 멍청해지지?”

“지랄한다.”

김명길은 괜히 성질을 내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무의미하게 인터넷을 켜고 스포츠 뉴스나 보면서 힐끔힐끔 현봉태를 바라봤다.

[지이이잉-!]

그때,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현봉태의 폰이 진동했다.

현봉태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곧장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네. 네. 모레, 네. 29일 밤 11시. 네, 알겠습니다. 네. 어떻게든 유인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현봉태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폰을 꽉 쥔 채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뭔데? 누구고?”

김명길의 물음에 현봉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말했다.

“씨발. 병호 형님이 그 새끼 작업 해주신다고 한다.”

“벼, 병호 행님이?”

“그래. 모레 밤 11시에 하남 물류창고로 데려오면 거기서 작업해주신다고 하니까, 너도 준비하고 있어.”

“모레? 하남에서?”

“그래. 씨발. 싸이코 새끼. 시체를 갈아서 대마밭에 거름으로나 써야지. 개같은 새끼.”

살짝 흥분한 현봉태를 보며 김명길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 얼마나 애들 모아 주신다꼬 하시노?”

“글쎄다? 그건 말씀 안 하시던데?”

“그래?”

“근데 그건 왜?”

현봉태는 살짝 흥분을 가라앉혔다.

“응?”

“네가 그거에 왜 관심이 있는데?”

“아…… 그 뭐고, 애들 좀 많이 못 부르면, 내라도 손 거들라고 물어본기다.”

“아…… 그래?”

“내 담배 좀 피고 올게.”

김명길은 그렇게 사무실을 나갔다.

현봉태는 의혹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몰래 뒤따라 나갔다.

김명길은 밖으로 나가 골목에서 담배를 물고서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행님. 그 모레 밤 11시에 하남에서 행님 작업한다캅니다. 네. 거 그 병호 행님이 관리하는 대마밭이 있는데 아마 거서 할 것 같십니다. 네, 알겠십니다.”

김명길은 전화를 끊고 그제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독 저 새끼……’

그리고 그 통화 내용을 골목 입구에 몸을 숨긴 채 들은 현봉태는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가게로 돌아갔다.

6.

5월 29일 밤 10시 25분.

“오셨습니까.”

단란주점 <콜걸> 앞에서, 강철은 현봉태의 인사를 받았다.

강철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경차를 바라보며 현봉태에게 물었다.

“불독 닮은 아저씨는?”

“아, 명길이는 그 조직에 일이 있어서 잠시 출타 중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자기 차를 놔두고 출타를 하셨다?”

강철의 말에 현봉태는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답변했다.

“부산까지 가는 거라, 그냥 기차타고 갔습니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조수석에 앉았다.

“아…… 저 그 뒷좌석에 타시지 않고…….”

현봉태의 물음에 강철은 뒷좌석을 머리로 가리키며 말했다.

“좁아.”

결국, 현봉태는 강철을 곁에 두고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강철은 가만히 담배 연기를 차창 밖으로 내뿜으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봉태도 마땅히 할 말은 없었기에, 한동안 운행하는 차량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그리고 그 침묵이 현봉태를 더 괴롭고 불편하게 할 때쯤, 강철이 입을 열었다.

“오길동이가 대마 농장도 운영했었다고?”

강철의 물음에 현봉태는 흠칫 떨면서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그…… 사실 조직 몰래 친구분들하고 하던 건데, 최근에 길동이 형님 친구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들어가시는 바람에 그만……”

“오길동이가 독차지하게 됐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지금 현장 시찰을 하라는 건가?”

“아무래도 일단 물건 상태를 직접 보셔야 농장을 계속 운영하실지 아니면 지금 자라는 물량만 털고 빠지실지를 결정하실 수 있지 싶어서…….”

강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침묵이 내렸다.

결국, 현봉태는 그걸 이기지 못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때마침, 라디오에선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다. 지금은 저 노래가 현역이겠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명곡이 된 노래를 들으며, 강철은 눈을 감고 가만히 과거가 가져다주는 향수를 만끽했다.

그런 강철의 모습은, 그러나 현봉태에게는 여전한 위협이었고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요소였다.

그렇게 차는 두 사람을 태운 채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하남시 남동부 외곽까지 달렸다.

10시 56분에, 마침내 경차는 커다란 물류창고 단지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현봉태는 차를 몰고 물류단지 내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숫자 13이 적힌 창고 마당 정문 앞에서, 경차는 처음으로 검문을 받았다.

“어, 나 그 길동에 현봉태야.”

현봉태는 최대한 선병호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채 정문을 지키던 두 사람의 건달에게 자신을 알렸다.

두 건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봉태를 들여보내 주었다.

“쟤들도 여기 경비인가?”

그런 건달들을 보며 강철은 물었다.

“네? 아…… 네. 그…… 길동이 형님이 따로 고용한 그…… 하남 쪽 애들입니다.”

“그래? 이야…… 오길동이가 하남에 건달들도 다 알고, 이거 발이 넓으셨구만?”

현봉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철은 그런 현봉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현봉태는 창고 정문 앞에서 차를 세웠다.

“다, 다 왔습…… 니다.”

현봉태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고 있는 강철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강철은 차에서 내린 후 현봉태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 현봉태.”

“네?”

“오길동이에 대한 의리야, 아니면 너의 어떤 개인적인 야망이야?”

“네, 네?”

강철은 현봉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입구를 지키던, 이제는 각자 손에 회칼을 쥐고 있는 두 건달을 바라보았다.

현봉태의 시선도 건달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에 현봉태는 살짝 용기를 얻었다.

현봉태는 자기 어깨에 올라가 있는 강철의 손을 떼어냈다.

“하-! 새끼……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족보도 없는 인간이 조직의 간부를 죽이고 재산을 낼름 먹으려는데…… 그럼 거기에 동조하고 있을까?”

현봉태는 웃는 것도, 정색한 것도 아닌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이제라도 가서 빌어 봐. 그럼 살려주실지도 모르지.”

그런 현봉태를 바라보며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현봉태도 강철의 얼굴을 보고 따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씨발, 쪼개기는.”

그 순간, 강철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푸욱-!]

그리고 오거닉 메탈을 두른 그의 오른손이, 손가락 끝부분이 칼처럼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그대로 현봉태의 목을 찢고 들어가 목뼈와 근육, 혈관을 꽉 잡았다.

“크륵……”

현봉태는 눈을 부릅뜨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이, 현봉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크륵…… 큵……”

“너랑 오길동이 같은 새끼야.”

[우드득-!]

그대로, 강철은 현봉태의 목뼈와 근육, 혈관을 뜯어냈다.

현봉태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곤 찢겨나간 목에서 피를 뿜어대며 바닥에 쓰러졌다.

강철의 얼굴과 옷 앞부분은 금세 현봉태의 피로 물들었다.

“저 새끼가!”

현봉태가 쓰러지자 천천히 다가오던 두 건달이 빠르게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왼쪽에 있는 건달은 강철의 오른팔을 베어내려 했고, 오른쪽에 있는 건달은 강철의 허벅지에 칼을 박으려 했다.

그리고 강철은, 양손에 오거닉 메탈을 두른 채 날아드는 두 자루의 회칼을 손으로 꽉 잡았다.

[까득-!]

두 자루의 회칼은 거의 동시에 부러졌다.

[뻐억-!]

그리고 거의 동시에, 강철의 주먹이 두 건달의 안면에 꽂혔다.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힘 조절이 들어갔고, 덕분에 두 건달은 코가 주저앉고 앞니가 쏙 빠진 채 그대로 혼절하는 정도의 타격만 입었다.

강철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곤 손가락에서 불꽃을 일으켜 불을 붙인 후, 창고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벌써 밖에서 한바탕하고 오셨어?”

창고 내부는, 현봉태의 말대로 대마 농장이었다.

조명과 스프링클러를 비롯해 하우스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농업 시설이 구비 돼 있었다.

강철은 대마밭 한가운데 밭두렁으로 걸어가며 자신에게 말을 던진 사내를 바라봤다.

1.5m 정도 쌓인 목재 팔레트 위에 걸터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던 선병호는 얼굴과 옷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담배를 피우며 들어오는 강철을 보며 씩 웃었다.

“명길이 말대로 싸움은 좀 하시나 보네? 봉태 말대로 싸이코 기질도 있어 보이고.”

그러면서 선병호는 자기 앞에 서 있던 네 명의 부하 중 둘에게 손짓했다.

그 둘은 창고 내부의 또 다른 창고로 들어가더니, 그곳에서 김명길을 질질 끌고 나왔다.

“크윽…… 해, 행님…… 사, 살려……”

[퍽-!]

김명길의 말은, 선병호의 부하 하나가 그의 배를 발로 차며, 더 이어지지 못했다.

강철은 가만히 김명길을 바라봤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서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강철은 무심한 표정으로 선병호를 바라봤다.

“밖에 애들 죽이기라도 했어? 그 피는 뭐야?”

그런 선병호의 물음에 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6명만 동원했나?”

강철의 물음에 선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6명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이봐, 범생이 같이 생긴 양반.”

강철의 말에 순간 선병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범생이?”

강철은 선병호의 그런 반응을 무시했다.

“당신의 안일함이 당신이 앞으로 겪을 패배의 원인이야. 미리 알아 두라고.”

그 말에 선병호는 왼쪽 눈 끝을 파르르 떨면서, 씹어 먹듯 말을 내뱉었다.

“허세가 있으시네?”

그 말이 끝나자, 그의 앞에 서 있던 4명의 건달이 강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