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151화 (124/558)

제151화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가하란은 걱정을 담아 형, 누나들을 바라봤다.

“저러다 쓰러지겠어요.”

하지만 민 교수는 별 관심이 없다는 눈초리였다.

5분 전,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천천히 걷고 있는 스콜라 생도들이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걷는데, 하나같이 굵은 땀을 흘리며 숨을 껄떡댔다.

그 상태로 세 바퀴째 도는 중이었다.

“저 정도에 쓰러질 거면 짐 싸서 집으로 가야지. 거병 기사가 된다는 건 그런 거야.”

민 교수가 말했다.

가하란 옆으로 율이 지나갔다.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미엔과 로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다리가 흔들거렸다. 이리엘데도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자세를 유지하며 걷는 건 밀레나와 브리테, 둘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도 힘들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쟤들 걱정은 나중에 하고, 넌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일이요?”

민 교수가 팔짱을 낀 채 턱에 왼손바닥을 댔다.

“너 평소에 뭐 하고 놀았어?”

“노는 거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얼른 대답하라는 눈빛이 돌아왔다.

“애들하고 이것저것 하고 놀았어요.”

“이것저것 뭐?”

“그냥 놀이요. 공차기도 있고, 돌멩이 던지기도 있고, 이어달리기도 있고.”

“얌전히 앉아 있는 건 싫어해?”

“그냥 있는 건 싫어요. 대신 책보는 건 좋아해요. 읽을 책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요즘은 브라인 님이 주는 책들을 읽고 있어요.”

“밥해 먹는 건? 주로 아버지가 해줬어?”

가하란은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주변 어른들이 챙겨줄 때가 많았어요. 저는 음식을 데우거나, 작게 나눠서 보관하는 정도만 하고요.”

“직접 요리해본 경험은 적다?”

“네.”

“좋아.”

민 교수가 수첩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근데 이런 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방법을 찾아보려고. 물론 성과를 못 거둘 확률이 매우 높아. 아니, 분명 실패하겠지. 그럼에도 해봐야해.”

민 교수가 펜촉으로 가하란을 가리켰다.

“마나를 감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볼 거야.”

마나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신이 나 발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마나요? 어떻게요? 타챠 아저씨는 마나는 가르칠 수 없다고 했는데.”

“맞아. 가르치는 건 불가능해. 그게 가능했다면 선별이 아닌 육성을 했겠지. 근데 타챠가 누구지?”

“이상한 농담하는 타린족 아저씨요.”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 타린족의 시시껄렁한 농담은 몇 번 들어서 알고 있지.”

민 교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 한 마리가 낮게 날며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마나를 일깨우는 확실한 훈련법 따위는 없어. 마나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몇몇 방법론 정도는 존재해. 실재로도 제국 내에서 연구 중이기도 하고.”

펜을 돌리며 말을 잇는 민 교수였다.

“마나가 어떤 건지 알고 있어?”

“이해한 건 아니지만 들은 건 있어요. 근데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달랐어요.”

가하란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힘, 모든 것의 근원, 모든 것의 안식처, 기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 위대하지만 몰라도 크게 지장 없는 것.”

“대강은 알고 있네.”

민 교수가 생도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자세 유지하고 똑바로 하라고.

가하란은 움찔하며 민 교수를 봤다. 호통칠 때 교수님은 정말로 무서웠다.

말 잘 들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민 교수의 얘기를 기다렸다.

“마나가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어. 그래서 모두 비유로 설명하는 거고. 사과를 가리켜 동그랗고 빨간색을 띤 달콤한 과일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결국 다른 개념을 빌려와 설명한 것이 지나지 않아.”

민 교수가 말을 멈추고 가하란을 바라봤다.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네.”

“혹시라도 이해가 안 된다면 바로 말해. 그래야 네 수준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이 대화 방식, 칼리고 아저씨와 무척이나 닮았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은 꽤 친해 보였는데.

궁금함에 입술이 가려웠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지금은 마나를 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결국 마나는 ‘힘’이라는 비유로 설명이 돼. 네가 말한 대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미지의 힘. 우리 문화는 그 힘에 기반해 구성될 정도로 인간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

민 교수가 훈련장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거병을 가리켰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저 거병도 마나의 산물이야. 비단 동력원뿐만 아니라, 저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회로와 부자재, 뼈대인 탈로스를 제작하는 일에도 마나가 필요해.”

“마나로 빛나는 등, 작은 불꽃을 내는 막대기, 연구소 앞을 지나가던 말없는 수레. 그런 것들도 전부 마나의 힘이죠?”

민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 전부 뿌리에서 빌린 힘이지. 우리는 마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사용은 하고 있어. 저 애들 역시 마나를 사용 중이고.”

제자리에 멈춰 허리를 접은 로운이 보였다. 미엔이 옆에서 다독이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이리엘데가 로운의 등을 살며시 밀 때였다.

“누가 낙오자를 도와! 자기 몸이나 똑바로 챙겨!”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가하란은 살며시 귀를 막고 민 교수를 올려다봤다.

눈가에 잡힌 주름이 매섭게 보였다. 내가 혼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들 정도였다.

“아줌마가 못된 사람처럼 보이지? 막 소리치고 닦달하고.”

“조금 무섭긴 해요.”

“앞으로 같이 살 거니까 다시 한번 말해둘게. 아줌마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무심한 눈길이었다. 짓누르는 눈빛에 목을 살며시 움츠릴 때였다.

민 교수가 표정을 풀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너한테 신경질 부릴 정도로 못돼먹은 인간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말고. 아, 가끔 술에 취해서 너한테 신세 한탄은 할 수 있어.”

활짝 웃으며 가하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민 교수였다.

멋지면서도 무서운 사람. 괄괄하게 웃지만, 조용할 때는 한없이 조용한 사람.

가하란은 민 교수가 어떤 어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교수님.”

“응?”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

“형들이랑 누나들,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 거죠?”

“맞아. 신체술을 사용 중이야.”

가하란은 천천히 걷는 생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저렇게 힘들어해요? 그냥 걷는 거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직접 봐볼래?”

민 교수가 단안경을 넘겨주었다.

모노클을 통해 훈련장을 바라봤다. 걷고 있는 생도들 몸 주변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녹빛도 있고, 연파랑도 있고. 다들 예쁜 색으로 물들었다.

“마나가, 그러니까 색이 몸을 떠나지 않고 모여 있지?”

“네.”

“모노클로 아줌마를 봐볼래?”

고개를 살짝 돌렸다. 민 교수의 모습이 보인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자른 갈색 머리카락을 시작으로 시선을 점점 아래로 내렸다.

“어때?”

“아주 희미한 빛들이 몸 전체에 달라붙어 있어요.”

“이번에는 네 신발을 한번 봐볼까?”

고개를 숙여 발을 보았다.

민 교수와 달리 빛들이 몸에 깃들지 않았다. 지면과 닿아 있는 발 주변에서 뭉글거릴 뿐.

“전 아무 색도 없어요. 빛나지도 않고요.”

“뿌리와 접촉, 즉 마나를 깨닫게 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뿌리에서 올라온 마나들이 몸을 통과해. 그렇게 몸에 흐른 마나는 곧바로 대기로 흩어져 자연상태로 돌아가고.”

설명을 들으며 다시 한번 모노클로 민 교수를 살폈다. 민 교수의 말대로 바닥을 타고 올라온 빛들이 몸에 잠깐 머물다가 흩뿌려졌다.

“마나는 흩어지려는 성질을 갖고 있어. 뿌리에서 지면으로 올라올수록 마나의 농도는 점점 옅어지고, 지상으로 나온 마나는 정말 희미한 수준이 돼.”

민 교수가 팔을 힘껏 휘둘렀다. 은은한 빛무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세상은 온통 마나로 차 있어. 농도는 옅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야.”

민 교수가 가하란을 응시했다.

“물을 끓이려는데 불씨가 너무 작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불씨를 키워야 해요.”

“그렇다면 마나를 쓰려면?”

“흩어지는 것들을 모아야 해요.”

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술은 마나를 붙들어두는 것부터 시작해. 이렇게 말이지.”

민 교수의 몸이 한순간 밝게 빛을 냈다. 신비로운 연보라색이었다.

모노클을 통해 보면 확연히 구별되는 빛들이, 맨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다.

마나는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이 힘으로 신체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완력을 키우고, 민첩성을 높이는 거야.”

상체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던 민 교수가 한순간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못해도 6미터는 뛰어오른 것 같았다. 사뿐하게 바닥으로 내려온 민 교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론상 마나를 계속 붙들어둘 수 있다면 초인적인 상태를 평생 유지할 수 있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은 아마 없을 거야. 아예 없다고 단정하고 싶지만, 가능성이란 건 열어둬야 하는 법이니까 ‘아마’라는 말을 붙여둘게.”

가하란도 민 교수를 따라 발을 굴렀다. 지면에서 살짝 떨어졌던 몸이 금방 추락했다.

“왜 계속 붙들어둘 수 없는 거예요?”

“아까 불씨로 비유를 들었지? 그렇다면 불씨를 키우려면 뭐가 필요해?”

“어, 장작이요. 그리고 바람.”

“장작. 그래, 네 말대로 불씨를 유지하면서 키우려면 땔감이 필요해. 불씨가 마나라면 땔감은 체력과 정신력, 혹은 심상세계라 할 수 있지.”

체력과 정신력은 알아들었다.

하지만 심상세계는 어떤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표정, 묻고 싶은 게 생긴 모양인데?”

“네.”

“아마도 심상세계겠지?”

가하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옆으로 밀레나와 율이 지나갔다. 힘내라는 의미를 담아 손을 흔들어준 뒤 민 교수에게 시선을 던졌다.

“기록보관서는 브라인 님의 심상세계가 구현된 공간이라고 들었어요. 말이 어려워서 브라인 님한테 몇 번이나 물었어요.”

“대령님은 뭐라고 하든?”

“마음속 풍경이래요. 각자가 품은 각자의 세상. 절대로 같을 수 없는 고유한 세계. 근데 이것조차 어려워요.”

“그럴 수밖에. 아까도 말했지만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야. 한계가 명확해. 올바르게 전달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야.”

민 교수가 한쪽 눈을 씰룩였다.

“가하란.”

“네?”

“너는 왜 가하란이야? 네가 너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인 이유?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나, 그리고 이유.

근데 그걸 붙여 놓으니까 대답하기 껄끄러워졌다.

이럴 땐 간단한 것부터 하나하나 정리하는 게 편하다고, 핀들론 할아버지가 알려주었다.

“아빠 엄마가 그렇게 이름 지었으니까요. 가하란이라고.”

“그렇다면 너랑 같은 이름의 사람이 있다면? 걔도 너일까?”

“아니요! 이름이 똑같다고 같은 건 아니에요.”

“그러면 무엇이 널 구분 짓는데?”

“음….”

생각이 길어질 것 같았다.

민 교수가 의자를 슬그머니 밀었다. 등받이가 없고 다리도 짧은 의자다.

“앉아서 찬찬히 생각해봐.”

그렇게 말한 다음 생도들을 향해 걸어가는 민 교수였다.

“로운!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해. 그리고 브리테! 요령 피우지 마! 밀레나! 그거 해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긴장 놓지 마!”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