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웰턴이 말했다. 걱정이 그득한 눈으로 집 안을 살피는 중이었다. 우르르 몰려든 다른 이웃 어른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
가하란이 대답할 때였다. 집 안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족은 언제나 뒤에서 말하는 걸 즐기지.”
상체를 숙인 도마뱀 전사가 현관에 몰려든 이웃들을 바라봤다.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츠러들었다.
“할 말이 있다면 내 눈을 보고 말해라.”
촛불이 빚어낸 은은한 불빛이 도마뱀 전사 얼굴을 비췄다. 촘촘하게 맞물린 비늘들. 문득 만져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으나 꾹 눌러 담았다.
“무슨 이유로 여길 온 거죠?”
앞으로 나서며 물은 건 룽네 아줌마였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듯이 턱을 들고 눈을 똑바로 떴다.
가하란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룽네와 도마뱀 전사를 번갈아 봤다.
“옛 친구를 만나러 왔을 뿐이다.”
“정말 그뿐인가요?”
“인간족의 배타성은 한결같군. 전사로서 부끄러운 일이지.”
“난 전사가 아니니 상관없네요. 나한테 중요한 건 내 새끼나 다름없는 이 애의 안전이에요.”
룽네가 가하란을 잡아끌었다. 룽네 옆에 바짝 붙은 채 도마뱀 전사를 올려다보았다.
“이 아이를 괴롭히지 않을 거죠?”
“괴롭힌다는 게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군.”
한순간 도마뱀 전사가 가까워졌다. 코앞에서 본 비늘은 장인이 공들여 만든 예술품 같았다.
질감이 어떨까. 온도는? 미지근할까, 아니면 차가울까.
첫 번째 충동은 참았지만, 두 번째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가하란은 손을 슬쩍 올리며 다가온 전사에게 물었다.
“저기, 한번 만져 봐도 되나요?”
말을 내뱉고 나서 주변이 기이할 정도로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가하란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곁에 있던 룽네가 헛숨을 내쉬더니, 이내 웃었다.
“걱정한 내가 왜 한심하게 느껴질까.”
다른 어른들도 그러게, 라며 동조했다.
전사가 고개를 더 숙였다. 눈높이가 같아졌다.
모든 걸 들여다보는 듯한 노란색 눈이 좌우로 살짝 움직였다. 눈동자가 워낙 커서 스륵스륵 움직이는 소리가 날 것 같다.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왜지?”
“무서운 분이 아니니까요.”
코라고 생각되는 부위가 들썩거렸다. 뜨거운 김이 얼굴을 스쳐 갔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렇게 보이니까요.”
“직감은 위험한 법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가느다란 목을 꺾는 건 일도 아니지.”
‘꺾는다’는 말에 룽네를 비롯한 어른들이 전사 앞을 막아섰다. 긴장감의 밀도가 한순간 높아졌다.
가하란은 룽네의 손을 살며시 떼어낸 후 앞으로 나섰다.
“분명 그렇겠죠. 그 두꺼운 손가락이면 그런 건 일도 아닐 거예요. 하지만 아저씨는 그러지 않을 거잖아요.”
도마뱀 전사와 몇 초간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다 굳은살처럼 딱딱해 보이는 눈꺼풀이 노란 눈동자를 잠시 덮었다.
“인간족 터전에서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내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하다면 나가서 기다리면 될 뿐.”
거대한 창을 움켜쥔 채 전사가 걸음을 뗐다. 현관 앞에 서 있던 어른들이 집 밖으로 나가 길을 텄다.
가하란은 바깥을 바라보았다. 빗소리가 여전히 시끄러웠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전사를 따라가 빗물이 맺힌 비옷을 붙잡으며 말했다.
“여기 있으세요.”
그다음 바깥에 서서 지켜보는 이웃들에게 입을 열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분은 핀들론 할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니까요.”
말없이 지켜보던 어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험악한 어투와 달리 사람들 의견에 따르는 타린족 모습에 경계심을 거둔 듯했다.
룽네가 도마뱀 전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린 가하란의 보호자들이에요. 그래서 말이 좀 거칠게 나갔어요. 기분 상했다면 사과할게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건 당연한 이치지. 그러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대전사가 아닌 인간족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도마뱀 전사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가하란을 지나쳐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벽에 창을 기대 놓고 자리에 철퍼덕 앉는 게 보였다.
“가하란.”
“네.”
“우리 집에 가서 기다리자고 해도 말 안 들을 거지?”
역시 룽네 아줌마는 내 마음을 잘 안다. 가하란은 눈웃음 지으며 네, 라고 대답했다.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해. 타린족은 무서운 자들이니까.”
“얌전히 있을게요.”
“네가 그런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꼭 사고가 일어나더라. 특히 테리랑 같이 있을 때.”
테리 형하고 몇 번 사고 친 적이 있어서 변명은 하지 않았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우리 집으로 와.”
“네.”
“난 핀들론 영감님 찾아볼게. 당신들, 영감님한테 연락할 방법 없어?”
룽네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르신이라면 아마 행정처에 있을 거야. 근데 곧 통금 시간이라 찾아가긴 힘들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다들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을 감춘 채 비만 쏟아내는 하늘이었다.
“전 괜찮으니까 얼른 돌아가 쉬세요.”
어른들을 보며 말했다. 어른들이 눈길을 한 번씩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룽네도 가하란의 볼을 쓰다듬은 후 자리를 떴다.
“애쓸 필요 없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하란은 문을 닫으며 도마뱀 전사를 보았다.
“뭐가요?”
“내가 불편하다면 애써 참을 필요 없단 뜻이다. 나가라고 하면 나갈 테니 편하게 말해라.”
“그럴 마음이었다면 아저씨한테 말을 걸지도 않았을 거예요. 참, 아저씨라 불러도 되나요?”
“아줌마는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전사였다. 날카로운 눈매가 약간 휘었다.
가하란은 혹시나 해서 되물었다.
“지금 농담을 하신 건가요?”
“격조 높은 언어유희지.”
약간의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진심인 거 같아 한동안 멍하게 쳐다봤다.
“왜? 어려워서 이해를 못 한 건가?”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넋이 나갈 만하지. 부족 내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농담을 구사하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다시 한번 벌름. 콧구멍이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기뻐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는 건 좋지 않겠지?
하지만 거짓말하는 것도 좋지는 않은데.
“비를 피하게 해준 대가로 재미난 농담 하나를 더 해주지.”
도마뱀 전사가 길쭉하게 나온 입을 위로 들며 말했다.
“‘포도’가 어느 날 말했다. 날 보고 싶‘포도’ 참아.”
도마뱀 전사의 콧구멍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늘어진 꼬리가 좌우로 팔딱였다.
가하란은 손을 마주 잡았다. 이런 당혹감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설프게 웃었다.
“웃음을 참지 않아도 된다.”
굉장히 뿌듯해 보이는 전사였다.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고 있으니 툴이 떠올랐다. 침이 잔뜩 묻은 양말을 물고 와서 꼬리를 흔들던 짓궂은 모습이.
아, 툴!
가하란은 방으로 들어갔다. 툴은 여전히 침대 밑에 코를 박고 와들와들 떠는 중이었다.
신비한 타린족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다.
“미안해, 툴.”
침대 밑으로 같이 기어들어가 툴의 얼굴을 살폈다. 눈이 마주치자 허겁지겁 다가와 안기는 툴이었다.
“예민한 놈이군.”
가하란은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도마뱀 전사의 발이 보였다. 안겨 있는 툴이 몸을 크게 흔들며 낑낑댔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타린족 아저씨를 다시 내보낼 순 없으니, 툴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웰턴이라면 툴을 맡아줄 것이다. 툴도 웰턴을 잘 따르니 문제없고.
툴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침대 밖으로 나갈 때였다.
도마뱀 전사가 어깨를 접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좁은 방이 한순간에 꽉 찼다.
“겁에 질렸음에도 도망치지 않는 건 그만큼 주인을 아낀다는 거군.”
도마뱀 전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겁에 질린 툴을 향해 손을 내밀며 가하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괜찮아질 거다.”
툴의 등에 전사의 손이 닿았다.
와들와들 떨던 툴이 점차 안정되더니, 이내 고개를 홱 틀어 전사를 쳐다보았다.
겁에 질려 앓던 툴이 슬그머니 도마뱀 전사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걱정 반, 놀라움 반을 담아 툴과 전사를 바라보았다.
툴은 전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꼼꼼하게 냄새를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사람들에게 하듯이 펄쩍 뛰어올라 전사를 반겼다.
“어떻게 된 거죠?”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한순간 달라진 툴의 태도가 신기할 뿐이었다.
“기운을 거뒀을 뿐이다. 모든 개가 그런 건 아니나, 이놈처럼 예민한 개들은 산의 자식들이 내뿜는 기운을 느끼곤 하지.”
도마뱀 전사는 비늘이 돋아난 손으로 툴을 몇 번 쓰다듬은 후 방을 나섰다.
가하란은 엉겨 붙는 툴과 함께 전사 옆으로 갔다. 도마뱀 전사가 눈을 갸름하게 뜨고 쳐다봤다.
“왜?”
“기운이란 게 뭔가요? 산의 자식들은 또 무슨 뜻이죠?”
생소한 말이 앎의 욕구를 자극했다.
“겁이 없는 인간족 꼬마구나.”
“아저씨가 무서운 분이었다면 저도 조용히 있었을 거예요.”
“네 기준에서 무서운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 두려워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거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해도 제 눈에는 나쁘게 안 보이는걸요.”
“눈이라.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예리한 시선이 머리꼭지부터 발끝을 훑고 지나갔다.
“한번 들어보자.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질문은 쉬웠으나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눈으로 본 걸 적합한 단어로 바꾸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어려워요.”
고민 끝에 나온 말이었다.
“어려워?”
가하란은 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 눈에는 얘가 뭐로 보이세요?”
“개.”
“왜 개예요?”
“음?”
“개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저게 개가 아니면 대체 뭐가….”
인상을 찌푸리는 도마뱀 전사에게 얼른 말을 걸었다.
“이런 느낌이에요. 아저씨를 보고 제가 받은 감정은 ‘나쁘지 않다’예요. 동시에 ‘위험하지 않다’도 있고요.”
가하란은 목덜미에 손을 살짝 얹었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버릇처럼 여기에 손이 갔다.
“제가 좀 더 똑똑했다면 이 느낌을 제대로 설명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그게 안 돼요. 툴을 보고 개라고 할 수 있지만, 개가 왜 개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개는 그냥 개니까요.”
한참 말하다가 입을 꾹 닫았다. 아빠는 항상 말했다.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방법은 천천히, 그리고 생각한 뒤에 입을 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간을 들여 고민해봐도 명쾌한 답이 안 나왔다.
“말이 이상하죠?”
헤헤, 웃으며 도마뱀 전사를 보았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마뱀 전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기운이라는 건….”
“네?”
“기운과 산의 전사,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네, 네! 알려주시는 거예요?”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대강 알겠고.”
도마뱀 전사가 고갯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옆에 멀뚱히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으라는 뜻 같았다.
가하란은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전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다음 편에서 계속)