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311화 (284/558)

제311화

쥐 한 마리가 건물 외벽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몸집이 작은 쥐들이 뒤따라 틈새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타챠는 무리 지어 이동하는 쥐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이 다른가, 고민하던 차에 머리 위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소리를 동반한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저씨!”

타챠는 눈부터 찡그렸다. 샬롯이었다. 작은 인간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제 덩어리.

“아저씨, 아저씨.”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휘말리게 된다. 무시하고 앞으로 한 걸음 뻗을 때였다.

샬롯이 폴짝 뛰어서 뒤에 매달렸다.

“아저씨, 이 창 구경해도 되죠?”

제구를 만지작거리는 샬롯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단 한 번도 제구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아저씨, 아저씨.”

“귀 안 먹었다.”

“난 또 안 들리는 줄 알고 계속 불렀잖아요. 아저씨, 이거 봐도 괜찮은 거죠? 네?”

본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 제구라고 해서 애지중지 싸맬 필요도 없으니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말을 꺼낸 게 샬롯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갑자기 왜?”

타챠는 샬롯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냥요.”

“네가? 그냥? 웃기지도 않는군.”

손목을 가볍게 튕겨 샬롯을 던져버렸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돈 샬롯이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지 말고 보여주면 안 돼요?”

“이유를 말해.”

“말하면 또 산카한테 일러바칠 거잖아요.”

“필요하다면.”

샬롯이 입술이 길게 튀어나왔다. 타챠는 코웃음 쳤다.

“힘으로 빼앗을 거예요.”

“네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바람이 몸 주변에 맴돌았다. 힘을 훌륭하게 다루고 있었다. 샬롯과 같은 인간이라면 몸을 못 가누고 휘청거릴 것이다.

타챠는 날파리를 쫓듯 오른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몸을 억압하던 바람이 자연 상태로 돌아갔다.

샬롯이 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

“그냥 주면 안 돼요?”

오늘따라 더 성가셨다. 한동안 얌전했었는데. 아니지. 얌전했던 게 아니라 마주치지 않았을 뿐인가?

꼬리를 움직여 샬롯을 옆으로 밀어냈다. 성가신 꼬마를 치워내고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안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대요, 샬롯이.”

타챠는 팩토리 앞을 막아선 가하란을 바라봤다.

“안원? 거길 왜?”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기억을 못 해요. 그래서 정령세계에 관한 단서를 찾던 중에, 아저씨 창이 떠올랐어요. 저도 그 창을 살피다가 정령세계로 끌려갔으니까요.”

“그랬던 적이 있지.”

열병에 시달리던 가하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말하면 안 되지!”

샬롯이 다가와 잔소리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아저씨를 설득하는 건 힘들어.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야지.”

“저 도마뱀 아저씨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꼬마 둘이 조잘조잘 떠든다. 타챠는 코끝을 씰룩인 다음 쥐고 있던 창을 던졌다.

쿵 하고 떨어진 깃대가 먼지를 일으켰다.

“잃어버리지만 마라.”

그 말에 가하란은 웃었고, 샬롯은 화나기 직전의 얼굴로 변했다.

“아저씨! 내가 달라고 할 땐 왜 들은 척도 안 하다가, 가하란이 달라고 하니까 줘요?”

“같은 새끼라도 믿음직한 새끼가 있고 아닌 새끼가 있다. 너무 당연해서 설명하는 게 웃길 정도야.”

“저, 저, 저는 안 믿음직해요?”

“방금 말하지 않았나? 너무 당연해서 설명하는 게 웃기다고.”

얼굴이 연분홍빛이 된 샬롯을 옆으로 밀어낸 후 가하란 앞에 섰다.

“샬롯이 본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정령의 목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샬롯은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잖아요. 그건 정령의 힘을 제대로 쓴다는 뜻이고, 쓴다는 건 이해했다는 거 아닌가요?”

“전혀. 저 꼬마는 그저 위대한 바람의 티끌을 끌어다 쓸 뿐이다. 재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목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

가하란이 눈을 깜빡였다.

“그 얘길 샬롯한테 직접 해주셨으면 저렇게…….”

말끝을 흐리며 손가락을 드는 가하란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노려보는 샬롯이 있었다.

“화내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쟤는 저게 일상이라 괜찮다. 위대한 바람께서 너무 오냐오냐한 게 잘못이지.”

“……그런가요?”

“봐라. 지금도 버르장머리 없게 이러고 있는걸.”

타챠는 머리 위에 올라타 떼쓰는 샬롯을 가리켰다.

“차가운 아저씨. 나만 미워해!”

목을 길게 뺀 다음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매미처럼 붙어 있던 샬롯이 떨어져 나갔다.

“안원에 관한 걸 샬롯이 알고 있다면 위대한 바람께서도 허락한 일일 테니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살펴보고 있어라. 잃어버리지 말고.”

인간족 꼬마들이 무슨 장난을 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 * *

“내려놓을게.”

샬롯은 바람에게 부탁해 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근데 여기가 네 방이야?”

벽면 가득히 꽂혀 있는 책과 주렁주렁 걸려 있는 의수와 의족.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구도 진열돼 있었다.

“진료실이야. 내가 주로 쓰긴 하지만.”

샬롯은 벽에 걸린 의수에 손을 뻗었다. 보기보다 무거웠다. 전에 이 정도 크기의 의수를 만져본 적 있었는데, 이것보다 훨씬 가벼웠었다.

“얘는 왜 이렇게 무거워?”

“초기 물건이라 그래. 청철 함유도가 낮았거든. 그 옆에 있는 건 가벼울 거야.”

가하란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벼워졌다. 무게뿐만 아니라 외관 역시 섬세하게 바뀌었다.

“다 네가 만든 거야?”

“표준모델들이라 내가 만든 건 아니야. 도움을 주긴 했지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가 좋구나.”

색다른 의수에 흥미가 생겼지만, 지금은 깃대에 주목할 때였다.

“정말 변한 게 없네. 아저씨 말대로 더러워지지 않는 천이야.”

더러워지지 않아?

샬롯은 가하란 옆에 앉아 깃발을 살폈다. 타챠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깃대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무식하게 크기만 한 창에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이걸 살펴보다가 정령세계에 갔다는 거지?”

“어.”

가하란이 했으니 내가 못 할 리 없었다. 샬롯은 눈에 힘을 주고 깃발과 깃대를 노려봤다.

“근데 뭘 봐야하는 건데?”

“여기, 이 작은 친구들.”

“작은 친구들?”

깃발과 깃대의 연결부위를 응시했다. 몇 초간 집중했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뭐가 보인다는…….”

의구심을 품으며 가하란을 볼 때였다. 주변을 맴돌던 바람들이 가하란 곁으로 옮겨갔다.

바람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었다. 상냥한 친구들이지만 부끄럼도 많아 먼저 알아봐 주고 부탁해야지만 다가와 줬다.

“너…….”

샬롯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깃대를 관찰하던 가하란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가하란의 두 눈이 설명할 수 없는 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아름답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 빛이었다.

“한동안 안 보였었는데, 아저씨 말대로 내가 무시했던 거였어.”

“너 지금 바람을 보고 있는 거야?”

“바람? 아, 이 애들 말하는 거야?”

가하란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바람 알갱이 하나가 부드럽게 날아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샬롯은 볼을 살짝 부풀렸다.

“거기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바람에게 말했다. 단숨에 날아올 줄 알았는데, 갈팡질팡하는 바람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차 말하니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 쓰였다.

“너, 얘하고 말이 통해?”

바람과 친해지기까지, 그리고 말이 통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산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가하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하는 말은 잘 안 들려. 수다쟁이인 건 알겠지만.”

“그, 그렇지?”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가하란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훑고는 책상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여기에도 이렇게나 많이 있었네.”

뭐가 많이 있다는 거지?

샬롯은 가하란이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인상을 쓰고 봐도 보이는 건 없었다.

“뭐가 보여?”

“근원을 잃은 정령들.”

“근원을 잃어?”

“산페르 아저씨가 예전에 말해준 적이 있어. 정령은 육체로 인한 필연적인 죽음이 없대. 하지만 근원이라 하는 것이 점점 깎여나가서 결국 빈껍데기로 변해. 바위나 나무처럼 그냥 그곳에 있는 상태가 되는 거지.”

보고 싶었다.

바람 말고 다른 정령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나도 보고 싶은데.”

그제야 가하란이 아, 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 거야? 창대에 있다는 개미도, 주변에 있는 정령도 안 보이는데.”

“글쎄. 나도 방법을 아는 건 아니야. 그저 보일 뿐이니까.”

궁금해 미칠 지경인데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속으로 앓으며 고민할 때였다.

바람이 등을 살며시 밀었다.

“왜?”

이번에는 손을 움직였다. 저 아이의 손을 잡아 보라면서.

“가하란. 손 좀 줘봐.”

“손?”

갸우뚱거리며 가하란이 손을 내밀었다. 샬롯은 덥석 그 손을 잡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생각보다 손이 차갑다는 느낌만 들뿐.

“손은 왜?”

가하란의 의문을 내비칠 때였다.

시야가 빙빙 돌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지럼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보이건,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여긴…….”

샬롯은 마른침을 삼켰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둥실 떠서 머리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불꽃을 몸에 두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뱀이 얼음덩어리 밑을 기어갔다.

검은색을 두른 바람이 몸을 훑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청홍색 빛이 몸을 감쌌다.

감각의 세계.

여긴 뭐지?

멍청히 주변을 바라보던 샬롯은 이내 깨닫고 말았다.

“안원!”

정령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걸.

* * *

율은 힐끔 뒤쪽을 보았다. 타챠가 길쭉한 빵을 씹고 있었다. 다섯 개째인가? 아니 여섯 개?

“식사 안 하셨어요?”

“먹었다.”

“네, 그러시겠죠.”

수주계약서를 재차 확인한 후 기지개를 켰다. 얼추 마무리된 것 같았다.

“끝난 건가?”

“네.”

딱딱한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 소파, 꽤나 튼튼했다. 타챠가 뭉개고 있는데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스파우로 돌아갈 때 하나 챙겨갈까? 아리엘이 좋아할 거 같은데.

“일은?”

“마무리 단계에요. 루드 쪽에서도 파견 인원 정리를 끝냈다고 하니 이제 돌아갈 준비만 하면 돼요.”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왜요? 둔은 이제 질렸어요?”

율은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타챠의 말을 들었다.

“질린 건 아니다. 단지 시끄러워지기 전에 떠나고 싶을 뿐이지. 대전사도 아니고 이유 없는 전투는 피곤하니까.”

콜록, 물이 목구멍에 걸렸다. 사레들려 한참을 마른기침하다가 타챠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투라니.”

“말 그대로 전투다. 얌전히 지나갈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지.”

율은 물컵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자세히 좀 말씀해 보세요. 누가 누구랑 싸운다는 거예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