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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병공 진군가-288화 (261/558)

제288화

“근데 쟤는 뭐 하고 있는 걸까요.”

에단은 꿈틀대고만 있는 마수를 바라봤다.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주변을 경계하며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궁금하면 가서 말이라도 걸어봐라.”

“자살하기엔 이른 나이예요.”

잡담을 주고받는 동안 들개 무리가 마수 옆을 지나갔다. 나방 유충을 닮은 마수가 슬쩍 움직였다.

드디어 먹이 사냥에 나서는 걸까?

월, 월월!

개들이 마수를 향해 짖었다. 겁 없는 녀석들이었다. 저 거대한 덩치를 보고도 난리를 치다니.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에 선했다.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수가 공격태세를 취하는 순간 들개들은 한 끼 식사로 전락할 것이다.

아니, 간식거리도 안 되겠지.

저 덩치를 보면.

둔으로 오는 길에 만났던 깃털 마수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7미터는 넘어 보였다.

몸뚱이를 좌우로 굴리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일 것이다.

마수의 몸뚱이에 난 털들이 파르르 떨렸다. 위협적인 모습에 들개들이 짖는 소리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얼마 전에 잡은 그 큰 놈보다 저게 더 위험하다는 거죠?”

“알 수 없다.”

“예? 모르는데 위험하다고 한 거예요?”

“알 수 없으니까 위험한 거다. 랍파의 눈을 가졌으면서도 앞을 보질 못하니, 한심하군.”

타챠가 비늘로 덮인 코를 씰룩였다.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주변 사람들 다 떨어져 나가요. 저니까 아저씨 곁에서 푸념 들어주는 거지.”

“말 따위에 상처받는 허약한 놈들은 내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에단은 타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왜?”

“아저씨가 가끔 하는 농담 진짜 재미없어요. 자주 가는 펍에서 예쁜 종업원 누나가 자꾸 웃어주죠? 그거 웃겨서 그런 게 아니라 비위 맞춰준 거예요.”

“……난 유치한 거짓말에 속지 않아.”

“진짠데.”

“내 농담은 뇌를 간질이는 언어유희다. 웃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니고요?”

에단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다가 입을 꾹 닫았다. 타챠가 쥐고 있는 나뭇가지가 잘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혹시 말 따위에 상처받으신 건 아니죠?”

참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아저씨의 반응을 보니 넘길 수가 없었다.

타챠가 눈을 희번덕 떴다.

주먹이 날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타챠의 눈동자는 마수에게 붙박여 있었다.

“저거.”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에단도 집중했다. 농담 따먹기 할 때가 아닌 듯했다.

흔들리던 마수의 털들이 한순간 멈췄다. 과연 어떤 식으로 들개를 요리할 것인가.

털들이 소용돌이치듯 꼬이며 굵은 밧줄이 됐다. 여러 가닥의 밧줄이 재차 뭉치며 점점 형태를 바꿔갔다.

“……저거, 사람 손을 따라 하는 건가요?”

한데 뭉친 털이 사람 손의 형태로 바뀌었다. 온몸에 돋아난 팔들. 크기는 성인 남자의 팔만 했다.

숫자를 헤아려 보다가 서른 개쯤에서 세는 걸 포기했다.

허우적거리며 허공만 움켜쥐던 손들이 들개들을 향했다. 손가락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손끝이 좌우로 뛰는 들개를 바라본다.

움켜쥐는 걸까?

아니면 내리찍을까?

길게 늘어난 손이 들개 앞으로 갔다. 맹렬하게 짖던 개들이 그 순간 울음을 멈췄다.

숲이 고요해졌다.

들개들은 다가온 손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주인을 만난 것처럼 뺨을 비벼댔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여덟 마리의 들개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다.

“뭐 하는 거죠?”

마수는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놈도 있고, 뜯어 먹는 놈도 있으며,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근처에 다가온 생물체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마수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영역을 침범한 적에게는 단호한 철퇴를. 그게 마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원리였다.

꼬리를 낮게 깔고 으르렁거리던 들개들이 이제는 마수가 만들어낸 팔을 타고 마수의 등에 올랐다.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마수의 등에서 개들이 뛰어놀았다.

징그러운 모습만 빼고 본다면, 푸근한 웃음이 나오는 정경이었다.

“……마수가 개도 기르나요?”

“모른다.”

타챠의 눈이 한층 더 매섭게 변했다.

“공격 성향이 없는 걸 보니 건들지만 않으면 괜찮아 보이는데.”

에단은 조사서를 펴고 연필을 들었다. 보이는 모습을 그리고 특징을 적을 때였다.

몸이 뒤로 쑥 꺼졌다. 타챠가 예고도 없이 목덜미를 잡아채 뒤로 빠진 것이다.

컥,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아저씨가 진짜!

“아니, 말로 하면…….”

바닥에 내려와 입을 열기 직전이었다. 타챠가 깃대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흉흉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에단도 자세를 잡고 얇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다오에게 신호를 주고 전투를 대비했다.

“발각된 건가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부터 그놈은 알고 있었다.”

“예?”

“알고도 내버려 뒀기에 나 역시 지켜만 봤다. 마치 나한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스륵스륵, 젖은 잎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면이었다. 마수가 오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소리가 작았다.

그 덩치가 움직이는 거라면 상당한 소음이 날 텐데.

타챠의 뒤쪽에 서며 앞을 보았다.

수풀을 뚫고 나온 건 손이었다.

마수의 털로 이루어진 손.

진갈색 손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공격 의사가 보였다면 타챠가 반응했을 것이다. 아저씨가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손의 형태를 이루던 털이 한순간 흐트러지더니, 털 뭉치처럼 둥글게 뭉쳤다.

“하…… 그…… 렇…….”

에단은 눈을 깜빡였다. 아저씨가 말한 건 아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소리를 낸 건 마수의 털이었다.

둥글게 뭉친 털 가운데 긴 실선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소리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분명 ‘공통어’의 어조를 띠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살고 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대 맞은 것처럼 둔중한 충격이 목 뒤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말을 따라 하는 마수야 여러 차례 보고가 됐다. 놀리듯 비명을 따라 하고, 자기가 죽인 인간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던 괴물들.

의사소통이 아닌 조롱의 방법으로 말을 이용하는 게 마수였다.

하지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나?”

타챠가 입을 열었다.

반대편에 있는 마수의 입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이해……한다.”

눈앞의 마수는 소통의 수단으로 말을 이용하고 있었다.

“네 목적은 뭐지?”

타챠가 물었다.

“……사는 것.”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수의 입 뒤쪽에서 들개들이 튀어나왔다.

몸을 한껏 낮추며 뛰쳐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야생 동물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보기에, 마수 근처만 가도 똥오줌을 흘리며 도망치거나 정신을 놓고 달려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저 들개들은 뭐지?

마치 동료를 감싸는 것처럼 마수를 위해 나서고 있었다.

들개 무리는 오늘 처음 마수를 본 게 확실했다. 처음 만났을 땐 경계하며 짖어 댔으니까.

마법, 혹은 특수한 방법으로 개들을 조종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난…… 괜찮다.”

입이 개들을 향해 말했다. 사납게 짖어대던 개들이 돌연 조용했다.

“동물과 대화가 가능한 건가?”

타챠가 질문했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 역시 이 땅에 살고 있다. 공생하는 자로서 돕기로 했다. 저들도 날 이해했다.”

삐걱거리던 말투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다듬어졌다. 눈을 감고 들으면 인간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학습하는 건가?

설마?

위기감이 들었다. 그라운드 제로를 겪었을 때만큼이나.

인간의 말을 하고 소통하며 자기 의지를 표명하는 마수.

“공생하는 자라.”

쿵, 소리와 함께 깃대가 땅에 꽂혔다. 에단은 놀란 눈으로 타챠를 바라봤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다급하게 물었지만 타챠는 대꾸조차 없었다.

“너한테서는 지독한 냄새가 난다. 모든 걸 삼키기만 하는 더러운 것들과 같은 냄새가 나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전사의 것이다.”

“전사.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타챠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깃대를 놓은 채로.

“재차 묻겠다. 넌 무엇을 바라지?”

“이미 답했을 것이다. 사는 거라고.”

“네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냐?”

“터전에서 지내는 것.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

“네가 뿌리내린 이 땅을 건들지 않는다면, 넌 우리와도 공생할 수 있는 건가?”

타챠가 손을 들어 올리고 검지를 세웠다. 손가락이 향하는 곳 끝에, 둔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곳에서 살 뿐이다. 다른 건 생각해본 적 없다.”

“그렇군.”

타챠가 몸을 숙였다.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던 들개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타챠가 손을 뻗어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마주칠 일 없었으면 좋겠군. 그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니까.”

“나는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그 의지에 변함은 없을 테고.”

입의 형태를 띤 마수의 털이 잘게 흩어졌다. 바닥에 깔린 털들이 스멀스멀 땅을 훑으며 어둠 사이로 스며들었다.

들개들도 타챠의 주변을 맴돌다가 흩어졌다. 들개 중 몇 마리는 에단을 길게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 눈빛에, 에단은 설명할 수 없는 위협을 감지했다.

“아저씨.”

“가자.”

“이대로 가겠다고요? 저런 걸 두고요?”

에단은 수풀 너머에 있을 마수를 떠올렸다. 저건 강철 같은 육체로 날뛰기만 하는 괴물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전투를 위한 단편적인 사고가 아닌, 인간과 대등한 높이에서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저런 걸 내버려 둔다면 향후 어떤 위험으로 변할지, 에단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산은 산에 사는 자들의 것이다. 외지인들이 뭐라 할 건 아니지.”

“네?”

“이 척박한 땅에 자리를 잡은 건 저 녀석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물러나라고 할 순 없지.”

“……말이 안 되잖아요. 스파우에 있었을 때 저랑 아저씨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잊은 거예요? 저런 마수들을 조사하고 토벌하는 일을 했어요!”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다.

하지만 타챠는 눈 하나 깜짝 안했다.

“그것들은 이지를 상실한 괴물들이었다. 약탈밖에 모르는 종자들. 침범만 아는 무례한 것들은 치워내는 게 당연한 이치지. 하지만 저건 다르다. 저것 안에는 전사가 깃들어 있다.”

“그놈의 전사, 전사. 그 망할 전사를 내버려 뒀다가 도시가 쓸릴 수도 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챠가 깃대를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에단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꼬마야. 내가 아리엘을 돕는 건 위대한 전사의 부탁 때문이다. 약간의 정도 있지. 하지만, 그걸로 날 속박하려 들지 마라. 내 혼은 언제나 산을 향하고 있으니까.”

흥, 하고 콧김을 내뿜은 타챠가 창대를 어깨에 이었다.

“배고프니 그만 돌아가자.”

“……그래도 보고는 할 거예요. 그게 우리한테 맡겨진 임무니까.”

“마음대로. 그거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것을 치워 버리려면 너희 인간족들도 많은 걸 내놔야 할 거다.”

에단은 노을이 얹어진 숲을 바라봤다. 그 안에 있을 괴물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사람은…… 구석에서만 살 수 없다고요.”

“그게 인간족들의 한심한 점이지.”

에단은 털레털레 걸어가는 타챠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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