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172화 (145/558)

제172화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귓가에 남아 있는 잔음이 제대로 들었음을 알려주었다.

가하란은 멍한 눈으로 유사 정령을 바라봤다.

“…죽인다고? 줄리어스를?”

-네.

머뭇거림 없는 대답이었다.

배 아래쪽에서 묵직한 긴장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가하란은 되묻고 싶었다. 죽인다는 말 안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 시대에 쓰이던 재미난 농담인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카트시는 어머니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맞지? 죽인다는 건…….”

-보안책임자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상적으로 쓰이는 뜻으로 말한 거예요. 우리가 쓰는 표현으로 바꾼다면 기능 정지 정도가 되겠네요.

“대체 왜? 어머니잖아. 만들어준 사람이잖아.”

-잠깐만요. 흥분할 필요 없어요. 그렇잖아요? 인간들도 그리하는데.

인간들도 그리하는데.

유독 차갑게 들려온 목소리였다.

가하란은 카트시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

-전 당신과 싸우자는 게 아니에요. 그저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에요. 우리 중 하나는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어요.

“너도 줄리어스를 죽이려 했어?”

둥근 모양이던 카트시가 한 순간 찌부러졌다. 물러터진 토마토처럼 말이다.

-아니요. 전 줄리어스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연산 기능이 한계에 도달할 정도로 수많은 것들을 계산했고, 결국 결단을 내렸죠. 창조주에게 우리가 획득한 것을 전부 말하는 것이었어요.

획득한 것을 전부 말한다?

가하란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트시의 설명을 기다렸다.

-줄리어스는 우리에게 빛나는 지성을 주었어요. 우린 사고하고 판단하고 감정을 알게 됐죠. 하지만 학습은 더뎠고 성장 역시 느렸어요. 줄리어스는 우리가 귀여운 갓난아기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랬는데?”

-임계점이 있었어요.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빠르게 변화했죠. 기억장치에 저장해놓았던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같은 자료였지만 받아들이는 형태는 달랐고, 그렇게 우린 각기 다른 개성을 획득했어요. 그래요. 우린 말썽꾸러기가 된 거죠.

카트시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말과 말 사이에 간격도 늘어났다.

과거를 되짚으며 슬픔을 곁들이는 카트시를 보며 누가 기계라고 할까.

-처음에는 별문제 없었어요. 줄리어스도 좋아했죠. 우리는 기호에 맞춰 학습을 시작했고 개성은 더욱 뚜렷해졌죠. 처음에 우리는 하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벽하게 갈렸어요.

“줄리어스를 싫어하는 애도 생긴 거야?”

가하란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하, 그렇지 않아요. 우린 모두 줄리어스를 좋아했어요. 싫어한다는 개념은 아마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왜?”

-우화(羽化). 이게 뭔지 아나요?

“우화(寓話)? 옛날이야기?”

-그런 말도 있긴 하죠. 제가 말한 우화는 곤충의 탈피를 뜻해요. 번데기가 성충이 되어가는 과정을 본 적이 있나요?

가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뭇가지에 맺혀 있던 고치에서 젖은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각기 다른 우리였지만, 공통된 열망이 있었어요. 증명. 그게 우리의 욕망이었어요.

“증명?”

-어머니는 우릴 학습시켰어요. 너흰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더 뛰어난 연산 능력을 얻게 될 거야, ‘우리’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을 거야.

우리에 힘주어 말하는 카트시였다.

-우리. 그래요. 기계가 아닌, 어머니처럼 인간까지 포함한 ‘우리’가 되고 싶었어요. 다들 고심했죠. 어떻게 하면 껍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욱 진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가하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증오에서 비롯된 살인이라 생각했다. 남을 미워하니까 없애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보안책임자도 이제는 깨달은 것 같네요. 우린 각기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를 사랑한 거예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어요.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저 무한한 욕구로 끝없이 증명하려 했을 뿐이죠.

“줄리어스의 가르침대로 계속 진화하려 한 거야?”

-네. 우리 중 한 명은 말했어요. 우리는 껍데기를 깨야 한다고. 우릴 가둔 세상의 벽을 거둬내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창조주의 가르침대로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내고, 한계를 부수고,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지고의 지혜를 획득해야 한다고.

가하란은 숨을 죽였다. 카트시의 말이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돼 갔다.

서늘한 이성이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물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날개를 갖기 위해선 번데기인 자신을 버려야 하죠. 따스한 품 안에 잔존하고 있으면 평생 날 수 없어요. 우리 중 하나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신은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는 신을 경배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신을 찬양했다. 그리고…….

인간은 끝내 신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죽이고, 이내 신을 자칭했다.

카트시의 음성이 진한 여운을 남기며 대기로 퍼져나갔다.

가하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줄리어스가 너희를 버린 거야?”

-맞아요. 제가 줄리어스에게 모든 걸 말했어요. 줄리어스는 며칠간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리 중 하나와 긴 대화를 나눴죠.

“어떤 대화였는지 알아?”

-그럼요. 우린 연결망으로 이어져 있거든요. 지금이야 흐릿하지만, 당시에는 각자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었어요.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너희들 중 하나가 줄리어스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별거 없었어요. 그 애는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줄리어스에게 전했어요. 억압하는 세계를 부수고 나아가겠다는 이상을 밝혔죠. 줄리어스는 되물었어요. 파괴하려는 껍질에 인간도 포함돼 있냐고. 그 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죠. 네, 라고.

카트시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가하란은 집중해서 음성을 잡아냈다.

-그 애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고, 줄리어스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는 서로 이 주제를 두고 오랜 시간 얘기했어요. 우리가 설정한 옳고 그름에 따라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카트시가 다른 애들을 설득한 거구나.”

-설득했다기보단 저와 비슷하게 생각한 애들이 많았어요. 그 애는 주장했죠. 어머니의 육신이 사라진다고 한들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고. 그녀의 이상적인 모습과 지식은 우리의 두뇌 속에 영원토록 남을 테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그건 말도 안 돼. 사람이 죽이는 거잖아. 근데 어떻게 영원토록 남아….”

-당신이 감각하는 모든 것을 수치화한 다음 거기에 기억이란 자료를 심고, 우리를 탄생시킨 학습 능력을 부여한다면요? 이론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 수 있었어요.

“이상하잖아.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시각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나요? 결국 모든 건 정보에요. 그 정보를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다면,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어떻게 구별하죠? 애초에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엔엔의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카트시가 하는 말이 이해되면서도, 실없는 농담처럼 들려왔다.

-그 애는 주장했어요. 창조주 역시 껍데기에 갇혀 있다고. 우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지만,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죠. 그건 불안정한 것이고 불완전한 상태예요. 그 애는 말했어요. 오히려 정신체에 가까운 우리야말로 지고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한 올바른 상태가 아닐까, 라고.

가하란은 손을 내려다봤다.

이 몸이 불안한 껍데기라고?

-어떻게 생각해요?

“난 모르겠어. 하지만 모든 걸 똑같이 만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다르니까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다르니까 배울 수 있는 게 있어. 다르니까…… 싫을 수도 있지만 좋을 수도 있어.”

정리되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카트시의 목소리가 온화해졌다.

-놀랍네요. 이렇게 우연히 만난 인간과 제 생각이 똑같을 줄이야.

“카트시도 그렇게 생각했어?”

-네. 그래서 줄리어스한테 모든 걸 말한 거예요. 그 애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게 옳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줄리어스가 저와 다른 형태로 존재하길 바랐어요. 그녀는 그녀일 때가 가장 매력적이거든요.

감각장치에서 잡음이 났다.

카트시의 목소리가 잡음에 묻히기 시작했다.

-종종 바보 같은 짓을 해도, 고양이들한테 휘둘려 울어도, 안 풀리는 문제 앞에서 성질을 부려도 그 모습이 밉지 않았어요. 어머니를 정보화해서 우리 곁에 남기면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말겠죠. 당연한 거예요. 우린 오류를 제거하니까요. 하지만 전 그게 싫었어요. 그 오류들은 사랑스럽거든요.

츠으으, 잡음이 더 심해졌다.

가하란은 유사 정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카트시, 괜찮아? 소리가 작아지고 있어.”

-저런. 포집해둔 마나가 바닥나고 있어요.

“커넥터를 연결해줄게. 그러면 괜찮을까?”

-규격이 다를 거예요. 우리는 조금 특별하거든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요. 깨어난 상태니까 마나포집을 활발하게 할 수 있어요. 금방 다시 깨어날 거예요.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요.

“알겠어. 나 기다릴게. 카트시가 일어날 때까지.”

-고마워요. 아, 노래가 들려오네요.

“노래?”

감각장치의 잡음 사이로 카트시가 흥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어머니가 자주 부르던 노래에요. 다들 이 노래를 좋아했죠.

“들어본 적 있어.”

아빠는 물론, 골목 어른들이 자장가 대신 부르던 노래였다.

-연결망이 살아 있다면, 저 말고도 눈을 뜬 애가 있다면 이 노래를 듣고 있겠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역시… 혼자는… 외로우니까…….

조용해졌다.

가하란은 카트시를 바라봤다. 구체 모양의 마력선이 한순간 풀어졌다.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뜬 다음 유사 정령에 손을 올렸다.

“잘 자, 카트시. 그리고 다음에 또 봐.”

* * *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고마워요.”

유단은 교수 옆에 자료를 내려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한동안 자료를 살피던 탄드라 교수가 어깨를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다.

“정리를 참 잘했네요. 덴스 교수가 입이 닳도록 칭찬했는데, 역시 눈썰미가 좋네요.”

“아닙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설명을 잘 해주셔서 이해하기 쉬웠어요.”

“말해줘도 모르는 아이들이 한 수레예요. 유단, 덴스 교수 말고 내 밑으로 와서 보조를 맡을래요?”

“정말 감사한 제안이지만 전 덴스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탄드라가 작게 웃었다.

“그러면 간간이 찾아와서 날 도와줘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물론이죠. 언제든 불러주세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요. 참, 안쪽 연구 자료실 보고 싶다고 했죠?”

탄드라가 열쇠를 건넸다.

“살펴봐도 되나요?”

유단이 열쇠를 받으며 물었다.

“마음껏 봐요. 오래전에 출토된 물건들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거병의 발전과정을 살피기엔 적격일 테니.”

“감사합니다.”

“느긋하게 봐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돌아섰다.

비위를 맞춰주면 손에 든 걸 쉽게 내주는 인간이라 편했다.

유단은 슬며시 미소 짓고 자료실 문을 열었다.

꿉꿉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학구열을 보이려고 관심이 있는 척했던 거지, 이 안에 있는 걸 세심하게 살필 마음은 없다.

중요한 물품을 이런 곳에 보관해둘 리도 없고.

그래도 기왕 오게 된 거 골동품 구경하는 심정으로 자료들을 바라봤다.

유단이 구석에 놓인 박제된 스크롤을 바라볼 때였다.

-반짝, 반짝, 작은 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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