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371화 (371/558)

제371화

‘체시’라고 했다.

유단의 전용기가 전선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딱 하나였다.

가까이서 봐야 한다.

얼마나 엉성할지, 아니면 얼마나 대단할지.

“대단하더라.”

얀스가 삶은 소시지를 그릇에 올리며 말했다. 샬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체시 말이야. 전용기인 만큼 관리가 까다롭단 말이지. 그래서 지정기술자가 아니면 손도 못 대게 하는 게 일반적이거든? 근데 의외로 쉽게 내부를 보여 주더라고.”

“부학회장님이 보기보다 까다롭진 않네요.”

“그만큼 보안에 자신 있다는 거겠지.”

얀스가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틀었다. 격납고가 있는 방향이었다.

“써전들하고 기술공들이 죄다 모여서 체시를 살펴봤어. 탈로스도 탈로스지만, 주입된 액상근육이 물건이야.”

“왜요? 뭐가 달라요?”

“‘골리앗의 피’. 제조 명문 클랜 중 밤나비란 곳이 있는데, 거기서 제작한 제품이야. 마전기 전도력부터 협응력, 수복력까지 뭐 하나 모자란 게 없어.”

“그런 대단한 제품이 왜 우리 쪽에는 안 들어온 거예요?”

“다루기 어렵거든. 아주 난폭한 명마 같은 거야. 길들이기 힘들지만, 일단 다룰 수만 있으면 성능은 끝내주지.”

“액상근육이라면 양산이 목표 아니에요? 제품이 사람을 가리면 그게 무슨 쓸모에요?”

“그렇게 도도하게 굴어도 될 정도로 성능이 좋다는 거야. 그리고 비유를 명마에 빗대서 그렇지, 매뉴얼만 제대로 정착시키면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을 테고.”

“다른 소대에도 곧 적용되겠네요?”

“아직은. 제조 방식이 워낙 까다롭다고 해. 들어가는 재료 수급에도 문제가 있고. 체시처럼 한 세대를 앞서나가는 특수한 기체에만 사용할 것 같아. 보급기까지 넘어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밀레나는 주억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기술이 발전해 전력이 보강되는 건 반가운 일이나, 핵심 인물이 유단이라니.

“근데 그 골리앗의 피도 오토마타에 비하면 조금 모자란 감이 있지.”

“오토마타와 대화도 해봤어요?”

“했지. 아주 영리한 애였어. 학습 장치를 어떤 걸 쓰는지 궁금해 미칠 정도로. 논리오류를 일으킬 만한 난해한 질문에도 여유롭게 대응했어. 그 정도 수준이면 방대한 자료를 넣어둬야 하는데, 자료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반응속도가 느려지거든.”

“근데 체시는 묻는 족족 빠르게 대답했다, 이건가요?”

“맞아. 게다가 사람에 맞춘 유머도 구사할 줄 알아. 웃음이라는 게 굉장히 주관적이잖아? 사람마다 웃는 포인트가 다르고. 근데 체시는 대화 맥락을 파악하고 요점을 잡아내서 상대가 웃을 만한 개그를 날려.”

“그렇게 똑똑한 머리가 탑재돼 있으니 덩치가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나.”

샬롯이 빵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인상을 팍 썼다. 맛이 없는 모양이다.

“그것도 물어봤지. 왜 크기를 키웠을까. 마수를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기동력이 중요한데. 대답은 아주 간단했어.”

“뭔데요?”

“원거리 지원 병기. 체시는 마법사를 위한 거병이야.”

“그런 거병이라면 9소대에도 있어요. 서부 전선에서 갑자기 폭발해서 안 쓴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안전성 입증이 안 됐거든. 마법공학품을 이용한 마법 발현. 마나를 이용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마법에는 심상세계가 끼어 있으니까. 근데 그 부분을 둔 학회가 해결한 모양이야. 단, 신식 마법에 한해서.”

샬롯이 고개를 쭉 뺐다.

“혹시, 정령의 힘을 쓸 수 있는 거병도 있을까요?”

“네가 사용하는 바람 말이지? 글쎄. 내가 알기로는 과거에 몇 번 시도되긴 했어.”

“근데도 정령술사가 다루는 거병이 없는 걸 보면…….”

얀스가 포크를 들었다. 밀레나는 자신을 향한 포크 끝을 바라봤다.

“자세한 건 네가 알려주는 게 어때? 스콜라에서 제대로 배웠을 테니. 나는 역사 쪽에 영 관심이 없어서.”

다음에, 라고 말해봤자 샬롯이 들어먹을 리 없다. 식사도 끝냈겠다 소화할 겸 입을 열었다.

“정령술사를 위한 거병. 성도 거병관리국의 전신 거병관할소에서 몇 차례 실험이 진행됐어. 하지만 실험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지.”

“왜?”

샬롯이 빵을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일단 정령술이란 게 모호했어. 마법은 그나마 마법공학과 연계해 어느 정도는 이용할 수 있었지만, 정령술은 아니었거든. 마법은 심상세계의 발현이라 각기 다른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래도 배우는 과정은 공유할 수 있어.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마나를 감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법 역시 완숙에 이르는 ‘완벽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향성은 제시해줄 수 있었다.

“정령술은 그런 게 없잖아? 이건 나보다 샬롯 네가 더 잘 알 테고.”

“맞아. 정령술은 그런 게 없어. 왜냐하면 힘의 원천이 나한테 있는 게 아니니까. 방법론을 꺼낼 수조차 없지.”

샬롯이 손목을 까닥거리자 살랑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꿉꿉함이 한순간 사라졌다.

“만약 내가 바람에 대해 언니들한테 설명한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겠지.”

“알아듣는다고 해도 바람이 날 돕지 않으면 쓸모가 없고.”

“맞아. 내 의지도 중요하지만 바람의 뜻도 중요해.”

“통제할 수 없는 힘. 그걸 병기화한다는 건 정말 어렵지. 게다가 마나 회로에 어떤 식으로 정령의 힘을 녹여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어. 주먹구구식으로 몇 차례 시도하다가 3차례의 사망사고가 난 뒤로는 모든 실험이 중지됐지.”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나는구나? 무섭네, 무서워.”

샬롯이 포크를 들 때였다.

땡땡땡, 끊어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중이던 군인들이 씨근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왔나 보다.”

“오늘은 얌전히 지나가나 했는데.”

얀스가 먼저 가보겠다며 식당을 벗어났다.

“샬롯, 부대 지정받았어?”

“아직. 다시 돌아갈 수도 있어서 일단은 대기 상태야.”

“그럼 막사에서 쉬어. 쉴 때 쉬어야 또 움직이지.”

“쉴 만큼 쉬었어. 오늘은 언니 옆에 있을래.”

“밖에 더운데. 냄새도 날 테고.”

“하루 이틀 일인가.”

“그렇긴 해.”

격납고로 가 루인에 올라탔다. 잠들어 있는 카트시를 괜스레 만진 후 루인을 깨웠다.

-기능점검 이상 없습니다.

“오늘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기술자의 안내지시를 받으며 격납고를 나섰다. 눈앞에 유단이 끌고 온 거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첫 출진이라 그런지 긴장이 되네요.

유단의 거병이 옆에 서며 말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너무 앞서나가진 마세요. 덩치 큰 거병이라 노려지기 쉬우니까.”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죠.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얌전히 있는 게 최고라는 거, 잊지 마세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전선으로 이동 중에 어깨에 무엇인가 내려앉았다. 동시에 이상 에너지 발생이라며 경고를 날리는 루인이었다.

“괜찮아. 아군이니까.”

밀레나는 거병 어깨에 앉은 샬롯을 바라봤다.

“보고는 하고 온 거지?”

“에단한테 맡겨놨어.”

“걔가 고생이 많네.”

툴툴대면서도 항상 뒤처리를 담당하는 에단에게 심심한 애도를.

-그쪽에 계신 분이 샬롯 소위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유단이 말을 걸어왔다.

“제 소문이요? 어떤 소문이요?”

-아주 과격하신 분이라고.

“그럴 리가요. 전 굉장히 얌전해요. 지금도 보세요. 얌전히 앉아 있잖아요.”

유단의 웃음소리가 음성 장치를 통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부학회장님. 편제대로 이동해 주시죠. 전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멋대로 이탈하지 마시고요.”

-예, 중사님. 그렇게 하죠.

체시가 뒤쪽으로 물러났다.

“언니는 저분한테만 까칠할 거 같아.”

“알아챘으면 적당히 분위기 맞춰줘.”

“왜 싫어하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사람 사이에 꼭 일이 있어야 틀어지나. 그냥 싫을 수도 있는 거지.”

“아닌 거 같은데.”

심드렁해하는 샬롯을 무시하며 시선을 저 멀리 던졌다. 무리를 지어 기웃거리는 마수가 보였다.

군 편제를 따라 하듯 크기별로 모여 있었다. 본능에 따라 날뛰어야 할 괴물이 침착하게 대기하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관측병이 달려왔다. 상황 보고가 빠르게 이어졌는데, 요약하면 군집을 이룬 채 30분째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3대대장님은 어디 계시죠?”

“저쪽입니다.”

관측병이 가리킨 곳에 검은색 거병이 한 대 보였다. 오늘도 최전선에 설 모양인 듯했다.

“우리 부대는 하던 대로 할 테니 지원이 필요하면 요청하세요.”

“예! 중사님.”

관측병이 돌아갔다.

“독립부대가 좋긴 좋네. 편제에 따르지 않아도 되고, 작전권도 별개로 갖고 있고.”

샬롯이 말했다.

“너도 이쪽으로 넘어올래?”

“아니. 언니 밑에 있으면 갑갑해서 싫어.”

“아쉽네. 오면 제대로 부려 먹으려 했는데.”

같이 이동했던 9소대가 떨어져 나갔다. 현장 지휘를 맡은 건 3대대장이니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언니, 저기.”

체시가 단독 행동 하는 게 보였다. 아니, 3대대장의 거병이 옆에 붙어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9소대 거병 두 기가 거대한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다. 두 개로 나뉜 쇠막대기를 연결하니 길이가 8m는 돼 보였다.

기병용 창도 아니고…….

저만한 질량의 무기를 휘두르려면 옛 거병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묵빛 창이 바닥에 꽂혔다.

마수들도 이질적인 물건이 신경 쓰이는지 대열을 바꾸기 시작했다.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마수 수십 마리가 집결했다.

체시 정면. 신호가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때였다.

-마나 농도가 급상승 중입니다. 폭발에 주의하세요.

루인이 경고했다.

체시 앞에 꽂힌 거대한 막대기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낙뢰가 꽂힌 듯 섬광이 주변 일대를 감쌌다.

밀레나는 눈을 찌푸렸다.

눈을 시리게 한 순백의 빛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파스스스, 묵빛 창이 빛을 토해냈다.

가시화된 마나, 아니, 마전기였다.

“……저게 뭐야.”

샬롯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푸른빛이 훑고 지나간 자리가 새카맣게 타들어 가 있었다. 일직선에 놓인 마수들은 검게 변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밀레나는 지면에 꽂힌 묵빛 창을 바라봤다. 방출되지 못한 마전기가 창대를 따라 파지직, 일렁이고 있었다.

정적이 휘감은 전장에 곧이어 환호성이 이어졌다.

“한 방 더 먹여!”

“다 죽여버려!”

원거리 지원 병기.

체시.

-첫 시연치고는 결과가 좋군요.

유단의 목소리가 흥분한 군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 * *

-낭비가 있었다.

“필요한 움직임이었어.”

-내 계산에는 그렇지 않다. 최적화된 운동 계산에 의하면 오른쪽으로 회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머리를 찍었으면 끝날 일이었으니까.

“만약 빗나갔다면? 반격당하면 기체에 손상이 생기잖아. 위험은 최소화하는 게 좋아.”

-실수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시뮬레이션 세계랑 현실 세계는 달라. 오차까지 생각해 줬으면 하는데.”

-네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어련하시겠어. 만능 기계는 실수를 모르니 이해하지 마.”

가하란은 작게 하품하며 체임버 덮개를 열었다. 여름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체임버 덮개에 걸터앉은 후 상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어렵게 만든 어포가 손가락에 걸렸다.

기껏 말려놨는데 죄다 썩어서 건진 게 몇 없었다.

어포를 씹으며 밑을 내려다봤다.

머리가 으깨진 여섯 마리의 마수가 보였다. 그중 한 마리가 파르르 떨다가 꼬리를 흔들었다.

예리한 뼈 같은 게 날아왔다.

가하란은 가볍게 고개를 꺾어 뼈를 피했다. 팅, 소리와 함께 외장갑에 부딪힌 뼈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덥네.”

-여름이니까.

“너도 이 더위를 느껴봐야 하는데.”

-개념은 알고 있다.

“개념 말고 체감.”

-그렇다면 몸을 넘겨주든가.

“이 대화 지겹지도 않아?”

-전혀.

가하란은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석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새하얀 성벽이 걸려들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대체 얼마나 걸린 거야.”

제국 성도.

가하란은 힘껏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뒤로 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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