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4화
“이 분야에 평생 발 담그고 살아왔기에 받아들일 수 있다. 거기에 네가 만든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과 기계, 경계의 모호함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기계에게 호의를 보일까. 당장 시장만 가도 움직이는 기계인형을 발로 차는 이들이 많다.
그것들은 감정을 모르니까. 차였다고 울지 않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기계니까.
애초에 자기방어 능력 같은 것도 없다. 지극히 단순한 기능만 넣어둔 채 인간을 위해 노동하는 인형.
“선배님.”
거병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거니까요.”
은은한 마나 파장이 전해져 왔다.
두 팔을 늘어트리고 있던 거병이 움찔했다.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완전 독립 거병이.
“제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서 이게 옳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른 모든 사람이 같은 태도로 이 아이들을 대하길 바라지도 않고요.”
“뜻을 품으면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네가 만든 아이들, 언제까지 숨겨둘 수도 없는 일이지. 세상에 공개될 테고 사람들은 격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겠죠.”
“그때가 찾아왔을 때 너는 무어라 대답할 거냐.”
인권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건 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이 해결할 겁니다.”
가하란이 거병을 바라봤다. 거병의 머리가 들썩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들렸다.
시각 장치로 생각되는 부위가 빛을 반사했다. 고개를 움직이며 주변을 확인하더니 이내 팔을 들어 올렸다.
-내 몸이네.
슬리피의 목소리였다.
“내부 시스템은 어때?”
가하란이 물었다.
-완벽해. 신호 전달에도 문제없어.
“걸어볼래?”
-귀찮은데.
“부탁할게.”
자그마한 거병이 통통 튀듯이 창고 안을 돌아다녔다.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관절의 움직임도 부드러웠다.
-운동 능력에도 이상 없어.
“몸을 얻은 소감은 어때?”
-관리할 게 하나 더 생긴 거라 싫어.
“섭섭하네. 나름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그러면 고맙다고 말해줄게, 아빠.
가하란과 슬리피.
만약 눈을 감고 대화를 들었다면 어느 쪽이 기계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유사 정령들도 소통에는 문제가 없으나, 일상적인 대화가 길어지면 주제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잡담하라고 만든 기계가 아니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가하란의 작품들은 대화하면 할수록 말이 늘었다. 옹알이를 뗀 아이가 점점 다양한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처럼.
유사 정령이 언어 학습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눈앞에 있는 슬리피처럼 단시일에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지 못한다.
게다가 슬리피는 고유한 억양마저 획득했다.
가하란이 새로운 언어 팩을 회로에 각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신문을, 책을 보여주고 옆에서 잡담을 나눴을 뿐이다.
옆에서 지켜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슬리피는 산재한 자료를 독자적인 창조성으로 재해석해 정보로 만든 것이다.
마치 인간이 공부하는 것처럼.
“대체 어떤 학습 장치를 쓴 것이냐.”
왠지 모르게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만나 뵌 적 없는 옛 선배의 작품에 제가 몇 가지를 가미해 봤어요. 근데 재미난 건 입력된 값을 알고 있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 결괏값이 나오는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뭐?”
“알고리즘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복수의 선택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과정 확인이 어려워지는 거죠.”
“과정을 알지 못하는데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
웍센은 말을 멈췄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우린 알지 못하면서도 많은 걸 사용해 왔지. 그게 당연시되니 위험하다는 것조차 잊게 됐고.”
심상 세계의 발현인 마법.
마나가 어떤 식으로 작용해 의지가 형상화되는지, 위대한 마법사도 모를 것이다.
베이스 아키텍처.
유사 정령의 핵심 회로이자, 모든 마법 공학의 기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 존재할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모르면서도 쓰고 있다.
사용할 수 있으니까. 연산 과정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결괏값이 나오니까 쓴다.
단순한 마법등부터 첨단의 거병까지.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구성됐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지.”
사고에 금이 가고 있었다.
가하란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회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이 모호해져요.’
발상을 뒤집어 보면 인간 역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한테는 규격이 존재한다. 두 개의 눈, 하나의 코, 쌍으로 이뤄진 귀와 입.
신체 구조 역시 비슷하다. 외과적 치료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시체를 들쑤시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뼈마디 위로 근육과 신경, 지방. 그렇게 살이 덧대지고 피부로 마무리.
웍센은 작은 거병을 바라봤다. 두리번거리던 슬리피와 눈이 마주쳤다.
“슬리피.”
-왜?
“만약 인간이 너희를 보며 혐오감을 느낀다면, 넌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싫어하라고 해.
“뭐?”
-생각에는 에너지가 없어. 그들이 날 미워한다고 해서 내 존재가 달라지지 않아. 난 괜찮아.
“생각이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너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간이 널 해할 수도 있다.”
-아픈 건 싫으니까 설득해 볼게.
“그래도 안 된다면?”
-내 몸을 내줄게. 몸이 없어져도 난 살아 있어. 더 자유로운 곳에서.
거병이 바닥을 살피더니 누워버렸다.
-이게 눕는다는 거구나. 감속계가 얌전해져서 기분이 좋아. 이 자세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잘래.
조용해졌다.
웍센은 멀거니 슬리피를 바라보다가 이내 박수 치며 웃었다.
“가하란, 네 말이 맞는구나. 우리가 대신 고민할 게 아니었어. 이 녀석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준비가 됐으니까.”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는 이해해 주겠고, 누군가는 싫어하겠죠. 그게 당연한 거고 건강한 거고요.”
가하란이 거병 안에 든 유사 정령을 꺼내 들었다.
“근데 잠은 좀 줄였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이 자는 거 같아요.”
“애들은 잘 때가 예쁜 거다. 일어나면 골치 아파.”
가하란이 미소를 지었다.
“근데 아무리 작아졌다고 한들 마전기 소모량이 상당할 텐데, 작게 만든 이유가 있냐?”
유사 정령과 구동계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액상 근육은 마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작아졌다고 한들 기계인형에 비하면 배터리 소모량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연구 목적으로 만든 거라면 외장갑은 물론, 각 관절과 모듈까지 정교하게 제작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보여드릴 게 하나 더 있어요.”
창고 뒤쪽으로 갔다.
“이건 뭐냐?”
일단 바퀴가 보였다. 6축 트레일러, 그런데 거병 운송용 트레일러에 박스가 얹혀 있다니.
강철로 제작된 박스였다.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6축을 사용한 건 그렇다 쳐도, 왜 이런 박스를 만들어 놓은 거지?
“용도가 무엇이냐? 이런 걸 해더 트럭으로 끌고 다닐 이유가 없을 텐데.”
좌우로 이동하며 박스를 살필 때였다. 가하란이 측면 손잡이를 붙잡았다.
“사람 힘으로 들어 올리라고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냥 보여 드릴게요.”
가하란이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박스 측면이 서서히 벌어졌다. 새가 날개를 펴듯 반원을 그리며 덮개가 올라갔다.
“……이상하긴 했지. 해피를 제외한 유사 정령이 여섯 대였으니까.”
박스 안쪽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소형 거병이 보였다. 세 대씩 좌우로 배치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었다.
“이걸 동시에 기동하겠다고?”
“거병은 운송팀과 정비팀이 붙어서 움직이는 게 기본이잖아요.”
“옛날에나 그랬지. 소형화를 이룬 후부터 현장에 정비팀이 나가는 일은 사라졌다. 20m가 넘었던 거병과 달리 지금은 거병을 회수하는 게 쉬워졌으니까.”
“거병이 소형화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죠. 미개척지 탐사, 그리고 마수 토벌. 아, 거기에 마전기 개발도 한몫했죠.”
가하란이 트레일러에 손을 올렸다.
“대마수. 그곳엔 생각하는 마수들이 모여 있어요. 소형화된 거병을 상대로 수년간 전투를 치러온 지성체들이. 그리고 몇 년이나 침묵하고 있죠.”
“그래서…….”
“어디까지나 대비예요. 별일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땐 얘들 데리고 뒷동산에서 소풍이나 가려고요.”
웍센은 늘어선 초소형 거병을 바라봤다.
“아까 말하다 말았지. 얘들을 움직이려면 얼마만큼의 배터리가 들어갈지, 난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아무리 크기를 줄였다고 해도 동시에 여섯 대면…….”
“충전식과 예비용 배터리 각각 6개. 그 정도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요.”
“턱없이 모자랄 거다. 효율 체크를 정확히 해 봐야겠지만, 12개는 견적서조차 뽑을 수 없을 거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죠.”
가하란이 박스를 바라봤다.
웍센 역시 시선을 옮겼다.
잠깐만.
단순히 보관을 위한 공간이라면 이렇게 정교하게 제작할 필요 없었다.
막말로 천으로 덮어두는 게 해더 트럭의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무게는 곧 에너지 소모.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만 있다면 뭐든 덜어내야 할 텐데…….
“지금은 이동형 분배소라고만 말해둘게요.”
가하란의 담백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웍센은 눈을 깜빡였다. 나이를 먹어서 귀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헛소리가 들린 것 같았으니까.
“뭐라고?”
“이동형 분배소요.”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이제는 놀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존 마법 공학을 초월한 것들을 몇 번이고 봐왔으니까.
하지만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나 대역은 공간마다 제각각이라 지정된 위치에, 온갖 안정화 설비를 건설해야 겨우 마전기를 얻어낼 수 있다. 마나를 마전기로 바꾼다는 건 그만큼 까다로운 일이지. 그걸 이동하면서 실행한다고?”
가하란의 입이 살며시 벌어지는 걸 본 순간, 웍센은 손을 내저었다.
“됐다! 말하지 마라.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겠지. 고약한 놈.”
머리에서 열꽃이 피어났다.
웍센은 외투를 벗고 찬 바람을 맞았다.
“네가 다 해 먹어라. 에라이, 못된 놈아.”
“선배님, 왜 그러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가하란이었다. 웍센은 가하란의 손을 쳐냈다.
“솔직히 말해봐라. 나 놀리려고 일부러 하나씩 보여주는 거지?”
“그럴 리가요. 어제 막 마무리 지어서 선배님께 보여드린 겁니다.”
“……좋아. 그렇다 치고, 내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는데.”
웍센은 트레일러를 흘깃거린 후 말을 이었다.
“이게 끝이겠지? 이보다 더 기괴한 걸 꺼내 놓을 생각이라면…….”
그때였다. 가하란의 눈꼬리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이놈 이거, 뭔가 또 있구나.
“사실 선배님만큼 제 얘길 이해해 주시고, 새로운 견해를 제공해 주시는 분이 안 계세요. 그래서 다른 것도 몇 개…….”
“지랄한다, 지랄해!”
웍센은 가하란 품에 있는 유사 정령을 빼앗아 들었다.
“차라리 얘가 더 인간답다. 못된 놈, 늙은이 놀리는 게 그리 좋더냐?”
“선배님. 제가 언제 또…….”
“더는 안 들을 거다. 징글징글해.”
이동형 분배소만 한 게 더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정말로 은퇴하든지 해야지, 원.”
“저랑 작업 계속하셔야죠.”
“일없다!”
웍센은 슬리피를 안은 채 공방으로 돌아왔다.
그놈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더 있는 거지?
유사 정령을 감각 장치에 연결하자마자 슬리피가 입을 열었다.
-아빠랑 잘 지내줘. 아빠는 할아버지 좋아해.
“나도 좋아는 한다. 근데 내가 일궈온 게 계속 부정당하니 정신이 남아나질 않는구나.”
-아빠는 신이 난 거야. 인간 중에서는 유일한 이해자가 할아버지니까.
“……다독여 주는 거냐?”
-그냥 그렇다는 거야. 난 다시 잘게.
조용해진 유사 정령을 보며 웍센은 웃음을 지었다.
* * *
“정숙하세요! 곧 신께서 오실 겁니다.”
안내자의 외침에 쇼엘은 입을 다물었다. 같이 온 동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아. 이제 다 치료될 거야.”
쇼엘은 고개를 들었다.
숲의 어둠을 뚫고 ‘신’이 여섯 개의 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