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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병공 진군가-440화 (440/558)

제440화

-첫 전투라 너무 떨려요!

“긴장하진 말고.”

-제가 실수해도 이해해 주세요.

“그건 위험한데.”

웨이브 겔이 주는 묵직한 압박감.

가하란은 조종간을 붙잡고 상체를 숙였다. 미니 비트로 연결됐기에 신체의 움직임이 불필요하나, 버릇이 돼서 몸을 숙여야 편했다.

크그긍, 쿵!

구동계가 맞물리며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몸놀림이 가벼웠다.

-마나 분포도 파악 완료했어요. 형태에 따른 공격 패턴도 점검해 볼게요.

“데이터가 쌓여도 마수를 상대할 때는 조심해야 해. 비슷하게 생겨도 공격해 오는 방식이 전혀 다르니까.”

양날 도끼를 양손에 쥐었다.

마수가 밀려오고 있으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해피의 지원과 거병의 성능. 거기에 착안까지.

-저쪽도 우리를 발견했어요.

전방 180m.

마을로 돌진하던 마수 떼에서 다섯 마리가 떨어져 나왔다.

-다섯. 첫 전투 데이터를 쌓기에는 최적의 숫자네요.

“혼자 해볼래?”

-일단은 견학할게요.

“너라면 금방 배울 거야.”

-물론이죠! 전 똑똑하니까요.

숨을 살짝 들이켠 후 전진했다.

기분 좋은 진동이 몸을 감쌌다.

“다수와 전투할 때는 둘러싸이는 걸 가장 조심해야 해. 외장갑의 내구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후면 관절 쪽을 공격당하면 기동성을 잃게 되니까.”

60m, 50m, 40m.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낏자루 하단부를 건드렸다. 날이 샛노랗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수도 성향이 있어. 일단 몸부터 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절대 거리를 주지 않고 관찰만 하는 놈도 있어.”

-최전방에서 뛰어오는 저 마수는 눈이 회까닥 돌아간 거 같은데요?

“잘 봤어. 저런 놈들은 두려움을 몰라. 일단 덤비고 보지.”

-그렇다는 건…….

속력을 올렸다. 거리가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뒤쪽에 있는 마수들이 산개하는 사이, 정면에 선 마수는 그대로 뛰어들었다.

무척이나 정직한 공격이었다.

강철 같은 신체와 육중한 질량.

인간이라면 대항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짓눌리고, 찢겨 죽을 공격.

하지만.

“얘들은 아직 거병이 뭔지 모르나 봐.”

늘어트린 도끼를 수직으로 그어 올렸다.

쐐애액!

지면을 훑으며 올라간 날을 향해 마수가 뛰어들었다. 번들거리는 눈에는 탐욕만 가득해 보였다.

“일단 한 마리.”

들개처럼 달려들던 마수가 주둥이부터 반으로 쪼개졌다.

촤아악, 장기가 쏟아지며 외장갑 위로 미끄러졌다. 널브러진 마수의 시체가 꿈틀거렸다.

-징그럽다는 단어의 표본이 저거겠네요.

“절단했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돼. 갑자기 분열하는 놈도 있으니까.”

-자연 상태의 마나를 응집해 놓은 뼈. 그걸 제거해야 한다. 기억하고 있어요.

해피가 시각 정보를 전달해 줬다. 허리 부분에 돋아난 뼈를 움켜쥐고 뜯어냈다. 그제야 움찔대던 시체가 완전히 침묵했다.

-쟤들은 바로 안 덤비네요.

“사냥해 본 적이 있는 놈들이야. 어쩌면 거병이 뭔지도 알고 있겠지.”

-학습하는 놈들은 위험하다고 했죠?

“지능이 뛰어난 녀석들은 견적을 보고 바로 몸을 빼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가하란은 거리를 둔 채 빙글빙글 도는 마수를 바라봤다. 지시라도 받은 듯 이탈하지 않고 대열을 꾸린 채 공격 준비를 했다.

“얘들 머릿속에는 공격만 들어 있나 보네.”

-신기하네요. 게웰이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본능에 따라 돌발적인 행동을 할 텐데.

“단순한 명령이 아닐 수도 있겠어.”

-어디 보자. 인간들 사이에서도 심상 세계를 건드려 인지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죠? 마수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생각하는 게 좋아. 그리고…….”

-최악을 상정해 움직인다. 아빠의 행동 방침이죠.

“난 잔걱정이 많거든.”

-그 걱정의 절반을 제가 가져갈게요. 제 연산 능력은 대단하니까요!

후우웅!

허리를 틀며 양날 도끼를 던졌다. 동시에 도끼의 경로를 따라 뛰었다.

삼족 보행하는 마수가 왼쪽으로 이동하며 도끼를 피했다.

-반격이 와요!

상단부에 달린 마수의 입이 쩍 벌어지며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오는 길에 잔뜩 주워 먹었는지 녹지 않은 뼈들이 섞여 있었다.

옆으로 기동해 분사되는 액체를 피했다. 땅에 처박힌 도끼를 회수하고 마수를 바라봤다.

-두 번 정도는 정면에서 맞아도 버틸 수 있어요.

“도중에 모듈 교체할 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피해야 해.”

-빡빡하네요.

“불리한 싸움이니까.”

힐긋 뒤쪽을 살폈다.

백여 마리의 마수가 방책을 뛰어넘어 정비소가 밀집된 지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방위군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중심지 상황이 최악이란 뜻이었다.

-뒤에서 와요!

후면 시야가 눈앞을 스쳐 갔다.

전술적인 움직임. 전방에 시야를 붙들어 두고 후면과 측면을 공략하고 있었다.

조종간을 힘껏 쥐며 상체를 뒤로 뺐다. 발목에 달아둔 전방부 노즐이 열리며 마나를 분사했다.

쿠우웅!

형상화된 마나 파장이 거병을 밀어냈다.

뒤에서 달려들던 마수가 방향을 트는 게 보였으나 이쪽이 한발 빨랐다.

동체를 회전시키며 움켜쥔 도끼를 사선으로 그었다. 서걱 소리와 함께 살점이 잘려 나갔다.

앞다리를 잃은 마수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지 바닥에 몸을 기댄 채 노려보기만 했다.

-셋 남았어요.

“우선 왼쪽부터.”

-이유는요?

“경험상 타격 수단이 없는 놈들이 조금 더 위험했거든.”

왼쪽에 있는 마수는 둥근 몸뚱이에 다리만 네 개 달려 있었다. 각진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거리를 계속 두는 게 신경 쓰였다.

-다친 마수 쪽으로 움직이는데요.

체액을 쏟아내며 숨을 몰아쉬는 마수 옆으로 둥근 마수가 위치했다.

-마나 밀도 변화!

경고를 듣자마자 가하란은 도끼를 날렸다. 직격 직전의 도끼를 오른쪽에 있던 마수가 몸을 날려 쳐냈다.

그사이 둥근 마수가 세로로 쫙 갈리더니, 다친 마수를 집어삼켜 버렸다.

착안을 열어 상태를 살폈다. 선의 개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백팩에 부착한 검을 뽑아 들었다.

정보량의 변화는 예측 불가한 상황을 낳는다. 시간을 주지 않고 단숨에 처리하는 게 편했다.

몸으로 도끼를 받아낸 마수가 피를 줄줄 흘리며 앞을 막아섰다.

시간을 벌고 있다.

뒤쪽에서 포식 중인 마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지가 발현된 순간 해피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최대 출력이에요!

타다당, 발목에 덧댄 외장갑이 전부 들렸다. 뽑혀 나온 노즐이 한계치에 가까운 마나를 뿜어냈다.

마전기가 급감했다.

경고 알림이 머리를 강타했다.

동시에 몸이 짓눌렸다. 웨이브 겔로도 완화하지 못한 충격이 몸을 때렸다.

순간적인 가속.

마수들이 코앞에 있었다.

촤아악!

오른손에 쥔 검으로 전면에 나선 마수를 가르고, 뒤이어 무릎으로 남은 마수를 찍었다.

쿵!

거병에 깔린 마수가 터져나가며 내장을 흩뿌렸다.

-마나 밀도 증폭! 가시화에 돌입했어요!

늦어버린 걸까.

아군을 삼킨 마수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형태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마나 밀도가 한없이 높아질 뿐이었다.

무엇을 할 작정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으아아! 저거에 휘말리면 진짜 아플 거예요!

“아픈 정도에서 끝나면 다행이야!”

마나 분사를 통한 가속은 불가능하다. 이미 모든 노즐이 망가졌다.

구동계의 힘을 믿어야 했다.

도끼가 있는 방향으로 뛰며 도끼를 회수한 후 전력으로 자리를 이탈했다.

쿠그그그그.

지면에 난 균열들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집어삼키는 빛과 함께 강렬한 파장이 후면부를 타격했다.

-으아악!

해피가 비명을 질렀다. 가하란은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마나 씰을 뚫고 마나 파장이 전해졌다.

웨이브 겔조차 충격 흡수량을 초과해 형질을 잃어버렸다.

온몸이 뒤흔들렸다. 벨트를 하지 않았다면 체임버 천장에 머리를 처박았을 것이다.

콰아아앙!

뒤늦은 폭음이 들려왔다.

자세 제어가 불가능했다. 미니 비트 직결마저 순간 풀렸다.

쿠구구, 쿵!

나자빠진 거병이 땅을 긁으며 미끄러졌다. 가하란은 조종간을 틀어쥐며 최대한 버텼다.

쇠 갈리는 요란한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저런 무식한 방법이라니.

해피가 경악에 찬 목소리를 냈다.

-인지 통합 재설정에 들어갈게요. 직접 연결은 위험하니 제가 서포트할게요.

손목에 감은 시동키에서 따끔한 감촉이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확보됐다.

“의도적 마나 폭발. 걸어 다니는 생체 폭발물은 효과적이긴 하지.”

뻐근한 목을 어루만지며 뒤를 바라봤다.

폭심지에서 형형색색의 마나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지름 10m 정도의 크레이터.

전투 불능이 된 동족을 포식해 에너지원 삼아 폭발하다니.

-비슷한 형태의 마수가 확인됐어요.

해피가 전해준 영상을 바라봤다. 마을로 진입한 마수들 사이에 둥근 형태의 마수가 섞여 있었다.

마수는 자연 발생하며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둥근 마수만큼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느낌이 강했다.

창조가 가능할 걸까?

순간 마수로 변한 꼬마가 떠올랐다.

저 중에 한때 인간이었던 마수가 섞여 있는 걸까?

-인간이 마수의 재료가 되는 거라면 양상이 많이 바뀌겠네요.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날에는…….

“뒷일은 정리를 끝낸 후에 생각하자. 우선은 저 마수의 위험성을 알려야 해.”

-친구들한테 내용을 전달할게요. 지금 해더 트럭은 방책을 따라 이동 중이니 용병단과 멀지 않아요.

“가능하면 둥근 놈부터 처리하라고 해줘. 그게 불가능하면 최대한 떨어지라고 하고.”

미니 비트를 활성화해 놓아서 다행이었다. 정보가 전달됐을 테니 폭발에 휘말려 사망하는 용병은 줄어들 것이다.

-아빠,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

-그게 아니라, 저게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가하란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되돌릴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면 망설이고 고심하겠지만, 나한텐 그 방법이 없어. 그러니 망설일 이유도 주저할 이유도 없어.”

-도덕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면 바로 말해줘요. 제가 대신 할게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였으면 난 여기 있지 못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전 언제나 아빠 편이니까 힘들면 꼭 말해야 해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피.”

-네.

“디졸브 필드 한계 거리가 몇으로 나왔어?”

-마나 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희가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반경 1.4km까지는 가능해요. 하지만 제대로 억제하려면 1.1km가 안전선일 거예요.

가하란은 도시 쪽을 바라봤다.

적군과 아군이 뒤엉켜 있었다. 필드를 생성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

“필드가 생성됐을 때 저지력은 어느 정도일까?”

-마수의 질량에 따라 다를 거예요.

“거병까지 멈출 테니,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쓸 수 없어.”

가하란은 고개를 틀었다.

마수의 영토. 대마수가 자리한 곳.

“마중을 나가자.”

-슬리피를 부를까요?

“상황을 전달하고 나면 이쪽으로 와달라고 해. 선배님께는 죄송하지만, 같이 마수 주둥이에 머리를 들이밀어야겠어.”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겠네요.

도시 시설이 파괴되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사람은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필렌과 타챠가 있으니까.

두 백전노장을 믿고 전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고 있어요!

“가자.”

우그러진 왼팔 외장갑을 떼어낸 후 이동을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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