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병공 진군가-39화 (337/558)

제39화

멧시언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율을 지목했다.

“율 학생. 이쪽으로 와 보세요.”

율이 유사 정령 옆에 섰다.

“신체술을 사용할 줄 아나요?”

“아주 짧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나가 친숙하겠군요.”

멧시언이 유사 정령을 가리켰다.

“손바닥을 대봐요.”

기다렸다는 듯이 율이 손을 움직였다. 밀레나는 율의 표정을 관찰했다. 어떤 느낌일까? 통증은 없는 걸까?

“어떻죠?”

“아무렇지 않습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어떤가요?”

“굉장히 까끌까끌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율이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큼지막한 쇳덩이 위로 율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안 차갑습니다.”

“온기가 느껴지나요?”

“조금요.”

“특수한 광물이 섞여 있어 그런 겁니다. 혹시 금적철이란 걸 들어봤나요?”

율이 “처음 듣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금적철이란 말에 귀가 번뜩였다. 밀레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은 채 유사 정령을 보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쇠. 왜 바로 금적철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밀레나 학생.”

“네.”

“금적철이 뭔지 아는 것 같군요. 동기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밀레나는 유사 정령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미개척지 내에서 처음 발견된 금속으로 제국 내에서도 유통량이 극히 적다고 들었습니다.”

“특징으론 뭐가 있을까요?”

“마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이라 알고 있습니다.”

“정확해요. 뛰어난 탄성과 강도보다 더 중요한 특장점이 바로 마나를 눌러 담아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기에 거병의 연료팩인 마나응축봉 역시 금적철이 반드시 쓰여야 하고요.”

멧시언이 앞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한 뼘 길이의 쇠막대기를 꺼내 들더니 유사 정령을 힘껏 내리쳤다.

탕, 소리와 함께 보랏빛 불꽃이 튀었다. 밀레나는 공기 중에 흩어지는 보랏빛 잔류를 눈으로 좇았다.

가시화한 마나. 쇳덩이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를 보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경각심이 들었다.

동기들 역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있던 율은 어깨를 움츠리며 한 걸음 뒤로 갔다.

“방금 본 보랏빛이 뭘 의미하는지 다들 알겠죠?”

쇠막대기가 로운을 가리켰다.

“마나가 가시화한 겁니다.”

“맞아요. 하나만 더 물어볼까요? 가시화한 마나의 특징은 뭔가요?”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 위험하죠?”

“안정된 마나는 대기 중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인다는 건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하고, 색을 갖출 정도면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되는 상태입니다.”

“접근하면 어떻게 되는지, 거기 학생이 설명해 보죠. 학구열이 아주 뛰어나 보이는데.”

멧시언의 시선을 받은 건 브리테였다. 자유 시민 동기들의 수장. 브리테가 눈길을 끌자 미엔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알기 쉬운 반응이었다.

“마나 친밀도가 높다고 한들 가시화한 마나에 접근하면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영구적인 손상이란 어느 정도를 뜻하죠?”

“접촉 시간, 마나의 밀도, 대상자의 마나 친밀도에 따라 다르지만 직접 맞닿은 부위가 녹아내리는 건 공통사항입니다.”

멧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누군가는 기운, 누군가는 기원, 누군가는 생명으로도 부르는 이 힘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죠.”

멧시언의 눈짓을 받은 율이 뒤로 물러섰다. 멧시언이 재차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유사 정령에서 다시금 마나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우리는 마나를 이용해 많은 것을 합니다. 길가에 등을 켜기도 하고, 수압을 조절해 배수시설을 관리하죠. 마법사들은 각자의 심상세계를 통해 스크롤을 제작하고, 우리 공학자들은 마나와 물질을 접붙이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입니다.”

무엇 하나 명쾌한 것이 없는 미지의 힘. ‘뿌리’에서 시작된다는 것 외엔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에너지.

“수많은 천재와 범재의 노력으로 우리는 마나를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이런 평가조차 우리의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마나는 그 끝을 알 수 없어요. 우리가 목도한 건 순간의 현상일 뿐, 근원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어요.”

밀레나는 온화하게 웃는 명인의 입을 바라보았다.

“스콜라 생도들을 만날 때면 나는 꼭 이 말을 해줍니다. 마나를 두려워하세요.”

멧시언이 쇠막대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토마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마나에 대해 떠들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죠?”

“아닙니다!”

“노파심이란 게 어쩔 수가 없군요. 여러분처럼 뛰어나고 마나와 친숙한 학생들을 보게 되면 이 말을 꼭 하게 되거든요.”

유사 정령에 손을 올린 멧시언이 말을 이었다.

“마나를 두려워하라. 아마 다들 들어봤을 겁니다. 옆에 서 있는 휴리우스도 교육할 때 가르쳐 줬겠죠.”

밀레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멧시언의 말대로 ‘마나를 두려워하라’ 이 문장을 수도 없이 들었다.

특히 신체술 교육이 시작되고, 마나를 감지한 다음부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들었다.

마나를 두려워해라, 뿌리를 들여다보지 마라.

“지겹도록 말하고 또 말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아마 여러분도 겪었을 겁니다. 그러니 방금 가시화한 마나를 보고 물러섰겠죠. 움직이란 명령도 없었는데.”

불행한 사고란 말이 작년에 있었던 사건을 상기시켰다. 우수한 성적으로 스콜라 수료를 앞둔 생도가 하루아침에 숨을 거뒀다.

밀레나는 처참했던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가시화한 마나가 건장한 육신을 휩쓸었고, 그게 끝이었다.

신체술을 1분 이상 지속할 수 있었던 뛰어난 전사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사라져 버렸다.

아주 잠깐 뿌리에 접촉한 대가였다.

“여러분이 기술을 갈고 닦고 배움이 깊어질수록 강렬한 유혹이 찾아올 겁니다. 마나의 근원, 뿌리에 대한 탐구심이 충동적으로 찾아오죠.”

멧시언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밀레나도 시선을 땅으로 떨어트렸다.

집중하면 알 수 있다. 이 밑에 거대한 힘이,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힘의 정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아는 게 없는 자는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아는 자는 그보다 더 용감해질 수 있죠. 얕은 앎은 언제나 화를 불러옵니다.”

멧시언이 바지의 밑단을 잡고 살짝 올렸다. 묵빛의 강철 다리가 은은하게 빛났다.

밀레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나 역시 어리석은 짓을 했고 그 대가를 치렀어요. 왼쪽 다리 한 짝이면 싸게 먹힌 거였죠. 나는 오만했습니다. 마나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 결과가 이겁니다. 스콜라 생도 여러분, 부디 이 다리를 기억하세요.”

멧시언이 구겨진 바지를 툭툭 쳐낸 다음 허리를 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토마타 얘기를 다시 해보죠.”

경직된 분위기를 바뀌기 위함인지 멧시언이 박수를 두어 번 쳤다.

“조금 전에 보았듯이 이 유사 정령은 외부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예요. 제작 단계에서 실수가 있었던 거죠.”

보랏빛을 내며 튀어 오르던 마나의 불꽃이 다시금 떠올랐다.

“밀레나 학생.”

“예.”

“유사 정령 표면에 새겨진 선들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죠?”

“어지러웠습니다.”

“감각이 예민하군요. 다른 학생들은 어떤가요? 이상징후를 느꼈다면 손을 들어봐요.”

대다수의 생도가 손을 들었다. 옆에 있는 로운이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평가하려는 건 아니니까 솔직하게 답해봐요.”

멧시언이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고, 잠시 후 네 명을 제외한 생도들이 손을 내렸다.

밀레나는 눈동자를 굴려 손을 든 동기들을 확인했다. 자신을 포함 신체술 교육 때 좋은 평가를 받은 애들이었다.

브리테도 그중 하나였는데 눈빛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틀었다. 무시하는 눈치였다.

본토 귀족하고는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 건가.

훈련 때야 구멍이 나면 다 같이 죽는 터라 없는 동료애를 짜내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지만, 이럴 땐 은은한 적개심을 내비쳤다.

파벌을 나누고 다툼하는 것조차 따분한 짓이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무리에 섞여 있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건가.

손을 번쩍 든 미엔에게 멧시언이 질문했다.

“유사 정령 표면에 새겨진 선. 이게 바로 마력선입니다. 미엔 학생, 오토마타에서 마력선이란 무엇이죠?”

“오토마타의 신경계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맞아요. 금적철을 반구형으로 가공한다고 해서 유사 정령이 되는 게 아니죠. 마력선이야말로 유사 정령의 핵심이자, 거병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입니다.”

멧시언이 유사 정령 왼쪽에 검지를 댔다. 손가락이 움직이며 기이한 형태를 그려냈는데, 어느 순간 마력선이 푸르게 빛났다.

밀레나는 선명해진 마력선을 두 눈에 담았다. 그러자 어지럼증이 밀려들었다.

“도안에 따라 마력선을 새겨 넣어야 하는데, 작업 과정에서 실수가 생겼죠. 재처리 후 수정을 거쳐야 했지만 내가 교육자료로 삼기 위해 이렇게 보관해 둔 겁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제자리에서 수십 바퀴를 돈 것처럼 핑핑 돌던 시야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마나에 민감할수록 어지러울 겁니다. 물론 금방 적응할 테니 문제 될 건 없어요.”

멧시언 말대로 어지럼증이 완전히 가셨다. 마력선을 계속 바라봐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괜찮아진 것 같군요. 밀레나 학생, 나와 내기를 하나 해볼래요?”

“내기요?”

“만약 이 유사 정령에 새겨진 마력선을 보고 잘못된 곳을 찾아낸다면, 내가 특별한 선물을 주겠어요.”

“선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멧시언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학생 말이 맞아요. 상품은 확실하게 정해둬야 탈이 없죠. 내기에 걸 물건은 내 친구한테 받은 단검입니다. 장식용이지만 실전에 써도 무방할 만큼 아주 괜찮은 물건이죠.”

멧시언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그 친구의 이름은 ‘안두카프’입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상 못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멍해져서 멧시언을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유사 정령을 바라봤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에스트로 안두카프의 작품이 내기 상품으로 걸렸다.

“멧시언 님! 저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저한테 기회를 주십시오.”

다른 동기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훈련장을 벗어나면 품위를 지켜야 하는 게 스콜라 생도의 규칙이지만, 지금은 규칙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밀레나는 유사 정령에 달라붙었다. 빛나는 마력선을 눈으로 좇고 손가락으로 훑었다.

“누구든 좋습니다. 마력선의 오류를 잡아낸다면 선물을 드리죠.”

멧시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동기들이 옆으로 달려들었다. 서로를 밀쳐내며 유사 정령을 관찰했다.

“잘못된 부분은 단 한 곳입니다. 한 사람당 한 번의 기회를 줄 테니 유심히 살펴봐요.”

“운으로 찍어서 맞혀도 단검을 받을 수 있나요?”

율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히기만 한다면 줄 겁니다.”

휴리우스 교관이 의자를 가져와 멧시언 앞에 내려놓았다. 의자에 앉은 멧시언이 느긋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고로 이 내기에서 상품을 가져간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지난 25년간 말이죠.”

승부욕에 불을 지르는 말이었다.

밀레나는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집념으로 복잡하게 엉킨 선들을 주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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