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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병공 진군가-325화 (298/558)

제325화

몸을 일으키고 더 높은 나무를 향해 뛰어올랐다. 저공비행하던 매들이 한순간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에단은 호각을 불어 신호를 보낸 후 망원경을 눈에 댔다.

“대체 뭐야.”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마수 주변으로 동물들이 날뛰고 있었다.

숲이 시끄러워졌다. 적막을 깨트린 들짐승의 울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우측에 대기 중이던 2조가 움직였다.

신호가 떨어졌다.

숨을 한껏 들이켰다.

미지의 위험을 향해 가장 먼저 걸음을 떼는 자. 격언을 곱씹고 겁과 공포를 원동력 삼아 현장으로 진입했다.

우선 10m.

사전에 약속된 거리만큼 좁혀 들어갔다. 매들의 뾰족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다오의 울음도 섞여 있었다.

파악 불가, 다오는 그렇게 말하는 중이었다.

짧은 호각 소리 두 번에 길게 한 번.

에단은 땅으로 내려와 지급 받은 마법등을 켰다.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방에서 빛이 분사됐다.

어둠에 잠긴 숲을 억지로 깨워 마수의 실체를 드러나게 했다.

툭툭, 어깨를 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다.

조장이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몸체가 송아지만한 매가 내려앉았다. 날개를 완전히 펴면 어지간한 소보다는 클 것이다.

“여길 부탁한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 조의 조장과 부조장이 약속된 위치에 모였다. 그들은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고는 빛이 흩뿌려진 숲 사이로 사라졌다.

매들이 일제히 떠올라 원을 그리며 마수 주변을 맴돌았다.

아직까지는 변화가 없었다. 마수 역시 덩치만 불린 채 침묵 중이었다.

언제 공격해 오는 걸까.

아니면 공격 외에 다른 수가 있는 걸까?

적은 생각하는 괴물이었다. 지도부도 상정하고 대응할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와 들었지만 이해 못 할 신호가 어둠을 오갔다.

에단은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21시 19분.

“제발 얌전히 잡혀줘라.”

* * *

“지금이라면 포위할 수 있습니다.”

루크의 말에 디온은 전황판을 바라봤다. 제1철갑사단은 배치를 완료하고 정비를 끝낸 상태였다.

“큰매에게서 연락은?”

“계속해서 상황을 전달받고 있습니다만, 10분 전부터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부푼 채로 정지 상태라.”

디온은 눈 사이를 가볍게 눌렀다.

“덫일 수도 있는데 발이 무거운 거병을 먼저 집어넣긴 그렇군.”

시선을 탄드라 교수에게 던졌다.

“마법사단의 공식적인 첫 출진, 어떻습니까?”

탄드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단이 아니라 마법에 뜻이 있는 젊은 친구들일 뿐입니다. 사단이라 하면 위험해 보이니까요.”

“그렇군요. 그 마법을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줘보는 건 어떨까요?”

“원거리 요격은 시도해볼 만하죠. 재능 있는 아이들을 준비해 뒀어요.”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군요.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인류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모의전만큼만 해준다면 나름 쓸 만할 거예요.”

탄트라의 손짓을 받은 학회 임원이 지휘부를 벗어났다.

“가실까요?”

탄드라가 일어섰다. 디온은 루크에게 자리를 맡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숲에서 밀려온 끈적한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매들의 날선 울음이 바람에 녹아들어 있었다.

“생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위험하면 토벌해야 해요.”

호위병이 멀어지자마자 탄드라가 한 말이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디온은 좌측에 늘어선 거병들을 바라봤다. 우측 팔에 둔 군부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180기의 거병.

제원은 제각각이지만 기준출력 60 엘론 이상인 메이슨 급 전투 기기였다.

“저는 상상이 되질 않는군요. 저 거병들이 마수 한 마리한테 뭉개지는 것이.”

철로 된 거인들은 도열해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용을 뽐냈다. 탄드라도 긴장한 듯 입을 살며시 다물더니 이내 웃었다.

“저게 뚫린다면 모든 게 끝이지만, 사령관님 말씀대로 그런 일은 없겠네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터럭 하나 남기지 않고 해체하면 될 뿐입니다. 우린 그만한 힘이 있고요. 그러니 최대한 살살, 조심스럽게 그 귀중한 불청객을 생포해 봅시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서.”

디온은 주름진 손에 힘을 주었다. 노쇠한 육체가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방법을 구하고 말리라.

“조심하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긴장할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조, 조, 좀 조용히 해. 소화 안 돼 죽겠으니까.”

눈앞에 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모여 있었다. 십 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과거의 전장이었다면 소년병으로서 활약했을 아이들이다. 활약이라고 해봤자 빈손으로 최전선으로 달려가 시체 탑을 쌓는 정도지만.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치기 어린 것들 손에 상상 못할 마법의 힘이 깃들어 버렸다.

스크롤로 힘겹게 쥐여 짜내야 하는 마법이 아닌, 매개체와 루틴으로 손쉽게 쓰는 마법.

“야야, 교수님.”

비쩍 마른 아이가 말했다. 대장인지 다들 입을 꾹 다물며 자세를 잡았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모양새였다. 차렷 자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디온은 정강이를 차고 뺨을 올리는 대신 웃었다.

“전선에서 여유를 갖는 건 중요한 일이죠.”

그나마 제식을 갖춘 비쩍 마른 아이 앞으로 걸어갔다.

“가,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 난 여러분들의 상관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내가 여러분께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죠.”

부탁이란 단어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이었다. 다루기 쉬운 병졸들.

“이쪽으로 와봐요.”

뒷짐을 진 채 어린 마법사들을 이끌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을 지나 밝게 빛나는 숲을 향해서.

탄드라 교수는 입을 다문 채 옆을 지켰다. 묵언으로 창출한 신용 덕에 어린 마법사들은 무엇 하나 묻지 않고 따라와 줬다.

“저기, 우리가 붙잡아야 할 적이 있어요. 보이나요?”

검게 부풀어 오른 마수를 가리켰다. 굵직한 나무를 밀어내고 하늘을 향해 솟구친 거대한 마수.

작은 동산처럼 커진 마수를 보며 어린 마법사들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큰데?”

“그러게. 멀리서 봤을 때랑 느낌이 달라.”

“저런 걸 잡을 수 있을까?”

자유롭게 말하는 마법사들이었다.

“여러분.”

나직하게 목소리를 꺼내 조잘조잘 떠드는 입을 다물게 했다.

“듣기로 여러분의 실력이 대단하다던데, 어떤가요? 저걸 치워낼 수 있겠나요?”

“새, 생포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마수는 죽여 없애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왜 살려서 붙잡아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쩍 마른 아이는 뜨문뜨문 말했다. 어금니를 하나 뽑아내면 조용해지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저건 우리가 그간 상대해온 마수와 달라요. 지성이 있고 특이한 능력이 있죠. 저런 것들이 계속 나타나면 우리의 성은 위협을 받고, 최악의 경우 생활터전을 빼앗길 테죠.”

어린 마법사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적의 성질을 파악해야 해요. 죽이면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죠. 내 말 이해했나요?”

“네, 네!”

“좋군요. 역시 유능한 마법사들이라 이해력이 뛰어나요. 허허허.”

마른 웃음을 던진 후 몸을 돌렸다. 작전 수행에 의문을 표하는 젊은 병사. 신인류라는 것들은 정말이지 끔찍하군.

“저 마수가 무엇을 준비 중인지 우린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접근할 수도 없죠.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디온은 마법사들의 손을 바라봤다. 목걸이, 지팡이, 돌, 책, 기괴한 목각인형. 다양한 매개체가 손에 들려 있었다.

“여러분이 갈고닦은 실력, 마음껏 펼쳐 보세요.”

“최선을 다해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다짐과 동시에 탄드라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이었다. 탄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열을 갖춘 아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전선을 유지하던 군인들도 뒤로 빠졌다.

디온도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옆에 선 탄드라에게 말했다.

“재능 있는 애들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니요. 저 애들은 교육이 안 되는 애들이에요.”

“그렇습니까.”

“발산은 괜찮으나 방향을 주체하지 못해요. 목표물이 크니 상관은 없겠지만.”

“유능하지 못 한 아이들이군요.”

“그러면서 욕심은 많죠.”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디온은 눈웃음 지으며 교수를 바라봤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어이 바뀐다.

그라운드 제로 이전에 만났던 탄드라는 정치와 연관이 없는 건실한 학자였다. 지금은…….

“입증해야죠, 저 아이들도.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말을 끝낸 교수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 * *

벤은 그라운드 제로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참사라고 하지만 그 일 덕분에 마법을 손에 넣게 되었다.

양장점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끝날 인생이 역전된 것이다.

“교수님이 우리를 믿고 있어. 제대로 보여주자.”

비쩍 마른 몸뚱이를 타고나 놀림감이 됐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위대한 마나의 힘이 몸에 깃들었으니까.

“한 번에 퍼붓는 거야.”

“그래.”

벤은 나란히 선 아이들을 바라봤다. 다들 매개체를 쥐고 루틴을 준비했다.

벤도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흐느적거리는 마나가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익숙해지도록 몇백 번을 반복한 루틴을 시행했다.

땅을 세 번 찍고, 왼팔을 들고, 숨을 두 번에 걸쳐 들이켠 다음…….

느낌이 왔다. 이번 건 제대로 터질 것이다.

“치솟아라!”

벤이 루틴을 마무리하기 직전, 바로 옆 울레가 시동을 걸었다.

외침과 함께 책을 활짝 핀다.

형상화된 마나가 붉은 기운을 띄며 책 앞에 모여들었다. 열기가 전해져 왔다. 울레의 컨디션도 좋은 모양이다.

됐다.

4반이 둔 학회에 이름을 알릴 때가 온 것이다.

불덩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 짧은 개가 뛰는 정도의 느릿한 속도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마수는 크고, 움직이지 않으니까.

마법등으로 밝아진 숲을 붉은빛이 가로질렀다. 불덩이가 불청객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사라졌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져 버렸다.

실패한 걸까?

그럴 수 있다. 긴장하면 폭발지점에서 마나가 흩어지곤 했으니까.

다시 준비해서 내뿜으면 될 일이었다.

털썩, 릴라인이 쓰러졌다. 루틴 도중에 종종 기절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걸까?

동료들의 실수가 있지만 벤은 침착하게 마음을 달랬다.

천천히 준비해서 다시…….

루틴을 끝맺고 지팡이를 들어 올릴 때였다. 배가 화끈거렸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

벤은 시선을 내렸다. 검은 뱀 같은 게 멀어지고 있었다. 뱀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배를 살폈다.

이상했다.

배가 갈라져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글지글 끓어서…….

벤은 앞으로 꼬꾸라지며 마지막 순간에 끝에 있는 브람을 바라봤다.

남들을 겁쟁이라 놀리던 녀석은, 아끼는 매개체를 던지며 뒤쪽을 향해 뛰고 있었다.

“가면…… 안 돼…….”

* * *

“살려줘어어!”

디온은 허우적거리며 뛰다가 자빠지는 어린 마법사를 바라봤다.

보이지도 않는 일격에 다섯이 죽었다. 제대로 발동된 마법도 마수 근처에서 사라졌고.

“음, 반격이 까다롭군요. 마나 파장에도 즉시 반응하고.”

“거리 조절을 다시 해보죠.”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헛구역질하는 마법사를 바라볼 때였다.

매들이 길게 울었다.

그리고.

“까다롭군요.”

거대하게 부푼 마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와 정반대인 서쪽을 향해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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