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535화 (535/558)

제535화

언성을 높이던 장관급과 의원들이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으나 현재 둔의 격리 상태를 해체하기 위해 별도로 투입된 인원이 있습니다.”

아리엘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스터 헤리븐. 방법을 찾은 겁니까?”

장군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저 역시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하늘석의 주인이 지금 현장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하늘석을 꺼내 들자 다시금 소란이 일었다.

“하늘석의 주인? 난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때 잠깐 언급한 사람입니까?”

“어디 소속입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보다 우리와 인사를…….”

아리엘은 상황판을 손으로 가볍게 쳤다. 소요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리려 했으나 기회가 마땅치 않아 미루게 됐습니다. 그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 같은 무의미한 건 나중에 하시고, 정말로 하늘석을 조종할 수 있는 자가 이곳에 와 있는 겁니까?”

“예. 다들 보셨다시피 하늘석이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무언가 방도를 찾은 거겠죠.”

사람들 얼굴에 희망이 번져나갔다.

“이럴 게 아니라 얼른 그자를, 아니, 그분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향후 우리의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였다.

후벨 장군이 손을 들어 올렸다.

연합군 수뇌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연합 전선에 참여한 병력 중 절반 이상이 후벨의 말을 따를 테니까.

“아리엘 의원님.”

“네.”

“하늘석의 주인이란 자는 아군입니까, 아니면 적군입니까. 그걸 명확하게 해주셔야 우리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군도, 적군도 아닙니다.”

거짓을 배제하고 사실만 전해야 했다.

“의원님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전장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내 편, 아니면 개새끼. 이렇게 둘뿐이죠. 하늘석의 주인은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입니까? 둔을 탈환한 후 이권을 우리와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까?”

장성급 장교와 각 도시의 의원들 눈빛이 번들거렸다.

“하늘석의 주인은 어느 국가에도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건…….”

“향후 이권에 대해 그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둔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란 점입니다.”

“우린 지금 되찾고 난 후의 일을 말하는 겁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정의롭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죠. 정의에는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후벨이 일어서서 작전판 중심에 있는 둔을 가리켰다.

“둔, 아니, 저 안에 있는 학회의 지적 재산을 공동 소유하는 것. 그게 우리가 모인 목적이자, 피 터지게 싸운 이유 아닙니까? 지금 몰려오고 있는 개같은 것들한테 빼앗기지 않으려고 죽도록 싸우고 있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리엘도 후벨의 생각에 동의했다. 둔을 나눠 먹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 또한 사실이니까.

협회의 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욕망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했다.

정치적인 기반이 뒤흔들린 지금, 둔을 수중에 넣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됐다.

하지만.

“하늘석의 주인, 석주는 둔의 자치권을 보장해 주려 할 겁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것이고요.”

“석주란 작자도 둔을 탐내는 겁니까?”

“아니요. 그 사람은 탐내지 않아요. 애초에 탐낼 필요도 없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석주도 알고 있으니까요.”

아리엘은 이마를 살며시 긁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석주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저도 잘 몰라요. 이번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어요.”

“이권을 가져올 수 없다면 그 석주라는 자의 개입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린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질 겁니다.”

“알아요, 저도 잘 알아요. 그걸 위해서 여러분께 손을 내밀었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거, 아시잖아요? 우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석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마스터 헤리븐! 말씀해 보시죠. 저걸 해결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후벨 장군이 헤리븐을 바라봤다.

아리엘은 헤리븐이 고심하고 있으며, 그 결과 어떤 말이 튀어나오게 될지 깨달았다.

“마스터 헤리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하지 마세요. 냉철해질 필요가 있어요.”

아리엘이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가능합니다. 우리 우수한 마법사들이 해낼 테니까요.”

아리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결국 그렇게 나오시는군요.”

“아리엘 의원. 우린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 왔어요. 저 거대한 문제도 필시 이겨낼 겁니다.”

헤리븐이 침착하게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눈빛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도 아는 것이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앎의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리라.

“새로운 마법의 경지, 그게 탐나는 거 압니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모든 게 끝이에요. 지금은 석주에게 협력해서 사태를 수습하고…….”

그때였다.

천막을 들추며 엔엔과 기펠이 들어섰다. 엔엔이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통신기를 탁자 가운데 올려뒀다.

“가하란의 말대로 분위기가 험악하네요.”

통신기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얘기들 나눠요. 아, 남동쪽에서 몰려오는 병력은 걱정하지 마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지휘소를 나서는 엔엔이었다.

“나도 여러분께 한마디 드리죠.”

기펠이 통신기를 가리켰다.

“연합 도시는 타리움, 아니 이제는 동부라고 해야겠군요. 동부와의 화친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리엘 의원을 통해 들으셨으니 잘 알고 계시겠죠. 하지만 화친의 조건까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겁니다. 갑자기 일이 터졌으니까요.”

기펠이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연합 도시는 석주의 개입이 없을 거라는 약조를 받고 화친에 동의한 겁니다. 그대들도 잘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거대한 돌덩이가 머리 위에 떠 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 그 무력감이 얼마나 깊을지. 나야 즐거웠으나 다른 이들은…… 흠,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펠은 너털웃음을 남긴 후 지휘소를 나섰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중차대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있어 망각하고 있었다.

둔을 집어삼킨 반구체 위에 고고히 부유하던 거대한 돌을.

사태가 끝난 후 그 돌이 어딜 향하게 될지, 아리엘조차 잠시 잊고 있었다.

밀레나의 남편이자 협회와 연관이 있는 자.

지금껏 도움을 받았기에 응당 동부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해줄 거라 여겼으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아니었다.

그는 중재자를 표방하고 있었다.

어떤 포지션으로, 어떤 대응을 할지는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들리시나요.

통신기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수뇌부들이 침묵한 채 통신기를 바라봤다.

“네, 들려요. 통신 장비는 사용이 불가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나요?”

-하늘석을 증폭기로 사용하고 있어요. 공중에 있을 때는 파장을 억제하느라 제 기능을 못 했지만요.

가하란의 목소리와 더불어 건너편의 소란스러움이 전해져 왔다.

-죄송합니다, 이쪽에 일이 많아서. 잠시 자리를 옮길게요.

조용한 곳으로 옮겼는지 가하란의 목소리가 말끔해졌다. 소음도 없었고.

-이제 괜찮나요?

아리엘이 예, 라고 대답했다.

-상황이 안 좋으니 일단 전달부터 하죠. 둔에서 발생하는 마법 파장을 억제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난폭한 방법이라 일이 조금 생기겠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하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헤리븐이 입을 열었다.

“억제가 가능하다니?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치 않은 방법을 쓸 겁니다. 그나저나 워낙 바빠서 소개도 건너뛰었네요. 가하란입니다. 기펠 원로께서 석주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셨죠. 방금 말씀하신 분은…….

“헤리븐이요. 이곳에 모인 마법사들을 대표합니다.”

-마스터 헤리븐. 안 그래도 의견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의견이란 말에 헤리븐이 난처하다는 듯 눈을 씰룩였으나 금세 표정을 다잡았다.

“말해보시죠.”

-둔에서 발생하는 파장은 분배소의 전송탑에 쓰인 변환기에 마법을 덧댄 결과물입니다. 공존하기 힘든 두 개의 영역이 완벽하게 맞물린 것이죠. 이 문제를 마법사분들은 해결해 낼 수 있습니까? 공학적 지식이 없이?

“당장은 힘들지만 이쪽에도 유능한 마법사와 공학도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힘들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제가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실패할 시 저는 이 건에서 손을 떼고 마법사 클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제가 제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까요?

“전폭적인 지원이라면…….”

-제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큼, 그렇다면야…….”

헤리븐이 말을 끝맺기 전 후벨이 끼어들었다.

“석주. 내 이름은 후벨이고, 피 흘려 싸우는 병사들을 지휘합니다.”

-장군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후벨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통신기를 바라보지 않고 아리엘을 직시했다. 눈빛이 사나웠다. 상대를 가늠해서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내치겠다는 뜻이리라.

아리엘은 오른손을 가만히 들어 올렸다. 서두를 필요 없으니 일단 대화하라는 의미를 담아서.

“석주는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이라는 건…….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우린 둔 안에 있는 학회의 지식을 원합니다. 학회장이 독점했던 분배소의 지식을 원합니다. 이쪽 사정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배소 때문에 도시 전체가 뒤집힐 상황입니다.”

-압니다. 유단이 분배소를 이용해 마법 파장을 퍼트렸을 테니까요. 분배소 성능에도 문제가 생겼겠죠.

“알고 계신다니 얘기가 빠르겠군요. 석주께선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대가로 뭘 받아 가실 겁니까? 학회의 모든 것을 바란다면, 우린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지휘소에 있는 모두가 통신기를 바라볼 때였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둔입니다. 고향이죠. 이 안에는 제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받아 갈 건 없습니다. 그저 저 안에 있는 분들이 안전하길 바랄 뿐이죠.

후벨이 다시금 시선을 던졌다.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실임을 알렸다.

-제가 둔 출신이라는 게 못 미더우시다면, 그래요. 루드 팩토리가 아직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둔의 루드 팩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특히나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때였다.

“아! 가하란, 낯익은 이름이라 여겼는데. 하지만 그 아이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헤리븐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통신기를 바라봤다.

“그 가하란 씨 맞습니다. 제가 보증을 서죠.”

아리엘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이 무얼 걱정 중인지 압니다. 또 무얼 바라는지도 방금 들었고요. 분배소에 관한 건 관심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제 선에서 관련 지식을 공유해 드릴 수도 있고요.

“석주께선 분배소의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적어도 분배소의 원천 기술만큼은 유단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동자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 때였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입구 쪽에 있던 사람들이 재빨리 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옛 거병.”

“저건 블루아이 아닌가?”

블루아이란 말에 후벨이 사람들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리엘도 뒤따라 나섰다.

블루아이였다.

하늘석에서 봤을 땐 분해된 상태였는데, 지금은 온전한 모습으로 숲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된다.

소형화 이전의 거병.

무패의 상징.

-어느 정도 정리된 거 같으니 이제 움직여 주시죠.

가하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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