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2화
과거에 마수는 머나먼 존재였다. 이야기로도 접해본 적이 없는,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라운드 제로가 없었다면 마수는 여전히 우는 아이를 겁주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다.
“저건 뭐 하는 걸까요.”
에단은 안면을 땅에 처박은 채 빙글빙글 도는 마수를 바라봤다.
인간의 생활 반경을 뚫고 들어온 마수. 공상의 존재가 아닌 실제의 위협이 된 마수.
수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실전을 토대로 다양한 자료가 쌓였지만, 여전히 마수는 알 수 없는 생명체였다.
당장 눈앞에 있는 마수도 뭘 하는 것인지, 에단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곁에 서 있던 타챠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예리해진 눈으로 먼 곳을 살피고 있었다.
에단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손 피리를 짧게 불어 다오를 날려 보냈다.
영혼의 단짝이 동쪽을 향해 비행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잠깐 보고 올게요.”
에단은 나무 위에 오른 다음 얇은 가지 끝에서 발을 굴렀다. 흐릿한 대기를 뚫으며 몸이 솟구쳤다.
발밑으로 키 작은 나무들이 보였다. 나무 사이사이에 고개를 처박은 마수들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다오가 맴돌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대마수 근처, 마수로 된 장벽 가까이에 검은 웅덩이가 보였다.
“뭐가 보였지?”
“시커먼 웅덩이요. 지름은 5m 정도. 다오가 두려워하고 있어요.”
단짝을 불러들였다. 품에 안긴 매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토록 긴장한 다오는 오래간만이었다.
“확인해야겠다.”
타챠가 깃발을 풀어낼 때였다.
지면에서 고개를 처박고 있던 마수가 움찔하더니 머리를 들어 올렸다.
에단은 마수의 눈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더니, 이내 퍽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키에에에, 사방에서 날카로운 울음이 들려왔다.
“온다.”
타챠가 창대를 움켜쥐며 말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마수가 뛰쳐나왔다.
하나같이 눈이라 생각되는 부위가 터지거나 뭉개져 있었다.
함정인가?
도주로를 살필 때였다. 십여 마리의 마수들이 타챠를 지나 동쪽으로 뛰어갔다.
바닥에 떨어진 체액이 숲 안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타챠가 창대를 땅에 꽂아 넣었다.
“뭐였을까요?”
단 한 마리도 덤벼들지 않았다.
마치 포식자에게 쫓기는 사냥감처럼 미친 듯이 뛰어가기만 했다.
“게웰이 소집한 건가.”
타챠가 의문을 담아 말했다.
“잠깐만요.”
마수들이 질러간 방향을 살폈다.
“군체가 있는 쪽이긴 한데, 그보다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두려움에 떠는 다오를 달랜 후 다시 날려 보냈다.
머리꼭지에서 맴돌던 다오가 날개를 크게 휘저으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에단은 다오의 눈을 빌렸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선명한 색감을 갖춘 주변 풍경이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마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백여 마리가 넘는다. 크기는 소형. 예측 심도 3 정도 되는 소형 마수들이 향한 곳은 검은 웅덩이였다.
머리가 어지럽다. 전신의 피가 이마 정중앙을 향해 쏠리고 있었다.
단짝 역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봐야 했다.
웅덩이 앞에 모여든 마수가 지면에 얼굴을 박았다. 그 상태로 웅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뭐지?”
웅덩이에서 뻗어 나온 검은 팔이 주변 마수를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붙잡힌 마수는 잠시 발광하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마수가 웅덩이 안으로 끌려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주변에 모인 모든 마수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마지막으로 검은 웅덩이를 바라봤다. 다오의 두려움이 전해져 온다.
에단은 양팔로 몸을 감쌌다. 지독하게 추웠다.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이대로 고개를 틀고 싶었다. 봐서는 안 될 걸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의지를 쥐어짜 내 응시했다.
콜록, 참을 수 없는 기침이 나왔다. 동시에 단짝이 보여주던 풍경이 머릿속에서 물러났다.
기침이 계속 나왔다. 에단은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비릿한 쇠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세상이 핏빛이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내니 시뻘건 게 묻어나왔다.
이건 다오와 동조한 대가가 아니었다. 검은 웅덩이를 직시한 부작용이었다.
저 멀리서 힘없이 날아온 단짝이, 날개를 접으며 품에 안겼다.
에단은 조심스럽게 다오를 쓰다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끔찍한 게 있어요.”
밑으로 내려와 타챠에게 설명했다.
“검은 팔이 마수를 집어삼키고 있다라.”
“좀 더 확인해 볼까요?”
타챠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력이 한계에 달했다. 용감한 작은 친구 역시 체력이 다했고. 너는 네 할 일을 훌륭하게 끝마쳤다. 나머진 내가 할 일이지.”
“일단은 돌아가죠. 저건 너무 위험해 보여요.”
“위험해 보일 때, 해결해야 한다. 정말로 위험해지기 전에.”
타챠가 제구를 들어 올렸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앞서 나가는 타챠의 뒤를 따라갔다. 타챠는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질리도록 합을 맞춰온 사이였다.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더욱 같이 가야 했다. 위급 상황에서 타챠의 눈이 되어야 하니까.
“아니다 싶으면 먼저 빠져라.”
“제 지시나 잘 따라주세요.”
에단은 눈가를 훔쳐냈다. 좁아졌던 시계(視界)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붉었던 색감도 사라졌다.
“사냥꾼들이 봤다는 게 아무래도 저거 같죠?”
“그런 것 같다.”
“이쪽 길목이 막힌 거라면, 당분간 동부로 넘어가긴 글렀네요.”
깃털이 듬성듬성 빠진 비행형 마수 한 마리가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역시나 안구라 여겨지는 부위가 파괴돼 있었다.
대가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방향을 찾던 마수가, 이내 주둥이를 땅에 박더니 얼굴을 지면에 긁으며 나아갔다.
“마나는 얌전해요.”
“이유 없이 날뛸 녀석들은 아니지.”
“게웰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면, 매개는…….”
에단과 타챠가 동시에 바닥을 내려다봤다. 타챠가 제구를 높게 들더니 있는 힘껏 땅을 찍었다.
쿠우웅!
땅이 갈라졌다. 불규칙적으로 솟아오른 지면 사이로 꿈틀대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거목의 뿌리처럼 지하 전반부를 뒤덮고 있었다.
“떨어져라.”
타챠가 제구를 내지르는 사이, 에단은 뛰어올라 타챠의 어깨를 밟고 높게 솟은 나무에 안착했다.
“염병하네, 진짜.”
욕이 절로 나왔다.
타챠가 만들어낸 균열을 시작점으로 길게 땅이 파이고 있었다. 갈라짐 끝에 검은 웅덩이가 있었다.
“아저씨!”
“보고 있다.”
갈라진 지면 사이로 검은 물이 스며 나왔다. 액체 같은 질감이었는데 금방 쇠처럼 단단해졌다.
자연적인 물질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의사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하는 생명체 같았다.
“게웰.”
에단은 저 멀리 장벽처럼 쌓여 있는 마수들, 대마수를 바라봤다.
착각이겠지만 수만 마리의 마수가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니, 착각이 아닌 걸까?
“공생은 받아들이나 너희가 욕심을 내겠다면…… 나 또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타챠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붉은 빛은 타챠의 손을 타고 제구로 전해졌다.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이내 피처럼 검붉게 변하는 제구였다.
땅에서 스며 나온 검은 생명체가 방사형으로 쫙 퍼지며 주변을 에워쌌다.
마치 그물 같았다.
에단은 긴장한 채 타챠와 검은 그물을 바라봤다. 격돌이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챠가 한 걸음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에워싸던 검은 생명체가 한 점으로 뭉치더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에단은 알 수 있었다.
지하 가득 채우고 있던 검은 물체가 물러나고 있다는 걸.
손을 들어 목덜미를 매만졌다. 차갑게 식은 땀이 손안 가득 차올랐다.
“뭐였을까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거겠지.”
“찜찜하네요. 역시 토벌대를 꾸려서 쳐야 할 것 같은데.”
“그저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들이 멋대로 제거할 명분이 없지. 협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고.”
“알았어요, 알았어. 아저씨랑은 대화가 안 되니까 대장님과 상의해 봐야겠어요.”
“벌집을 쑤실 필요는 없다.”
“벌들이 우릴 쏠 준비 하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죠. 아저씨도 위험하다고 판단했잖아요.”
“준비하는 건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마수 눈에는 거병이 검은 웅덩이처럼 보이겠지. 아니, 오히려 더 포악하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관점에서 보면…….”
“거기까지! 전 인간이고, 저 괴물들한테 죽고 싶지 않으니까 쓸어버리든 방비하든 최대한 준비할 거예요. 아저씨는 제가 죽든 말든 옆에서 구경하시면 되고요.”
타챠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을 뿐이었다.
에단은 다오의 눈을 빌려서 확인한 검은 웅덩이를 떠올렸다.
국경 지대에 몰려들어 진을 치고 있는 마수들.
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타챠의 말대로 그저 살 곳을 원해 모여든 거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돌아가자.”
더는 관심이 없다는 듯 타챠가 몸을 돌렸다.
* * *
“꺼림칙해, 저 도마뱀의 힘은 역시 꺼림칙해.”
유단은 멀어져 가는 도마뱀과 인간을 바라봤다. 상대하는 게 껄끄러워 몇 번 길을 열어줬더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덕분에 보여선 안 될 걸 보이고 말았다.
-예정에 없었던 행동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살피러 온 적은 없었으니까.
“회수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뭐 어느 정도 완성됐으니 보여도 큰 문제는 없겠지?”
-봤다고 한들 이해하지 못할 거다.
게웰의 말에 유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끈적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유단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몸을 재구축할 때 머리카락도 만들었다. 인간의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데, 결국 인간의 모습을 취했다.
-유단.
“왜?”
-네 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형태 유지를 조금만 신경 쓴다면, 그 모습이 영원토록 유지되겠지.
“그러겠지.”
-그럼에도 본래 육신이 탐나나?
유단은 입맛을 다셨다.
“분명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기계 새끼를 끌어내서 내 몸을 되찾고 싶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유단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가시화된 마나에서 탄생한 괴물들, 마수. 그들의 몸과 유사한 육체를 생성해 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줬다. 정강이뼈가 쪼개지며 단단해지고, 둘러싼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소형 거병은 이 발길질 한 번이면 외장갑이 날아갈 것이다.
인간의 육체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내가 마수인지 인간인지, 나도 알 수 없게 됐어. 그래서인지, 그 몸뚱이가 탐나지는 않아. 하지만 원래 내 거였잖아? 내 거였는데 빼앗긴 거잖아? 그러면 일단은 돌려받아야지.”
유단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후에 먹어버릴 거야. 내 몸은 무슨 맛이 날까? 궁금하지 않아?”
-미식은 관심 없다. 난, 이 밑에 있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래. 큰 건 네가 도맡아. 난 자잘한 것들을 해결할 테니까. 너와 나, 우린 완벽한 파트너야.”
유단은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게웰의 심상 세계에서 존재했을 때는 공기의 맛이란 걸 느끼지 못했다.
역시, 육체가 좋다.
살아 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몸뚱이가 좋다.
“기계 놈이 잡아간 우리 애들, 하나둘씩 죽고 있어. 이젠 실험할 것도 없나 봐.”
-잔재들이 땅에 스며들기만 하면 된다. 약간의 정보만 더 모이면, 아주 많은 게 바뀌겠지.
유단은 게웰의 눈알에 손을 올렸다. 게웰 역시 거대한 육체를 얻을 수 있게 됐지만, 지금은 사람 크기만 한 눈알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많은 게 바뀔 거야. 저 인간이 아주 많은 걸 우리에게 주겠지.”
아래를 내려다봤다.
득실대는 마수들 사이, 게웰의 검은 핏줄 사이에 둥둥 떠다니는 해골 하나.
“길리우드 씨. 좋은 건 같이 좀 씁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