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최후, 2030년
1.
한때 하늘을 뚫을 듯 높게 솟아올라 있던 서울 시그니엘 타워.
그 타워는 과거에 수도권 사람들에게 북극성과도 같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흉물스럽게 상단부가 녹아내린 채 방사능을 품은 괴물들의 둥지로나 쓰이는 곳이다.
“커헉-!”
그곳 1층 로비로, 강철은 들어서면서, 쓰러졌다.
“쿨럭-!”
속에서 올라오는 기침과 함께, 그는 피를 토해냈다.
“오길동…… 이 유다 같은 새끼…….”
강철은 가까스로 양팔로 땅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잠시 뒤를 바라보다가, 비틀거리며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크르릉-!]
[하아악-!]
지하에서 올라오는, 개와 고양이가 대치하는 소리에 강철은 위로 올라갔다.
대략 5층 정도까지 올라갔을 때, 강철은 반쯤 녹은 건물 기둥에 몸을 숨긴 채 슬그머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휘유우웅-!]
[퍼어엉-!]
강철이 몸을 숨긴 기둥으로, 한줄기 불길이 날아들었다.
불길은 기둥에 부딪히자마자 폭발했고, 이미 반쯤 녹아버린 기둥을 마저 녹이기 시작했다.
“크아악-!”
강철은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날려 가까스로 폭발의 여파에 휘말리는 일은 피했지만, 이미 온몸에 상당한 화상을 입은 뒤였다.
“오길동-!”
강철은 절규했다.
그리고, 곧 그는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수십 명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크웁…….”
마냥 절규할 수는 없었다.
강철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대로 통로를 이용해 반으로 나뉜 빌딩의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반대편으로 넘어가자마자, 강철은 다시 몸을 숨겼다.
한때 백화점이 있던 곳이었던 만큼, 비록 8년째 방치됐다곤 하지만, 그럭저럭 몸을 숨길만 한 장소는 많았다.
“후우…… 흐읍…… 후우……”
최대한 숨소리를 내지 않고자, 깊게 호흡하며, 강철은 주변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키야아앙-!]
[하아아악-!]
저 멀리서, 고양이끼리 대치하는 소리만이 들림을 확인한 강철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건너편 빌딩에선 수십 개의 조명이 어지럽게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강철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고서 3m가량을 이동했을 때,
[까앙-!]
기둥에서, 개머리판 하나가 강철에게 날아들며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러나 개머리판이 날아들어 머리에 부딪히기 0.5초 전에, 강철은 자신의 초능력-오거닉 메탈을 발동했다.
개머리판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조그만 스파크가 튀며 개머리판은 박살 났고, 그 스파크에 의지해 강철은 눈앞에 있는, 중무장 군인의 면상에 그대로 박치기를 날렸다.
[꽈앙-!]
군인은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안면이 그대로 뭉개지며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저기다!”
“반대쪽 건물로 이동!”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의 충돌이, 적에게 강철의 위치를 노출 시켰다.
“젠장…….”
강철은 바닥에 떨어진 개머리판이 부서진 소총을 집어 들었다.
[타다다다다-!]
그리곤 그대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군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탄창을 다 비워낸 후 총을 버리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지원 바람. 지원 바람. 타겟이 현재 동쪽 방면으로 도주 중.”
군인을 이끄는 부대장이 무선을 쳤다.
그리고 그 무선이 전달되고 딱 3초가 지났을 때,
[휘유우우웅-!]
[퍼어엉-!]
아주 깔끔하게, 강철을 향해 불덩어리가 날아들었고, 폭발했다.
“크하악-!”
강철은 그대로 폭발에 휩쓸리며 3m를 날아갔다.
부실한 난간은 그의 육신을 버티지 못한 채 부서졌고, 그대로 강철은 1층 로비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불덩어리가 날아오는 순간, 강철은 그것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강철은 최대한 에너지를 쥐어짜 온몸을 오거닉 메탈로 둘렀다.
덕분에 그의 몸은 불타지 않았고, 추락에도 불구하고 어디가 깨지거나 한 곳은 없었다.
“쿨럭-!”
그러나 이미 에너지 소모가 심한 상태에서 발동한 초능력이었기에, 겨우 피부와 뼈만 보호할 정도로만 오거닉 메탈이 발동됐고, 덕분에 강철은 심각한 내상을 입어 피와 함께 내장 조각까지도 토해내야만 했다.
“쯧쯧쯧.”
그런 강철을 향해 한 무리의 군인과 한 사람의 초능력자가 나타났다.
“그러게 왜 도망을 가?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편했을 건데. 너나 나나.”
강철은 자신을 향해 빈정거리는 초능력자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오길동…… 어떻게……”
[퍽-!]
초능력자, 오길동은 그대로 강철의 턱을 걷어차 그를 기절시켰다.
“야, 이 새끼 옮겨.”
오길동의 명령에 군인들은 강철을 묶어서 옮겼다.
“병신 같은 새끼.”
오길동은 그런 강철의 모습을 보며 한 차례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2.
2022년 11월, 러시아가 핵 공격을 감행했다.
1차 핵 투발은, 흑해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이지스함의 방공 미사일에 격추돼 실패했다.
그러나 미군이 지상으로 향하는 핵무기에 신경 쓰는 사이, 러시아는 그 미군 함대에 2차 핵 투발을 감행했다.
흑해에 주둔 중이던 함대는 그대로 증발했고, 미군은 관련 보고를 받자마자 러시아에 핵 보복을 감행했다.
그 뒤로는 아비규환이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심지어 이란과 북한까지.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보유한 나라들은 저마다 자신의 적들을 향해 가차 없는 핵 공격을 감행했다.
광기의 핵전쟁은 1개월간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인류가 지난 수천 년간 쌓아 올렸던 문명은 이미 방사능 낙진에 뒤덮인 뒤였다.
핵전쟁은 인류의 관리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실험실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와 세균이 세상으로 튀어나왔고, 방사능 자체가 준 악영향도 상당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그것들을 피해 숨어들었고, 생존만이 인류의 최우선 가치가 됐다.
방사능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어디 실험실에서 탈출한 바이러스나 세균의 영향이었을까?
핵전쟁이 끝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곳곳에서 초능력자들이 탄생했다.
단순히 염력을 쓰는 사람부터, 강철처럼 신체 기관을 금속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의 초능력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초능력자들은 순식간에 이 생존 게임에서 우위에 올라섰고, 3년이 지났을 때, 그들은 기득권자가 돼 멸망한 세상의 주인이 돼 있었다.
무정부 상태에서, 초능력자를 중심으로 사람은 뭉쳤고, 초능력자는 그들 위에 군림하며, 마치 옛날처럼 스스로 전사가 돼 선봉에 서서 다른 진영을 침략해 세력을 넓혀갔다.
한반도 남쪽, 한때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있던 곳에서도 그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 공격은 서울과 부산에 집중됐다.
그중 일부는 미군의 요격시스템에 의해 격추됐고, 일부는 하늘에서 폭발해 도시를 증발시켰다.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자들은 여기저기 숨어들었고, 그중 초능력자가 된 이들은 세력을 넓혀가며 자기들만의 신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강철의 역할은, 어디 한 세력에 얽매이지 않은 채, 조건이 맞으면 달려가 일을 봐주는, 일종의 해결사이자 용병이었다.
물론 혼자 뛰진 않았다.
“그냥 길동이 형이라 불러. 씨벌 어차피 다 좆망한 세상에 75년 토끼띠나 92년 원숭이띠나 씨벌 그냥 형 동생 하면 되지.”
둘은 괜찮은 조합이었다.
강철이 오거닉 메탈로 온몸을 쇳덩이로 만들어 적진을 휘젓고 있으면, 화염술사인 오길동은 높은 지대에서 엄폐한 채 불덩어리를 날리며 적을 교란했다.
“이야. 씨벌. 내가 너를 한 20년 전에 만났으면, 씨벌 좀 더 잘나가는 인생이었을 수도 있겠는데 말이야.”
오길동은 강철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강철은 그런 오길동을 신뢰했다.
“씨벌 이 형님이 말이야. 꼴리면 일을 제대로 못 하거든.”
때론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고아로 자라 가족의 정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처음으로 그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기에, 그랬기에 강철은 그를 믿었다.
“옛날에 송파구라고 불리던 곳인데, 씨벌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일했던 길동 근처네. 아무튼, 거기에 용이 나타났대. 그래서 지금 경상도 작두랑 전라도 도끼가 서로 차지하려 한다는데, 그걸 씨벌 우리가 중간에 인터셉터 하는 거야. 어때?”
한반도를 양분한 두 거대 세력의 싸움 속에서, 물건만 챙긴다.
강철은 그런 오길동의 계획을 순순히 따랐다.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그와 함께라면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배신당했고, 초능력에 필요한 에너지가 바닥이 날 때까지 수백 명의 군인과 수십 명의 초능력자 그리고 오길동에게 쫓기다가 마침내 이곳, 옛 송파구 시그니엘 타워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3.
“으윽-! 으으으으으…… 으허어어어…….”
오길동의 신음에 강철은 눈을 떴다.
그는 핏발선 눈으로 오길동을 바라보았다.
오길동은 한 여자를 뒤에서 껴안은 상태로 그 여자에게 바짝 붙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으어어…….”
그러다 잠시 후, 그는 여자를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바지를 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곤 천천히 강철에게 다가왔다.
“알잖아. 씨벌 이 형님은 꼴리면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거.”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철커덕-!]
그러나, 그의 양팔과 양다리는 묵직한 쇠사슬에 바짝 묶인 상태였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마라. 네 모가지에 걸린 거 안 보여?”
담배를 꺼내 피우는 오길동의 말에 강철은 그제야 자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확인했다.
‘드래곤 하트?’
은은한 녹색 빛을 뿜어대는, 마치 심장처럼 생긴 펜던트.
드래곤 하트였다.
“이 비싼 걸 써가면서까지…… 이렇게 할 이유가 있나?”
강철은 허탈하게 웃으며 오길동에게 물었다.
“있지. 너 하나 없애면, 저기 전라도랑 경상도 경계에 있는 섬진강 일대가 내 영지가 되니까.”
“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형을 위해 동생이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해.”
오길동은 강철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군인에게서 전기톱을 건네받았다.
“참, 작두랑 도끼가 네 손목이랑 발목 하나씩 달라고 하더라. 증거물로 필요하다고. 하여간 새끼들 의심은 졸라게 많아요.”
[위이이이이잉-!]
“그러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알겠지?”
그 길로, 오길동은 강철의 양쪽 발목과 양쪽 손목을 전기톱으로 썰었다.
강철이 자랑하던 오거닉 메탈은, 드래곤 하트의 방해로 인해 발동되지 않았고, 그렇게 강철은 평생을 함께한 손발이 잘리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키야. 씨벌. 우리 동생, 존나 곤조 있어서 좋네. 다 잘렸는데도 아직 살아 있네?”
오길동은 그런 강철을 보며 씩 웃었다.
“뭐, 남길 말은 없고?”
그 말에, 강철은 오길동의 두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고함쳤다.
“길동아, 이 유다 새끼야. 내가 반드시 살아서 너도 똑같이……”
[위이이이잉-!]
강철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전기톱은 곧 그의 목을 썰었고, 그의 마지막 저주이자 유언은 잘린 목구멍 사이로 헛되이 바람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