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조직 (1)
1.
“마, 좀 단디 파 봐라.”
“잘 파고 있잖아, 새끼야.”
“하 진짜, 하여간에 물주먹 치와와 새끼 삽질도 제대로 못 하고, 할 줄 아는 게 뭐고? 이 빙시야.”
5월 25일 화요일 새벽 4시 24분.
경기도 남양주 인근의 야산 깊숙한 곳에서, 현봉태와 김명길은 땅을 파고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여행 가방 2개와 트레이닝 더블 백 2개가 놓여 있었다.
“후우-!”
그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바위에 앉아 있던 강철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자 아웅다웅하던 현봉태와 김명길은 동시에 입을 다물곤, 묵묵히 땅만 팠다.
그러나 딱히 강철은 그들의 만담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가 한숨을 쉰 이유는, 지금 자신의 심장에서 끓어 오르는, 확실하게 처음보다 많이 향상된 초능력 에너지 때문이었다.
‘초능력자를 죽이면, 초능력이 성장하기는 했는데…….’
핵전쟁 이후, 초능력자들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초능력자들이 성장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초능력을 이용한 불꽃을 통해 금을 녹이면 거기서 추출되는, 연금술사들이 ‘엘릭서’라고 부르는 물질의 섭취를 통한 성장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초능력자를 죽이고 그 에너지를 흡수하여 성장하는 것이었다.
‘근데 오길동은 12년 뒤에나 초능력자지 지금은 그냥 평범한 건달이잖아?’
문제는 오길동이 아직 초능력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래에 초능력자가 될 가능성 정도만 지닌, 그저 평범한 건달에 불과한 오길동을 죽였음에도, 초능력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강철을 꽤 당황하게 했다.
“후우-!”
강철은 담배를 바위에 비벼 불을 끈 후 새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을 당황하게 하는 두 번째 요소를, 끄집어내 보았다.
[화륵-!]
담배를 물고,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우자 검지 끝, 손톱과 살 사이 공간에서부터 불꽃이 탁 피어올랐다.
강철은 그걸로 담뱃불을 붙인 뒤, 한동안 가만히, 그 불꽃을 바라보았다.
‘거기다 이건…… 기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분명 오길동의 초능력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강철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혹감의 강도로 치자면, 처음 회귀했을 때보다는 덜해도, 그것에 얼추 미치는 수준이었다.
“후우…….”
오길동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강철은 초능력 에너지의 사이즈가 커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처음에는 한 손에만 오거닉 메탈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이, 양손 전체를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속시간도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초보적이긴 하지만, 오길동의 초능력인 화염술까지 얻게 됐다.
‘미래에 초능력자가 될 놈을 미리 죽이면, 성장도 하고 그놈이 얻게 될 능력도 얻는다…….’
강철은 불꽃을 끄고 가만히 아직은 어두운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과거로 돌아온 것부터 이것까지…… 혹시 그때 그 드래곤 하트 때문인가?’
2030년, 오길동은 강철을 죽이기 위해 그의 목에 드래곤 하트로 만든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채웠다.
그 자체로 엘릭서 덩어리이면서, 아주 작은 것 하나조차도 금 10kg에서 추출한 엘릭서보다 더 많은 양의 엘릭서를 품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
그 귀한 걸, 오길동은 단지 강철이 초능력을 쓰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전기톱으로 산 채로 토막 내기 위해 사용했다.
‘작두나 도끼한테 받은 거겠지만…….’
문제는 드래곤 하트가, 단순히 엘릭서 덩어리라는 것과 특정 방법으로 가공하면 초능력을 봉쇄해버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는 비밀스러운 보물이라는 것이었다.
‘혹시 그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건가? 시간 역행도, 초능력 보존도, 성장과 흡수도, 다?’
강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원리에 대해 따지는 것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
‘어찌 됐건……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어.’
오길동을 죽이면서 사적인 복수도 하고, 또 미래를 대비할 기반을 흡수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
‘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초능력자가 될 것들을 미리미리 족치는 것도 필요해.’
그러나 미래에 초능력자가 될 인간을 죽이면, 그 인간이 미래에 얻게 될 초능력을 흡수하고 에너지의 성장까지 이룬다는 사실을 안 이상, 계획을 약간 수정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단순히 금만 모으는 범죄 조직만으로는 안 돼. 아직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지금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을 인간들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조직이 필요해.’
그렇게 하기 위해선, 처음 세웠던 계획보다 더 창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단순히 깡패 조직만 가지고는 안 되지.’
강철은 다 태운 담배를 바위에 비벼 끈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아저씨들, 아직 다 안 끝났어?”
강철의 부름에, 성인의 머리까지 땅 아래로 들어갈 만큼 깊게 땅을 판 현봉태와 김명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이만하면 다 된 것 같지 않습니까?”
현봉태의 물음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묻자.”
그 말에 현봉태와 김명길은 땅 파던 걸 멈추고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오길동이 담긴 여행 가방 2개와 트레이닝 더블 백 2개를 구덩이 속으로 집어 던진 후 그 위에다가 다시 커다란 투명 비닐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야 둘은 다시 구덩이를 흙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그 작업이 끝날 때쯤, 동이 텄고, 세 사람은 그제야 하산할 수 있었다.
“오길동이 관리하던 업체 중에 오피 업소도 있다고 했지?”
서울로 돌아가는 길, 김명길의 경차 뒷좌석에 앉아 강철은 현봉태에게 물었다.
조수석에서 현봉태는 백미러로 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있습니다.”
“방은 몇 개지?”
“3, 3개입니다.”
“3개…… 일단 그중 하나 당분간 손님 받지 마라.”
“네? 아니…… 왜?”
“왜기는…… 내가 당분간 거기서 살아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러지.”
“아…….”
현봉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던 김명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강철에게 말했다.
“방 하나를 안 쓰면 손해가 좀 클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현봉태가 김명길을 째려보며 입 모양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 그래?”
강철은 그런 김명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분간 불독 닮은 아저씨, 당신 집에서 지내면 되겠네.”
그제야 김명길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곤 입을 꾹 다물었다.
강철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후 말했다.
“길게는 안 있을 거야. 적당히 일주일 내로 아저씨들이 오길동이 자산 현금화해주면 내 방 하나 구해서 거기서 살 거니까. 너무 걱정은 마. 아 그리고, 내가 좀 써야 하니까, 휴대폰도 하나 개통해서 갖다주면 좋겠어.”
그 말에 현봉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2.
강철을 길동에 자리한 오피스텔까지 안내한 후, 현봉태와 김명길은 그들의 합숙소로 향했다.
“……”
“……”
방 하나가 빈, 오길동의 명의로 된 전셋집 합숙소로 가는 길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 할 말은 분명히 있겠지만, 피로와 충격은 차마 두 사람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질 못하게 막고 있었다.
“마, 치와와.”
하지만 결국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차를 몰던 김명길이 현봉태를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이제 우리 어째야 하노?”
그 물음에 현봉태는 김명길을 바라보았다.
“길동이 행님이 어쨌건 죽었으니까, 이제 점마를 행님으로 모셔야 할 거 아이가?”
김명길의 말에 현봉태는 정색했다.
“야, 김명길.”
“와?”
“저 싸이코를 왜 우리가 형님으로 모셔야 하는데?”
“아니, 어쨌건 길동이 행님이 죽었으니까……”
“야이 머저리 새끼야. 길동이 형님이 죽었다고, 뭐 어디 족보가 바뀌기라도 하는 것 같아?”
“그야……”
“그러니까 네가 씨발 불독 소리나 들으면서 무시당하는 거야. 무식한데 쌈박질만 잘하는 양아치 건달 새끼라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김명길은 별안간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든 채 현봉태를 바라보았다.
“이 물 주먹 치와와 새끼가 씨바 말하는 싸가지 봐라? 마, 새끼야. 내는 씨바 저 새 행님이랑 싸우기라도 했지 씨바거 그때 니는 뭐 하고 있었노?”
“안 죽으려고 애썼다 이 무식한 새끼야.”
김명길은 곧장 현봉태의 멱살을 잡았다.
“마, 이 개새끼야. 니도 길동이 행님처럼 되고 싶나? 어? 씨바거, 전기톱을 맨손으로 잡는 새끼를 행님으로 안 모실라 카면, 뭐 씨바 길동이 행님 옆에 묻히고 싶다는 기가? 씨바 그랄라면 니나 그래라.”
현봉태는 인상을 찌푸리며 김명길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곤 폰을 꺼내며 말했다.
“그 싸이코 새끼가 전기톱을 맨손으로 잡았건, 네가 헛걸 봤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그는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다.
“씨바 와, 짭새한테 신고라도 하나?”
김명길의 말에 현봉태는 대응하지 않았다.
잠시 후, 통화가 성사되자 현봉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병호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저 봉태입니다.”
현봉태의 통화를 들으며, 김명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봉태는 그런 김명길에게 손짓하여 빨리 차를 출발시킬 것을 요구했다.
김명길은 일단은 다시 액셀을 밟았다.
“네, 형님. 저기…… 그…… 다름이 아니라 형님께 꼭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오늘 언제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네. 중요한 일입니다. 네, 맞습니다. 아, 12시 말입니까? 네, 네. 네, 거기 어딘지 압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갈 때 명길이도 같이 데려가겠습니다. 네, 네. 네,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현봉태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곤 차창을 연 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현봉태가 막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가만히 운전하던 김명길이 물었다.
“병호 행님은 와?”
“너 오늘 12시에 약속 없지? 있어도 취소해라. 병호 형님 가게 찾아가기로 했다.”
“거긴 뭐 할라꼬?”
김명길의 물음에 현봉태는 갑갑하단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곤 몇 차례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댄 후, 절반 정도 남은 걸 창밖에 던지고선 김명길에게 말했다.
“명길아.”
“와?”
“너나 나나, 뒤지기 싫으면 이젠 병호 형님 밑으로 들어가야 해.”
“그라믄 새 행님은 어짜고?”
“아이, 씨발. 그러니까 병호 형님 밑에 들어가서 병호 형님한테 그 싸이코 새끼 담가 달라 부탁해야 한다고 이 병신 불독 새끼야.”
“다, 담근다고? 금마를?”
“그래. 명길아. 이 멍청한 새끼야. 어차피 그 싸이코가 길동이 형님 담근 거 알려지면, 조직에서 움직이게 돼 있어. 그때 그 싸이코하고 같이 있다가 칼 맞고 뒤질래?”
김명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봉태는 그대로 시트에 등을 파묻은 채 말을 마무리 지었다.
“족보도 없는 사이코 새끼보단, 그래도 족보 있는 병호 형님이 더 낫잖아.”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