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6화
“예?”
아직 5분도 지나지 않았다.
정비소에서도 오토마타 분리 작업은 못해도 1시간이 걸렸다. 고정 프레임을 제거하고 각 부위에 연결된 커넥터까지 떼어내려면 시간이 꽤 걸리니까.
전문 장비를 동원해도 1시간인데, 이렇게나 빨리 된다고?
가하란이 둥근 쇳덩어리를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지름 40cm 정도 되어 보이는 반구형 쇠.
처음 보는 유닛이었다. 저런 게 거병 안에 있었던가?
“이게 뭡니까? 제가 아는 오토마타는…….”
“이건 오토마타 안에 들어가 있는 유사 정령입니다. 인지 통합을 담당하는 핵심이자, 생각 회로의 집약체죠.”
유사 정령. 간이 정비를 배울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오토마타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제가 알고 있기론 오토마타 안에서 이거 떼어내려면 며칠은 걸린다고…….”
“익숙해지면 다들 쉽게 할 수 있어요.”
정말인 걸까?
가하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마법 공학이란 게 워낙 어렵다고 정평이 나서 기체에 문제가 생기면 정비소에 맡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정비소 놈들, 그동안 이 간단한 작업을 하면서 생색낸 거였어?
지식이 곧 돈이라더니.
그간 줄줄이 새어 나간 공임비가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배울 자신이 없으니 돈으로 충당하는 수밖에.
-아버지가 하는 말 곧이곧대로 듣지 마세요.
“뭐?”
-저건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뭔가 오해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닥이 작게 말했다.
“기체는 여기 두시죠. 폭발할 가능성이 있어요. 처리하면 옮길 수야 있지만, 제가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이걸 챙긴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유사 정령을 옆구리에 낀 가하란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거 제가 들게요.”
필은 유사 정령을 보며 말했다.
“보기보다 무거워요.”
“이렇게까지 도와주셨는데 그런 것까지 맡길 수 있나요. 얼른 주세요.”
가하란이 한 손으로 들 정도면 버틸 만한 무게라는 뜻이었다.
“그럼.”
유사 정령을 넘겨받았다.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가하란의 말대로 보기보다 무거웠다. 50kg은 넘을 거 같은데? 아니, 더 무겁나?
끙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끌어안았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머리에 이었다.
정수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으나 괜찮은 척 웃었다. 넘겨받자마자 무겁다고 내려놓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새, 생각보다 무겁네요.”
“제가 들게요.”
“아니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제 단짝인데, 제가 들어야죠. 그렇고 말고요.”
금방 요령이 생겼다. 목이 약간 뻐근할 뿐 걷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저 친구는 보기와 달리 힘이 센 건가. 필은 가하란의 팔을 살폈다. 옷에 가려져 있지만 확실히 체구가 좋아 보였다.
보다 보니 알게 된 건데, 한쪽 다리가 의족이었다. 아마 그라운드 제로 때 잃은 거겠지.
“아까 그 거병은 정비팀이 있는 곳으로 간 거겠죠?”
넌지시 물었다.
“네. 지금쯤이면 올라갔겠네요.”
“올라가요?”
가하란은 애매한 웃음만 지은 채 말을 끊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으나, 가하란이 다시 질문을 던져와 대화가 시작됐다.
자잘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개척지에 와서 사냥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다 보니 어느덧 살아온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애가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하겠어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어릴 땐 착 달라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머리가 좀 컸는지 집에 돌아가면 모르는 사람처럼 쳐다봐요.”
“섭섭하시겠어요.”
“어쩔 수 없죠. 아시다시피 사냥이란 게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돈 되는 곳은 위험하고, 위험한 곳을 사냥터로 잡으려면 준비 시간도 길어지죠. 저번에는 두 달 만에 집에 갔더니 애가 절 보고 울더라니까요.”
말하다 보니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가하란 씨 덕에 살아서. 죽었으면 우리 애가 낯설어하는 그 얼굴조차 못 봤을 테니까요.”
“대마수가 사라지고 난 후에 마수들이 미개척지 안쪽으로 거처를 옮겼죠?”
필은 머리에 이고 있던 유사 정령을 가슴에 품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마수가 사라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저희처럼 사냥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은 상황이 안 좋아졌죠. 아는 팀이 몇 곳 있는데, 다들 해체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어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올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평생 이 짓 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없고. 아니, 애초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 할 수 있는데…… 웃기게도 도시로 들어가려면 돈이 필요해요. 악순환의 연속이죠.”
끙 소리를 내며 유사 정령을 머리 위로 올리려 할 때였다. 손이 가벼워졌다. 닥이 유사 정령을 가져간 것이다.
-제가 들게요.
“아니야, 내가 들게.”
-불안해서 못 보겠습니다. 이거 떨어트려서 외부 마력선에 문제 생기면 이 친구한테 치명상이니까요.
“……그런가.”
옆에 있던 가하란이 말했다.
“닥한테 맡기세요. 말씨가 저래도 좋은 애니까요. 생각도 깊고.”
사람을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필은 닥을 흘깃 본 후 가하란에게 말을 걸었다.
“저거, 아니, 닥을 직접 만드신 거죠?”
“예.”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네요. 자기가 거병이라고 하던데, 정말 저 안에 오토마타가 들어 있는 건가요?”
“오토마타와는 조금 다르죠. 오토마타는 운동 지각을 위한 보조 장치인데, 저 아이한테는 인간의 뇌가 필요 없으니까요.”
“……아.”
솔직히 제대로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운동 지각이니 인간의 뇌니. 하지만 뉘앙스로 대충은 이해했다.
“꺼림칙한가요?”
“아니요, 아니요. 그냥 신기해서요. 저런 친구도 진짜 생겨나는구나, 하고.”
“친구라는 표현, 듣기 좋네요.”
“동물들한테도 친구를 붙이는데 기계라고 뭐 다를까요? 물론 제 주관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데, 서로한테 도움이 되면 다 친구라 할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저 애들이 세상에 나아갔을 때 부딪침이 적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부딪치더라도 이해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가하란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닥이 한 말도 떠오르고.
생각해 보면 인간처럼 행동하는 저 자그마한 거병을 보며 기겁할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홍보용 기계인형을 취기에, 혹은 장난삼아 발로 차는 것이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기계인형은 곧바로 일어나 준비된 멘트를 내뱉는다. 통행에 방해돼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홍보용 문구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 단순한 기계들 사이에, 닥 같은 초소형 거병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장난삼아 발길질하던 인간을 향해 자기방어를 행사하고, 나아가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기계를 보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 애는요, 인형을 엄청 좋아해요.”
필은 딸을 떠올리며 살며시 웃었다.
“툭 치면 뒹굴뒹굴 구르는 인형이죠. 대단한 장치가 돼 있는 건 아니지만, 애가 그걸 어찌나 아끼는지. 한 번은 못 고칠 정도로 망가져서 애 엄마가 그걸 버리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난리가 났죠. 내 친구라고, 버리면 안 된다고.”
필은 뒤쪽에 있는 닥을 슬쩍 바라봤다.
“말도 못 하는 그 인형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애예요. 기술이 발전하고 닥 같은 작은 친구들이 우리 애와 어울려 사는 시대가 오겠죠. 우리 애는 그런 기계들과 좋은 친구가 될 거고요.”
“걱정되지 않으세요? 많은 문제가 생길 텐데.”
“생기기야 하겠죠. 근데 다 괜찮을 겁니다. 애들은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고 또 마음이 넓거든요. 몇 달 만에 들어온 아빠가 낯설어서 멀찌감치 쳐다보다가도, 어느 순간 다가와 방긋 웃어줄 정도로.”
얘기하다 보니 너무 사적인 얘기인 것 같아 머쓱해졌다.
“좋으신 분이네요.”
“제가요? 그렇게 좋은 놈도 아니에요. 다들 똑같죠, 뭐.”
웃으며 얘기하다가 문득 든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하늘석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 아까부터 주변이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석이 만들어낸 그늘 때문이었다.
“저, 저게 왜 저러죠?”
겁이 덜컥 났다. 저게 떨어지면 도망칠 곳도 없었다.
“일정이 좀 바뀌었네요.”
가하란이 말했다.
“일정이요?”
“내부 수리가 앞당겨졌어요. 안전 루트까지 모셔다드리려고 했는데, 힘들 것 같네요.”
필은 아, 하고 탄식을 흘리다가 이내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것이다.
미개척지에서 마수에게 당하고도 살아남았다. 나아가 인심 좋은 사람을 만나 살해당하지 않고 유사 정령까지 넘겨받았다.
돈에 환장한 인간이었다면 만나자마자 죽이고 완파된 거병을 노획했을 것이다.
망가졌다고 한들 팔면 큰돈이 되니까.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살길은 제가 알아서 찾아볼 테니 얼른 가세요.”
닥에게 유사 정령을 건네받았다.
사실 울고불고 매달리고 싶지만, 가하란의 눈을 보는 순간 마음을 접게 됐다. 다정한 인간이나, 계획된 일정을 쉽게 바꿀 사람은 아닌 듯했다.
“혼자 가실 수 있겠어요?”
“사냥의 신께 기도드리며 가봐야죠. 이틀 정도면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 후.”
유사 정령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가하란이 눈웃음을 지었다.
“빌려드릴게요.”
“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울면 안 되니, 빌려드릴게요. 편하게 쓰세요. 일을 마치고 나면 회수하러 갈 테니.”
뭘 빌려주고 뭘 회수한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위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회색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하늘석에서 분리된 돌덩이인가?
“조심해요!”
필은 급하게 외쳤으나 가하란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이윽고 회색 덩어리가 뚜렷하게 보이는 곳까지 내려왔다.
그건, 돌덩이가 아니었다.
그건, 온전한 형태를 갖춘 거병이었다.
거병이 지면에 닿기 직전, 빨래를 터는 듯한 소리가 크게 나더니 흙먼지가 일었다.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가웠으나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공중에서 떨어진 거병이 지면에 안착하기 직전 감속하더니, 이내 안전하게 땅에 내려앉았다.
“저, 저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 위에 있는 건 하늘석이었다.
하늘석에서 왜 거병이 떨어진 거지? 떨어진 거병은 왜 꼬꾸라지지 않고 부드럽게 안착한 거고?
-가시죠, 아버지.
어디선가 해더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도시에서 보던 것보다 배는 커 보였다. 어지간한 나무는 밀어 버리면서 나아갈 것 같았다.
트럭 뒤쪽에는 마수의 사체가 실려 있었다.
“시동키를 잠깐 주시겠어요?”
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시동키를 넘겼다. 가하란이 시동키를 손에 쥐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눈앞에 화려한 선들이 펼쳐졌다.
시그니처라는 걸 금방 알아봤다.
몇 번의 동작이 끝난 후 선이 사라졌다.
“임시 사용자에 포함해 뒀어요.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인지 통합 과정에서 약간 부하가 걸리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무슨 말씀을…….”
어지러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봐요.”
가하란이 트럭에 올라탔다. 닥도 몸을 실었다.
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저거 정말 저 주는 겁니까?”
“주는 건 아니고요, 빌려드리는 거예요. 안전 루트까지 문제없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한테 가세요.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으나 가하란의 말 한마디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며시 웃던 가하란이 정면을 바라봤다. 트럭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은 멀어지는 트럭을 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멈춰 있던 하늘석이 트럭이 가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세상에.”
필은 넋이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