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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병공 진군가-241화 (214/558)

제241화

루일은 대답 대신 작은 선생의 오른발을 가리켰다.

“의족 맞죠?”

작은 선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근데 어떻게 알아본 거야? 바지로 잘 가렸는데.”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바짓단 형태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골목에 의족을 한 아저씨들이 많아서.”

“그렇구나.”

작은 선생이 손으로 무릎을 매만졌다. 루일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교체할 때 아팠죠?”

“조금.”

조금. 저건 거짓말이 분명하다. 지난번에 의수를 교체할 때도 ‘조금’ 아플 거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거짓말 마요. 더럽게 아프다는 거 다 아니까.”

탁 소리와 함께 등이 얼얼해졌다. 엄마가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고 있었다.

“말버릇 고치라고 했지?”

“엄마! 나 그렇게 어린애 아니거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버티면 한 대 더 맞을 테니,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최대한 안 아프게 교체해줄게.”

“교체 안 해도 괜찮은데. 봐요! 왼손 잘 움직여요.”

의수를 내밀어 주먹을 쥐었다.

“그 상태에서 검지만 펴볼래?”

“검지요?”

“두 번째 손가락.”

작은 선생의 말대로 두 번째 손가락만 펴보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 번째 손가락이 삐거덕거리며 같이 펴졌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하나도 안 불편해요.”

“지금이야 문제가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이 안 움직일지도 몰라.”

“그러면 그때 교체하면 되잖아요.”

“중요한 걸 붙잡고 있을 때 손이 고장 난다면? 정말 소중한 걸 붙잡아야 하는 순간에 손이 말을 안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기쁘진 않겠죠.”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후회를 지금 없앨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루일은 슬며시 의수를, 그리고 엄마의 손을 봤다.

소중한 걸 붙잡아야 하는 순간.

“정말 안 아프게 교체할 수 있어요?”

“다른 곳보다는 덜 아플 거야, 아마도.”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요.”

루일은 왼손을 내밀었다.

“자요. 얼른 바꿔주세요.”

고개를 홱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보고 있으면 더 아프다는 걸 지난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예약하신 의수가 이 제품이에요. 성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분간은 교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거고요.”

작은 선생이 말했다. 엄마한테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의수에 관한 얘기가 오갔지만, 루일은 한쪽 귀로 다 흘려보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덜 아프냐, 이거니까.

“이제 갈아 끼울 거야. 조금 따끔거릴 텐데, 놀라지 마.”

“그 정도로는 안 놀라요.”

흘깃 눈을 떴다. 끈적끈적한 정체 모를 액체가 살갗에 닿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덜 아프게 해주는 약.”

안 보고 싶었는데 시선이 붙들려 버렸다. 루일은 어금니를 꽉 문 채 곧 찾아올 고통을 대비했다.

의수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 굵은 바늘로 뼈를 찌르는 듯한 아픔이 시작될 것이다.

나사가 풀리면서 의수와 팔을 연결하던 밴드가 헐거워졌다. 하얀 살이 보인다. 살짝 짓눌려 있었다.

의수 끝에 주황빛이 살짝 감돌았다. 루일은 눈꺼풀을 닫았다. 제발 저번보다는 덜 아프길.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팔 끝이 살짝 따끔거렸다.

뭐지?

실눈을 뜨자마자 떨어져 나간 의수가 보였다. 꾹 다물었던 입이 살며시 벌어졌다.

“아팠어?”

작은 선생이 물었다.

“아니요.”

벙벙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끼울 때는 조금 아프긴 할 거야.”

그제야 새 의수가 눈에 들어왔다. 약간 푸른빛이 감도는 쇠가 신기해 보였다.

“지금 썼던 거보다 가벼울 거야. 움직임도 자연스러울 거고.”

팔과 의수가 닿았다. 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주황빛이 일렁거리다가 사라졌다.

“손가락을 차례대로 움직여 볼래?”

루일은 의수를 바라봤다. 집중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손을 움직여 봤다.

느리게, 하지만 원하는 대로 손가락이 반응했다.

“적응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

“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길들이면 돼. 처음에는 의식하는 단계를 거쳐야 손이 움직이지만, 점점 그 과정이 단축되고 이내 생략할 수 있게 될 거야.”

루일은 주먹을 꽉 쥔 후 있는 힘껏 폈다.

“잘하네.”

작은 선생이 웃었다.

루일은 몇 번이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프지도 않았고, 손가락도 전에 쓰던 의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움직였다.

적응 기간이 끝나고 나면 오른손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인사해야지.”

엄마가 말했다. 루일은 눈을 흘기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괜히 엄살만 부린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얌전하게 있을걸.

바닥을 훑다가 시선을 올렸다. 미소 짓고 있는 작은 선생이 보인다.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루일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탄 할아버지가 있었다. 루일의 시선이 잘려 나간 두 다리에 닿았다.

“죄송합니다. 안에 아직 계셨네요.”

문을 연 여자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팔을 붙잡아 세웠다.

“저희 다 끝났어요. 작은 선생님, 그렇죠?”

“예. 따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습니다. 불편한 점 생기시면 언제든 찾아오시고요.”

“선생님이 봐주신 의수인데 문제가 있겠어요?”

호호 웃으면서 밖으로 나서는 엄마였다. 루일도 엄마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그제야 복도에 늘어선 사람이 보였다.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생긴 거지?

루일은 문틀 너머에 있는 작은 선생을 바라봤다. 여전히 입이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목소리도 상냥하다.

그래서 더욱 의아했다.

“여기 서 있으면 안 되니까 일단 나가자.”

보채는 엄마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루일은 엄마의 손을 꽉 잡은 채 작은 선생이 있는 방을 돌아봤다.

“엄마.”

“응?”

“저 형 말이야, 왜 웃는 척해?”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 절대 하지 마. 예의 없어 보여.”

“그게 아니라…….”

엄마가 눈을 찡그리며 바라봤다. 루일은 코를 씰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똑똑히 봤다. 작은 선생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 위로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짠데.”

루일은 사람들로 가득한 복도를 바라보다가 앞서가는 엄마를 따라갔다.

* * *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혹시 이번 주말에 약속이 있으신가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초대를…….”

“정말 가고 싶은데 주말에도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불러주시면 그때는 꼭 갈게요.”

제니는 벽에 기대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들었다.

나지막하게 한숨이 나온다.

주말에 약속이 있었어?

부축을 받으며 나온 손님과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방으로 들어갔다.

자료를 정리 중인 가하란과 눈이 마주쳤다.

“다음 분은?”

“오늘은 끝.”

“그래?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작은 선생님.”

“너까지 왜 그래.”

제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사방에 흩어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들이 보인다.

종이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주말에 약속이 있으시더라고요?”

“엿듣는 건 고상한 취미가 아니야.”

“엿들은 게 아니라 그냥 들렸어.”

제니는 종이를 가로로 눕혀 가하란의 눈을 가렸다. 종이 밑으로 방긋 웃고 있는 입이 보인다.

종이를 천천히 내렸다. 코가 가려지고 이내 입이 종이 뒤로 자취를 감췄다.

한없이 담담해 보이는 눈동자가 종이 위에 걸쳐졌다.

“주말에 정말 약속이 있어?”

“어, 있어.”

가하란이 종이를 낚아채 갔다. 제니는 으쓱거리며 상담용 의자에 앉았다.

“무슨 약속?”

“그것까지 보고해야 해?”

옅게 웃는 가하란이었다.

“스케줄 관리를 누가 하는지 잊었나 본데, 네 앞에 있는 내가 해. 루드 팩토리의 작은 선생님 앞으로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내가 관리한다고. 그러니 네 일정을 파악해 두어야 할 의무가 있지.”

가하란이 힐긋 바라보다가 몸을 틀었다. 서랍 쪽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3지구 c1-32 거리에 의뢰인이 계셔.”

“3지구 c1-32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다다음 달에 내방하시기로 했는데?”

“그랬던가?”

이제는 아예 등을 지고 대답하는 가하란이었다.

“찾아가서 상태 확인할 필요 없어. 잘 쓰고 계실 거야. 그러니 정기 점검 때만 오시는 거고.”

“연로하신 분이야. 혹시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러니 가서 확인해야겠다?”

“어. 업체 평판을 위해서라도 사전 점검은 필수야.”

볼살이 비틀린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며 숨을 내쉬었다. 달아오른 숨에 화를 실어 바깥으로 뿜어냈다.

좋아, 이제 좀 낫네.

제니는 책상 한쪽에 쌓여 있는 파일을 들고 일어섰다. 가하란이 곧바로 반응했다.

“뭐 하는 거야?”

“이건 당분간 압수. 오늘부터 루드 팩토리 보조기구 파트는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갈 거니 알아둬.”

“제니.”

“토 달지 마. 나 혼자 결정한 거 아니야. 아저씨들하고 상의해본 결과 이렇게 하기로 한 거야.”

“…난 괜찮아.”

괜찮다.

그 말에 꾹 눌러 담은 화가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뭐가? 뭐가 괜찮은데?”

화내면 안 된다. 가하란은 잘못이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 안 괜찮아. 너 안 괜찮다고. 차라리 아무 말 안 하고 있을 때가 더 나아 보일 정도야. 너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가하란이 말없이 다가왔다. 제니는 서류를 든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눈빛이 조금 무섭다.

가장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 탁한 눈동자는 무서웠다.

“제니, 그거 책상에 올려놔.”

“가하란!”

“난 정말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공장 어른들께도 네가 잘 말씀드려.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가하란이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제니는 가하란의 등을 바라봤다.

캄캄한 복도에 잡아먹힌 것처럼 가하란의 모습이 금방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

무수히 많은 말들이 한 줌의 숨으로 변해 밖으로 나왔다.

싸우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로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오만한 행동으로 가하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저 쉴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잠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사는 저 애한테 잠깐의 휴식을 주고 싶었다.

“아저씨, 어떻게 해야 해요?”

제니는 올란트를 떠올렸다.

아저씨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손에 든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가하란의 도피처라는 걸 알고 있다. 이걸 치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것마저 빼앗아 버린다면…….

“가하란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제니는 눈가를 닦아냈다.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와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웃음을 지은 후, 뒤를 바라봤다.

“언니, 왔어요?”

눈이 마주치자, 셀베이아가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녁, 아직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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