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칼리고 아저씨는 어떤 일을 할까?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그래도 추리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칼리고를 빤히 바라보며 반으로 가른 완자를 입에 넣었다.
“와.”
생긴 건 옆집 할머니가 종종 해주던 완자와 비슷한데, 맛은 전혀 달랐다.
넋이 나갈 정도의 맛이었다. 수수께끼에 관한 것이 싹 날아가고, 머릿속에 완자만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놀라서 멍하게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맛있지?”
칼리고가 완자를 입에 넣으며 물었다.
“네.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맛있어요. 왜 이렇게 맛있죠?”
“그게 다 장인의 손맛이지. 요리계의 마에스트로로 괜히 꼽히는 게 아니야.”
마에스트로. 언제 들어도 멋있는 이름이었다. 각 분야의 권위자에게만 허락된다는 호칭.
“저도 언젠가는 거병 제작의 마에스트로가 되고 싶어요.”
“그래. 모름지기 사나이라면 꿈을 크게 가져야지.”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나?”
칼리고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난 내가 할 일이 없어지는 세상을 꿈꿔. 근데 그건 어려울 거야. 그리고 막상 할 일이 없어지면 더럽게 심심할 테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사건을 사랑하거든.”
사건을 사랑한다. 미묘한 느낌의 문장이었다.
“그보다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알아냈어?”
“아니요. 전혀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도 돕고, 나쁜 사람도 돕고. 경비대나 수비대였으면 나쁜 사람을 도울 리 없잖아요? 그러니 그쪽은 아닌 것 같고.”
가하란은 완자를 소스에 굴리며 말을 이었다.
“할 일이 없어지는 세상이 아저씨의 꿈이라고 했으니, 나쁜 사람들을 잡거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어요.”
“음, 사실 맞히는 게 더 이상해. 사람이 하는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칼리고가 완자가 끼워진 포크를 빙글빙글 돌렸다.
“어때? 포기할래?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한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도 없으니까.”
“그러면 초능력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잖아요.”
“그렇겠지?”
“조금만 더 생각해봐도 되나요?”
칼리고의 왼쪽 눈이 씰룩거렸다. 입꼬리도 위로 들렸다.
“너 진득한 성격이구나. 나이답지 않게. 내가 만난 네 또래의 애들은 몇 번 참다가 결국은 포기하거든. 아니면 떼쓰거나.”
“떼쓰면 알려 주시나요?”
“아니. 난 애들을 좋아하지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별하거든.”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가하란이 그릇을 보았다. 완자가 하나도 없었다. 곁들여 먹는 채소조차 남지 않았다. 언제 다 먹은 거지?
아쉬운 마음에 포크로 소스만 긁어댈 때였다.
“자.”
칼리고가 완자를 덜어주었다.
“아저씨는요?”
“난 많이 먹어서 배불러. 그러니 너 먹어.”
가하란은 그릇에 덜어진 완자를 바라보다가, 허리춤에 손을 댔다. 주머니를 끌러낸 다음 칼리고 앞에 내밀었다.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세요.”
“너 보따리상이야? 간식을 이렇게 싸 들고 다녀.”
“어른들이 주셨어요.”
“아하. 다들 너한테 잘 보이려고 안달이 났겠구나. 벌써부터 뇌물을 받으면 안 좋은데.”
“뇌물이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예전에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뜻이 생각이 안 나요.”
칼리고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갔다.
“뇌물은 말이야, 지름길 같은 거야.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지.”
“그러면 좋은 건가요?”
“어른 된 처지에서 뇌물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뇌물이란 게 내 능력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혹은 숨기고자 윗사람한테 돈과 선물을 주는 거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부정청탁 같은 거네요?”
“어휘력도 좋네. 그런 말도 알고.”
“이것도 신문에서 봤어요. 할아버지랑 같이 보면서 많이 배웠거든요.”
“할아버지라. 친할아버지는 아닐 테고.”
가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집에 살던 할아버지셨어요. 저한테 정말 많은 걸 가르쳐 주셨고요. 근데 친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초능력.”
“…저 아저씨가 조금 미워지려고 해요.”
“미워하진 말아줘. 내가 워낙 미움받고 살아서 그런 거에 내성이 높지만, 그래도 애한테까지 싫단 소리를 들으면 상처받거든.”
“그러면 취소할게요. 사실 전 아저씨랑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칼리고가 쥐고 있던 포크가 식탁 위로 떨어졌다. 툭, 하고 튕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포크를 칼리고가 낚아챘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네?”
“나랑 얘기하는 게 어떻다고?”
“재미있어요. 다른 어른들은 제가 질문을 몇 개 하면 금방 뚱한 표정을 짓거든요.”
“세상에 어떤 놈들이 너같이 착한 애한테 그런 짓을 해! 싹 다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어야 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
칼리고가 포크를 입에 물며 빤히 쳐다봤다. 가하란은 머쓱해져서 살며시 웃었다.
“정말 나랑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
“네.”
“안 질려? 내가 말이 많잖아. 인정하긴 싫지만 다들 말이 많다고 하니까.”
“그게 왜요? 전 다른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은데.”
“세상 사람들이 너의 상냥함을 반의반, 아니 반의반의 반만큼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슬그머니 셀베이아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칼리고였다.
동시에 누나가 눈을 갸름하게 떴다.
가하란은 저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브라인이 책상에 엎어질 때마다 저렇게 쳐다봤다.
긍정적인 뜻은 아니리라.
“저것 봐. 저 아가씨만 해도 날 싫어해. 내가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상호이해를 위한 간략한 토크를 했을 뿐인데 날 피하려고 해. 얼마나 서러운 일이니?”
“아까도 말했지만 싫어하는 행동은 하면 안 돼요. 그건 아저씨가 잘못했어요.”
“편을 들어줄 거면 끝까지 들어줘. 너 너무 대쪽 같다. 내가 뇌물도 줬잖아. 그러니 내 편을 들어줘야지.”
가하란은 칼리고가 준 완자를 단숨에 입에 넣었다. 재빨리 씹은 다음 꿀꺽 삼켰다.
“없는데요, 뇌물.”
칼리고가 눈을 꿈뻑 거렸다.
“…너 장래에 아주 훌륭한 정치가가 될 거다.”
“전 정치 같은 거 할 생각 없어요. 전 거병 기술자가 될 거니까요. 그다음에는 모험가가 될 거고요.”
“사람 미래는 모르는 법이야. 누구나 목표를 품고 살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이상한 길 위에 서 있게 되거든.”
“그럼 전 그때마다 바른길로 돌아갈래요.”
“그거 진짜 어려운 일이야.”
“어려울수록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했어요.”
칼리고가 턱을 쓰다듬었다.
“너 말이야, 내 밑에서 일해볼래?”
“아저씨 밑에서요?”
“오래전에 네 아빠한테도 제안했었거든.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지만.”
“저희 아빠를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어요?”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지. 아무튼 어때? 이 아저씨랑 일해보지 않을래? 물론 당장 업무에 투입될 수는 없고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배워야겠지.”
칼리고가 얼굴을 들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래 보여도 아저씨가 꽤 높은 사람이거든. 나랑 일하면 세상 사는 게 편해질 거다.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런 건 웃으면서 넘길 수 있지.”
가하란은 고민하는 척 팔짱을 꼈다. 지금이라면 은근슬쩍 칼리고의 직업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볼게요.”
“깊게 생각할 것 없다니까 그러네. 내 밑에 있는 애들은 항상 웃고 다녀. 일이 얼마나 즐거우면 그러겠어?”
“근데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그건 모든 직장인의 소망이야. 좋은 결과를 낳는 일이든, 그 반대든 일 자체는 다 싫어해. 나야 좀 특이해서 일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가하란은 손가락으로 턱 끝을 매만졌다. 뜸을 들인 후 칼리고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궁금하긴 해요.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걸 알아야 제가 할지 말지를 결정하죠.”
“생각이 있는 거야?”
“들어보고요.”
“그렇단 말이지. 내가 하는 일은 말이야….”
칼리고가 말끝을 흐리며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네가 맞혀야지.”
“…너무해요.”
“뭘 너무해. 구렁이 담 넘듯 내 속을 떠보려 한 네가 더 너무하지. 거봐. 넌 정치 해야 한다니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건가.”
구렁이 담 넘듯, 피는 물보다 진하다. 둘 다 아는 속담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요?”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네. 혹시 그건 저희 증조할아버지에 관한 건가요?”
칼리고가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이번에도 날 떠보는 거야?”
“아니요. 저번에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들었어요. 의회와 세나티아 가에서 일하신다고. 의회가 정치하는 곳이란 것도 알고 있고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건 증조할아버지와 저의 관계를 뜻하는 거죠?”
질문을 던지자마자 칼리고의 눈빛이 달라졌다. 살짝 차분해진 감이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
“대강 얘기를 하셨구나.”
“근데 듣기만 했지 잘은 몰라요. 의회가 어떤 곳인지, 세나티아 가가 어떤 집인지.”
“왜 안 물어봤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금방 알려줬을 텐데.”
“할아버지께서 아직은 몰라도 된다고 했어요. 제 귀에는 나중에 알려 주겠다는 뜻으로 들렸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물어봤어요. 할아버지한테 듣고 싶었거든요.”
“그건… 정말 잘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한 거니?”
“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시킨 건 아니고?”
가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널 아주 신용하고 있구나. 하긴, 이 정도로 앞가림할 줄 아는 애라면 잔소리할 필요도 없지.”
칼리고가 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아까는 반쯤 장난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진지하게 탐이 나네. 브라인 누님이 널 옆에 두는 이유가 이런 건가?”
브라인 누님. 생소한 호칭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브라인을 가리켜 ‘특무대령’ 혹은 ‘대령’이라고만 불렀으니까.
“브라인 님하고 친하세요?”
“친하지. 엄청. 그쪽 의견은 잘 모르겠지만, 난 친해.”
가하란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안 친하죠?”
“어른 의심하는 거 아니야.”
“아저씨랑 얘기하면 할수록 더 모르게 돼요. 전 이제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예 모르겠어요.”
“그래? 그러면 이건 어때.”
칼리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둥 옆에 서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더니 몇 마디를 건넸다.
잠시 후 직원이 익숙한 물건을 가져왔다.
“혹시 체스 둘 줄 알아?”
“체스요?”
“올란트의 아들이라면 둘 줄 알 것 같은데.”
가하란은 체스보드를 보며 말했다.
“조금 둘 줄 알아요.”
“그럼 됐네. 우리 정정당당하게, 남자 대 남자로 대결해보자.”
“남자 대 남자로요?”
칼리고가 체스보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집에 있는 나무 보드와 달리 매끄러운 표면을 자랑했다. 반질반질해서 얼굴도 비칠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아빠한테 체스로 이긴 적 있어?”
칼리고가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