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오길동 (1)
1.
“요즘 위에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 이럴 때일수록 몸을 사려야 해.”
2010년 5월 24일 14시.
서울 강동구 길동 단란주점 <콜걸>.
아직 영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3번 방에선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격변기 아닙니까, 형님.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싶은데 말입니다.”
상석에 앉은 남자, 단란주점 관리인이자 경찰과 조직에서는 길동이파로 불리는, 자신만의 소규모 조직을 거느린 오길동이 대낮부터 배를 안주 삼아 양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우측 라인에 앉은, 치와와처럼 생겼다고 해서 ‘길동 치와와’ 혹은 그냥 ‘치와와’라는 별명이 붙은, 오길동의 오른팔 현봉태는 직접 오길동이 먹기 좋게 배를 깎고 있었다.
“그건 그런데, 일단은 사리는 게 맞아. 당장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판국에, 어설프게 설치다간 우리 다 뒤지는 거야.”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조직 내부 정세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술자리 분위기는 제법 무거웠다.
“짭새가 우리를 길동이파라고 부르고, 위에서도 또 형님들이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씨벌 말이 길동이파지 실질적으로 나하고 너 그리고 명길이가 전부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냥 일단 지켜보다가 적당히 될 것 같은 놈 편에 붙으면 되는 거야.”
오길동의 말에 현봉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배 그만 깎고, 불 좀 줘 봐라.”
오길동이 담배를 꺼내 물고 말하자, 현봉태는 배와 과도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현봉태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오길동은 연기를 두어 차례 코와 입으로 내뿜은 후 물었다.
“근데 도 전무 그 영감은 무슨 암이냐? 위암이냐? 아니면, 간암?”
오길동의 물음에 현봉태는 즉각 대답했다.
“폐암입니다.”
그러자 오길동은 찜찜하단 표정으로 담배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걸 재떨이에 비벼 껐다.
“에이 씨벌. 금연을 하든가 해야지.”
그리고 그가 막 재떨이에 침을 뱉고, 그걸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았을 때,
[똑똑-!]
“행님, 드가도 됩니까?”
김명길이 노크를 하며 입장 허가를 구했다.
“어, 들어 와라.”
오길동의 허락이 떨어지자 김명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는 아니었고, 웬 젊은, 적당히 예쁘면서도 또 적당히 수수한 스타일의 여자와 함께였다.
“얍니다.”
김명길이 여자를 가리키며 그렇게 소개했다.
그리곤 여자의 팔을 팔꿈치로 툭툭 치며 인사를 종용했다.
“아, 안녕하세요. 서경화라고 해요.”
여자의 인사에 오길동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어, 그래. 이번에 새로 경리로 들어왔다고?”
“네.”
“이야. 딱 보니까 관상이 숫자를 잘 다루게 생겼네. 좋아, 음. 좋아.”
그러면서 오길동은 살짝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명길은 멀뚱멀뚱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현봉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오길동의 바로 옆에다가 앉혔다.
“그래, 경화라고?”
“네.”
“뭐, 술은 마시나?”
“저…… 술을 잘 못하는데…….”
“어허, 이런. 술을 잘 못 마신다면서 단란주점에 취직을 했어?”
“조건이 좋아서…….”
“하하하. 그래, 우리가 뭐 직원 복지는 참 잘 해주지. 월급도 현금으로 따박따박 잘 주고. 보자, 그럼 술을 안 드신다고 하니까…….”
오길동이 잠시 뜸을 들이자, 현봉태가 잽싸게 끼어들며 이야기했다.
“커피 한 잔 타오겠습니다, 사장님.”
“커피?”
오길동은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길동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현봉태는 김명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오길동은 여자에게 배 한 조각을 건네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대학교는 다니느냐?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냐?
여기는 누구 소개로 온 거냐?
거기에 대해, 여자는 대체로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일단 있는 그대로 다 답변했다.
그리고 여자가 답변하는 사이, 현봉태가 직접 커피를 들고 다시 룸으로 되돌아왔다.
“자, 뭐, 요즘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경화 씨 나이 때는 말이야, 뭐, 그래 봐야 15년 전이긴 한데, 이렇게 근무 첫날에는 항상 사장님하고 같이 술을 마셨거든? 그런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요즘 시대가 시대니까, 술은 강요 안 하고, 좋네.”
오길동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양주가 담긴 술잔을 들었다.
여자도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가 든 잔을 들었다.
두 잔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여자는 아무 의심 없이 커피를 쭉, 반 잔이나 들이켰고, 그 모습을 오길동은 번들거리는 음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씩 웃었다.
2.
“후우.”
역사에서 나온 강철은 장시간 앉아 있어서 찌뿌둥해진 몸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고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오길동에게 들었던, 그의 옛날 조직 보스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대조해보았다.
『나름 역세권이었어. 그만큼 내가 인정을 받았단 거지. 역세권 가게를 나한테 맡겼을 정도니까. 길동역 3번 출구로 딱 나와서 두 구간만 지나면 떡하니 내 가게가 보였지.』
강철은, 그 말에 의지해 3번 출구에서 나와 무작정 걸었다.
‘오길동.’
오길동은 강철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처음으로 가족, 특히 형제의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그를 형처럼 여기면서 그에게, 좋건 안 좋건, 많은 것을 강철은 배웠다.
‘불의는 참고 넘어가라. 하지만 원한은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참지 마라.’
그 가르침 중 하나를 속을 곱씹으며 강철은 주먹에 힘을 주고 이를 갈았다.
‘기다려.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하지만, 15분을 걸어도 오길동이 강철에게 이야기했던, 그가 처음으로 운영한 단란주점 ‘콜걸’은 나오지 않았다.
‘뭐야? 설마…… 허풍을 떨었던 건가? 아닌데…… 오길동이 아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캐릭터는 아닌데?’
멈추어서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강철은 결국 근처에 있던 노점상에게 길을 물었다.
“저기, 말씀 좀 물읍시다. 여기 근처에 콜걸이라고 단란주점이 있다던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강철의 물음에 어묵과 떡볶이를 팔던 아줌마는 잠시 그를 위아래로 훑더니 이내 시선을 다시 도마 위의 어묵과 가래떡으로 내리며 말했다.
“저쪽 은행 건물 골목으로 들어가서 좀만 더 가면 있어요.”
“네, 고맙습니다.”
강철은 노점상의 안내에 따라 은행 건물 골목 쪽으로 다시 100m가량을 더 들어갔다.
그제야, 강철은 조그만 상가 건물 앞에서 ‘콜걸’이란 이름의 조그만 입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세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강철은 오길동의 허풍에 콧방귀를 뀌며, 천천히 입구로 다가갔다.
“이 새끼야, 넌 그때 인마 형님이 그렇게 옆으로 자리를 살짝 빼서 어? 공간을 만들면 경리년을 거기에다가 딱 보냈어야지. 새끼가 눈치가 없냐?”
“지랄한다. 니는 눈치가 빨라가 물주먹 새끼가 과장 소리 듣고 있는기가?”
“새끼야, 요즘 같은 시대에 너처럼 주먹질만 잘한다고 다 깡패냐? 나처럼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
때마침, 건물 입구에선 현봉태와 김명길이 담배를 태우며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와? 말문이 막히나?”
현봉태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추자 김명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 김명길의 배를 현봉태가 손등으로 툭툭 치며 담배를 쥔 손으로 강철을 가리켰다.
“아- 씨바, 만지지 마라. 소름 돋는다.”
김명길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현봉태의 손을 따라 시선을 강철에게로 돌렸다.
“점마 뭐고?”
현봉태와 김명길은 가만히 강철을 바라봤다.
‘오길동이 따까리들인가?’
강철은 자신을 바라보는, 치와와와 불독을 닮은 두 남자를 향해 다가가다가 그들과 50cm 정도 거리를 둔 채 멈춰 섰다.
그리곤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사장 이름이 오길동이요?”
그 물음에 현봉태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김명길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침을 뱉었다.
그리곤 강철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협적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뭐라했노?”
그 물음에 강철은 확신했다.
“맞네. 오길동이 가게.”
그리고 강철은 김명길을 옆으로 치우고, 가게가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탁-!]
그러자 김명길이 강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돌게이 새끼가, 대낮부터 더위 처먹었나, 니 몇 살이고? 씨바거 어데 행님 존함을 함부로……”
[빠악-!]
김명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명길이 어깨를 잡자마자, 강철은 오른손에 오거닉 메탈을 둘렀다.
그리곤 그대로, 김명길의 오른쪽 턱을 손등으로 갈겼다.
분명 손등으로 쳤지만, 소리는 무슨 쇠몽둥이로 때린 것만 같았다.
김명길에게 전달된 충격도 상당해서,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으며 의식을 잃고서 쓰러지고 말았다.
“존댓말로 물었는데 반말에 쌍욕에…… 하여튼 오길동이 밑에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일종의 자조적인 말을 내뱉은 강철은 오거닉 메탈을 풀지 않은 채로 현봉태를 바라봤다.
현봉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담배를 후다닥 바닥에 버리곤 강철에게 말했다.
“저, 저쪽으로 내려가셔서 3번 방으로 가시면 되, 됩니다.”
현봉태의 모습에 강철은 피식 웃으며 오거닉 메탈을 해제했다.
“쟤 좀 깨워서, 한 5분 뒤에 다시 들어와.”
그리고 강철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영업한다는 알람이 붙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강철은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담배 냄새와 뒤섞인 라벤더 향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3번 방을 찾아갔다.
곧 그는 3번 방을 발견할 수 있었고, 문에 붙은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오길동?’
길게 뻗은 소파에는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치마 속으로, 한 남자가 대가리를 박은 채 열심히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는데, 엉덩이가 입구 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건 힘들었다.
‘뭐, 아무렴 어때. 아니면 또 족치면 되지.’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인 남자 하나는 거뜬히 누울 만한 테이블 양옆으로, 마찬가지로 성인 남자 하나가 거뜬히 누울 만한 소파가 있었다.
상석의 소파는 테이블 양옆의 것보다는 작았지만, 두 사람이 앉을 크기는 됐다.
‘테이블 크기가 저 정도면…… 충분하겠네.’
먼저 테이블 크기를 확인한 강철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의식 잃은 여자의 치마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어이.”
강철은 남자를 불렀다.
그 부름에,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오길동이.”
두 번째, 강철의 부름에 남자는 비로소 여자의 치마에서 머리를 끄집어냈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려 강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뭐야?”
남자의 얼굴을 보며 강철은 씩 웃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빠악-!]
그리고 강철은, 테이블 끝에 있던 재떨이를 들어 그대로 오길동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