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7화 (7/175)

007 조직 (2)

3.

5월 25일 12시.

강동구 천호동 프랜차이즈 중국 음식점 <상해탄 천호본점>.

천호역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 좌석에서 김명길과 현봉태는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후루루룩-!”

김명길은 그릇에 얼굴을 처박을 기세로 짬뽕을 흡입하고,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으며 야무지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면, 현봉태는 짜장면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물이나 연거푸 들이마시며 창가 좌석 정 반대 방향에 자리한 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안 묵나?”

어느새 짬뽕을 다 먹은 김명길은 입맛을 다시며 현봉태의 짜장면을 바라봤다.

“어? 어…… 너 먹어라.”

“헤헤. 새끼.”

김명길은 짜장면 그릇을 자기 앞으로 옮기곤, 짬뽕에게 그랬듯 또 얼굴을 처박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현봉태는 마치 진짜 개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김명길이 짜장면까지 다 흡입하고 젓가락을 쪽쪽 빨며 여전히 아쉬워하고 있을 때, 룸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이 나왔다.

“잘 먹고 갑니다, 선 사장.”

“하하. 입맛에 맞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접대한 손님을 가게 밖까지 배웅하고서, 가게 사장 선병호는 부하 고병우와 함께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는 창가 좌석에 앉아 있는 현봉태와 김명길을 바라보고는 룸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야, 일어나.”

“응? 어, 어. 알겠다.”

현봉태는 김명길을 이끌고 룸으로 들어갔다.

“그래, 식사는 입맛에 맞았고?”

선병호의 말에 현봉태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네, 덕분에 든든하게 한 끼 챙겨 먹었습니다.”

“하하. 새끼. 겨우 짜장면 가지고…… 다음에 인마 저녁에 오면 저녁 특선 풀코스로 한 번 먹여 줄게.”

“감사합니다, 형님.”

“하하. 새끼들.”

선병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병우에게 눈짓했다.

고병우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사기그릇 찻주전자를 들어 4개의 찻잔에 따라 각자의 앞에 놔두었다.

“그래, 요즘 길동이는 어때? 새로 들어온 경리 아가씨 건드리다 뭐 고소는 안 당했고?”

선병호의 물음에 현봉태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 길동이 형님은…… 그…… 길동이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차를 마시려던 선병호는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멍하니 현봉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찻잔을 내려두곤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 물었다.

“언제?”

“어젯밤에 그렇게 되셨습니다.”

“어쩌다가?”

“저…… 그게…….”

현봉태는 선병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강철이 찾아온 일부터, 그가 김명길과 자신을 제압하고 오길동을 산채로 전기톱으로 썰어 죽인 일과 오늘 새벽에 남양주 야산에 묻어버린 일까지.

“지금 그 자식은 우리 업소용 오피방 하나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동이 형님 재산을 전부 현금화해서 가져오라고도 우리한테 시켰습니다.”

그 일을 말하며, 현봉태는 철저히 자기들은 피해자임을 어필했다.

김명길이나 싸웠지 자신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는 사실 따위는 모두 숨긴 채, 그렇게 현봉태는 강철에 대한 비방을 선병호 앞에서 늘어놓았다.

“싸움도 싸움인데, 인간이 완전 싸이코입니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현봉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선병호는, 약간 식은 차를 쭉 들이켰다.

“길동아…… 길동아…….”

그리고 마치 오길동을 애도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있던 선병호는 이내 고개를 들어 현봉태와 김명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너희들은…… 그 싸이코 새끼 잘 감시하고 있어. 이 건에 관해서는 윗선하고 상의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자 현봉태는 살짝 당혹스러워했다.

“혀, 형님……”

하지만 선병호는 단호했다.

“도 전무님 암으로 쓰러지시면서 지금 조직 분위기 개판인 건,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독단적으로 애들이라도 동원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 것 같아?”

결국, 현봉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기다리고 있어 봐. 윗선에서도 길동이가 족보도 없는 인간한테 당했다는 거 알면,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니까.”

그렇게 선병호는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두 사람에게 용돈 15만 원씩을 주고는 돌려보냈다.

현봉태와 김명길이 가게를 떠나자, 그때까지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고병우가 선병호에게 물었다.

“형님. 혹시 저 새끼들이……”

선병호는 그 말을 다 듣지도 않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로 독한 새끼들이었으면 길동이 밑에서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었겠냐? 쟤들이?”

그 말에 고병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선병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넌 조용히 애들 풀어서 한번 확인해 봐. 진짜 길동이가 죽은 건지.”

“네, 알겠습니다.”

한편, 다시 합숙소로 돌아가는 차량 내부에서, 김명길은 현봉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마, 치와와.”

“왜?”

“근데 우리 경리 가시나 새로 뽑은 걸 병호 행님은 우예 알고 있노? 금마 뽑은지 이제 겨우 이틀인가 사흘 된 거 아이가?”

그 말에 현봉태는 뜨끔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글쎄다? 뭐 길동이 형님이 말씀해주셨겠지?”

“길동이 행님이 병호 행님한테 그런 이야기까지 할 만큼, 그 둘이가 그래 친했던 사이는 아인 거 같은데?”

“뭐, 그게 뭐가 중요하냐? 씨벌, 또 한 며칠 그 싸이코 새끼 얼굴 보게 생긴 게 중요하지.”

현봉태는 애써 주의를 환기하며 ‘경리 고용’에 관한 대화를 끝내려 했다.

김명길은 입을 다물고,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슬쩍 현봉태를 바라보았다.

4.

선병호는 기다리라는 말만 했을 뿐, 그 기한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랬기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 현봉태와 김명길은 상당한 불안을 느껴야 했다.

“후우-!”

5월 27일 오후 7시.

김명길은 핸드폰이 담긴 종이가방을 든 채, 강철이 점거한 오피스텔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종으로 향하는 그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띵동-!]

가까스로 초인종을 누른 김명길은 가만히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강철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지?”

“아, 저기…… 그……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폰 맹글어 왔습니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 명의로 만든 거지?”

식탁 위에서 폰 케이스를 뜯으며 강철은 물었다.

“그 친구가 노숙자 명의로 하나 뚫어 줬습니다.”

“그래?”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폰 브랜드를 확인했다.

‘옴니버스?’

브랜드를 확인한 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이거 참…….’

강철은 김명길을 바라봤다.

“옴니버스라…….”

“그 제 친구가 이번에 나온 그 뭐고 스마트폰인가 아무튼 그거라고 적극 추천했십니다.”

삼우전자에서 만든, 극초창기형 스마트폰 모델.

나름 야심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실패작 소리를 들으며 폐기된 삼우전자의 흑역사.

‘그래, 뭐 통화만 잘 되면 되지.’

그러나 아직은 새로운 시대의 문물이라는 기대 섞인 평가를 받고 있는, 나름 최신폰이었다.

강철은 세팅 상태를 확인하고는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강철을 향해, 김명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저…… 행님.”

“응?”

“그…… 봉태가 좀 수상한 것 같십니다.”

김명길은 강철에게 5월 25일 점심때 선병호와 현봉태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읊어 일러바쳤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던 의혹도 사족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라고 이건 제 생각인데, 봉태 임마가 옛날부터 이 병호 행님하고 짝짜꿍하고 있었던 것 같십니다. 새로 뽑은 경리 이야기를 병호 행님이 알고 있는 게, 암만 봐도 이 봉태 임마가 일러바친 것 같십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강철은, 김명길의 말이 끝나자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가 담배를 물자 김명길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강철은 연기를 코로 내뱉곤 김명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건, 그쪽은 선병호라는 양반이 아니라, 나한테 충성을 바치겠다, 뭐 그런 거라고 봐도 되나?”

그 말에 김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명호에게 말했다.

“그래. 좋아. 알았어. 대비하고 있을게. 일단, 가게로 돌아가 있어. 그리고 혹시 현봉태 쪽에서 무슨 일을 꾸미거나 하면 나한테 연락 주고. 내 폰번호 입력은 해 놨나?”

“네, 행님. 저…… 근데…… 그 성함을 몰라가지고 그냥 그…… 무쇠주먹 행님이라고만 해뒀는데……”

김명길의 말에 강철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은 뭐…… 차차 알아가면 되지. 가 봐. 늦게 가면 현봉태가 눈치채겠다.”

“아, 맞네. 알겠십니다, 행님. 그럼 편히 쉬시이소.”

그렇게 김명길은 강철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오피스텔을 떠났다.

강철은 천천히 창가로 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며 생각했다.

‘계산 대로야.’

오길동은, 말이 보스지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조직, 강동통합파의 하급 간부에 불과했다.

나름 사업체도 몇 개 운영하는, 건실한 기업체로 위장한 이 거대 조직에서 하급 간부라는 것은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 있음을 의미했다.

별 볼 일 없는 동네 조직도 아니고, 무려 강동구와 송파구 그리고 중랑구와 광진구까지 4개 구를 영역으로 삼고 있는 조직에서, 아무리 강철이 무력으로 비집고 들어온다고 한들, 인정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강철은 노렸다.

‘슬슬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누구를 먹어야 조직을 먹을 수 있는지도 확실히 윤곽이 드러나겠지.’

오길동을 죽인 사적인 복수의 뒤에는, 오길동에게 8년 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강동통합파의 접수라는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동통합파는 좀 진짜배기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현재 시점에서 유일하게 강철이 걱정하는 것은, 오길동이 강동통합파의 규모와 능력에 관해서까지 허풍을 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지위에 관해 그랬듯이.

‘그나저나 김명길…….’

강철의 상념은 김명길에게로 옮겨졌다.

‘나한테 충성을 바친다?’

김명길의 표정에선 일단 가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표정은 많은 걸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많은 걸 숨기기도 한다는 것을 강철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현봉태는 나를 적대한다는 거지. 뭐, 거기까진 예상했던 대로야.’

강철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새 담배를 꺼내 피웠다.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해. 몸 상태가 전성기 수준에 비해 턱없이 약해. 초능력도 마찬가지고.’

강철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초능력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라이터 불을 최대한도로 켰을 때 뿜어질 법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의 색상은 시퍼런 색이었다.

‘이것도 초능력으로 일으킨 불이니까, 이 불로 금을 녹이면 엘릭서가 나올까?’

강철은 불을 끄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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