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화
시간이 날 때면 마을 옆 산으로 올라가 국경을 내려다보곤 했다.
이곳과는 다른, 제국이라 불리는 그곳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동생은 그때마다 옆에서 같이 갈 거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쭉 변함없이.
언젠가는, 언젠가는.
“……형. 신은 어떻게 생겼어?”
눈을 질끈 감은 동생이 물었다. 쇼엘은 천천히 다가오는 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여섯 개의 다리, 거미를 닮은 몸통, 길쭉하게 돋아난 염소의 머리.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저걸 신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구심과 함께 공포가 솟구쳤다.
“형?”
쇼엘은 동생의 손을 꽉 잡았다.
“무섭게 생겼어.”
“무서워? 그러면 그냥 돌아갈까?”
“아니, 괜찮아. 생긴 게 전부가 아니잖아. 그리고 이거 아니면 이제 방법이 없어.”
맞물렸던 동생의 눈꺼풀이 서서히 들렸다. 탁한 회백색 안구가 보였다. 검게 빛나야 할 눈동자는 뿌옇게 변해 방향을 잃고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난 괜찮아. 잘 안 보여도 돼.”
“멍청아, 그런 소리 마. 신이 도와줄 거야.”
“무섭게 생겼다며. 이상한 거 아니야?”
“……이상하긴 해. 하지만 기적은 평범한 곳에서 오지 않아.”
쇼엘은 동생의 손을 꽉 잡았다.
2년 전부터 동생의 눈에 문제가 생겼다. 또렷했던 눈동자가 뿌옇게 변하더니 점점 앞을 못 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돌봐주던 의술사를 찾아가 병명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혼자서 생계를 꾸리며 백방으로 방법을 알아봤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동생의 눈은 점점 더 빛을 잃어갔고, 최근에는 코앞에 있는 물건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절망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한다고 여길 때였다.
신의 존재를 알게 됐다.
“신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십시오. 이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모습입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껍데기는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만 내릴 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안내자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대다수가 진화의 사도를 마수라는 더럽혀진 이름으로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에 접근해 그들이 세운 얄팍한 체제를 무너트릴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안내자는 울분을 토해내듯 말했다.
쇼엘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여기에 모인 대다수가 비슷한 심정이리라.
진화의 사도? 신의 대리자?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필요한 건 신의 기적이었다. 기적만 보여준다면 ‘마수 포용자’의 붉은 깃을 치켜들고 평생 마을을 뛰어다닐 것이다.
“이쪽으로.”
자아도취에 가까운 긴 연설이 끝나고, 안내자가 어떤 여자를 앞으로 이끌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여자였다.
안내자가 여자의 목발을 치워내고 손을 붙잡았다.
“신께서 우릴 보살펴 주실 겁니다! 연약한 육체에 강대한 힘을 부여해 주실 겁니다!”
여자가 안내자와 함께 걸었다.
쇼엘은 여자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럼에도 발길을 돌리지 않은 건 신이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리라.
“신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가련한 우리를!”
안내자가 여자의 손을 놓았다.
여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털썩 소리와 함께 주변이 조용해졌다.
쇼엘은 동생의 손을 있는 힘껏 쥐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신이 여자를 향해 고개를 내리고 있었다.
* * *
“퍼포먼스가 좀 과하지 않습니까? 당내에서도 말이 많습니다.”
“오히려 과해서 좋은 겁니다. 일단 이목을 끄니까요.”
“그렇다 쳐도 반발심이 높아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강경파는 이참에 정리하죠.”
말들이 오갔다.
드로이트는 좌중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정리하죠. 이번 목회가 끝나고 강경파 인사가 돌아오면 일선에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엔비에 정주교가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오늘도 직접 안내자를 자청하며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 인간은 정말로 마수를 신봉하는 것 같아요.”
정주교 중 하나가 발언했다.
“엔비에 정주교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건 전체의 뜻이니까요. 길드에서도 따로 의사를 전해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에서 나섰다면 수월하겠군요.”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활동을 한동안 중단할 겁니다.”
“제조 연합에서 백기를 든 겁니까?”
“예. 협조금을 전달해 왔습니다.”
“노선을 조금 바꿔야겠군요. 공포감 조장은 이제 안 먹히는 것 같으니, 기적을 팔아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기적이라.”
드로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은 돈을 부르는 단어였다.
“엔비에 정주교가 하도 기적, 기적 거리고 다녀서 골치가 아팠는데…… 저희가 잘 이어받으면 새로운 사업 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연기자를 알아보도록 하죠. 그나저나 엔비에 정주교는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봅니다. 마수와 기적이라니.”
“진지한 눈으로 진화의 사도를 언급하는데,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뭘 팔아야 하는지 잊은 거 같아요. 정말로 마수에 심취하다니.”
“배우가 자기 본분을 잊고 진짜로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하하하.”
드로이트도 짧게 웃은 후 말했다.
“너무 안쓰럽게 생각하지는 맙시다. 덕분에 기적에 눈먼 시민이 이토록 많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치료비 명목으로 조금씩 기부금을 받으면 길드 내에서도 발언권이 강해질 겁니다.”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죠. 아, 케핀 쪽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찻잔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연락해 봤는데 별 성과는 없습니다. 그쪽은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마법 공학을 버려야 한다,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어요.”
“정말 미친놈들이군요.”
“길드에서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세력도 재편성했겠다, 이제 불순물은 걸러내야죠.”
“반마법공학파, 케핀. 우리 같은 장사꾼인 줄 알았는데 광신도라니. 끔찍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상한 신념을 몸에 두른 자들만큼 무서운 게 없죠.”
드로이트는 시계를 바라봤다.
“목회를 끝내고 슬슬 복귀할 시간이군요.”
“기적이 일어날 날이라며 잔뜩 흥분해서 갔는데,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마수에게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납니다. 엔비에 정주교가 헛짓거리하지 않고 무사히 목회를 마무리해서 돌아오는 거.”
기적이니 진화니, 정신 나간 소리였다. 어째서 그렇게 변해버린 걸까?
1년 전까지만 해도 회계 장부를 담당하며 돈 계산을 철저하게 하던 사람인데.
“목회에 모였던 사람들을 잘 달래야 합니다. 기적이 없다고 떠들고 다니면 사업에 차질이 생기니까요.”
오늘 목회에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절박한 사람들이다. 한 번 삐끗했다고 기적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잘 달래서 다음 목회로 이끌어야 한다.
적당히 꾸며진 기적이 그들의 지갑을 열 것이다.
“자, 준비합니다. 우리만의 기적을.”
* * *
“형.”
“괜찮아! 신께서 고쳐주실 거야!”
형의 목소리가 달아올랐다.
대체 무엇을 본 걸까?
조금 전만 해도 꺼림칙해하던 형이, 이제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신을 외치고 있었다.
아까는 그냥 신이었는데, 이제는 ‘신께서’라고 한다.
“호이른, 아무 걱정 하지 마. 난 기적을 봤어. 신께서 널 기적으로 인도할 거야.”
“쇼엘 형, 정말이야? 정말 기적이 일어났어?”
“그래. 정말이야.”
기대감과 걱정에 휩싸여 기다릴 때였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꽉 막히는 울음이 아니었다. 막힌 곳이 터지는, 일종의 쾌감마저 드는 울음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굴 위한 감사일까?
“호이른, 들었지? 지금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네 앞에 있어.”
앞에 있다고 한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떠도 희끄무레한 형상만 상에 맺힐 뿐이다.
“다리가 심하게 기형인 여자분이셨는데, 지금 완전히 나았어.”
형이 붙잡은 손을 꽉 쥐었다.
윽,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나을 수 있어! 다시 보게 될 거야!”
정말일까? 정말 기적이 일어나는 걸까?
“앞으로 오세요.”
굵은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정주교인 엔비에의 음성이었다.
형의 손을 붙잡은 채 걸었다.
눈앞에 거대한 무엇이 있다는 것만 알아챌 수 있었다.
“신께서 당신의 육체를, 가련한 육신을 보듬어줄 겁니다. 껍데기를 이겨내고 진정한 모습을 되찾으세요.”
형이 손을 놓았다.
호이른은 긴장한 채 앞을 보았다. 회색빛을 띤 알 수 없는 물체가 가까이 다가왔다.
열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끈적한 무엇인가가 이마에 닿았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누군가가 등을 밀었다.
“괜찮아요. 놀랄 필요 없습니다. 신께서 보듬어주고 계실 뿐이니까요.”
정주교의 말이었다.
이게 신의 손?
끈적하고 뜨겁고, 아무튼 끔찍한 감촉이었다. 눈이 제대로 보였다면 아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이마를 더듬던 정체불명의 무엇이 이제는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눈꺼풀이 따끔거렸다. 예리한 것으로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 정신이 흐릿해질 때였다.
새하얀 세상이 보였다.
“보여?”
놀라서 말이 튀어나왔다.
숲 한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여긴 어디지?
“안 보인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야.”
남자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봤다. 자그마한 아이를 품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누, 누구세요?”
“나? 유단. 이름 좋지? 구세주로 소문이 났다는데.”
비아냥거리듯 웃던 남자가 안고 있던 아기를 내밀었다. 호이른은 어정쩡하게 아이를 받았다.
“먹어.”
“네?”
“먹으라고. 그러면 눈이 보이게 될 거야. 그뿐이야? 아주 튼튼해지지.”
“아, 아이잖아요. 먹으라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조잘조잘 말 많네. 어차피 먹게 돼 있어. 이걸 이겨내는 인간은 아직 본 적이 없거든.”
역겨운 소리였다. 아이를 먹으라니. 이렇게 작은 아기를…….
품 안에 있는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온몸이 떨렸다.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몸을 덮쳤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식욕이었다.
“나도 이것저것 먹어봐서 아는데, 사람 고기만 한 게 없어. 근데 그건 더 특별해. 왜냐고? 그건 너 자신이거든. 자기 자신의 고기를 먹어본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만 관심 없었다.
먹고 싶다.
그 생각만 가득 들 뿐이다.
“천천히 뜯어 먹어. 죄책감 같은 건…… 어차피 없으려나? 여기서 나가면 기억조차 못 할 테니 괜찮아. 만찬을 즐겨.”
호이른은 입을 크게 벌렸다.
* * *
“호이른!”
동생 얼굴에 묻어 있는 끈적한 체액을 닦아냈다. 기절한 것처럼 쓰러져 있던 동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가 반겨줬다. 회백색 세계 아래 가라앉아 있던 검은 눈동자가 제대로 보였다.
“너…….”
“형.”
“보여? 나 보여?”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 새끼야, 나 원래 잘생겼어.”
쇼엘은 동생을 안았다.
의술사도 포기한 동생이 나았다.
기적.
진화의 증거!
동생을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들었다. 번들거리는 노란색 눈동자가 세 개 보였다.
마수의 눈.
아니, 기적의 증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께서 무얼 바라시든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정주교가 말했다.
“신께서는 물질적으로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깨닫길 원할 뿐이죠.”
기적은 실존했다.
마수, 아니, 진화의 사도야말로 인간을 구원할 길이었다.
쇼엘은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봤다.
결손되고 손상됐던 육체를 전부 되찾았다.
“기적.”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