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유단은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고민해봤자 변하는 건 없고, 몸만 축난다는 걸 알면서도 잠이 들지 못했다.
어둠이 아스라이 찾아오면 정신은 얇게 언 얼음처럼 변했다. 건들면 부서질 것 같고, 내버려 둬도 녹아 없어질 불안정한 상태.
위태위태한 정신은 몸을 빠져나가 언제나 병원으로 향했다. 시선이 닿지 않는 그곳에, 병실에 누워 있을 덴스의 곁을 서성이는 것이다.
교수는 무슨 생각 중일까.
정말 날 내버려 두는 것일까.
프레나를 위해 이대로 침묵할 것인가.
얼마 전부터는 병실에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호전되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그건 프레나도 마찬가지였다.
프레나를 통해 정보를 얻어보려 해도, 덴스는 프레나조차 만나지 않았다.
눈 감고 불구덩이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에워싸던 불길이 단숨에 꺼져버렸다.
“교수님.”
유단은 움트는 희열을 가까스로 눌러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대답하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의술사가 옆에서 말했다.
보면 알 수 있었다. 덴스는 끝났다. 지독한 독을 운 좋게 버텨내던 덴스가 마침내 부러진 것이다.
손아귀를 떠나 이제는 붙잡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행운이 다시금 찾아왔다.
“언제부터…….”
“정신을 차리신 이후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했습니다. 학회장님의 강력한 요청으로 병세를 알리지 않았으나, 이제는 한계에 달한 것 같습니다.”
깨어남은 찰나였고,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구나.
하지만 안도할 단계는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덴스는 준비를 끝마쳤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준비였을지, 그걸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의술사가 시계를 보더니 옆으로 물러났다.
“자리를 잠시 비켜드리죠.”
유단은 문을 열고 나가는 의술사를 붙잡았다.
“오늘 절 여기로 부른 건…….”
“학회장님이십니다. 사전에 전달받은 게 있었거든요. 그럼.”
방문이 닫혔다.
유단은 눈두덩이가 움푹 파인 교수를 바라봤다. 교수는 알고 있었던 건가? 자신의 몸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프레나가 아닌 절 부르셨다는 건 남기실 말이 있다는 거겠죠.”
희미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덴스의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움직였다.
탁한 숨소리가 힘겹게 입술 사이를 빠져나왔다.
“교수님. 말씀해 보세요. 전 안전한 겁니까?”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교수는 죄를 눈감아 주는 대신 완벽한 거짓말을 하라고 명령했다.
들키지 않는다면 위선 역시 선이라는 말과 함께.
딸을 위한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바뀌는 법.
유단은 말하지 못하는 덴스를 바라보다가 조급한 눈길로 창밖을 보았다.
덴스가 마음을 바꿨다면, 지금 이곳으로 군의 수사관들이 오고 있을 것이다.
붙잡히면 모든 게 끝난다. 정신체로 변해 기계 몸으로 옮겨 탈 수도 없으니, 그대로 인간의 몸뚱이와 함께 죽게 될 것이다.
시시한 결말.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일이었다.
유단은 누워 있는 덴스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교수님, 교수님! 전 안전한 겁니까? 당신 말대로 프레나를 지키면 날 방해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날…….”
그때였다.
깡마른 교수의 팔이 이불을 헤치며 올라왔다. 잡고 비틀면 툭 부러질 것 같은 앙상한 팔. 그런데 그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은 유단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고 강렬했다.
덴스가 몸을 일으켰다.
죽어가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유단은 자신을 옥죄던 공포를 다시금 느껴야 했다.
“……두려워하며 지켜라. 잊지 마라. 네 치부는 드러날 수 있는 곳에 두었으니까.”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유단은 바짝 얼어붙은 채 덴스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한 몇 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드러날 수 있는 곳에 두었다. 그 말이 도깨비바늘처럼 전신에 들러붙었다.
“……프레나를 반드시…….”
멱살을 움켜쥐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덴스의 상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지쳐서 잠든 것처럼 미동조차 없던 덴스가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풀썩, 침대가 덴스의 몸을 받았다.
유단은 식은땀을 흘린 채 덴스를 주시했다.
“교수님?”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왔다. 목덜미에 난 땀을 씻기면서 동시에 몸을 속박하던 공포심을 날려버리는 바람이.
유단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환희와 희열이 그득 담긴 두 손으로 덴스를 살짝 흔들었다.
“교수님?”
교수의 턱이 힘없이 돌아갔다. 벌어진 입 사이로 풀어진 혀가 보였다.
확실한 죽음.
돌이킬 수 없는 끝.
유단은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빛을 잃은 덴스의 눈이 정면에 위치했다.
“당신은 그 무엇보다 딸을 소중하게 여겼지. 그래, 그거면 됐어.”
어딘가에 남겨뒀다는 치부는 천천히 찾아보면 된다. 지금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승자가 됐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었다.
-승자? 너, 그런 말에 집착하게 됐구나.
머리꼭지에서부터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몸의 기억이 내는 소리.
유단은 침착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갔다. 반질반질한 유리에 얼굴이 비쳤다.
-네가 날 들여다봤듯, 나도 널 들여다보고 있는데……. 너 말이야,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어.
“적응할 뿐이지.”
-적응. 편리한 말이네. 여기저기 갖다 붙여 쓰기만 해도 다 통하니까. 근데 말이야, 로키였을 때 넌 자아를 파괴하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했잖아? 그 정도로 목적한 바에 충실했던 놈이 이제는 고작 살아남았다는 거에 감사하고 있네?
“그게 첫걸음이니까.”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넌 타협한 거야. 예전의 나처럼. 줄리어스를 만나겠다는 목적이 네 목숨보다 뒷줄이 된 거라고.
창에 비친 얼굴이 제멋대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유단은 입술을 비틀며 커튼을 쳤다.
“시작하기 위해 버티고 있을 뿐이야. 너처럼 죽어버리면 모든 게 끝나니까.”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확실한 결과를 얻는다. 근데 말이야, 그러면 대체 프레나는 왜 살려둔 거야?
“인간은 불안전하니까. 내가 통제 못 하는 감정이란 것들이 분명 존재하지.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변인은 다스리면 돼. 난 그게 가능하고.”
고개를 털어내는 것으로 조잘거리는 목소리를 떨쳐냈다. ‘유단’의 심상세계를 제거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내버려 두기에는 위험도가 크니까.
유단은 호흡을 고르고 차분함을 연기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울면서 오두방정 떠는 건 과하니까.
“교수님께서…….”
침울한 목소리에 대기 중이던 의술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한 모양이었다.
의술사들이 병실로 들어갔다.
유단은 복도에 선 채 병실을 바라봤다.
“잘가요, 덴스 교수.”
* * *
“그는 위대한 지식인이기 전에 딸을 위하는 아버지였고, 아버지이기 전에 큰 꿈을 품은 청년이었으며…….”
추모사가 쨍한 공기 사이로 퍼져 나갔다. 공동묘지 한구석, 엉성한 비석들 사이로 덴스의 비석이 세워졌다.
다른 사람들의 비석과 같이 작고 조악한 돌덩이.
가하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례를 지켜봤다. 검은 복장들 사이로 붉은색 띠를 왼 손목에 두른 유단과 프레나가 보였다.
직계가족임을 알리는 표시가 유단에게도 채워진 것이다.
프레나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교수의 뜻이었을까.
만약 교수의 뜻이었다면 자신을 죽이려 한 자에게 어떤 심정으로 저 띠를 허락했을까.
추모사가 끝나고 장송곡이 시작됐다. 모여든 인파가 조금씩 자리를 바꿔가며 비석 앞에 섰다. 누군가는 꽃을, 누군가는 편지를, 누군가는 음식을.
이윽고 가하란 차례가 됐다.
바로 옆에 유단과 프레나가 보인다.
가하란은 빳빳하게 편 종이를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글씨는 적지 않았다.
직선 하나와 점 하나.
그곳에서라도 지식의 끝자락에 닿을 수 있길. 만일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이 중요한, 어쩌면 사소한 주제로 말문을 열 수 있길.
프레나를 먼저 바라보고, 이어서 유단을 직시했다.
아마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비밀을 아는 자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다는 걸 파악했을 테니.
덴스가 모든 걸 말해버렸을 가능성도 남아 있었다. ‘가하란이 네가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훗날 잘 처리해라.’라고.
그렇다고 한들 문제 될 건 없었다.
예측 가능한 사고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으니까.
짧은 눈의 대화를 마치고 옆으로 비켜섰다. 장례식을 찾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둔에서 어깨에 힘 좀 준다는 사람은 죄다 찾아왔고, 일반 시민들 역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으로 치장한 인간일지 몰라도, 교수가 이룩한 업적만큼은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아버지의 발상이 그의 손길을 통해 현실이 됐으니까. 분배소와 배터리가 없었다면 도시 국가는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마수에게 모든 땅을 내어 줬을지도 모른다.
“수고하셨어요.”
가하란은 무덤을 향해 작게 말했다. 마법공학의 길을 걷는 한 명의 학도로서 보낸 마지막 인사였다.
고인을 보냈으니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저 멀리 있는 유단을 잠시 지켜보다가 몸을 돌릴 때였다.
“추모 행렬이 이렇게나 길다니. 나도 갈 땐 저렇게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가고 싶은데, 아마 안 되겠지?”
옆에 선 남자가 한 말이었다. 혼잣말인 줄 알았는데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가하란은 남자를 바라봤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불쾌한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장례식이라는 특수한 공기에 휩싸여 있으니까.
모두 교수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공통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테니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도 말을 쉽게 섞을 수 있다.
“교수님처럼 덕망을 쌓는다면 되겠죠.”
“덕망이라. 나한테 없는 건데.”
남자는 씁쓸하게 웃더니 가하란을 마주 봤다.
“가하란, 맞지?”
낯선지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오면 보통 경각심부터 들 텐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저 눈 때문인가.
너저분한 수염 위로 살짝 주름 잡힌 눈가가 보였다.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노련한 상인 같기도 하고, 냉엄한 군인 같기도 한 복잡한 눈.
호기심을 끌어내는 눈동자였다.
“예.”
“느낌이 딱 오더라.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긴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찔한 거야. 대체 어떻게 찾지? 근데 널 보는 순간 ‘저놈이다’ 싶었지.”
가하란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산의 전사, 타챠였다. 타챠가 눈길을 주며 턱을 끄덕였다.
“타챠 아저씨와 아는 사이인가요?”
“저 도마뱀 양반, 몸 좀 숨기고 있으라니까. 말을 더럽게 안 들어요.”
수염이 너저분한 남자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일단 만나서 반갑다.”
가하란은 사연이 많아 보이는 그 손을 보며 물었다.
“악수하기 전에 이름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맞다. 그래야지. 버릇을 들여야 하는데 자꾸 까먹네.”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르드헨. 멋진 이름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