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3화
유단을 따라 유리 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납게 비명을 지르던 여자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탄드라는 여자에게 다가섰다.
이치를 넘어선 마법의 결과물.
실험체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때마침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탁 풀린 눈이 보인다. 만취한 사람처럼 얼굴 근육도 늘어져 있었다.
다가가 손을 흔들어봤다. 동공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발작기와 안정기를 반복해요.”
“아까는 발작이었고 지금은 안정된 건가. 주기는?”
“안정기가 길지는 않아요. 곧 아까처럼 날뛸 겁니다.”
여자가 몸을 웅크리더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톱이 뜯겨 나가 피가 흐르는 손.
“……아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무언가 전하고 싶은데 혀가 뜻대로 안 움직이는 듯했다.
“말 할 수 있겠어요?”
실험체가 소리에 반응했다. 초점을 잃고 방황하던 눈동자가 그제야 제 역할을 했다.
침묵이 찾아왔다. 여자는 입을 다문 채 탄드라를 바라봤다.
집요한 시선이었다. 적개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얘기하고 싶은데. 내 목소리 들려요?”
다시금 말을 걸 때였다. 여자가 두 팔을 내뻗었다. 탄드라는 눈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여자의 팔은 허공을 갈랐다. 철퍼덕 엎어진 여자가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말로 해요. 난 몸싸움 같은 거 모르니까.”
“……나 ……장.”
“뭐라고요?”
“떠나…… 당장…….”
어법이 이상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머리가 망가진 걸까?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뜻인가요? 지금 당장?”
“도망……쳐.”
탄드라는 고개를 저으며 유단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여자 눈에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보이는 모양이야.”
“아니요. 그 여자는 제대로 보고 있을 겁니다. 보고 있으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고요.”
유단이 다가와 등 뒤에 섰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어깨에 올랐다. 어쩐지 섬뜩했다.
“의원님. 자세히 보세요.”
“볼 만큼 봤어.”
유단의 손을 떨쳐내고 돌아서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어깨가 강하게 붙들렸다.
놀란 눈으로 유단을 바라봤다. 유단의 얼굴이 닿을 것처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어서요. 저기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의원님께선 확인해야 해요.”
윽, 하고 신음이 나왔다. 어깨가 바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유단이 이끄는 대로 다시 실험체 앞에 섰다. 엎어져 중얼거리고 있던 여자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
“의원님. 한때 인간은 영혼이 사후에 생겨나는 물질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물질들의 종착역이 천국과 지옥이라고 여겼고요.”
“유단! 이거 놔!”
“하지만 수많은 네크로맨서와 단 한 명인 오크족 주술사에 의해 영혼이란 게 단순한 물질이 아님이 증명됐죠.”
짓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여자와 시선의 높이가 같아졌다.
탄드라는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깨달았다. 이곳은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곳이며, 설령 소리가 새어 나간다고 한들 그 누구도 와주지 않는다는 걸.
“영혼은 단일 개체가 아닙니다. 아니, 이마저도 확실한 건 아니죠. 영혼과 영혼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니까요.”
“유단!”
“인간의 생전 모든 기록은 영혼 세계에 남습니다. 죽고 난 뒤에 육체에서 빠져나간 어떤 정보가 영혼 세계란 저장 공간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차곡차곡 영혼 세계에 자료가 쌓여가죠.”
손끝이 피로 물든 실험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구역질 나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탄드라는 질겁하며 고개를 틀었다. 동시에 두 손을 내밀어 다가오는 여자를 밀쳐냈다.
손에 치인 실험체가 푹 꼬꾸라졌다.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마치 봉제 인형을 건드린 느낌이었다.
“오크족 주술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다고 하죠. 정확히는 영혼 세계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확인하는 겁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영혼 세계를 통해 앞날을 볼 수 있다는 건, 인간이 태어난 순간 모든 게 결정돼 있다는 뜻이니까요.”
“유단,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일단 놓고…….”
“영혼 세계는 너무나도 방대해요. 그 안에 담긴 개인의 정보를 찾아내 이식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예, 정말 힘들었어요. 의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겁니다.”
말하는 사이 실험체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가 울먹이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날 놓아줘…… 유단……. 날 붙잡았으니까 이제 난 필요 없잖아?”
그 순간 탄드라는 소름 끼치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있어선 안 될 일. 하지만 부정하려 할수록 상상은 구체화됐고 자명해졌다.
“아니야.”
고개를 내저었다. 기어 오는 여자가 이제는 두렵다. 두려워 떨쳐내고 싶으나 발길질할 수도 없었다.
저기에 있는 건…….
“교수님. 수고했어요.”
유단이 말했다. 누구에게 한 것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교수라 불린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동시에 목이 꺾였다. 천장에서 내려온 기계 팔이 실험체의 목을 사정없이 비튼 것이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단이 손을 놓자마자 탄드라는 주저앉았다.
눈이 탁 풀린 실험체가 보였다. 숨이 입 안에서 껄떡대기만 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팔꿈치로 바닥을 찍어 몸을 돌렸다.
나가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르륵 내려온 기계 팔이 발목을 붙잡았다. 차가운 감촉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의원님. 제게 정말 많은 걸 가져다주셨죠. 의원님 말씀대로 저는 정치적인 생물이 아닙니다. 정치력은 모자란 구석이 있죠. 그걸 의원님께서 보완해 주셨어요.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단…… 이러지 마. 안 돼.”
팔을 뻗어 유단의 구두를 잡았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놀라서 옆을 바라봤다. 죽은 실험체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시체는 말할 수 없다. 이건 환청이다. 아는데도 소리가 멎질 않았다.
“아직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뭐든 할게. 뭐든 네가 바라는 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유리 벽 바깥에 누군가가 있었다.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탄드라는 입을 살며시 벌렸다.
비슷한 체격, 비슷한 얼굴.
“닮았죠? 성형하는 데 꽤 공을 들였어요. 물론 피부 조직이 금방 허물어져서 일주일 후면 다른 얼굴이 되겠죠. 케아의 기술을 온전히 이어받았다면 좀 더 낫겠지만, 그쪽 실험 데이터는 찾기가 힘들어서.”
“아니야, 유단. 너 착각하고 있어. 저 인간이 날 닮았다고 한들 날 대신할 순 없어. 내가, 내가 충성을 다할게. 그러니까…….”
“아니요, 의원님. 대신할 수 있어요.”
유단이 벽을 톡톡 치자 밖에 서 있는, 나를 닮은 여자가 말하기 시작했다.
방음 기능을 해제했는지 또렷한 목소리가 유리 벽을 뚫고 들어왔다.
유년기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청년기를 넘어 장년기에 들어섰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그녀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힘들었어요. 의원님의 영혼 세계를 특정해 기억을 가져오는 건. 제가 의원님과 십수 년 넘게 붙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새삼 오크족 주술사의 위대함을 깨닫게 돼요. 그자는 몇 가지 준비물만 있으면 단시간에 영혼 세계에서 개인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니까.”
탄드라는 유단을 바라봤다.
“네 입으로 그랬잖아. 기억이 상충해서 본래 자아를 잃게 된다고. 그러면 언젠가 저 여자는 네 말을 듣지 않게 될 거야. 또 다른 내가 될 테니까!”
“맞아요. 의원님 말씀대로 그런 위험성이 있죠. 인간에게 인간의 기억을 덧씌운다면 말이죠.”
부정의 뉘앙스였다. 인간에게 인간의 기억을 덧씌우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의 기억을…….
“불편하네, 사람의 몸이라는 건. 기억 오류도 심각하고.”
여자가 말했다.
“탄드라 의원. 걱정하지 말고 그 안에서 있어. 난 당신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기에 당신의 모든 버릇을 알고 있거든. 걸릴 일은 없을 거야.”
“너 누구야. 너 누구냐고!”
탄드라는 유리 벽 밖에 있는 여자를 향해 비명을 질렀다.
“조금 복잡하긴 하네. 육체의 기억, 탄드라 당신의 기억, 그리고 그걸 통합 관리하는 내 자아. 아! 난 체시라고 해. 반가웠고, 수고했어.”
날 닮은 여자가 손을 흔든 후 유단에게 말했다.
“난 돌아갈게. 가서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
“바로 시작해. 사람들과 만나기 전에.”
“알고 있어. 근데 아프겠지? 날것의 고통.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은데.”
“겪어봐. 그게 어머니가 겪었을 것들이니까.”
“얼굴을 불로 지져야 한다니. 얼마나 아플까?”
혀를 차던 여자가 방을 빠져나갔다.
탄드라는 이마를 땅에 댄 채 헛웃음만 흘렸다.
“의원님.”
유단의 손이 등에 닿았다.
“걱정 마세요. 의원님의 꿈은 이뤄졌어요. 의원님의 기억은 계속 이어져요. 불사인 거죠. 단지, 기억을 이어가는 주체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에요. 그거 아시나요? 종의 최우선 과제는 후대에게 자신의 씨앗을 남기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의원님은 아주 훌륭하게 역할을 다하셨어요.”
유단이 나가고 유리 벽이 닫혔다. 탄드라는 허망한 눈으로 죽은 실험체를 바라봤다.
“……아니야.”
다시금, 시체 입에서 낄낄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상태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천만다행이죠. 피부도 어느 정도 복원됐고요. 다만, 화재 열기로 성대가 상한 탓에 목소리는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의술사의 설명을 들은 후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섰다. 유단도 작은 선물을 든 채 움직였다.
“안 오셔도 되는데.”
병상에 기대앉은 탄드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가 들리며 기괴한 모습이 됐다.
“다행입니다, 정말.”
학회 원로들이 쾌유를 비는 꽃다발과 선물을 침상 옆에 내려놓았다.
“손님 대접도 못 해 드리고, 미안한 마음이 크네요.”
“아닙니다. 의원님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충분합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네요.”
원로들이 한마디씩 건넨 후 뒤로 물러섰다. 유단이 앞으로 나섰다.
“의원님.”
“바쁘신 학회장님까지 오셨네요.”
탄드라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뒤쪽에 서 있던 원로들이 작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원로들이 자리를 비켰다.
문이 닫히자마자, 탄드라가 앓는 소리를 내며 뒤로 누워버렸다.
“아파.”
“잘 참았어.”
“색다른 경험이 좋은 것만은 아니야.”
“통증이란 게 참 많은 것을 자극하지.”
“인간의 몸을 입어보니까 알겠어. 이성은 빈약해. 감정에 휘둘리지. 감정조차 감각의 노예고.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순간 저절로 욕이 나오더라. 널 죽이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나중에 한 번쯤은 죽어줄게.”
“됐어. 널 죽인다고 무슨 득이 있겠어. 그보다 내 본체는 어때?”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지. 자기 분신이 어떤 감정을 겪고 있나, 하고.”
“기계 몸일 때가 편했어. 인간 몸뚱이는 불편해. 배뇨감은 여전히 끔찍하고.”
배를 어루만지며 말하는 탄드라였다.
“어머니의 몸은?”
“2안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 같아. 밀레나의 몸을 회수하는 건 힘들어 보이니까.”
“반년 넘게 신호가 끊긴 것도, 다시 잡힌 것도 예상 밖이었으니까.”
“추정치로는 국경 너머인 것 같은데, 거기까지 손을 쓸 수는 없으니.”
밀레나의 육신은 탐나는 재료지만 필수불가결한 원료는 아니었다.
육신에 안착하지 않고 기억을 붙드는 것도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고.
“거의 다 왔네.”
탄드라가 웃었다. 유단은 천을 들어 얼굴에 난 진물을 닦아주었다.
“몸이 나으면 레테의 범위 확장을 제안해 줘.”
“알겠어. 세잔은 구워삶을 수 있으니 다른 의원 둘만 더 끌어들이면 돼.”
“아르드헨과 아리엘, 그 둘은 조심하는 게 좋아. 특히 아르드헨.”
“그쪽은 무시해야지. 여전히 감시 중일 수도 있으니까.”
유단은 고개를 끄덕인 후 일어섰다.
“몸조리 잘해. 기억 혼선이 오거나 육체, 혹은 탄드라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오려 하면 바로 날 부르고.”
“그건 걱정하지 마. 잘 통제하고 있으니까. 유단, 너처럼 말이지.”
탄드라가 눈을 감았다.
유단은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줬다.
밑 작업이 끝났다.
발을 들이미는 순간 멈춘다는 옵션은 사라진다. 아르드헨의 경고가 실현되기 전에 일을 끝낼 것이다.
“가시죠.”
병실을 나선 후 맑은 웃음을 지으며 원로들과 마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