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차라리 장난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덴스는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를 지켜봤다.
연구원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올란트의 발상을 단번에 이해하고 실적용을 축하하는 쪽과 헛소리할 때가 아니라며 이 현상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쪽.
설전이 오갔다.
연장자인 루겐이 중재에 나서려 하는 걸 덴스가 붙들었다.
“말려야 하지 않겠나?”
“아니요, 잠시만요. 포일 팀장님도 이쪽으로 오시죠. 올란트 너도.”
격납고에 모인 마나회로 관련 연구자들은 총 열두 명.
그중 회로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나선 건 네 명 정도였다.
“펜톤 씨. 이걸 왜 이해 못 하시는 겁니까. 이 논리 회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간단한 거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마나회로를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걸 언제부터 용인했습니까? 안전 규약에 따라 회로의 기본 바탕을 설계해야 하는데, 이건 가장 중요한 기본을 지키지 않았어요.”
“지금 놀리시는 건가요? 질 나쁜 농담이라면 그만두시죠. 아까까지만 해도 실험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는데, 왜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그야 결과물만 봤으니까요! 마나 효율이 좋아졌는데 당연히 축하해야죠. 하지만 그 방식이 잘못됐다면 지적하고 바로잡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닙니까? 안 그래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덴스는 양측의 의견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신중하게 들었다.
“이런 기본 골자도 안 잡혀 있는 방식으로 베이스 소스에 손을 댄다? 효율성은 둘째 치고 안전성을 누가 담보합니까? 게다가 탑승자의 목숨은요? 기초적인 설계 원칙도 안 지킨 회로를 실적용하다니. 우리가 궁지에 몰렸어도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건 옳지 않아요.”
펜톤이 힘주어 말했다. 곁에 서 있는 연구자들도 그의 말이 옳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맞은편에 있는 젠바이움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이게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따로 설명이 필요해요? 이건 근본부터가 잘못됐어요. 꼬임에 단절은 물론, 심하면 왜곡까지 발생할 겁니다. 거병이 기동 정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탑승자에게 과부하가 걸릴 거고요.”
“이걸 보고도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정말 실망입니다. 이 심플한 구조 어디에 위험 발생 요소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규약을 어겼다는데, 이 도안 어디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겁니까?”
펜톤이 눈을 찌푸리며 테이블을 끌고 왔다. 기획서를 펼쳐놓고 검지를 치켜세웠다.
“여기. 이 부분이요. 다른 레이어에서 선을 끌어다 쓰는 이 부분. 이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봅니까?”
“예! 당연하죠. 레이어 간의 간섭은 이미 수많은 실험으로 허용 범위가 적용돼 있어요. 이 정도 수치면 정말 안전하고요.”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베이스 소스는 건들면 안 되는 영역이에요.”
“그러니까 원형을 유지한 채 베이스 소스에 흘러가는 마나를 끌어다 쓰는 거라고요. 이 간단하고 단순한 방식을 왜 이해 못 하는 겁니까?”
“이게 단순하다고요? 젠바이움 씨, 당신 미쳤어요? 지금 하는 짓은 눈 가리고 벼랑 끝을 걷는 거예요. 이번이야 재수가 좋아서 성공한 거지, 다른 회 차에서는 분명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해한 쪽은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얼굴이고, 이해 못 한 쪽은 이해한 자들을 살인마 취급하고 있었다.
대화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누구보다 논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상충하는 주제로도 합의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타협할 기미조차 안 보였다.
기이한 일이다.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신비로울 정도다.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않다니.
올란트가 제시한 방식은 기초에 충실하고 놀랍도록 단순했다.
천재만이 소유할 수 있는 기적의 공식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의견이 좁혀지질 않았다.
“계속 방치할 셈인가? 저러다 칼부림 날 것 같은데.”
루겐이 말했다.
“들을 건 다 들었으니 이제 가보죠.”
덴스는 펜톤과 젠바이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펜톤은 힐난하는 눈빛으로 덴스를 바라봤고, 젠바이움은 답답한 상황을 정리해 달라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펜톤.”
“예, 교수님.”
“정말로 이게 어떤 구조인지 이해가 안 되나?”
“교수님까지 이러실 겁니까? 검증 안 된 우연의 산물을 실적용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검증이 안 됐다. 그쪽에 있는 연구원들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
펜톤 뒤에 서 있는 공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개발팀장님,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A섹션 1-3파트, 이쪽을 손대보죠. 수치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정상 작동한다는 걸 보여주려면 여기가 가장 무난할 테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랑겔 툴이 마나를 머금고 엘리멘트 패널 위로 올라갔다. 포일의 섬세한 손길에 따라 툴이 움직였다.
참관인이 된 연구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변화하는 마력선 구조를 살폈다.
젠바이움 쪽은 의문을 품지 않았으나, 펜톤 측은 마력선이 하나 그어질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치에 어긋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덴스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베이스 아키텍처는 저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지금 교수님께서 손대신 영역이 바로 그곳이고요.”
“이상하군. 같은 걸 보고 있는데 이리도 다른 의견이라니. 이 구조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 건가?”
“예. 이건 편법조차 안 되는, 그냥 막무가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펜톤이 뒤를 돌아보며 말할 때였다. 논리 회로가 잘못됐다며 중단을 요구하던 연구자 중 한 명이 아,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자, 잠깐만요.”
“헤나, 무슨 일이지?”
덴스는 연구원을 보며 물었다.
“알겠어요. 이제 알겠어요! 펜톤,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거예요. 아니, 이걸 왜 눈치채지 못한 거죠?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론이에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헤나, 이게 정합하다고?”
헤나가 테이블에 놓인 기획서를 들어 올렸다.
“여기요. 이 점핑. 레이어를 넘는 이 방식은 모두 아는 거잖아요. 그걸 베이스 소스에 적용했을 뿐인, 정말 간단한 구조예요.”
“간단하다고?”
펜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도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게 말도 안 되는 장난 같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덴스 교수님께서 미친 줄 알았어요.”
헤나가 바라봤다. 덴스는 어깨를 으쓱거린 후 계속 말해보라는 눈짓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해가 됐어요. 아니, 이건 이해란 말을 붙이는 게 웃길 정도예요. 펜톤, 제 손가락이 몇 개죠?”
손가락을 쫙 펼치며 묻는 헤나였따. 펜톤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다섯 개.”
“그래요. 지금 이 논리 회로는 그 정도 수준이에요. 기초회로론만 마쳤어도 보자마자 이해할 정도라고요.”
펜톤과 헤나.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됐습니다. 가볍게 손댄 거라 문제 없을 겁니다.”
포일이 입을 열었다.
덴스는 펜톤을 비롯해 여전히 이해 못 한 연구자들을 불러 모았다.
“우연의 산물이라고 했지? 거병 논리 회로가 우연으로 두 번이나 정상작동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숫자로 꼽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냥 없다고 치부해도 좋을 정도죠.”
“그렇지?”
덴스는 유사 정령을 작동시켰다.
면전에서 회로가 재구성되는 걸 지켜본 펜톤이다. 이론은 둘째 치고 반박 불가한 현상이 눈앞에 벌어질 텐데,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예상한 대로 기동 점검이 정상적으로 끝났다.
거병이 가동한 것이다.
“…말도 안 돼.”
펜톤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멍한 눈으로 유사 정령을 바라봤다.
“나는 자네들의 이해력이나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이 자명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덴스는 박수를 세게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지.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겠지만, 여기서 떠든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연구진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나둘씩 격납고를 빠져나갔다.
“다들 납득 못 하고 다시 모여서 얘기해 보겠죠?”
올란트가 유사 정령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겠지. 아, 그렇습니까, 하고 순진하게 물러설 인간들이었다면 지금 여기에 있지도 않아.”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격납고에서 벌어진 일을 떠들어댈 것이다.
“가끔 보면 잉크 물에 물든 놈들이 칼 든 놈들보다 더 무서워. 혀끝 논쟁은 피가 마르거든.”
루겐은 내일 작업이 있으니 가보겠다며 격납고를 벗어났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죠?”
올란트가 말했다.
“연구원 중에 무지한 자는 없어. 이 정도의 기초 논리를 이해 못 할 리 없지.”
“그런데 발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개발팀장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느낌마저 든다고.”
방해.
덴스는 포일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눈앞에서 구조 변환까지 보여줬는데 수긍하지 못하는 건 분명 이상합니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라면, 눈앞에서 자명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도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겠죠.”
“평생 초록색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초록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처럼…….”
“그런 겁니다.”
덴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우리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이상할 뿐입니다.”
덴스는 올란트에게 시선을 주었다.
놀라운 지성을 품은 후배라면 이 기괴한 현상을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올란트 역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성도 하늘에는 이상한 생명체와 세상을 덮는 날개가 나타나고, 국경인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을 이해 못 하는 일이 생기는군요.”
포일은 거병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냈다.
“해프닝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럴 것 같지가 않아 찝찝하군요.”
“이 일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래야겠죠.”
포일이 감각기를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머리 좀 식혀야겠습니다.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군요.”
포일이 떠난 뒤, 덴스는 의자에 앉으며 이마를 짚었다.
“신이 장난치는 듯한 기분이야.”
“만약 그런 거라면, 참 할 일 없는 신이겠네요.”
올란트가 옆에 앉으며 기획서를 잡았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모두를 납득시킬 필요는 없지. 개발 인원을 덜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진행해야 해.”
“불만이 커질 수도 있어요.”
“다들 헤나처럼 차차 깨닫길 빌어야지. 하하, 빌어야 한다니. 끔찍한 일이야.”
초록색을 보지 못한 자에게 초록이 무엇인지 말로써 설명해야 한다.
아니, 현상을 보여줘도 그게 초록인지 이해를 못 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깨달음이란 말을 정말 싫어했는데, 오늘만큼은 그 말의 위대함에 기대게 되네.”
“내일 다시 모여서 얘기해보죠.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 구조가 시간을 들여야 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잖아.”
올란트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빌어 보자고요. 깨달음이 찾아오길.”
하, 헛웃음을 낸 뒤 말을 이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