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다시, 2010년 (1)
1.
“크크크크…….”
“이 새끼 자는 척하는 거 아니야?”
“있어 봐바.”
귓구멍으로, 조그만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에, 강철은 움찔했다.
“흐하하하하-!”
그러자,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끄으윽…….”
강철은 혼란스러웠다.
‘오길동? 군바리들? 아니야…… 목소리가 다들 앳된데?’
순간, 강철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손가락…… 발가락…….’
분명, 조금 전 썰린 손과 발의 느낌이, 선명하게 그의 뇌로 전달이 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목이 썰려서 뇌와 신체의 연결이 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헉-!”
그대로 강철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그의 머리카락 정수리 부분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지우개 가루가 아래로 떨어지며 그의 어깨와 팔에 붙었다.
그러나 강철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소, 손?’
분명, 손이었다.
희고 고운, 손가락이 길쭉길쭉한, 그의 손이었다.
‘자, 잠시만 이거…….’
손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강철은 자신의 상의도 볼 수 있었다.
‘교복?’
지우개 조각과 분필 가루가 묻어 있는, 검푸른 색 재킷.
분명, 그가 예전에 입었던 교복이었다.
강철은 고개를 들었다.
한 아이가 칠판지우개로 칠판을 닦고 있었다.
칠판 위, 교실 정면 한중간 최상단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그 우측에는 급훈이 걸려 있었다.
<수능 1점이 미래의 집 평수를 바꾼다!>
강철은 천천히 시선을 우측으로 더 돌렸다.
교실 문밖으로, 약간 가려지긴 했지만, 분명하게 3-11이라 적힌 숫자가 보였다.
‘방화제일고?’
강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자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을 지나쳐, 교실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달력이 있었다.
강철은 가만히, 그 달력을 바라보았다.
“2010년 5월…… 24일……!”
연도와 월일을 읽다 말고, 강철은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강철은 달력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머리카락 위에 지우개 가루를 수북하게 쌓아 올린 소년.
열아홉, 고3 시절의 강철이 얼빠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강철은 죽었다.
2030년, 날짜도 제대로 모르는 어느 날, 그는 오길동의 배신으로 전라도 도끼와 경상도 작두가 보낸 연합군의 공세에 패배했다.
그의 손발은 오길동이 전기톱으로 썰었고, 목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멀쩡한 상태로 3학년 11반 교실에 서 있다.
‘꿈인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뇌에서 도파민인가를 뿜어대서 강제로 뽕 맞은 상태로 만들어서, 그래서 고통을 경감 한다는데, 그건가?’
핵전쟁 이후, 초능력자가 생기면서, 그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별의별 진기한 것들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시간을 역행한다거나, 빠르게 돌린다거나 하는 능력은 없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혼란은 일순간 강철의 내면을 외부와 차단시켰다.
“야!”
그렇기에 강철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 고아 새끼가.”
[퍽-!]
[쿵-!]
강철은 옆구리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교실 뒷문에 처박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쓰읍…….”
아팠다.
분명히 아팠다.
그리고 그것이, 강철을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살아있어.’
꿈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
강철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자신을 발로 깐 놈을 바라봤다.
‘고현수?’
명찰이 아니더라도, 그 얼굴만 봐도 강철은 자신을 공격한 놈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돌아왔구나.’
강철은 씩 웃었다.
그리고 그게, 고현수를 화나게 했다.
“이 새끼가 쪼개?”
고현수는 강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살짝 뺨을 치며 강철을 노려봤다.
“어이, 고아 새끼. 씨바, 고아원에서 약이라도 빨았냐?”
처음에는, 그냥 툭툭 치는 수준이었다.
“씨바, 대답 안 해?”
[짝-!]
“이 새끼가 진짜!”
[짝-!]
그러나 강철이 그저 웃기만 하고, 묻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뺨을 치는 고현수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미쳤구나?”
고현수는 어이없어하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목시계를 풀었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강철을 구타하려고 할 때,
“어?! 야, 뭐 하는 거야?”
강철이 그대로 고현수를 끌어안았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귀를 깨물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고현수는 욕설도, 반항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오른쪽 귀를 깨문 강철의 기습적인 공격에 당황하기도 했고, 귀가 뜯겨나갈 것 같은 통증에 두렵기도 했다.
“야야,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야 씨바 저러다 현수 귀 떨어지겠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웃다가, 이내 정색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아아아아……”
고현수는 이제 아예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철은 그의 귀를 놓아주지 않았다.
‘고현수.’
고등학교 3년 내도록, 고현수는 강철을 괴롭혔다.
고아에, 키는 크지만 싸움은 못 했던 그리고 친구도 없었던 강철은 그에게 편리한 먹잇감이었다.
돈이 없으니 삥을 뜯기진 않았지만, 매일 구타와 빵 심부름에 강철은 고통을 받았다.
“아아아악-!”
강철은 고현수의 귀를 뜯을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턱에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의 귀는,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응?’
점차 입안에 자신의 것이 아닌, 고현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의 비릿한 맛이 퍼질 무렵, 강철은 무언가가 심장에서부터 타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는, 이게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마?’
미약했지만, 그것은 초능력에 필요한 에너지였다.
강철은 그대로, 그 에너지를 모두 자신의 윗니와 아랫니에 모았다.
그 순간, 그의 치아 8개가 강철로 변했다.
그리고, 강철은 아주 손쉽게 고현수의 귀를 뜯어냈다.
“끄아아아아악-!”
귀가 뜯기면서, 고현수는 강철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씨바!”
“족됐다. 씨바.”
그걸 구경하던 아이들 가운데 일부가 교실을 빠져나갔다.
강철은 입에 고현수의 귀를 문 채, 입가로는 피를 줄줄 흘리며 씩 웃었다.
“퉤-!”
강철은 고현수의 면상에 귀를 뱉어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흉터를 달고 살아. 그게 몸이건, 마음이건 말이야.”
강철은 고현수에게 다가갔다.
“어떤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아주 말끔하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건 평생 남기도 하거든.”
강철은 씩 웃으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고현수의 흰 와이셔츠로 입가를 닦았다.
“고현수. 넌 나한테, 그런 흉터야. 평생 남은, 크게 아프거나 후유증이 있진 않지만, 한 번씩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기분을 망치는, 그런 흉터 말이야.”
고현수는 잘린 귀를 손에 쥐고서 펑펑 울기만 했다.
마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아직 강철의 흉터가 단단히 아물지 않았을 때, 강철이 고현수에게 맞고 나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도 너한테 흉터 하나쯤은 남겨 주는 거야. 그 흉터를 보면서, 평생 날 떠올리라고. 평생. 영원히 잊지 말고.”
강철은 오른손으로 고현수의 잘린 귓가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쁘게 잘 잘렸네. 운 좋으면 다시 붙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말하고,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야이 미친 새끼야!”
[짝-!]
담임이 그의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2.
고현수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학교 측에선 일단 경찰에게 연락하지 않고, 그의 부모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강철은,
“이야…… 이거 참…… 교무실은 5월부터 에어컨을 켜둬서 아주 시원하고 좋네. 교실은 7월 말이나 돼야 에어컨 틀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교무실, 담임의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발을 얹은 채 편하게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다.
교무실에 있던 다른 선생들은 그 모습을 보며 서로 수군거렸지만, 와이셔츠와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눈빛이 이상한 강철에게 선뜻 무어라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쫄보 새끼들.’
그런 선생들을 비웃으며 강철은 의자에 걸린 담임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꺼냈다.
“이 양반은 맨날 일본 욕했던 양반으로 기억하는데…… 일제 담배를 피우시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철은 담임의 이중성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대로 그는 일제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자 선생들이 남자 선생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임 선생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남자 선생들은 강철의 담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하며 애써 그것을 외면했다.
“저 미친 새끼가!”
그리고 그때, 담임이 들어왔다.
“야이 새끼야, 너 미쳤어!”
담임은 그대로 강철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강철은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강철은 담배를 입에서 놓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진짜!”
담임은 강철의 머리채를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손목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놓고는, 그대로 강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 미친 새끼야. 너 미쳤어! 왜 애 귀를 뜯어 먹고 지랄이야! 네가 타이슨이야? 이 미친 새끼야!”
담임의 손찌검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차기 교감 자리를 노리는 자신의 야망이, 그 계획이 흔들린다는 것에서 오는 분노가 강철을 때리는 그의 손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러니까 고아 새끼들이 욕 처먹는 거야! 애미애비가 없어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고, 이 새끼야! 알겠어!”
그러다가, 담임은 선을 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선을 담임이 넘자마자, 강철의 눈빛이 변했다.
[탁-!]
“어머-!”
강철은 그대로 담임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이거 놔. 이거 안 놔! 이 고아 새끼가!”
당혹감과 분노에 담임의 얼굴이 시뻘겋게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강철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담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담임. 선을 넘으셨네?”
[뻐억-!]
그리고 그대로 담임의 안면에 박치기를 꽂았다.
“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담임은 뒤로 넘어졌다.
“어머나!”
“임 선생님!”
“쟤 미쳤나 봐!”
여기저기서 교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강철은 서늘한 눈으로 교무실을 한 차례 노려봤다.
그러다, 그의 눈에 담임의 책상 아래에 놓인, 아이들을 팰 때 주로 사용하던 몽둥이가 들어왔다.
강철은 그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당신도 나한테는, 흉터로 남긴 했어. 고현수가 남긴 것보단 약해서, 진짜 어쩌다 가끔 생각이 나긴 했는데, 어쨌건 잊을 순 없더라고.”
그리곤 피우던 담배를 담임의 면상에 집어 던진 후 그대로 몽둥이로 담임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