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1화
“여긴가 보네.”
가하란은 캄캄한 동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산의 입구라.
하늘석 중심부에 불룩 솟은 동산. 우측면에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장이 까마득하게 높았다. 30m는 넘어 보인다.
입구 양옆에는 묵빛을 자랑하는 철골이 박혀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에 노출됐을 텐데 녹슨 자국이 전혀 없었다. 먼지만 툭툭 털어내면 방금 조형을 마친 건축자재로 보이리라.
“이런 걸 만들려면 대체 무슨 기술이 있어야 하지?”
30m에 달하는 통짜 철골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혀 있었다. 동산을 떠받드는 기둥. 쇠를 녹여 어찌어찌 만든다고 해도 기둥을 세우고 터에 박아 유지하려면…….
-둥둥 떠다니는 돌덩이가 더 신기하지 않나?
하긴, 건축 양식을 보며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태고의 신비를 감춘 하늘석이다.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수첩에 적힌 내용을 떠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3m 정도 들어가자 천장에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 거대한 입구 안쪽이 빛에 잠겼다.
가하란은 눈을 살며시 찌푸렸다가 떴다.
일단 매끈한 바닥이 보였다. 돌 같기도 하고 쇠 같기도 한 희한한 질감의 바닥이었다. 마름모꼴의 타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꼼꼼하게 박혀 있었다.
벽면을 따라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백광을 뿌리는 네모난 돌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마나 파장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법등인 것 같았다.
-막다른 곳이군.
수첩에 적힌 대로 15m 정도 직진하자 철벽이 반겨주었다.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가까이가 손을 대봤다. 시리도록 차가울 줄 알았는데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표면은 보이는 것과 달리 거칠었다.
프렌트는 이곳을 거점 삼아 하늘석을 조사했다고 한다.
하늘석의 길이는 700m, 폭은 500m 정도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아찔한 크기였다.
-무언가를 보관했던 곳인가.
“그래 보이지?”
다른 통로가 있을 것 같은데.
벽에 손을 대고 돌아다녔다.
미심쩍은 곳이 몇 군데 보였으나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가져온 도끼로 벽면을 내리찍었다. 불똥이 튀었다. 검게 그을린 곳을 매만져봤다.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완력으로 부수거나 여는 건 일단 불가능해 보였다.
구석에 불을 지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목탄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날짜와 날씨를 기록해 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여긴 더 볼 게 없는 것 같으니.
“잠깐만.”
잠들었던 왼쪽 눈을 일깨웠다. 주변을 선으로 바꾸면 뭔가 얻어낼 수 있겠지.
“……뜻대로 되는 게 없네.”
실웃음이 나왔다.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다는 듯, 내부 구조물은 형태를 유지했다.
로키의 본체를 바라봤다. 선으로 변해 일렁이고 있었다.
-왜 그러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막막해서.”
로키를 들고 밖으로 나오기 전,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누구 없나요? 아무나 좋으니까 대답해 줘요! 용 님! 마운!”
덧없는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밖으로 나와 동산을 올랐다.
하늘석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어떻게 자생했는지 모를 나무와 풀 사이로 위로 솟구친 첨탑 같은 게 있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건축물은 하늘석 전역에 설치돼 있었다. 숫자는 대략 20개 정도.
가까운 첨탑으로 향했다.
다가갈수록 거센 마나 파장이 느껴졌다.
-이 이상 접근하지 마라.
첨탑 3m 앞에서 로키가 말했다.
모노클을 끼고 전방을 확인했다. 총천연색의 마나들이 첨탑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양한 대역의 마나들이 상충하지 않고 공존 중이었다. 첨탑으로 모여든 마나는 지면 아래로 흘러 들어갔다가 다시 첨탑을 통해 분출되고 있었다.
-경이롭군. 마나를 어떻게 해야 저런 식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거지?
“하늘석 안쪽에 뭔가 있는 게 확실하네.”
-부유 장치가 있겠지. 저 방대한 마나를 끝없이 주입하는 걸 보면.
가하란은 소형 배터리 하나를 살짝 던졌다. 바닥에 한 번 튕긴 배터리가 첩탐과 30cm 정도 가까워졌다.
그리고.
파지지직, 마수뼈에 축적된 마전기가 한순간 방출되며 터져버렸다.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한 걸음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인간의 몸도 배터리처럼 터져버릴 것이다.
“제어 방식이 궁금한데.”
-너무나도 탐이 나는군. 줄이 봤다면 반쯤 홀려서 다가갔을 것이다.
가시화 직전의 밀도 높은 마나를 일정 범위 내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말도 못 하게 정교한 장치였다. 어떤 식으로 회로를 구성했는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완성된 마나포집이 저런 형태겠지?”
-정확하다.
배터리 충전에서 그치지 않고, 다량의 마나를 실시간으로 흡수해 영구기관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멈추지 않는 거병을 생각하니 정신이 멍해졌다.
다른 첨탑도 살펴봤다. 생김새도 같고 마나의 흐름 역시 동일했다.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든 걸까.”
규격이 같다는 건 체계적인 관리 감독하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설계한 자들은 누구인가?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라 동굴로 대피했다. 번쩍하며 동굴 밖이 밝아지더니 천둥이 매섭게 내리쳤다.
가하란은 동굴 앞 첨탑으로 내리꽂히는 번개를 봤다.
-저것마저도 흡수하는군. 모든 자원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건가?
마나뿐만 아니라 기상 변화마저도 에너지원으로 삼는 걸까?
만약 하늘석의 주인이 존재하고, 그자가 엉뚱한 마음을 먹는다면…….
“지상의 전쟁 같은 건 애들 장난일지도 모르겠네.”
* * *
하늘석에 도착하고 닷새가 지났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정보의 세계로 진입해 발이 닿는 모든 곳을 살펴봤지만, 하늘석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무와 풀, 몇몇 지형만 선으로 변화할 뿐 대부분은 본래 형태를 유지했다.
‘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어’라고 하늘석이 조롱하는 것 같았다.
-왔군.
가하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프렌트를 바라봤다. 바닥에 꼬꾸라진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끙끙 앓는 소리만 내다가 겨우 일어선 프렌트가 주변을 확인한 순간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왔다! 마침내 왔어!”
희열에 찬 목소리였다.
결말을 알고 있기에 그 목소리가 마냥 구슬프게 들렸다.
가하란은 프렌트의 족적을 따라 움직였다. 동굴을 발견하고 주변을 탐사하고 첨탑 앞에서 넋을 놓고.
그렇게 보름에 가까운 시간이 다시 흘렀다.
수척해진 프렌트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식량이 다 떨어진 것이다.
나무 수액과 숲 사이사이에 고인 물로 수분은 충당할 수 있지만, 배를 채울 음식은 구할 수 없었다.
하늘석 끝자락에 앉아 수첩에 끝없이 글을 적던 프렌트가 이내 하늘석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몽상가의 쓸쓸한 마지막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봐야 할까.
-건식이 얼마나 남았지?
“아껴 먹으면 한 달 정도.”
-내려갔다가 올라와야겠군.
“무사히 내려간다면 말이지.”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 종종 몰아치는 바람은 낙하산을 찢어발길 정도로 사나웠다.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해가 지고 있었다. 동굴로 돌아오니 이리저리 날뛰고 있던 루루가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영리한 놈이라 첨탑 주변은 얼씬도 안 하고 나무만 타고 놀았는데, 그마저도 질렸는지 요즘은 동굴 안에만 있었다.
루루를 간지럽히며 바닥에 누웠다.
“막다른 벽.”
천장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마법등을 바라봤다. 신비로운 건축물이 도처에 널려 있으나 접근할 수 없었다.
비밀을 품고 있을 하늘석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얌전히 안겨 있던 루루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로키한테 옮겨갔다. 본체 위에 자리를 잡고 연신 본체를 내리쳤다.
-망할 원숭이를 치워주면 좋겠는데.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누가 네 머리를 악기 삼아 두드리는 게 익숙해질까?
듣고 보니 그렇네.
본체로 다가가 루루를 껴안았다. 털갈이라도 하는 건지 본체 위에 털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손으로 툭툭 쳐낸 후 다시 누웠다.
누워서 멍하니 있다가 문득 손을 스치던 감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가하란은 로키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본체를 매만졌다.
-뭐 하는 거지?
“잊고 있었어.”
-뭐가?
“유사정령, 아니, 오토마타의 질감. 너흰 청철이 다량 함유돼 매끄럽지만 현시대에 만들어진 오토마타는 달라. 표면이 거칠지. 회로 작업이 끝났다면 더더욱.”
-그게 왜?
“금적철을 섞은 오토마타는 온기가 느껴져. 아주 미약하지만 차가운 쇠와는 분명 다르고.”
가하란은 꽉 막힌 벽면을 바라봤다.
보름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같이 봐오던 벽. 도끼로 내려찍고, 불로 그을려보고, 물도 뿌리며 온갖 짓을 다 했던 벽.
손바닥을 펴 벽을 쓸어내렸다.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대로 미약한 온기와 거친 질감이 전해져 왔다.
소형화 이전의 오토마타의 질감.
어릴 때 덴스 교수 실험실에서 만져봤던 오토마타의 표면과 유사했다.
“설마…….”
가하란은 한걸음 떨어져 벽면을 올려다봤다.
아무 문양도 없다. 이음새 같은 것도 없다. 그저 거대한 철벽이었다.
손에 감각기를 꼈다.
긴장된 숨을 안으로 삼키고 시그니처를 불러냈다. 회로에 반응하는 시그니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형태였다.
난잡하게 엉킨 선.
간섭하려 해도 변화가 없었다.
가하란은 이끌리듯 짜맞춤을 떠올렸다.
그 순간,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제멋대로 정보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아.
벌어진 입을 비집고 경탄이 흘러나왔다.
마력선이다.
가하란은 벽면에 새겨진 방대한 회로를 바라봤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시그니처가 제멋대로 날뛰었다.
외부 침입을 허락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감각기로 역류하는 마나 때문에 손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벗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시그니처로 불러낸 헝클어진 마력선으로 손을 내밀었다. 짜맞춤을 기반으로 접근한다면 기괴한 회로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
지식 너머, 이해가 아닌 감각이라 할 수 있는 지표에 손끝을 맡겼다.
뜨겁게 달궈진 눈이 손을 인도하고 있었다.
응집해 자신을 감추고 있던 회로가 놀란 고양이의 털처럼 바짝 일어섰다.
칼날처럼 변한 선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마력선이 피부에 닿았다. 정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살갗이 갈라지며 피가 스며 나왔다.
-가하란!
로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부의 변화를 인지한 것이리라.
루루가 뒷덜미에 매달렸다. 와들와들 떠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금방 끝낼게.”
심해지는 통증과 비례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건, 핵심에 도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벽면에 새겨진 마력선이 일제히 빛을 냈다. 천장에 박힌 마법등에서 주황색 선이 뿜어져 나와 벽면을 휘감았다.
벽을 타고 내려온 주황색 선이 망막 코앞까지 다가왔다.
공격 직전의 독사처럼 좌우로 꿈틀대던 선이, 이내 동공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아픔은 없었다. 선이 눈을 통과해 들어갔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였다.
-착안(着眼)을 확인했습니다. 보안 기능을 해제합니다.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