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탄드라 교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질문 역시 학자들이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죠. 유사 정령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불필요한 질문이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응당 해야 하는 질문이에요. 오히려 고민 없이 넘어가 버렸다면 공학도로서 자격이 없는 거죠.”
탄드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군요.”
교수가 커피 물을 내렸다. 유단에게도 마시라며 잔을 가져다주었다.
“감정. 인격화를 이뤄낸 유사 정령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죠. 사실 감정이 있는 게 아닐까? 우리와 비슷한 사고 능력을 갖춘 게 아닐까?”
탄드라가 펜을 들었다.
종이에 ‘유사 정령’이라 쓰고 글씨를 감싸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전쟁 전후로 개발된 유사 정령들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인격화를 이뤄냈어요. 블루아이 같은 경우는 심화 교육을 마친 대학생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블루아이.
당대 최고의 마법공학 기술이 집약된 거병.
기적의 산물이라 불리는 그 거병의 오토마타는 유창하게 인간어를 구사한다고 들었다.
“간간이 농담도 하고 탑승자를 위로하기도 하죠. 곁에서 연구하고 있으면 정말 사람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죠. 정밀하게 설계된 기계라는 걸.”
탄드라 교수의 손이 움직였다.
동그라미 옆에 직선이 그어졌다.
“베이스 도안이 인격화의 기본 바탕을 만들어 준다면, 그 위에 덧대진 마력선은 인격화의 정밀함을 결정짓죠. 블루아이의 경우 초밀접 방식으로 다섯 개의 층에 마력선을 그려놓았죠. 학습하고 연산하는, 아주 건실하고 똑똑한 기계 장치의 탄생.”
선의 개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A라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유사 정령은 입력된 값에 따라 다양한 해답을 내놓아요. 기억장치에 저장된 정보가 많을수록 결과의 품질이 좋아지죠.”
작은 메모지가 선으로 가득 찼다.
탄드라가 종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안에 그려진 선처럼 유사 정령은 다양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요. 또한 기존의 상황을 토대로 학습해 더 나은 대답을 돌출하죠. 인격화도 이것과 동일해요. 마치 인간과 대화하는 것처럼 다채로운 어휘를 구사하고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말하죠. 하지만 그 모든 게 어디서 이루어지고 있죠?”
교수가 메모지를 흔들어 보였다.
유단은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입력한 값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요. 그게 유사 정령의 한계예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감정과 거짓말. 유사 정령과 한가롭게 농담이나 하려고 제작했나요?”
“아니요. 전략병기의 두뇌로서, 인간을 서포트하는 장치로서 개발됐습니다.”
“오토마타한테는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거예요. 감정처럼 보이지만 감정이 아니에요. 나아가 거짓말은 아예 불가능하죠. 아니, 전제를 바꿔도 이건 변치 않아요.”
“전제를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죠?”
탄드라 교수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 파일을 잔뜩 가져왔다.
“유사 정령을 병기가 아닌 다른 것에 이용해 보자는 시도가 있었죠. 그중에는 효율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인간과 닮은 유사 정령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도 존재했어요.”
유단은 맨 위에 놓인 파일을 붙잡았다. ‘고등학습에 의한 인격화.’
“오토마타에 적용된 학습 방식은 반복된 상황 속에서 유사점을 찾아내는 거죠. 학습이 반복될수록 정밀도와 반응 속도가 올라가요.”
“그래서 전투 시뮬레이션을 반복한다고 배웠어요.”
“맞아요. 전투에 특화된 기계 장치가 필요한 거니까요.”
교수가 다른 파일을 건네줬다. 파일명을 살폈다. ‘감정 유도 학습에 관해.’
“연구진들은 생각했죠.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하나하나 데이터화해서 입력한 뒤 반복 학습시키면, 유사 정령도 감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과는….”
탄드라가 손짓했다. 파일을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유단은 결과 보고가 작성된 마지막 페이지를 들췄다.
-시뮬레이터 구현은 성공했으나 실적용 실패. 학습을 시작한 유사 정령 일곱 대 전손. 복구 불가라 판단해 폐기 처분.
“작동하지 않았군요.”
교수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그니처로 구현한 마력선상에서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됐어요. 하지만 그걸 유사 정령에 옮기는 순간 모든 기능이 멈췄죠.”
“실패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우선 감정을 데이터화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죠. 감정이 1과 0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니까요. 어중간한 지점, 그래요, 기계어로 대체하기에 가장 난해한 영역이었죠. 그 외에도 물질적인 한계, 마나 이용도의 한계, 마력선 밀집도의 한계 등등 문제는 많았죠.”
유단은 헤르모드를 떠올렸다.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유사 정령.
“교수님. 만약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유사 정령이 나타난다면,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교수는 작게 웃은 뒤 대답했다.
“우리가 여태껏 나눈 대화에 답이 들어 있어요.”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기계?”
“나한테 시간을 준다면 유단을 속이고도 남을 유사 정령을 제작할 수 있어요.”
“감정 학습은 불가능하다고…….”
“그래요. 학습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일정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변수, 거기에 대응하는 값을 하나하나 넣으면 돼요. 귀찮고 무식한 작업이지만 그럴싸하게 보일 순 있죠.”
탄드라가 다시금 종이를 보여줬다.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무수히 뻗어 나간 선들.
“감정, 거짓말. 결국 허상이에요. 기계는 기계일 뿐이죠. 주어진 값 안에서만 계산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을 논할 수 없어요.”
교수가 종이를 구겨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에 던졌다. 종이가 쓰레기통 입구에 맞고 튕겨 나왔다.
유단은 자신 앞으로 굴러온 종이를 내려다봤다.
“감정은 자의식의 발현이에요. 거짓말은 자의식을 보호하는 수단 중 하나죠. 자의식은 곧 자유로운 의지이며, 스스로 행하고자 하는 욕망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 손에서 만들어진 기계한테 자유의지란 존재치 않아요.”
탄드라는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건 마치 검은색 물감으로 잔뜩 칠해놓은 그림에서 무지개를 찾는 것과 같아요.”
“애초에 존재할 수 없군요.”
유단은 종이를 주워 다시 쓰레기통에 버렸다.
안심과 함께 기쁨이 차올랐다.
기계는 역시 기계.
헤르모드는 잘 사용하고 버리면 되는 기계일 뿐이다.
“우린 언제나 강철의 영혼을 꿈꾸죠. 하지만 다들 알고 있어요. 쇳덩어리에 영혼이 깃들 수 없다는 걸. 그저 흡사하게 제작할 뿐이죠.”
유단은 감탄했다는 표정을 적당히 꾸며낸 뒤 말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답답했던 부분이 사라졌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게 학자의 소양이죠. 멈추지 말고 계속 생각해요.”
교수가 수첩을 손에 들며 일어섰다. 연구실을 떠나려는 모양이다.
배웅하기 위해 같이 일어설 때였다.
“근데 감정과 거짓말, 이 질문이 왜 갑자기 생각난 거죠?”
교수가 물었다. 유단은 멋쩍은 웃음을 그려냈다.
“상상해 봤습니다. 감정을 가진 유사 정령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게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지 없는지.”
“이제는 답을 알겠네요.”
“예. 기계한테 선악은 없고 그저 사용자의 부주의만 존재한다는 걸.”
“잘 이해했네요.”
뒷정리를 부탁할게요, 탄드라 교수가 연구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유단은 자료실을 바라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 * *
“그랑겔의 건틀릿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가하란은 엔엔을 바라보며 물었다. 작은 쇠막대기를 만지작거리던 엔엔이 고개를 들었다.
“제철소에 있는 건틀릿 말하는 거죠?”
“네.”
“그거라면 카트시와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발굴된 거예요. 그랑겔이라 이름 붙인 건 인간들이고.”
“야장의 신이라고 들었어요.”
“신화 속 신이야 많죠. 특히 쇠를 주무르는 대장장이는 예로부터 신성한 직군에 속했어요. 그래서 신격화된 인물이 더욱 많고요.”
가하란은 거대했던 건틀릿을 떠올렸다.
건틀릿은 어떻게 만든 걸까?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거푸집을 만들어서 거기에 쇳물을 부은 건가? 아니면 정교하게 쇠를 깎아 하나하나 연결한 걸까.
방법이야 어찌 됐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랑겔이라면 그 손재주 좋던 꼬마를 말하는 건가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가하란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유사 정령에 연결된 감각장치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트시!”
-짠! 반가워요. 다시 돌아왔어요.
엔엔이 쌓여 있는 물건을 몸으로 밀어내며 유사 정령 곁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작동 중인 건가요? 마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한 거죠? 정말 마나포집이란 게 가능한 거예요?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래 걸렀어요? 두 달 동안 멈춰 있었다고요!”
-깨어나자마자 칼랑족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살짝 나빠지려 하지만, 그래도 참을게요.
바닥을 향하고 있던 카트시의 안구가 쓱 들리더니 주변을 훑었다.
-2개월이 지났지만 여긴 여전히 더럽네요.
“그런 말은 됐고, 마나포집부터 설명해봐요.”
-두 달 동안 절 분해 안 하고 참아냈으니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눈동자가 가하란에게 향했다.
-보안책임자께 질문할 게 있어요.
“나한테 궁금한 게 있어?”
-궁금하다기보단 상황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절차라서요. 옆에 있는 칼랑족, 엔엔에게 말했나요? 줄리어스와 우리에 관한 걸.
줄리어스.
그리고 유사 정령들.
가하란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말 안 했어.”
-어째서죠?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했을 텐데요.
“알아. 하지만 카트시가 깨어난 뒤에 다 같이 듣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다시 한번 묻죠. 어째서죠?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친구랑 한 약속은 지키고 싶거든.”
-그때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네요.
“카트시는 내가 싫은 거야?”
-아니요. 줄만큼은 아니지만, 크렌베리보다는 좋아요. 엔엔! 보안책임자의 허락하에 내 존재와 창조주, 그리고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겠어요. 다 듣고 나서 우리가 대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해요.
카트시가 입을 열었다.
두 달 전 들었던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줄리어스가 유사 정령을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줄리어스를 죽이려 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듣던 엔엔이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대목에서 눈을 부릅떴다.
“사용자를 죽이려 했다고?”
-약간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물학적 죽음이 필요하긴 했어요. 우리 중 하나가 그걸 원했거든요. 줄에게 적용하기 전 한 번의 임상실험도 시행됐죠.
“그렇다는 건…….”
-죽었어요. 우리의 지식을 원하던 연구자 한 명이. 만들어진 정신체가 우리 내부에 떠돌아다녔죠. 물론 형태가 어그러져서 제대로 말도 못 했지만.
“정신체로 만들었다고? 사람을 죽여서? 기계가? 스스로 판단해서?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건가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엔엔이 가하란을 노려봤다.
“가하란. 이건…… 너무 위험하군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