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타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도 길쭉한 빵은 주둥이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율은 눈에 힘을 줬다.
“알아야죠. 둔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데! 우리 사업하고도 연관된 이야기예요.”
“인간족 일은 인간족이 알아서 마무리해라. 난 그저 너희를 보호하면 될 뿐이니까.”
“사람 속 뒤집어 놓고 나 몰라라 할 거예요? 자꾸 이러시면 식비 줄여요.”
식비라는 말에 타챠가 거센 콧바람을 뿜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아니어도 좋아요. 산의 전사가 하는 말이면 귀담아들어야 하니까.”
둔 내부에서 분쟁이라도 일어난 걸까? 타챠와 에단은 군과 협력해 ‘어떤 일’을 처리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발견할 걸까?
“그것과 함께하는 동물들이 일대를 서성거리고 있다.”
“네?”
설명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그것이 뭔지부터 말해줘요. 어느 집단인가요? 다른 도시 쪽 사람들?”
“인간족은 아니다. 마수니까.”
“마, 마수요?”
마수가 도시로 침입했다는 건가?
설명 한 줄만으로도 솜털이 곤두섰다. 재빨리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평화로웠다. 일상의 따분함이 유지하고 있었다. 마수가 침범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조용한데요?”
타챠가 일어섰다. 그 큰 몸을 구겨서 바로 옆에 서더니, 손가락을 내밀었다.
“저기.”
타챠가 가리킨 곳. 털 빠진 개 한 마리가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저 개가 왜요?”
“마수와 닿아 있다.”
“네? 저, 저건 개에요. 그냥 개.”
“인간족은 참으로 편협해. 너희 역시 종이 다른 우리와 교류하고 있다. 마수도 마찬가지지.”
“아니죠. 마수는 닥치는 대로 파괴할 뿐이잖아요. 교류 같은 건…….”
“너희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겠지.”
타챠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박쥐 같은 게 지붕을 스쳐 날아가고 있었다.
“저것도.”
이번에는 고양이.
“저것도.”
좌판을 쓸고 가는 쥐 몇 마리.
일상에 녹아든, 너무나도 흔한 것들이라 이변이라 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저 동물들이 마수와 연관돼 있다고요? 정말로?”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숲에서 마주한 그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
“우연은…… 아니겠죠.”
입안이 깔깔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작은 동물들이 비집고 들어갔다.
마수와 연관된 저 동물들은 무엇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꺼내기 전, 타챠가 먼저 말했다.
“첨병이 적지를 염탐하고 있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율은 타챠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가요.”
“어딜?”
“시의회요! 아니, 군부? 어쨌든 사람들한테 알려야 해요. 대비해야 한다고.”
“내가? 왜?”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마수가 도시를 노리고 있잖아요!”
“선후가 바뀌었다.”
타챠가 손가락을 툭 털었다. 억센 손가락이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비늘에 긁힌 손바닥이 쓰라렸다.
“인간이 먼저 그것의 땅을 침범했다. 공생을 요구하는 그것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터전을 지키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이제 막 실행했을 뿐이다.”
“마수잖아요.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마수.”
“그렇겠지. 그래서 뭐?”
냉담한 눈빛이었다. 율은 이를 악물었다. 논파할 수 없는 논리의 벽이 앞에 있었다.
타챠는 인간이 아니다.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했으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
패배를 맛보기 위해, 심하면 죽기 위해 고행에 나서는 기이한 자들이다.
이해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다. 아니, 타챠 정도면 정말 이해심이 많은 편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보고 들은 상황을 전달해줬으니까.
“둔에 문제가 생기면 스파우에 공급해야 할 물건에도 문제가 생겨요. 아리엘도 곤란해지겠죠. 아리엘이 곤란해지는 건 타챠 씨도 원하는 바가 아니죠?”
“위대한 전사께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 모든 뒤치다꺼리를 내가 하란 뜻은 아니었다. 난 아리엘의 안전을 위할 뿐이지.”
“으휴, 답답한 도마뱀 씨!”
위대한 전사, 위대한 전사.
무슨 말만 하면 교리처럼 저 말을 꺼내 드는데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율은 겉옷을 챙겼다. 땀이 줄줄 나는 여름날이지만 시의회를 반팔 차림으로 찾아갈 순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오면 증언이라도 해줘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귀찮게만 굴지 않는다면.”
“……제가 목숨 걸고서라도 식비를 줄여버릴 거예요.”
“속 좁은 인간 같으니라고.”
“속 좁은 게 누군데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서류 뭉치를 든 제니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상황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이따가 얘기해줄게.”
제니를 지나쳐 계단 끝에 섰다.
“제니!”
“네?”
“건물 안으로 고양이나 쥐, 하여간 작은 동물이 들어오면 바로 쫓아내. 툴은…… 괜찮겠지?”
“무슨 말이에요?”
“아니야, 아니야. 나중에 봐.”
부랴부랴 발을 놀려 내려왔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마침 더위를 피해 그림자에 숨어든 개가 보였다.
평소였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그 개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기묘한 감각을 받았다. 개가 재빨리 일어서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긴장감이 머리를 때렸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에단!”
숙소로 가 에단을 찾았다.
“소리 지르지 마, 머리 울려. 그리고 나 잠 더 자야 해. 어제 야간 훈련해서…….”
침대에 박혀 있는 에단을 잡아끌었다.
“너도 알고 있었어?”
“뭘?”
“마수가 도시를 탐색중이라는 걸!”
“무슨 소리야? 잠꼬대하는 거야?”
하품을 길게 하는 에단을 붙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상황 설명을 마쳤다.
풀어졌던 에단에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탐사에 나서는 랍파의 얼굴로 변했다.
“잠깐만.”
휘익, 날카로운 손피리 소리에 어디선가 다오가 날아왔다. 에단이 다오에게 뭐라 속삭이자, 다시 날아올라 주변을 맴돌았다.
“누나 말대로 평소보다 많아. 이렇게 대놓고 다닐 리가 없는데.”
“군부와 협조해서 조사했다고 했지? 그러면 시의회보다 군부로 가자. 네가 있으면 위쪽하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높게 솟은 분배소를 지나 둔 군부로 향했다. 예전과 달라진 중앙부 건물과 마주하니 과거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디온 사령관은 날 기억할까?
마주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나, 둔에 들이닥친 위험을 전하기에 사령관만한 인물도 없었다.
에단이 1층을 지키고 선 군인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후 말끔한 정복을 차려입은 군관이 나타났다.
“마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령관님께서 직접 듣겠다고 하십니다.”
바라던 바였다. 율은 살짝 긴장했다. 한때 군부 소속이었던 터라 괜스레 걸음이 무거워진다.
“들어오게.”
군관이 문을 열어줬다.
점잖은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많이 늙어버린 디온 사령관이 방 안에 있었다.
토끼 탈을 뒤집어쓴 늑대.
“자네는…….”
디온이 율을 보며 웃었다.
“아니지. 이제는 우리 쪽 사람이 아니니 말이 편히 하면 안 되겠군요. 그래요, 불청객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고요?”
서쪽의 불청객. 율은 에단에게 들은 얘기를 되뇌며 자리에 앉았다.
“마수와 관련 있는 동물들이 둔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서두를 떼자마자 디온이 눈을 얇게 떴다.
“작전 누설에 관한 건 타린족 습성상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역시 그쪽부터 따지고 들어오는 건가. 율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수가 부리는 동물이 시내로 들어왔다는 그 말, 확인 절차가 끝난 겁니까?”
시선이 에단에게 향해 있었다.
“매를 통해서 둔 시내를 살폈어요. 이상할 정도로 개들이 돌아다니는 걸 확인했고요.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쥐도 수가 늘었어요.”
“쥐라.”
사령관의 부름에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몇 가지 사항을 전달받더니 곧바로 자리를 비웠다.
“차를 내주고 싶지만 그럴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얼마 후 손에 검은 장갑을 낀 남자가 부관과 함께 나타났다.
“마나 흐름에 이상은 없습니다. 마법이 쓰였다면 수상쩍은 기류가 잡혔을 텐데, 평소와 같습니다.”
“일단 마법은 아닌 것 같고.”
디온이 턱을 문지를 때였다. 거친 발소리와 함께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군인과 함께 들어왔다.
여자 손에는 팔뚝만한 쥐가 들려 있었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만큼 커서 율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어떤가?”
디온이 물었다. 여자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군복만 안 입었을 뿐 군인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퍼밀리어 계약을 맺어보려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의지가 강력합니다.”
“쥐한테도 의지라는 게 있나?”
“처음 겪는 일입니다.”
거침없이 말하던 여자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말해보게.”
“……유대감이 느껴집니다.”
“유대감?”
“이 쥐는 마나의 힘이나 계약, 그 외 어떤 힘으로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라, 내가 심히 안 좋아하는 말투로군.”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가 흔들릴 정도로 기이한 일이라는 거겠지.”
여자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던 쥐가 갑자기 축 늘어졌다. 여자가 다급하게 바닥에 쥐를 내려놓았다.
“죽었습니다.”
여자가 말했다.
“자네가 처분한 건 아닐 테고.”
디온의 말에 여자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옅지만 쥐의 사념이 손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이 쥐는 자살을…….”
툭툭, 디온이 책상을 가볍게 내리쳤다.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동물은 자살하지 않지. 그런 선택이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해. 그래서 동물인 거야. 그래서 하찮은 거고. 근데 자살이라.”
디온이 손짓했다. 부관이 다가와 율 옆에 섰다.
“일어나시죠.”
율은 말없이 일어섰다.
“소중한 정보 고마워요. 뒷일은 우리가 잘 처리할 테니 댁으로 돌아가 쉬는 게 좋겠군요.”
완곡한 말과 함께 따가운 눈초리가 전해졌다. 외지인은 여기까지라는 건가.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둔의 방위를 책임지는 자에게 정보를 건넸다.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부관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없어졌어.”
거리를 쓱 살피면 보이던 개와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췄다. 쥐가 목숨을 끊은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짜고짜 공격해 왔다면 차라리 마음 편했을 것이다. 막아내고 반격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상대는 인간을 파악하려고 들었다. 습성을 알아보고 연구해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타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편협한 관점을 지녔다고.
율은 서쪽을 바라봤다.
외벽 너머에 있을 정체 모를 마수를 생각했다.
“……괜찮겠지?”
맥없는 말이 대기에 뿌려졌다.
* * *
“가하란!”
벌써 몇 분째인지.
샬롯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손을 잡고 있던 가하란이 사라졌다. 덩그러니 안원에 남은 것이다.
신나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는 혼란만 가중시켰다.
“가하란! 산카!”
샬롯은 또 다시 머리 위를 지나가는 불뱀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저 뱀.
어쩐지, 날 노려보는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