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5화
“이쪽부터 봐줘요! 허벅지가 갈렸는데 지혈이…….”
“아아악! 눈 안쪽이, 눈 안쪽이!”
비명에 비명이 쌓이다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사지 멀쩡하면 일단 밖으로 나가! 대답할 여력 있어도 나가고.”
민은 병동으로 밀려든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수용 가능 인원이 한참 전에 넘어섰다. 더 받았다가는 치료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쪽으로!”
의술사의 외침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였다. 민은 팔이 잘린 여자를 들고 안쪽 침상에 눕혔다.
“저, 저기. 이 친구는…….”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았다. 고개를 내리니 얼굴 전체가 짓뭉개진 환자가 보였다. 옷자락을 잡은 건 환자 곁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대답이, 대답이 없어요. 이상해요.”
민은 눈을 찌푸리며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똑바로 봐. 이미 죽은 사람이야. 빨리 침상 비우고 다른 환자 받아.”
“하지만 상태는 이래도 말을, 그래요, 절 보면서 말을…….”
“야전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나보다 당신이 잘 알 텐데.”
민은 남자 목을 바라봤다. 검은 천을 감고 있었다. 의술사임을 알리는 표식.
“친구가 죽어서 슬픈 건 알겠어. 정신없겠지. 하지만 배려할 여력은 없어. 손을 움직여.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멍하니 바라보던 젊은 의술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짓을 했다. 보조 인원이 다가와 시체를 치웠다.
민은 어수선한 병동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지독한 여름이었다. 모기와 파리가 날뛰는 계절. 상처를 제때 돌보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파리가 알을 낳고 도망친다.
피부에 낳고 사라지는 놈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개중에는 상처 안쪽에 알을 낳아 살을 도려내게 만드는 놈들도 있었다.
“마수나 파리나 지긋지긋해.”
민은 눈앞에서 떠다니는 해충을 손바닥으로 움켜쥐었다. 한 번 휘저었을 뿐인데 손아귀에 세 마리나 잡혀 있었다.
“민!”
엘들리아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쭉 빼 주변을 살폈다.
“여기야, 여기!”
무장한 인파 사이에 엘리가 있었다. 민은 사람을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쪽 상황은?”
질문을 던졌다. 엘리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일단 멈추긴 했는데 이대로 끝인지, 아니면 또 밀려올지 알 순 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보고 와야겠네. 시장은?”
“아직 현장에 있어.”
“그래도 자리는 지키나 보네.”
엘리와 함께 도시 동부로 향했다. 수리 중인 거병을 지나 썩은 내가 진동하는 거리로 들어섰다.
“분대별로 배급받고 식사 후에 재집결한다. 감시는 중대별로…….”
팔을 다친 군관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었다. 식사 중인 군인들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전투에 다들 진이 빠졌으리라.
“교수님, 오셨습니까.”
최전방 막사에서 뛰쳐나온 군관이 민을 보며 군례를 올렸다. 이제 ‘교수’도 아니지만, 엘리가 교수라고 소개하고 다니면서 호칭이 교수로 굳어져 버렸다.
“상황은요?”
“다행히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저놈들도 밥때가 있는지 물러났어요.”
“시장은요?”
군관이 눈을 살짝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엉성하게 지어놓은 망루 위에 시장이 있었다.
“놈들이 물러나자마자 저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시민들이 보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참된 시장으로 보이겠죠.”
“저런 퍼포먼스라도 해주는 게 어디에요. 숨어서 벌벌 떨고 있으면 오히려 마이너스죠. 힘들 때일수록 선전은 중요하니…….”
민은 도중에 입을 닫았다. 망루에 있던 시장과 눈이 맞은 탓이다. 시장이 반색하며 엉거주춤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민 교수!”
허겁지겁 걸어온 시장이 손을 내밀었다. 지저분한 손이었다. 전투를 마치고 막 복귀한 사람처럼.
“오늘도 열심히 연기 중이시네요.”
민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시장은 그러거나 말거나 웃음으로 응대했다.
“할 줄 아는 게 연기인데 그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장이란 놈이 마수를 피해 저만치 도망가 있으면 다들 불안해하겠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나서서 얼굴 떡 하니 내밀고 있으면 ‘아, 괜찮나 보다’ 하고 안심할 테고요.”
“반박은 못 하겠네요. 그래도 너무 노골적이에요.”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저 노골적인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추대해 주죠. 나름 쓸모 있으니까. 자자, 망루로 올라가시죠.”
넉살도 좋다. 입만 산 인간은 대개 무능하기 마련이고, 무능하면 눈 밖으로 나기에 십상인데 시장은 조금 달랐다.
평판이 아주 좋았다. 몇몇은 찬양을 할 정도였다. 실무진들이야 시장의 실체를 잘 알고 있으니 못마땅해하지만, 그들 역시 업무수행은 잘해주고 있었다.
기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였다.
배경을 알면 납득 못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웃기긴 했다.
웨켄의 시장 ‘빈센달’.
한때 황제와 나란히 언급되며 시민들의 대표자로 추앙받던 인물.
실상은 의회와 황제가 만들어낸 배우에 불과하지만, 제국이 멸망해버린 지금 그런 과거 이야기는 흥밋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웨켄에는 입만 산 시장, 빈센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시죠.”
망루에 올라가 시장이 건네준 망원경을 들었다. 3km 밖, 어슬렁거리는 마수들이 보였다.
“공격을 멈추고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있어요.”
시장이 말했다.
“이대로 싹 다 죽었으면 좋겠지만, 곧 다시 몰려들겠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대처할 수도 없고. 교수님, 뭐 뾰족한 방법 없습니까?”
“그런 게 있으면 진즉에 사용했겠죠. 도시를 버리고 떠나는 게 속 편하긴 합니다만…….”
말을 꺼내기 무섭게 시장이 인상을 썼다.
“도시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곳은 우리 시민들의 터전이자, 직접 일궈낸 땅입니다. 이 비옥한 토지를 버리느니 목숨을 바쳐 결사 항쟁을…….”
민은 손을 들어 시장의 말을 막았다.
“저와 대화할 때는 그렇게 돌려 말할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요.”
“아, 그랬었죠. 하지만 습관이란 게 무섭습니다. 완벽한 연기는 완벽한 습관에서 나오거든요. 언제 어디서든 이상적인 시장을 선보여야 하는 제 입장도 이해해 주세요.”
“기왕 연기하는 거 마음까지 다잡는 건 어때요? 진짜 시민을 위한 시장이 되는 거죠.”
시장이 하하, 웃고는 눈을 슬며시 내리깔았다.
“그건 좀 어렵겠네요. 아시다시피 전 겁이 많아요. 지켜야 할 게 늘어날수록 겁이 많아지죠. 전 지금의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바람 넣고, 적당히 이끌고. 훌륭하신 우리 민 교수님 같은 분에게 나설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죠.”
뻔뻔함도 일정 경지를 넘어서면 뛰어난 능력처럼 보인다는 걸 시장을 통해 깨달았다.
민은 망원경을 돌려주며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적의 공세가 일정하면 그나마 덜 피곤할 텐데, 놈들은 제멋대로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총력전을 대비해 전 병력을 대기해 놓으면 작은 마수 한 마리가 다가와 꼬리치고 돌아가고, 이젠 좀 쉬어도 되겠지 하면 미친놈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고. 아주 환장하겠어요.”
“소모전은 우리에게 불리해요. 병원 상황 보셨죠?”
시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6개월. 잘 버텨주고는 있지만 한계에 도달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 웨켄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푸념하던 시장이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퀼비언 님만 계셨다면 저것들을 싹 쓸어버렸을 텐데, 대체 어딜 가신 건지.”
민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요. 저도 그분을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고.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민은 눈을 얇게 떴다. 시장도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다시 공세가 펼쳐지는 걸까?
걱정하던 차에 뿌옇게 치솟던 흙먼지가 양 갈래로 갈려 흩어지고, 그 안에서 마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한 마리네요.”
“네, 한 마리군요.”
시장이 방긋 웃으며 민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만 할 게 아니라 같이 가시죠?”
“그 무슨 끔찍한 말씀을. 전 여기서 목소리 높여 응원하겠습니다. 자자, 방책으로 접근하기 전에 얼른 처리해 주시죠. 민 교수님.”
‘교수님’을 힘주어 발음하는 시장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배울 점이 많아요, 시장님은.”
“하하하,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능청 떠는 모습도 계속 보다 보니 정겹기까지 했다. 민은 도리질을 치며 망루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몸이 아래로 쑥 꺼지면서 금세 지면에 닿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군인 둘이 낑낑거리며 애병을 가져왔다.
큼직한 양날도끼를 어깨에 이고 숨을 입에 물었다. 안경도 벗을까 했지만, 한 마리니까.
신체술을 끌어올리고 팽팽해진 허벅지로 지면을 찼다. 붕 떠오른 몸 아래 방책이 놓였다.
툭, 가볍게 방책 밖 땅에 발을 내디뎠다.
저 멀리 미친 듯이 뛰어오는 마수가 보인다.
개처럼 네 다리로 뛰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간처럼 두 발로 뛰었다. 이족보행 하는 마수가 급하게 방향을 꺾었다.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은 울타리가 목적인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입 안에 숨을 물고 힘껏 지면을 찼다. 마수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후우웅!
목을 길게 뺀 마수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놈은 괴성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렀다.
반격을 대비했으나 덤벼오지 않았다. 울타리를 넘는 게 일생의 목표라도 되는 듯 앞을 향해 뛸 뿐이었다.
“원하는 게 뭔지.”
마수의 심리는 읽을 수가 없었다.
대규모 공격이 이어지는 이유도, 자기들끼리 싸우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말이라도 통하면 속이라도 편하지.
울타리를 향해 뛰는 마수를 노려보다가 있는 힘껏 도끼를 던졌다.
방책에 손을 댄 마수의 옆구리를 도끼가 강타했다.
콰직!
도끼가 울타리에 박히고, 양분된 마수는 바들바들 떨다가 꼬꾸라졌다.
뭉툭한 마수의 손은 울타리에 닿아있었다. 얼굴이 없어 표정은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 만족해하고 있지 않을까?
터벅터벅 걸어가 도끼를 쥘 때였다.
미동조차 없던 마수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손을 뻗어왔다. 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도끼를 그었다.
촤아악, 피부가 갈리며 체액이 쏟아졌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엉킨 골격이 눈에 들어왔다.
뼈 안쪽으로 박동하는 장기가 보였는데, 한참을 움직이다가 이내 멈췄다.
끝난 건가, 시체 안쪽을 유심히 바라볼 때였다. 샛노란 장기에 실선이 생기더니, 이내 주둥이처럼 쫙 벌어졌다.
“카아아아아!”
탁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찌나 큰지 민은 도끼를 놓아버리고 귀를 막아야 했다.
재빨리 발을 들어 소리치는 장기를 짓밟아 버렸다. 물컹한 촉감이 발바닥 전체로 퍼져나갔다.
“제발 곱게 죽자.”
끈적한 체액을 땅에 쓱쓱 문질러 닦아낼 때였다.
“교수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었다. ‘데옹’이 방책 위에 서서 저 먼 곳을 가리켰다.
또 왜?
그렇게 생각하며 동쪽을 바라봤다.
“……역시 이사를 해야 한다니까.”
높이 5m는 돼 보이는 마수 두 마리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도끼를 다잡고 안쪽에 대기 중인 군인들에게 소리치려 할 때였다.
민은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섬뜩한 마나 파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